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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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민속을 지키는 사람들 - 악기장 김광주
민속을 지키는 사람들
악기장 김광주
1980.04.20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음악)

(전통음악)

품위 있고 우아하며 드높은 기상을 지녔다. 그 음악이 어찌나 그윽하였던지 검은 학이 날아 들었다고 해서

현악금이라고도 불리우는 거문고.

화려하면서도 사치하지 않으며 명쾌하면서도 경망스럽지 않은, 그 단아함이 우리 민족성을 닮았다는 가야금.

우리의 대표적인 현악기이자 또 대표적인 국악기이다. 두 악기 모두 삼국시대 이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으면서 우리 민족과 애환을 함께 해왔으니 숱한 거문고, 가야금의 명인이 즐비하다.

허나, 아무리 빼어난 명인이라 할지라도 명 악기가 없으면 그 재주를 다할 수 없고 또한 아무리 기막힌 악기라도

명인을 못 만나면 그 진가가 나타날 수 없는 법이고 보면 숱한 명인 뒤에는 숱한 장인이 있겠건만

명인들이 화려하게 자기 시대를 수놓고 지나간 데 비추어 대부분의 장인들은 소리 없이 그늘에서 사라져간다.

(전통음악-판소리)

특집 민속을 지키는 사람들, 두 번째로 오늘은 거문고 제작으로 무형문화재 제 42호로 지정받아

국악기의 전통과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김광주 노인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거문고와 가야금에 대한 설명입니다.

-『거문고가 우직하며 남성적이어서 고구려적인 악기라 한다면 가야금은 섬세하고 감미로운 가야,

신라적인 악기라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민족에 있어 가장 오랜 연원을 갖는 이 두 현악기는

늦어도 삼국시대 이전부터 우리의 손으로 다듬어지고 짜여온 대표적인 현악기입니다.

거문고는 옥보고, 가야금은 가실왕이라는 전설적인 유래로 해서 더욱 그 값을 높이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의젓하고 또한 단아한 두 측면을 가장 잘 나타내고 있다 하겠습니다.』

(전통음악)

서울 동대문구 창신동. 수많은 골목을 여러 번 꺾어 들어가 낙산 줄기에 곧 쓰러질 듯

곧게 곤두선 바위 절벽 아래 이르면은 문화공보부 지정 국악기 제작소라고 붓으로 쓴

손바닥만한 나무 팻말을 붙인 허름하기 그지없는 한옥이 나타난다. 그저 열 평이나 될까.

이 보잘것없는 한옥이 거문고, 가야금 등 우리 국악기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인간문화재

김광주 노인이 세 명의 전수생들을 데리고 명기를 제작해내는 값진 터전이다. 김광주 노인의

춘추는 올해로 일흔넷. 국악기 제작은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가업이다.

(음성 녹음)

김광주 노인은 선친이 어떻게 해서 국악기 제작에 손을 대게 됐으며 스승이 누군지 모른다.

아마 선친 혼자서 기술을 습득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아무튼 어려서부터 선친을 도우며

기술을 익혀가면서 김광주 노인은 이것이 내 생업이구나 하는 사명감을 갖게 됐다.

(전통음악)

- 영감, 말도 안 되는 소리 집어치워요.

- 말도 안 된다니, 그만큼 성실한 총각도 드물다구.

- 아, 성실하면 뭘 해요. 성실한 남자는 얼마든지 있다구요. 원, 하고 많은 남자 가운데

하필 광대한테 딸을 줄 게 뭐냔 말이에요.

- 광대면 어떻고 쟁이면 어때. 사람이 중요한 거 아닌가! 사람이!

- 아, 글쎄, 안 된다면 안 되는 줄 아세요!! 우리 애가 어디 병신이에요?! 아니, 왜 멀쩡한 애를 하필

상놈 광대한테 시집을 못 보내서 안달이냔 말씀이에요!!

- 그렇다고 이제 와서 어쩔 수도 없잖아. 그 총각 부친하가도 이미 약속을 한 걸 어떡하냔 말이야.

- 아, 영감이 그 녀석 부친하고 술친구라고 해서 술 자시다가 약속한 걸 갖고 뭘 그래요?!

- 술 먹다가 한 약속도 약속은 약속이야.

- 그런 약속은 안 지켜도 돼요.

- 남아일언충천금이란 말 몰라?! 약속은 지켜야 해.

- 어림없는 소리 마세요.

- 어쩔 수 없어.

- 안 돼요!!

- 아, 어쩔 수 없다니까.

