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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민속을 지키는 사람들 (2) - 한영숙
민속을 지키는 사람들 (2)
한영숙
1980.04.27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전통음악)

흰 고깔에 장삼을 입고 가사를 걸쳤으니 스님이 아니면 보살님이 틀림없으련만.

참선을 하듯 엎드렸던 작은 몸이 불현듯 일어 서는가 했더니 양팔을 치켜들고

오이씨 같은 외발로 서서 신들린 듯 춤사위를 엮어간다. 때로는 정지하고

때로는 숨 가쁘게 움직여대며 염불, 도드리, 여섯 박자 장단을 짚어가고 타령, 굿거리에

네 박자 장단을 뛰어본다. 때로는 고뇌와 번민이, 때로는 희열과 쾌락이 섞이며

이어졌다 끊어졌단 보는 이의 가슴 안을 무끈하게 짓누른다. 범패의 작법도 아니요.

바라춤도, 나비춤도 아닌 불교의 의식과는 전혀 관계없는 이 청결하고 성스러운 춤사위.

이름 하여 승무가 아닌가.

(전통음악)

오늘 이 시간에는 승무와 학춤으로 인간문화재 27호와 40호로 지정돼있으면서

우리 민속의 원형을 외롭게 지키고 있는 한영숙 씨 편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승무에 대한 해설입니다.

『승무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이 승무라는 춤은 불교의식무용에서

파생된 것이다 하는 그런 의견도 있고 에, 아주 유명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유혹하기 위해서

이러한 아주 좋은 민속무용을 창출을 했다, 또는 탈놀음에 노장춤에서 발달해가지고 오늘의

승무가 됐다는 여러 가지 설이 있습니다. 그러나 불교의식무용에서 파생된 내용 가운데에도

불교를 찬양하는 대목이 있다. 이렇게 주장하는 분도 계시고 또한 직설적으로 불교의 실상을

표현하고 있다는 그러한 의견도 있습니다. 한영숙 여사는 이미 오래 전, 그러니까 1933년에

설립됐던 조선음악무용연구소의 설립자 고 한성준 옹의 손녀가 되십니다. 그로부터 전통적인

우리의 민속무용을 전승받아서 아주 외롭게 지키고 계신 지보적인 존잽니다.』

(전통음악)

(목탁 두드리는 소리)

- 아... 음.. 수도를 한다는 것은 어찌 이처럼 고행이란 말인가. 과연 이 고행을 해서 뭘 어쩌잔 말인가.

- 독경하지 않고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냐.

- 스님.

- 왜?

- 고행은 뭣 때문에 하는 것입니까?

- 그야 성불이 되려고 하는 것 아니냐?

- 그럼 고행은 어느 때야 끝나는 것입니까?

- 그야 불자로서는 평생 동안 해나가야 할 일 아니겠느냐.

- 평생 동안 고행을 해서 뭘 어쩌잔 말입니까?

- 음, 하하하하... 산에 꽃이 피고 온갖 새들이 우지지니 네 마음이 참으로 심란한 모양이구나.

- 아...

- 그 역시 고행이 부족하기 때문인 것. 고행은 곧 자신을 극복해야만 생명이 무엇이며 죽음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 아니겠느냐. 고행 끝에 얻는 자각은 곧 성불로 가는 첫걸음이며 자각을 한 자만이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제도할 수 있는 것이니라. 잠시 머리를 식히고 불당에 들어가 독경을 하거라.

- 아유... 이 심란한 마음 무엇으로 다스린담. 에이... 땀을 흠뻑 쏟으며 북이라도 두드려보면 행여 가라앉지 않을까.

(전통음악)

온갖 영화와 유혹을 외면하고 고행을 하는 수도승은 도를 닦는 것이 어려워질수록 차츰 회의와 고뇌를 갖게 되는 것.

이러한 고뇌를 이겨나가야 한다는 걸 잘 알면서도 자신이 흔들리고 있으니 법고를 두드려 잊어볼거나.

승무는 말하자면 파계승의 고뇌를 나타내는 춤이기 때문에 외면적인 춤사위보다 내면적인 춤의 흐름이 더 중요하다.

따라서 내면으로 호소하는 만큼 춤이 어려우며 고뇌를 동작으로 나타내는 만큼 장단이 다양하고 까다롭다.

