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자선드라마 이사람을!
고광자씨의 경우 - 빛을 찾는 모정
고광자씨의 경우
빛을 찾는 모정
1963.05.05 방송
‘이 사람을!’은 불우이웃을 도우려고 만든 국내 최초의 실화 자선극으로 사회극의 영향력과 세미 다큐멘터리 드라마의 한 전형을 이루는 데 기여했다. 이 프로그램은 일요일밤 9시 30분부터 30분간 방송되면서 3년 반 동안 계속되었고,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독자들의 심금을 울렸다.
《오늘부터 매주 일요일밤 9시 30분 부터 30분 동안에 걸쳐 방송되는 ‘이 사람을!’ 오늘은 그 첫번째 시간으로 먼저 이 프로그램의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너무나도 많은 비극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가까운 주위에도 너무나도 많은 역경에 허덕이며 그래도 어떻게 해서든지 살아보려고 발버둥 치는 내 이웃, 내 형제가 있습니다. 그저 우리가 못 본척 못 들은 척 하고 또한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그들은 슬픔을 안고 사라져갈 뿐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이러한 불우한 환경에서 헤매는 주인공을 찾아서 그들의 오늘의 슬픔을 같이 울어주고 내일의 희망을 기약해 주려는 것이 이 프로그램의 의도인 것입니다. 오로지 청취자 여러분의 동포애와 적극적인 성원만이 이 프로그램이 의도하는 뜻을 얻을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의 얘기 ‘빛을 찾는 모정 : 고광자씨의 경우’를 들어 보십시요.

여기에 한 여인을 소개하겠습니다. 출생부터가 불우했던 이 여인인 고르지 못한 세상에 대해 반발하고 몸부림 치면서도 운명이 지시하는데로 33년동안 살아왔습니다.
그 동안 자기 만큼이나 불우하게 태어난 네 아이의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자신과 네 아이들의 앞길을 불안하게 내다보면서 어쩔줄 모르고 여인은 울고 있습니다.
--------------------------------------------

-아주머니의 이름은 어떻게 되시나요?
이름이요? 고광자입니다.

-빛날 광자죠? 고광자씨


-그러면은 낳은 고장.. 고향이 어디십니까?
일본서 낳아 가지고 해방 후에 나와가지고 6.25직전에 한국에 도착했죠.

-어려서는 일본서 주로 많이 지내셨군요. 한국에 고국에 돌아와서 주로 성년기를 지내셨겠구요.


-오늘 이렇게 네 자녀들을 전부 다 데리고 나오셨는데요? 어떻게 됩니까? 제일 저쪽에 앉아 계신 남학생이죠? 지금 몇살입니까?

-저쪽에 책을 펴놓고 있는, 만화책 보고 있는 여학생이 둘째?
8살이구요 국민학교 1학년

-그리고 어린애가 또 둘..
걔는 다섯살 먹었구요. 사내고. 쟤는 세살 먹은 애.

-그래요? 열다섯살, 여덟살, 다섯 살, 세살 이렇게 자녀들이 네분인데. 네 분 각각 이렇게...복잡한 사연이 있었던 모양인데...
그거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제가 여쭤보기 참 어려운 말씀인것 같습니다만, 어린이들 관계가 어떻게 됩니까?
어린이가.. 참 부끄럽습니다만...

저는 어머니의 얼굴을 모릅니다. 노년에 들어섰던 아버지와 어떤 여인과의 사이에 우연스럽게 태어난 딸이였어요. 제가 아홉살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부터 식구들의 미움을 사면서 자나났죠. 지금도 기억나지만 식구들은 걸핏하면 저를 때려 주었습니다.

소학교를 간신히 마치고 큰언니네 집에서 식모겸 있다가 카페에서 전표를 떼 주는 일을 했어요. 일본이 망하고 우리나라가 해방된 이듬해 저는 혼자서 고국땅을 밟았습니다. 열 일곱살 때였어요.

