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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풍물삼천리
- 함북 궐기타령

함북 궐기타령
1980.02.03 방송
(음악)

풍물삼천리.

(음악)

(전통음악-궐기타령)

우리나라 산맥의 뿌리라 일컬어지는 북녘의 끝, 함경북도. 두만강을 경계로 중국과 나누어지며

백두산을 솟아 올린 장백산맥과 마천령산맥. 또 함경산맥이 서로 질세라 지표에 버티고 있으니

평야는 거의 없고 강은 급류를 이루며 해안지방에선 또 안개가 자욱하기도 하다.

이 땅은 예로부터 국경의 문턱에서 영토분쟁이 그칠 날 없었던 곳이었고 고려시대까지만 해도

여진족이 살던 땅이었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이 시간에는 함경북도의 궐기타령을 소개합니다.

먼저 민속학자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 『궐기타령이란 옛날 쇠를 녹여서 괭이나 납과 같은 갖가지 연장을 만들 때, 즉 대장간이라든가

또는 주조장에서 풀무질을 하며 불러졌던 일노랩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궐기타령이, 이러한

궐기타령이라는 일노래를 불렀던 그러한 사람들은 바로 보통 우리나라 사람들이 아니라 여진족으로서

우리나라에 귀화를 한, 그리고 머리를 깎고 흡사 중처럼 차렸던 분들이 이러한 민요를 불렀기 때문에

아주 희귀한 우리의 문화유산이라 하겠습니다. 함경북도의 두만강가, 지금은 가볼 수가 없는 곳입니다.

이곳에는 재가승 마을이 많이 있었는데 이 재가승 마을에 여진에서 귀화한 새로운 우리나라 사람들이

이처럼 주조장에서 풀무질할 때 불렀던 노랩니다.

(전통음악-궐기타령)

- 궐기로세, 궐기로세, 대 궐기를 드디어라, 소궐기를 드디어라. 에헤, 얼싸 소궐기라. 춘모가 제가 된다,

쇠는 녹아 냉수된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산기슭을 갈아 밭을 일구고 논빼미를 장만하려면 이 끝없는 산간지방에서 더 많은 괭이질, 호미질이 필요했으니

비록 외딴 벽촌마을일 망정, 궐기를 들여 쇠를 녹이지 않으면 안 된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이 궐기타령은 재가승 마을에서 궐기를 밟을 때 부르는 노래로 알려지고 있거니와, 지금도 우리나라의 풍속연구에서

이 재가승 마을은 신비와 이단의 지역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전통음악-궐기타령)

(말 울음소리)

- 멈춰라!! 여기가 바로 재가승 마을인 것 같다.

- 그렇사옵니다. 이렇게 산중에 숨어사는 놈들이 재가승 말고 또 있겠사옵니까.

- 오... 그런데 왜 이렇게 사람 놈이 하나도 안 보이는고?

- 아마, 우리를 보고 놀래서 숨은 것 같사옵니다.

- 아하하하하하, 그래? 여봐라! 아무도 없느냐?! 여봐라!!

- 아?! 저기 누가 나옵니다.

- 오오오... 머리를 싹싹 밀어버린 걸 보니까 정말 재가승이로구나.

- 사내들은 모두 머리를 중처럼 밀었다면서요?

- 그래가지고서 저희끼리는 중 행세를 하는 모양인데. 아하하하. 천한 놈들 같으니.

고기로 마음대로 먹고 장가도 들고 그런다니. 이이잉, 야만족들 같으니.

- 아니, 그런데 저 녀석이!

- 아니, 저저, 저런 무엄한 놈이!!

- 왜 여기 오셨소?! 누구요?

- 이놈!! 감히 뻣뻣이 서서 말대꾸를 하다니!! 너는 누구냐?!

- 보다시피 여기 숨어사는 사람이오.

- 아하하하하하하, 부끄러운 줄은 아는구나. 왜 숨어산단 말이냐?

- 몰라서 물으시오?

- 닥쳐라!! 우린 관가에서 나왔거니와 내일까지 짚신 열 축하고 참나무지게 스무 개를 갖다 바쳐라!!

관가의 명령이니라.

- 이보시오!! 나으리.

- 뭬냐?!

- 우리는 천한 사람이라 이렇게 숨어살며 갖은 천시를 받아오고 있소만. 얼마 전에도 길 닦는 부역에

애들까지 다 가서 열흘씩 일을 하고 왔소마는. 아니, 오자마자 무슨 공물이란 말이오?!

- 예예예예, 이 무엄한 놈들을 보게!! 바치라면 바치다 그 말이다! 이 땅에서 살게 해주는 것만 해도

죽음으로 보은을 해야 할 놈들이!!

- 여진족의 후예라 해서 우리를 사람 같지 않게 대하는 걸 많이도 참아왔소마는! 이제 더 이상 시키는 대로만은 할 수 없어!!

- 아, 아, 아니?! 여보게!!

- 아, 아, 아니?!

- 여봐라!!

- 예!!

- 저 두 놈을 끌어내려서 우리처럼 머리를 싹싹 깎고 볼기를 쳐서 내쫓아라!!

- 아니?! 저저저저...!!