(전통음악)

한때는 불교의 위신을 해친다고 해서 폐지론까지 났던 이 어려운 승무를 한영숙 씨가 배우기 시작한 것은

불과 열여섯 살 때라고 하니 올해로 꼭 환갑인 그에게는 꼭 45년 전의 일이다.

(음성 녹음)

무려 반세기에 가까운 세월을 오직 승무 하나로 이어온 한영숙 씨는 아직도 승무의 어려움을 이렇게 얘기하고 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어허, 이거, 이거 야단났구만! 저 사람들이 모두 한영숙의 승무를 보러 왔는데.

- 단장님, 안 됩니다. 한영숙이 도저히 춤을 출 수 없습니다. 보통 아픈 게 아니에요. 열이 펄펄 나고 신음을 하고.

- 어허, 이 참, 이를 어떡하지? 한영숙이 어디 있나?

- 방안에 누워있습니다.

- 어, 저, 이렇게 하도록 하지.

- 어떻게 말입니까?

- 한영숙이가 무대에 직접 나와 관객들께 인사만이라도.

- 글쎄, 아파서 꼼짝도 못한다니까요!

- 아... 아... 단장님.

- 아, 아니?!

- 아... 춤을... 추겠어요.

- 언제 고깔을 쓰고, 승복을 입고. 영숙이, 그 아픈 몸으로 춤을 추겠단 말이야?!

- 영숙이!

(전통음악)

자주 공연을 하다 보면 워낙 어렵고 힘이 드는 춤이기 때문에 심한 몸살을 앓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몸을 움직일 수 있는 정도만 되면 무대에 나가 춤을 추었다고 한다. 오히려 무대에 나가 땀을 흘리며

춤을 추고나면 몸살이 저절로 풀릴 때가 많았다고 하니. 한영숙, 그야말로 춤을 추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춤을 아는 사람이면 그의 승무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건 외국인들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민속학자 심우성 씨는 승무의 민속적 가치와 또 한영숙 씨가 지니고 있는 또 하나의 무형문화재인 학춤에 대해

이렇게 얘기한다.

『에, 먼저 승무의 경우, 우리 춤의 아주 유연한 가락이 전반을 수놓고 있는가 하면 끝마무리에서는 시원하고도

혼신으로 감정을 발산하는 굿 가락이 정과 동을 함께 승화,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보존하고 있는 또 하나의 무형문화재,

학춤은 우리나라 민속무용 가운데 동물의 형태를 독립적인 춤 소재로 한 몇 가지 안 되는 아주 소중한 유산 가운데 하납니다.

날짐승의 춤으로는 유일하다 하겠습니다. 학을 통해서 어쩌면 인간의 희로애락을 더욱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입니다. 학의 동작, 한 가지 한 가지의 몸짓을 비롯해서 그의 포효와 비상을 시원스럽게 표현하는 것입니다.

(전통음악)

환갑을 막 지낸 한영숙 씨는 몇 년째 숙환으로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아무리 아파도

무대에 나가 춤을 추었던 것처럼 아무리 아파도 전수생들한테 춤을 가르치는 것을 쉬지 않는다.

또한 전수생들 역시 이러한 스승의 집념에 감탄을 했기 때문인지 투철한 사명감을 갖고

또 그들의 새로운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수생 이향재 씨는 이렇게 얘기한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또 역시 전수자인 박재희 씨도 이렇게 말한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하지만 한영숙 씨는 전수자들의 장래를 위해 걱정을 하고 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또한 반세기 동안 우리 민족의 전통과 원형을 후손들한테 이어주기 위해 온 힘을 기울여온 한영숙 씨는

오늘날 민속예술의 그릇된 흐름을 날카롭게 꼬집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음성 녹음)

민속이나 풍물의 가치는 그것의 원형이 보존되는 데 있다. 비롯 개선이오 개량이라 할지라도

시대에 맞도록 손질을 한 변형이나 변질은 이미 민속과 풍물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이다.

조그마한 구멍이 마침내 거대한 둑을 무너트리듯 시대에 따라 당시의 취향이 맞게 조금씩조금씩

손질을 하다보면 원형은 짧은 기간에 완전히 없어져버리고 만다. 민속의 원형 보존.

한영숙 씨의 마지막 얘기는 결코 흘려버릴 수만은 없다.

(전통음악)

다음 주 이 시간에는 한국무속예술보존회를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

(입력일 : 2010.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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