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풍물삼천리.
(음악)
(전통음악-천안삼거리 흥타령)
산천초목은 젊어만 가는데 우리네 인생은 헛늙어가는구나.
에루야, 데루야 성화가 납니다.
무정세월아, 가지를 말아라. 아까운 내 청춘 다 늙어간다.
흥에 겨워 흥타령이나, 설움에 겨워 설움을 떨치려 흥을 돋구고자 하는 것이냐.
(전통음악-천안삼거리 흥타령)
오늘은 천안삼거리 흥타령을 보내드리겠습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얘깁니다.
『민중의 노래, 민요. 즉, 모든 민요란 결국 서민의 의지가 가락과 사연에 얽히며
창출되는, 생명이 있는, 살아 있는 노래라 하겠습니다. 충청남도 천안군의 천안삼거리 하면
지금은 아주 한적한 주막이 선 작은 삼거리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그 옛날에는 한양으로 통하는
큰 길목의 하나였습니다. 바로 이 고장의 인정이, 이 고장의 사연이 가락에 실려서 창출되고 전승된 것이
천안삼거리 흥타령이라 하겠습니다.』
(전통음악-천안삼거리 흥타령)
(개짓는 소리)
- 능소야, 얘. 능소야! 능소 어딨냐?! 아유... 아니, 아, 거기 있으면서 대답도 안 하냐?
- 왜요? 어머니.
- 너 왜 잠 안 자고 예 앉아서 뭐하냐?
- 뭘 하긴요...
- 너 또 그 사람 기다리고 앉아 있는겨? 아유, 그 사람은 안 오는 사람이여. 올 사람 같으면 벌써 왔지!
- 그런 소리 마세요... 서방님은 오실 거예요.
- 글쎄, 올 사람이 여지껏 안 와?
- 무슨 사정이 있겠죠...
- 사정?!
- 그렇지 않고서야 아니 오실 리가 없어요.
- 사정은 뭔 놈의 사정, 무슨 사정이 있으면 곧 온다고 간 사람이 1년이 넘도록 코끝도 안 보이는겨?! 잊어버려. 이러다 병난다.
나도 허구한 날 목 빼고 앉아 있는 니 꼴 더는 못 보겄다.
- 어머니도... 내가 어디 서방님 기다리느라고 나앉은 거예요? 달이 하도 밝아서...
- 으으응, 쯧쯧쯧... 말 안 혀도 니 속 내가 다 알지.
- 들어가 주무세요.
- 나라고 잠이 온다더냐?
- 그날도 달이 이렇게 고왔었지요.
- 아휴... 아닌 게 아니라 달도 참 청승스럽게도 곱구나.
(음악)
(술 따르는 소리)
- 드시어요. 왜 그러시옵니까? 잔 비우셔요.
- 달빛 아래선 연꽃 같더니 등잔불 아래선 또 도화꽃 같구나.
- 과찬의 말씀이시옵니다.
- 천안삼거리, 주청도 많고 미인도 많다고 들었다마는 너 같은 아이가 있을 줄은 몰랐구나. 그래, 이름이 뭐냐?
- 능소라고 하옵니다.
- 능소라. 이름도 멋들어지구만.
- 어서 잔이나 비우셔요.
- 어. 그러자꾸나. 크... 어이구, 술맛 한번 좋구나. 한잔 더 따라라.
- 예.
(술 따르는 소리)
- 크아...
- 손님은 어디서 오시는 길이옵니까?
- 전라도에서 오는 길이다.
- 서울로 가시는 길이시지요?
- 서울로?
- 과거 보러 가시는 길이시지요?
- 오호, 과거라...
- 아니시옵니까?
- 내 행색을 봐라. 어디 과거 보러 가는 선비님네 같은가? 역마살이 끼어 괴나리봇짐 하나 달랑 짊어지고
그저 바람 부는 대로 싸 댕기는 처지라네. 아하하하하. 왜? 내 말이 틀린 것 같으냐?
- 소녀도 사람 하나는 볼 줄 아옵니다.
- 내 행색을 보고서도 그러느냐? 달구경 하는 니가 하도 예뻐서 앞뒤 가릴 새 없이 널 따라 들어왔다마는.
내 봇짐을 다 털어도 술값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은근히 걱정이로구나.
- 술값 걱정은 마시고 마음 놓고 드시어요.
- 왜? 공술 주려나?
- 으흐흥, 공술 못 드릴 것도 없지요. 충청도 인심이 그리 사납지는 않습니다.
- 충청도 인심인지, 능소, 니 인심인지 분간키 어렵구나.
- 아무려면 어때요? 잔이나 받으시어요.
(술 따르는 소리 및 술 마시는 소리)
- 크...윽! 아, 취한다. 술에 취하고 능소, 니게 취하고. 니 인심에 취하고. 거기 봉창 좀 열어라!
이왕이면 달구경하면서 취하자꾸나.