고국이라도 편하게 앉혀 놓고 밥을 먹여 주지는 않았습니다. 여기 저기 전전하다가 태극악단에 들어갔죠. 어렸을때 부터 노래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에, 1년동안 악단을 따라 시골로 돌아다니다가 제 미모를 이용하려는 대구 모 요정마담의 소개로 울진에 있는 `향화촌`이라 요정에 기생으로 팔려갔어요. 철 모르고 끌려간 이 순간부터 직접적인 불행의 싹은 트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에서 금융조합 서기로 있던 장모씨를 알았어요. 이를테면 첫사랑입니다. 그 사람의 아이를 밴 줄도 모르고 저는 계약기간이 끝나 울진을 떠나 대구로 왔어요. 대구에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지금 열 다섯살 난 맏아들입니다. 저는 제 경우를 생각해서 이 아이를 저 혼자서 기르기로 했어요.
--------------------------------------------

-그러면 또 여쭤 보겠는데요. 첫번째 주인과 헤어지고 난 다음에 또 두번째 주인을 맞이하신 모양인데요. 그 두번째 남자는 어떻게 해서 만나시게 되었죠?

그 단체가 해산되고 이제 뭐뭐 한데가 있는데, 대구 한국은행 뒤에 큰 요리집이 있습니다. 그 집 주인 아주머니가 저를 상당히 잘 모고요. 자기집에 가라고 그래 그집에 갔습니다. 가가지고 김검사라 하는 둘째 어린아이의 아버지를 만났죠. 만나가지고 그냥 어린이를 낳았습니다. 또.

--------------------------------------------
그에게서 지금 여덞살 난 맏딸을 낳았습니다. 그러나 김씨는 여자 의학박사와 결혼을 하고 저는 애비가 다른 두 아이를 기르면서 여전히 기생짓을 했어요. 다음 얘기에 나오겠지만, 김씨의 냉혹한 태도에 타격을 입고 또 마침 모 교수 부인이며 독실한 신자인 김정옥 여사의 간곡한 전도로 저는 기독교 신자가 됐고 따라서 화류계에서 몸을 떠나서 3년동안 전도 사업까지 했습니다.

그러는 중에 윤모씨를 알게 되었어요. 윤씨는 저를 사랑해 주었고 파란많은 제 과거를 이해해 주고 결혼을 신청해 왔어요. 결혼... 그렇습니다. 파란많은 생활이었습니다만 제가 그리던 것은 떳떳한 아내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결혼생활이란 행복한 생활일것입니다 .그러나 불행이 오히려 정상적인 제 경우에는 그 결혼 생활도 남들처럼 행복한 것은 못 되었어요.

- 그렇지만...
- 그렇지만이 아니야. 우리 두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피차 용기를 내야지
- 모성애라는것은 윤선생님은 모르세요.
- 그러니까 아이들을 택하든가 나를 택하든가 둘중에 하나를 선택하라니까. 자식때문에 부모가 희생을 당한다는건 옛날 얘기가 아니냔 말이야. 고아원은 감옥이 아니잖아. 그 완고한 부모님들을 난 설복했단 말이야. 그게 간단해 보이지만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했는지 알아? 행복을 구하기 위해서는 결단이 필요하단 말이에요. 그러니 여러말 할 것 없이 애들을 고아원에 보낼테야? 나하고 결혼하는 걸 포기할테야?
- 그건 흐흑~
- 글쎄 지금은 괴롭지만 곧 잊어버리게 된다니까. 이 다음에 우리가 독립했을때 애들을 다시 데려오면 되잖아. 행복하기 위해서야 그렇게 해. 응?
- 전 모르겠어요. 당신 마음대로...

