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서른한번째로 마지막회
- 드세요. 얘기 하세요. 거기로는 왜 안간단 말입니까.
- 경숙이 한테로 가겠어요.
- 경숙씨 한테로요?
- 거기로 가겠어요.
- 거긴 당신이 있을데가 아닙니다.
- 알아요.
- 근데 왜 거기로 간다는 거에요.
- 그래도 경숙이 한테로 가야해요.
- 까닭이 뭡니까.
- 아직은 당신한테 갈 수가 없기 때문이에요.
- 아직은.
- 그래요. 아직은 안돼요.
- 왜요.
- 아직 내 마음의 정리가 안됐기 때문이에요.
- 마음의 정리? 무슨 정리요.
- 그렇게 꼬집어 물으면 대답하기 곤란해요. 나도 확실하게 이거다 하고 얘길 할 수가 없어요. 하지만 아직 당신한테 갈 수 없다는것 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느낌이 확실하니까. 납득 못하겠어요?
- 못해요. 도저히.
- 그럴거에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요.
- 그럼 한가지 묻겠어요. 당신이 지금 왜 병들었으며 왜 아직도 고통속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거죠?
- 그야 당신 때문이죠.
- 근데 왜 내게 못 온다는겁니까. 날 사랑한 댓가로 당신 지금 병들었어요. 이렇게 많은걸 지고도 내게 못오는 이유가 뭐죠?
- 못 간다고 하지 않았잖아요. 아직 갈 수가 없다고 했지.
- 글쎄 그 까닭이 뭐냐구요.
- 그건 나도 꼬집어서 말할 수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조금만 기다려줘요. 조금만 기다려주면 갈거에요 나.
- 알수가 없어요. 내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돼가고 있는건지. 알수가 없어요.
- 그럼 난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되고 있어요?
- 알고 싶어요? 알고 있잖아요. 내가 당신 때문에 죽을수도 있다는걸.
- 그럼 나도 당신 때문에 죽을 수 있을 거에요.
- 그렇지 않아요.
- 아니라구요?
- 아니에요. 아니에요.
- 아, 미스터 한 오는군요.
- 지금 뭐하고 계신겁니까.
- 꽃도 꽂고 먹을것도 좀 만들고 그러는거에요. 오늘 혜진언니 퇴원하는거죠?
- 저 몇시에 올거에요?
- 밤에요.
- 밤에?
- 더 좋지 뭐. 밤엔 이 방이 더 멋질 것 같거든? 오늘밤 여기서 우리 조촐한 파티를 열어요.
- 두분의 시작을 위해서?
- 어때요. 괜찮겠죠?
- 언니, 나, 진철이 형, 그리고 형석씨. 이렇게 모일거에요. 그럼 되잖아요. 되죠?
- 아주 조졸하고도 화려한 파티가 되겠군.
- 저, 초도 준비했어요. 역시 밤에 오는게 좋아. 그치 경화야?
- 촛불로만 이 밤을 밝히면 정말 근사하겠다.
- 하지만 파티는 취소해야 겠어요.
- 왜요?
- 왜 취소를 해? 여기 안오고 여행이라고 가려구요?
- 여행도 안갑니다.
- 그럼, 어디로 갈거에요?
- 혜진씨, 경화 언니 집으로 가겠답니다.
- 우리집으로? 왜요?
- 왜 못가. 이렇게 많을걸 치르고 그렇게 사랑하면서 왜 못간다는거니? 응?
- 나도 잘 모르겠어. 나도.
- 너, 설마 영아 아빠한테 어떤 기대라도 하고 있는거 아니니?
- 그런거 없어. 내가 그이한테 뭘 기대해.
- 아이들이라도 돌려줄까하고 말이야.
- 아이들...
- 내가 얘기 했지? 그런 기대 손톱 만큼이라도 말라고. 깨끗히 잊고 미스터 한 한테 가라고 했잖아.
- 나, 아이들 기대안해.
- 그럼, 뭐 때문에 이러니.
-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잖니. 니가 이러면 미스터 한은 어떻게 하니. 응?
- 시간이 필요해.
- 무슨 시간.
- 자꾸 그렇게 따지지마. 나도 괴로워.
- 아휴.
- 넌, 날 이해 못하니?
- 알거 같기도 하고, 모를거 같기도 하고 그래.
- 넌 알거야.
- 하지만 이제 니가 갈데는 미스터 한에게 뿐이야.
- 모르지 않아.
- 그런데.
- 전엔 미스터한 때문에 죽어도 좋다는 생각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그렇지가 않아. 그렇다고 내가 그 사람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야. 사랑해. 그런데도 갈 수가 없어.
- 그럼 넌 어디로 갈거니. 어디로.
- 그걸 알면 얼마나 좋겠니.
- 어쩌면 니가 갈 곳은 아무데도 없는지도 모른다. 미스터 한에게도 니가 갈 곳이 아닌지도 몰라. 어디가니?
- 응.
- 이 밤에 어딜?
- 거리에.
- 거리에?
- 응. 거리에 좀 나갔다 올께.
- 경화도 마셔라.
- 난 안마셔요.
- 왜? 마시겠다고 맨날 보채더니 왜 안마시겠데.
- 나까지 취하면 집엔 어떻게 가요. 난 취하지 말아야지.
- 내 걱정은 마.
- 안 취했다구? 정신 말짱하다구요?
- 그게 아니야.
- 그럼 뭐에요?
- 난 집을 찾아갈 필요가 없어. 거리가 내 집이거든.
- 거리가?
- 그래. 거리가 내 집이야.
- 언제부터 거리가 집이 됐어요?
- 언제부턴가 그렇게 됐어.
- 언제까지 거리에서 지낼거에요?
- 글쎄. 그건 나도 몰라.
- 언제 쯤에나 환상의 바다에 불이 켜지는 걸까요.
- 환상의 바다에 불은 안켜질거야. 아마.
- 영영.
- 어쩌면.
- 그럼, 학수형 추워서 어쩌죠? 거린 춥잖아요.
- 춥지. 추워. 추워. 무지무지하게.
- 아, 저 어디 가는 거에요?
- 거리로 나가는거야.
- 여긴, 왜 왔어요?
- 경화, 저기 저 여잘 봐.
- 저기요?
- 보이지?
- 저 여자, 왜 저 집 창밖에 우두커니 서있죠?
- 왠지 경화 모르지?
- 몰라요.
- 저 여잔 저기 서서 창 안의 불빛을 그리워하고 있어.
- 왜? 추워서?
- 창안은 따뜻하거든.
- 그럼 들어가지 않고, 왜 마냥 저기 서 있기만 하죠?
- 들어갈 수가 없기 때문이야. 왠지 말해줄까? 저 여잔 날 사랑했기 때문이야. 날 사랑하기 때문이야.
- 혜진언니군요. 혜진언니.
- 그래. 혜진씨야. 혜진씬 밤마다 저기 저 창밖에 서있어. 그리고 난 여기서 혜진씨를 지켜보지. 그래서 혜진씨도 나도 춥다. 추워.
- 학수 형.
- 추워서 너무 추워서 눈물이 나는거야. 올 겨울은 왜 이렇게 유난히 춥지? 응?...
제30화 날 쳐다보고 있으면서도 딴 생각을 ◀ (입력일 : 2007.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