(창 여는 소리)
- 달빛이 오늘은 유난하구만. 음, 참 그런데 능소야. 아까 저기 버드나무 아래에서 달구경하던 니 모습이
시름에 겨워 보이던데 달빛 탓이더냐? 음, 달빛 탓이 아니로구나. 왜? 무슨 서러운 일이라도 있느냐?
어디 얘기해 보아라. 무슨 사연인지 알고 싶구나.
- 아비 때문이옵니다.
- 아비가 있더냐?
- 수자리 살러 가신 지 10년인데 여태 소식이 없어요.
- 음... 10년이라...
- 아마도... 오랑캐들 손에 돌아가셨나 보옵니다. 아, 피붙이라고는 아버지 한 분인데...
- 아비와 단 둘이었더냐?
- 예. 수자리 살러 가면서 절 이끌고 이 삼거리에 오셔서-.
- 얘야, 이제 여기서 헤어져야겄다. 널 데리고 갈 수도 없고 왕명을 거역할 수도 없고. 여긴
객주집이 많으니 걸식하긴 차라리 수월할 것이야.
- 으흑... 아버지! 으흐흑...
- 능소야...!
- 아...흐흑...흐흐흑...
- 능소야. 여기다 이 버드나무 지팡이를 꽂았다.
- 으흐흑.
- 내가 살고, 니가 살고, 이 버드나무가 죽지 않고 살거든 여기 이 나무 아래서 다시 만나자꾸나.
- 아아아아...흐으윽. 아버지! 으으으윽...
- 불쌍한 것...!
(흐느껴 우는 소리)
(음악)
- 나도 살고, 저 버드나무도 살아 저렇게 큰 나무가 됐는데... 제 아비는 돌아가신 게죠. 10년이면 강산이 변하는데...
- 아비는 더 기다리지 마라.
- 하지만...
- 그래서 저 버드나무 아래서 서성이고 있었구만. 능소야.
- 예.
- 이제 아비는 더 기다리지 말고 사내 품에 기대보도록 해라. 왜? 사내는 못 믿겠더냐?
- 마음 가는 사내가 없사옵니다.
- 어허! 니가 눈만 매운 줄 알았더니 마음도 매운 계집이로구나. 그럼 어디 내게 한번 기대보겠느냐?
왜 대답이 없느냐? 나같이 허술한 사내는 싫더냐?
- 허술한 어른은 절대로 스스로 허술하다고는 안 하십니다.
- 오, 그렇더냐?
- 천한 계집이 손님 같은 어른에게 기대도... 되겠사옵니까?
- 나도 눈 하는 매운 사람이다. 요조숙녀가 어디 따로 있다더냐? 이리 가까이 오너라. 자, 어서!
(음악)
(닭 울음소리)
(흐느껴 우는 소리)
(닭 울음소리)
- 아... 벌써 첫닭이 우는구나.
(흐느껴 우는 소리)
- 아... 왜 깨셨습니까?
- 넌 왜 깼느냐?
- 아니?! 너 울고 있는 게로구나!
- 아... 아.. 아니옵니다. 아, 더 주무세요. 길 떠나시려면 푹 주무셔야 합니다.
- 오오라, 니가 나 떠나보낼 생각에 우는구나.
- 만나자마자 이별이라니... 너무 서운하옵니다.
- 나도 너와 떨어지기 싫다. 하룻밤 새 정이 이리도 깊어질 줄 몰랐구나. 마음 같아선 다만 며칠이라도 너와 지내고 싶다마는...
- 하지만 서둘러 떠나셔야지요.
- 그래, 장부 작심한바 꺾을 수는 없는 일. 가긴 가되 서둘러 돌아올 것이니 너무 서러워 마라.
- 소녀, 서방님 급제하시고 오실 날만 학수고대하겠사옵니다.
- 내 급제해서 오거든 백년해로하여 떨어지지 말고 살아보자꾸나. 과거 길에 너 같은 보배를 만나
인연까지 맺었으니 이번 길에 꼭 뜻을 이룰 것 같구나.
- 서방님!
- 능소야!
(음악)
(개 짖는 소리)
- 서방님은 꼭 오실 겁니다. 꼭 오세요!
- 쯧쯧쯧, 니년도 팔자 하나는 기가 막히게 타고났어... 어린 나이에 어미, 아비 다 놓치고.
이제 와서는 오지도 않는 서방인지 남방인지를 기다리고 앉아 있으니. 아, 한다하는 한량들
다 마다하고 뜨내기 나그네한테 정을 줄 게 뭐여? 팔자하고는... 으유!! 기박한 년의 팔자!
아유, 그만 들어가자.
- 어머니나 들어가세요.
- 어디 밤새도록 앉아서 봐라. 내사 들어갈란다.
- 서방님, 어찌 이리도 소식이 없사옵니까...? 아... 그새 소녀를 잊으셨사옵니까?
아... 그렇지 않고서야 이리도 깜깜할 수가... 아아... 윽...