- 야! 이년아. 너 뭣하러 가게에 나가있니? 널 더러 누가 물건 팔고 있으래던? 으이구, 제 버릇 개 못준다고 제비새끼 같은 사내라도 지나갔나 보구나.
- 어머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아, 이년이 말 대답은? 아 썩 들어가지 못해? 아 이년아!
- 네?
- 물건을 팔았으면 돈을 주고 갈일이지 어딜 움켜쥐고 달아나니? 썩 놓고 가지 못해?
- 그 궤짝에 놓여 있잖아요?
- 어디? 어, 뭘 이때까지 쳐다보니? 아 썩 들어가지 못해?
- 저런 갈보년이 붙어 있으니 일이 될께 뭐람. 저년이 얼마나 꼬리를 쳤으면 그 착한 애가 다 넘어갔을꼬. 아휴! 불여우 같으니라고.

- 흑흐흐... 전 이집에서 어떻게 살란 말이에요.
- 휴, 낸들 어떻게해. 부모 밑에 있는 처지에 이렇다 저렇다 할수도 없는 노릇 아니요.
- 전 정말 이렇겐 못살겠어요.
- 부모님들도 그렇게 악한 분들은 아니야. 나를 봐. 나도 30년 동안 그 부모 밑에서 말썽없이 잘 지내고 있잖아? 그 당신이 좀 참으면 될 껄 가지고 공연히 말썽을 일으키는 거야.
- 말끝마다 갈보년인데 제가 부처님 아닌 다음에야..
- 그러니 이걸 어떻하면 좋지?
- 딴 살림을 나가요.
- 글쎄 나가는건 좋지만 나가서 뭘 먹고 사느냔 말이야.
- 당신 취직 될 때까지 제가 장사를 하겠어요.
- 장사?
- 메리야스 가지고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좀 싸게 팔면 된데요. 알아봤더니 밥은 먹을수 있데요.
- 아니, 해산일도 가까워 오는데...
- 아직 넉달이나 남았어요. 그 동안 당신 취직이 될거 아니에요? 당신도 급해야 통하지 언제까지나 이대로 계셔보세요 밤낮 이 모양이지.
- 글쎄...

- 만나보셨수?
- 에이 참. 또 기다려보라는군 그래.. 제기랄
- 여보, 낼 고아원에서 애들을 데려올까 하는데...
- 뭐라고?
- 밥이야 어떻게 먹을수 있으니 당신이 좀 이해해서 걔들을 데려다 같이 살아요.
- 제 애비들이 멀뚱멀뚱 살아있는데 내가 왜 걔들을 책임지는냔 말이야. 아 제 이비한테 갖다 줘요. 고아원이 싫으면.
- 당신 약속이...
- 약속이고 뭐고, 내 일도 지금 정신이 없는 남의 새끼까지 데려다 놓고 속을 썩이란 말이요 글쎄? 난 그렇겐 못하겠어.
- 그래도 제 마음이...
- 글쎄 지 애비들한테 하나씩 갖다 맡기라니까 그래. 이제 또 낳으면 내 새끼도 둘씩이나 되는데 남의 새끼까지 맡을 순 없잖아. 거 왜 제 애비들이 떵떵거리며 잘 사고 있는데 고아원에서 내다가 하나씩 가져다 맡기지 그래.
- 당신, 당신은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어쩜 사내들은 모두가 그 모양이세요. 네?..흑흐흐...
--------------------------------------------

-그러면 제가 또 너무 여러가지 말씀을 물어보는 것 같습니다만 그때 친아버지에게 아이들을 맡기지 못하실 어떤 이유라도 있었습니까?
네, 맡기지 못할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정은 그 가정에서도 인제사 결혼을 했구요. 결혼을 해서 그 가정에도 제 어린애를 보냄으로써 가정에도 불화가 있을것 같구요. 이래서 제가 모성애...

--------------------------------------------
- 어머 저분이.. 장선생님!
- 아니 이거 광자 아니야?
- 네, 장선생님, 요샌 뭘뭐 하세요?
- 난 뭐, 관리생활 집어치우고 여행사에 있지. 저 다방으로 가지.
- 네..그렇지 않아고 무척 만나고 싶었어요. 말씀 드릴일도 있고...