- 네에!!

- 아니?!! 이이이이!!

- 어차피 여기서 살 수 없게 되었으니 우리는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면 그만이다! 어서 깎아라!!

- 아아아, 아이고!

- 예!!

- 아이고, 사람 살려!!

- 으이고, 으이고!!

- 아이고!! 아이고, 아이고!! 내 머리!! 내 머리!!

(전통음악-궐기타령)

함경북도의 북부, 회령, 종성, 은성, 경원군에 인접한 산간지역 마을들은 해방 직후까지도 재가승 마을로

불리면서 일반 주민들로부터 천대와 멸시를 당해왔다. 그러므로 그들은 될수록 산간에 깊이 숨어 살면서

일반부락 사람들과 접촉하지 않았고 또 접촉할 수도 없었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약 50년 전의 조사에 의하면은 회령군 창두면에 1600여 명이 살았던 것을 비롯해서 함경북도 두만강 유역 곳곳에

모두 3000여 명의 재가승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왜 이들은 그렇게 일반주민들의 천대를 받고 살았을까.

심우성 씨의 설명입니다.

- 『재가승에 대해서 좀 더 설명을 하기로 하죠. 에, 앞에서도 잠시 말씀을 드렸었습니다만 재가승이란 여진족을 비롯해서

거란계통의 포로를 일컫는다고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그들은 근세까지도 아주 특이한 풍속과 또 생활방법도

자기 나름대로 지키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함경북도와 평안북도의 국경 변경에 전승되고 있는 민요 중의

하나가 궐기타령입니다. 재가승에 대한 옛날 속설, 에, 또 판단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마는 근세에 와서는 우리 민족으로

완전히 동화한 한 종족이라는 것도 여기서 꼭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함경도의 민요하면은 지금 원성을 비롯해서

불과 몇 가지 안 되는 종목만 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재가승의 궐기타령은 아주 소중한 문화유산에 하나라 하겠습니다. 』

(전통음악-궐기타령)

숨어사는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밭갈이에 필사적이었고 외부세계와 고립된 만큼, 농사일에 쓰이는 농기구와 일용품도

손수 만들어 쓰지 않으면 안 됐다. 그들의 궐기작업은 그러한 것에서 시작된 셈인데. 재가승이 가장 많은 창두면에서

궐기타령도 생겨났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창두면의 궐기타령 외에 팔월면의 궐령도 있으나 가락이 매우 짧고 단조롭다. 그래서 짧은 가락을 작업이

계속되는 동안, 자꾸 반복해야 했으니 이런 데서도 노래나 놀이에 무관심했던 함경도사람의 기질이 잘 엿보인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사람들 웅성거리는 소리)

- 자, 준비들 다 됐니? 종독에 쇠를 담갔지비?

- 예, 일을 시작합세.

- 음...

- 저, 큰아바니. 이거 좀 보라우요.

- 이게 뭐이지비?

- 나무수풀로 일하는 것도 좋지만 이기로 대신 쓰면 어쩌겠슴메?

- 아니, 이거 괴탄 아님메?!

- 아이, 이게 나무보다도 훨씬 불이 세던데. 불도 그냥 붙슴메.

- 그랬스구마, 쇠가 금방 녹아버렸네.

- 아, 그럼 날레 집어넣으라. 궐기를 내 밟겠슴메. 으음.

- 산이 많아서리 쇠도 많고, 나무도 많고 괴탄도 많아 좋지마는. 에게게, 땅이 있어야지비.

- 시끄럽다! 다 우리 팔잔데 일이나 부지런히 하지비!

- 에이... 그렇스구마.

(전통음악-궐기타령)

천대받고 멸시받으며 서럽게 살아온 재가승. 그러나 6.25동란이 일어나자 그들도 자유를 찾아 남으로 내려왔다.

60여 만의 함경북도 도민이 일사후퇴 때 남으로 내려와 서울에만도 30여 만이 살고 있다.

(전통음악-궐기타령)

갑오경장 이후에 그들에 대한 천대가 가셨다고 하나 재가승은 아직도 자기들 스스로가 감추려드니 궐기타령을

발굴해내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현지 실향민이며 함경북도 도청에 근무하는 최용문 씨의 얘기를 들어본다.

(음성 녹음)

혼인이나 장례식, 잔치나 제사, 의복, 풍속이나 놀이 등에서 색다른 면을 많이 보여주었던 재가승 마을.

개가죽 옷을 항상 입었고 여진족의 관습대로 부녀자들은 가슴을 노출시켰으며 진한 색깔의 옷을 입었다는 등

흥미로운 얘깃거리도 많다.

(전통음악-궐기타령)

그러나 재가승의 기원에 대해 아직까지 명확한 과학적 논증이 없는 채로 그 두만강 유역은 가볼 수 없는 땅으로 남고

재가승 마을도 신비와 전설의 고장처럼 점점 희미해져갈 뿐이다.

(전통음악-궐기타령)

다음주 이 시간에는 평안북도 달구놀이를 보내 드리겠습니다.

풍물삼천리를 마칩니다.

(전통음악-궐기타령)

(입력일 : 2011.06.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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