(흐느껴 우는 소리)
- 여보시오.
- 예.
- 하룻밤 쉬어갈 방이 있소?
- 아.. 들어가 보세요. 방은 있을 테니요.
- 무슨 사연이 있어 밤에 길가에 나앉아 그리도 서럽게 우시오?
- 상관 마시고 들어가 보세요.
- 혹 아오? 내가 도움이 될지. 능소야, 고개를 들어봐라!
- 아...! 아니...?!
- 내다! 니 서방님이다! 능소야!
- 서... 서방님! 아, 아... 이게 꿈이옵니까? 생시옵니까?
- 꿈이 아니로다! 내가 장원급제하여 널 데리러 왔다!
- 장원급제 하셨다구요?! 어...
- 오냐!
- 그러면 그렇지! 아...! 그러면 그렇지!
(흐느껴 우는 소리)
- 니가 날 기다리다 지쳐 울었더냐?
- 왜 이리도 더디 오시옵니까? 예에? 아...
- 그리 됐다. 하지만 이제 더는 너와 헤어지는 일이 없을 것이니라!
- 아... 서방님, 아무래도 이게 꿈인가 합니다. 아... 꿈!
- 꿈이면 어떠하냐?! 내 급제하고 너랑 다시 만났는데! 이제 더 뭘 바라겠느냐?!
능소야, 우리 춤이라도 추자꾸나! 오늘 같은 날 춤이 없을 수 있느냐?! 노래가 없을 수 있느냐?!
자, 우리 손 마주잡고 실컷 놀아보자꾸나!
- 아이, 서방님!
(전통음악-천안삼거리 흥타령)
애끓는 이별 끝에 다시 만난 두 남녀는 휘영청 달 밝은 밤, 능소 아버지가 심은 버드나무 휘늘어진 가지 밑에서
춤추며 재회의 기쁨을 노래하고 지난 세월의 한을 어루만지며 또 노래하고 달이 중천에 뜨도록
어우러져 돌았다. 그때 두 남녀가 부른 노랫가락이 천안삼거리 흥타령이 됐다는 전설이 있고
그때부터 천안삼거리에 늘어진 버드나무를 능수버들이라 불렀다 한다. 몇 가지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 있으나 기록돼있는 것은 없고, 오랜 세월 입에서 입으로 구전돼온 까닭에 어느 것이 정확한 건지는
분간할 길이 없고 능소와 그 젊은 나그네 얘기가 가장 많이 알려진 얘기라 한다.
그때부터 천안지방에서 불러지기 시작한 흥타령은 특히 오월 단오날이면 천안삼거리를 뒤덮는 민요가 됐다고 하는데
천안에서 나서 50년을 넘게 살아왔다는 유정자 씨의 얘기를 들어본다.
(음성 녹음)
다시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얘깁니다.
『에, 여러분들께서도 잘 아시다시피 천안삼거리 하면은 짓푸른 능수버들의 주막거리를 연상하시게 되겠습니다.
바람을 흩날리며 넘실대는 버들가지에서 지난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흥타령의 가락이 지니는 호흡을
느꼈으리라 짐작이 됩니다. 흥타령의 가락과 가사는 흥겨움의 흥과 또 서글픔과 시련 속에 흥이 함께 표출되고 있을지
모를 일입니다. 충청도 인정의 느리고 은유함이 흥타령 속에 거짓 없이 표출되고 있음은 바로
우리 민요가 갖는 특성의 하나라 하겠습니다.』
간다, 가노라. 나는 갑니다. 님을 따라서 나는 가노라.
곡조는 흥에 겨워 어깨가 들썩거려지는데
노랫말은 희색이 넘쳤다가 다시 서러워지고 또다시 희색에 넘치는 것이 정말 흥에 겨워 흥타령인지 설움에 겨워 흥인지 알 길은 없으나
어쩌면은 능소의 후예일지 모르는 천안의 아가씨들은 지금도 흥타령을 잘도 부른다.
천안시청에 근무하는 강순규 양의 얘기.
(음성 녹음)
천안시청 여직원합창단의 흥타령 합창입니다.
(전통음악-흥타령)
흥인가 하면 한이요. 또 한인가 하면 흥인 것 같은 천안삼거리 흥타령. 흥을 흥으로만 만끽할 수 없었던
설움 많은 우리민족, 허나 또 그 설움을 서러워만 하지 않고 슬쩍 눙쳐, 해학으로 승화시키는 우리 조상의
슬기와 멋. 우리 노래 가락에 배어 있는 그 조상들의 슬기와 멋과, 해학과 흥 때문에 민요는 들으면 들을수록
그 진미를 더 진하게 만끽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다.
(전통음악-흥타령)
다음 주에는 서도소리 중에서 병신난봉가와 재담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전통음악-천안삼거리 흥타령)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천안삼거리 흥타령)
(입력일 : 2011.0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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