- 그럼 애가 퍽 컷겠군.
- 네, 여덟살이에요.
- 그 동안 날 원망했었지?
- 아니에요, 제겐 책임이 없나요?
- 앞으론 아마 내 능력껏 도와주지.
- 저도 뭐 그렇게 비참하진 않아요.
- 광자야 이렇게 이쁘니까 돈 걱정이야 별로 없겠지만. 저 나 요즘 현금이 꽉 말랐는데 보름뒤엔 풀린꺼야. 자 이거! 보름뒤에 찾는 연수표인데 받아 둬. 약소하지만 내 정성의 표시니까.
- 아.. 이러시면...
- 어허 글쎄 남의 정성을 무시하면 돼? 내가 요샌 바빠서 그러는데 언제한번 만나자고..응? 시간이...
- 저야 뭐, 낮엔 늘 시간이 있어요.
- 하하 그렇겠지. 그럼 열흘 뒤에..그러니까..
- 27일이군요.
- 그때나 돼야 내가 시간이 날꺼야. 27일 12시로 하지. 장소는 여기도 괜찮겠구만. 그날 애 얼굴이나 볼겸.
- 안돼요. 걘 아버지가 죽은줄 알고 있는데.
- 어허 참.. 그렇겠지. 어떻게 대책을 세워야 할텐데... 마 그럼 내 아들은 나중에 보도록하고. 그날 만나서 자세한 얘기를 하자구.
- 저 때문에 그렇게 신경쓰실 필요 없어요.
- 그거야 내 의무지. 이번일만 잘 되면 나도 이제 한국에선 내로라하고 살 수 있을텐데. 마... 될꺼야. 나 지금 좀 바빠서... 그럼 저 27일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 여보세요? 여행사죠? 장과장님 좀 바꿔 주세요?
- 없수다.
- 급한 용무인데요?
- 그 사람은 어제부터 행발불명이 됐수다.
- 네?
- 놀랄것 없수다. 보통이죠.
--------------------------------------------

제가 그 어린애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있다가 너무 이제 재롱도 떨고 이쁠때가 되서 또 돌사진도 찍어가 이쁘게 해가 여러장을 이모저모로 찍어가지고 또 어린애 아빠한테 찾아갔어요.

--------------------------------------------
- 내 장래를 계획적으로 막자는 짓이지. 나로써야 어디 인정할 수 있느냐 말이야.
- 하지만, 애는 분명의 당신의...
- 그런 소린 필요 없다니까
- 전 정말 김선생님을 진심으로 사랑했어요.
- 사랑? 쳇 도대체 너희들은 하루에 몇명이나 사랑을 하나?
- 아니에요
- 남의 사회적 지위와 가정을 파괴하는게 너희들의 소위 사랑인가?
- 전 정말..
- 그게 뭐야?
- 애기 사진이에요. 보세요. 얼마나 당신을 닮았는지...
- 쓸데없는 소리 말아!
- 이렇게 닮았는데 당신의 딸이 아니라고 그러시겠어요?
- 에잇! 간사한 것 같으니라고...
- 그 사진을 왜 찢어요?
- 잘 들어둬. 네가 이렇게 간사스럽게 날 못 살게 굴어봤자 손해는 결국 너만 보게 되는 거야. 이제 다시 한 번 나타나면 네게 무슨 결과가 나타나든 책임을 지지 않겠단 말이야.