(전통음악)

김광주 노인이 젊었을 때만 해도 아직은 봉건사회다. 악기 만드는 것조차 쟁이 취급, 광대 취급으로

천시하는 바람에 결혼조차 힘들었다고 한다. 다행히 선친의 친구 딸과 억지로 혼인은 했지만

그때 나이 스물일곱, 당시로서는 대단한 만혼이다.

(음성 녹음)

하지만 당시 이들이 만든 품질 좋은 악기 값이 대단해서 한 달에 두 대 정도밖에 만들지 못했지만

먹고 사는 데는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고 한다. 선친을 돕다가 그가 처음으로 자기 손으로 완전한 악기를 만든 건 삼십이 넘어서다.

- 아버님, 드디어 제 손으로 완전한 가야금을 만들었습니다. 어떻습니까?

- 어디 보자.

- 솔직하게 말씀해주십쇼. 어떻습니까? 물론 아버님 솜씨에는 어림없지만 쓸 만은 한지요?

(가야금 소리)

- 오, 이만하면 되긴 됐다.

- 정말이십니까? 아버님.

- 그래. 조금만 더 정성을 더하고 넋이 담기게 한다면.

- 고맙습니다. 아버님.

- 이제부터 절대 딴 생각은 하지 말고 한우물만 파거라. 누가 뭐라고 해도 너는 이 일을 해야 한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천한 짓을 한다고 비웃어도 너는 이 일을 해야 한다. 알겠니?

- 알겠습니다. 아버님.

- 이 일은 누군가가 오래오래 이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야.

(전통음악)

그로부터 사십여 년. 김광주 노인은 외골수로 이 길만을 걸어왔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

요즘은 물론 여러 개를 한꺼번에 만드니까 제작시간이 훨씬 단축되지만 한 개의 거문고, 한 개의

가야금을 만들기 위해서 오동나무를 베어다가 말리는 작업부터 시작한다면은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산통을 겪어야 한다. 말하자면 하나의 인간이 태어나는 과정보다도 훨씬 힘들고 고된 작업이다.

따라서 지금 이름 꽤나 있는 거문고, 가야금의 명인 치고 김광주 노인이 만든 악기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판소리)

어떻게 생각하면 우습게도 사십여 년 간 거문고, 가야금을 만들어오고 악기와 함께 생활을 해온 김광주 노인이건만

그 자신은 전혀 가야금, 거문고를 연주하지 못한다. 하지만 그는 어디서 흘러나오는 가야금, 거문고의 연주를

들으면은 이내 연주자의 솜씨, 악기의 수준을 알 수 있다.

(음성 녹음)

(전통음악-판소리)

김광주 노인은 또 자기가 거문고 제작으로 인간문화재가 됐다고 해서가 아니라 거문고 연주보다 가야금 연주가

쉽다고 해서 요즘 사람들은 거의가 가야금만을 찾는다고 하면서 거문고가 자꾸 관심 밖으로 밀려나고 있는 것을

아쉬워하고 있다. 또한 음악교육에 대해서 충고도 잊지 않는다.

(음성 녹음)

민속학자 심우성 씨는 국악기 제작의 현황과 국악교육의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현재로서는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악기를 만들 수 있는 체통 있는 악기장은 지금 이 시간에 소개하고 있는

김광주 씨를 꼽습니다. 근 십년 전에 세상을 떠난 김봉기 선생이 있었고 이밖에도 몇몇의 고로한 기능보유자에

의해서 가냘프게 그 명맥을 잇고 있는 것입니다. 이대로 한 십년 더 간다면 우리 악기의 전통적인 제작법은

잃어져갈 뿐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재료를 구태여 쓰지 않게 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습니다.

모든 악기의 부분품이 플라스틱화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고 보면은 우리의 독창적인 성음이 나오질 않습니다.

국악교육의 문제, 역시 마찬가집니다. 제일 긴요한 것은 국악 곡의 채보법이 역시 독창적으로 발굴, 적립돼야 하고

또 어려서부터 우리의 가락을 몸에 배도록 정규적인 교육과정에 국악을 넣지 않고서는 자생적인 전승은 되지

않을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

(전통음악)

김광주 노인은 지금 일흔넷이지만 나이에 비해 훨씬 정정하다. 그는 언제나 변함없이 이 낙산 암벽 아래

허름한 한옥에 앉아 전수생들이 제작한 악기를 만져보며 언젠가 그의 선친이 그한테 해준 얘기처럼

비록 남들이 외면하는 고된 작업이지만 누군가 이 작업을 지키고 가꾸는 것은 물론, 누군가 끊임없이

계속해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힘주어 얘기하고 있다.

(전통음악)

다음 주 이 시간에는 승무의 한영숙 씨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

(입력일 : 2011.0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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