- 그러니까 검사님 앞에 자꾸 나타나 봤자 결국은 자네한테만 손해야. 검사님 성질이 어떻다는걸 자네가 잘 알텐데.
-그렇지만, 전 너무 억울하지 않아요?
- 글쎄 같은 남자 입장으로 나도 검사님이 백번 잘못이라는 걸 알아요. 그러니 나도 검사님 밑에 있는 놈이 검사님이 나쁩니다 허고 대들수도 없는거고...아무튼 약한 쪽에서 참아야지 별 수 있나.
- 분명히 자기의 딸인걸 본연히 알면서.
- 글쎄 거야 하느님도 알고 계시겠지. 그렇다고 갓 결혼한 검사님의 가정을 파괴하게 되면 자넨 무사할것 같은가? 그러니... 저, 이건 약소하지만 내 월급에서 떼넨 돈이야. 이 돈을 주는걸 걸 검사님이 아시면 난 당장에 벼락나겠지만 자네 사정이 워낙 딱해서 약소하지만 정성을 보이는 거야.
- 뭐라구요?
- 요샌 관에도 못나가나 본데 받아두지 그래.
- 그냥 가지고 가세요. 가서 당신의 젊은 영감님한테 전하세요. 나더러 간사하다고 그랬지만 영감님이 소리듣는 검사라는 사람은 더 간사하다고
--------------------------------------------

그 비싸게 주고 제가 찍은 사진인데, 다 찢었어요. 사진이 지금 8년이 됐지만 찢어진 거 붙인거 그래도 지금도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혼자 너무 이 사회가 괴롭고 또 미신의 말로도 부모 복이 없으면 남편 복도 없다더라 그런말을 들었기 때문에 제 자신이...

--------------------------------------------
- 이래도 이래도 애들을 제 애비한테 갖다 주라는 소리가 나오세요?
- 글쎄, 제 친 애비들도 마다하는 걸 내가 길러야할 이유가 어딧느냔 말이야. 글쎄.
- 같이 있겠다고 승낙만 해주세요. 밥은 제가 벌어서 먹이겠어요.
- 어허 그 안된다는데 왜 자꾸 이러지? 아니 도대체 왜 날 자꾸 이렇게 못살게 굴어? 내 꼴을 이지경으로 불행하게 만들어 놨으면 됐지 뭐가 또 부족해서 그러는거야?
- 뭐라구요? 당신 벌써 후회 하세요?
- 아 그럼 후회하지 안해?
- 지난 3년동안 전 당신을 앉혀놓고 벌어다 먹었어요. 불평 한마디 없이 살아왔어요. 당신 부모들의 학대도 참고 받아왔어요. 그런데 당신이 이제와서 후회를 해요?
- 듣기 싫어. 너 같은 요부 꼬임에 빠져서 난 부모한테도 버림을 받고 이 지경에 됐단 말이야.
- 요부라구요? 아니 당신이 요부에게 빼앗긴게 뭐에요? 제게 해준 게 뭐냔 말이요. 고아원에서 고생하는 애들을 좀 돌봐주자는 것까지 당신은 한사코 반대했어요.
- 아 애들이 그렇게 아쉬우면 애들하고 살면 될게 아니야!
- 이제 와서 당신은...
- 이때까지 너 좋은대로 해왔잖아. 맘대로 해!
- 당신... 사내들은 모두가...
- 맘대로 하라는데 사내들을 왜 걸고 넘어지지?
- 당신 그게 진심이세요?
- 그래, 진심이야.
--------------------------------------------

이 여인의 주변에 일어났던 슬픈 사연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만 지금까지 아이들의 아버지를 중심으로 설명 드렸을 뿐입니다. 그러면 또 아주머니께 여쭤봐야 겠는데요.
-고광자 아주머니께서는 그때 남편을 택했습니까? 또는 아이들 쪽을 택했습니까?
저는 경솔했지만 아이들 쪽을 상당히 사랑해 왔습니다.

-역시 모성애 라는게.. 그렇습니다. 이 여인은 일생의 한 번이나마 장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윤씨와의 소생 둘까지 합쳐서 네 아이를 이끌고 작년 가을에 서울로 올라왔던것입니다. 그러나 결단은 쉬웠지만 서울이라고 이 다섯식구에게 행복을 보증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 저 고광자 아주머니 처음에 서울에 올라오셔서 무슨일은 하셨습니까?
대구하고 역시...장사를 좀 했습니다.

-대구에서 고생하시던 그 고생이 여기 서울에서도 고생을 하셨군요. 그럼 저 셋방에서 역시 참 많은 구박을 받으신 모양인데요.
네. 어린애도 많다 하고 제가 장사하러 나오게 되면 너무 어린애들이 너이 쯤 되니까 분주하지 또 방세도 다 마련해서 드리지를 못했기 때문에 그 집에서는 나오게 됐습니다.

-네 결국 셋방에서 쫒겨난 셈이 됐군요? 지금 제일 큰 아이가 열 다섯이라고 그랬죠? 그럼 저 중학교 1학년? 학교가 기독교 종교계통의 학교라고 그랬죠? 그럼 아주머니께서는 아직 신앙에 미련을 갖고 계시..

지금도 미련이 있습니다.

-근데 그 젤 큰 아드님 중학교 입학금 어떻게 용이하게 마련이...?
네, 대구에서 장사하던 그 밑천으로서 어린애 장래를 위해서 학비만큼은 다 마련을 해서 학교에다 바쳤지요.

-그러니까 지난날 장사밑천으로 두었던 돈이 전부 학교 학자금으로 들어갔군요? 그럼 지금 고광자 아주머니께서는 네 어린아이들하고 어떻게 지내십니까?

지금 그러니까 단칸에 부엌도 없는 방에서 어린애들 넷하고 매일 같이 어린애들 장래를 위해서 학교는 보내야 되겠고...지금 이래도 어린애들 키우면서 다 죽이겠고 이래서 제가 암만 생각해도 될 수가 없어서 고아원이라도 맡기고 쟤는 암만 몸이 약하지만 어디 식모살이라도 가서 정신으로 살아가야지 살고 싶으나
어린애 장래를 위해서 어떻게 할까 싶습니다.

-앞으로의 생활 계획이라던가 희망이 참 막연하시겠습니다. 지금 당장에 애들이 공부를 해야 될테니까요. 방 두어칸 정도는 마련을 해야 되지 않겠어요?

지금 제 소원은 너무 몸도 약하고 큰 애들이 적은 애들 때문에 공부를 못하니까 쪼맨한 정재방이라도 있고 방 두개 있는 방에 좀 어린애들 공부할 수 있는 그런데다가 제 장사밑천만 쪼매 있으면은 어린애들과 같이 살고 싶은게 제 원입니다.

-참 돈 있는 사람에게만 간단한 일이겠지만, 고광자씨에겐 그것도 큰 돈이겠습니다. 만일 그 소원이 못 이루어지면 어떻게 하시겠는지?

어린애들을 고아원에 맡길 수 밖에 없죠.

-참 아주머니 여러가지 사정이 정말 딱하군요.

--------------------------------------------
이 여인은 그 출생부터 33년간 자신이 의식했던 못했던 절망속에서 이끌리는 데로 끌리면서 살아왔습니다. 자신과 꼭 같이 불우하게 태어났지만 자기와 꼭 같은 길을 걷게 할수 없는 네 아이가 이 여인의 곁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인은 이제 자신의 온갖 희망인 네 아이의 장래를 불안하게 내다보면서 울음속의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큰 아이들이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는 두어개의 방. 그리고 가난하게나마 끼니를 이을수 있는 약간의 돈이 여인을 절망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낼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 이 사람을! 이 착하게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몸부림쳤으나 어쩔수 없이 흘러가 버린 자기의 과거를 돌이켜 참회의 눈물을 흘리며 제각기 성이 다른 4남매에게만은 광명과 희망이 비치는 곳으로 이끌어주려고 발버둥치는 이 여인을 이 사람을 도와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따뜻한 손길만이 네 아이를 거느린 이 여인을 구해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여러분께서 지금까지 고광자씨의 경우를 들으셨습니다. 이 고광자씨의 얘기를 들으시고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도와주실분이 계시면 종로구 세종로 139번제 본 동아방송국 제작과 이 사람을! 담당자 앞으로 연락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입력일 : 2007.03.24)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