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드시죠.
- 네.
- 차 드세요.
- 네.
- 너무 속상해 하지 마세요.
- 내 꼴이 우습죠?
-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 내가 왜 이렇게 초라해 지는 줄 모르겠습니다. 꼭 꾸겨진 커튼처럼요.
- 혜진이도 마찬가지일 거에요.
- 나, 그 사람 용서 못하겠습니다.
- 네?
- 용서할 수가 없어요.
- 혜진이를 정말 못 믿으세요?
- 믿습니다.
- 그런데 왜 그런 말씀을...
- 아무 일 없었다고는 하지만 혜진인 이미 마음으로 간음한 여자에요.
- 시간이 필요해요. 너무 성급하게 생각 마세요. 혜진이도 노력했어요. 지금도 노력하고 있구요.
- 노력을 했는데도 그 모양이라면은 이미 틀린 것 아닙니까? 노력을 했는데도 안 돼는 그 상대가 누군지 알고 싶어요. 그래서 경숙씨를 만나자고 한 겁니다. 누군지 얘기해 주세요. 혜진인 죽어라 하고 말 안 합니다. 설마 모른다고는 말 못 하실 겁니다.
- 알아요.
- 얘기해 주세요.
- 하지만, 그걸 알아서 뭘 하시겠어요. 그 사람을 만나시겠어요? 만나서 무슨 얘길 하시겠어요?
- 그냥, 한 번 보고 싶어요.
- 공연한 일이에요. 감정만 상하세요. 영아 아빠 답지 않으시구요.
- 아니, 나 다운게 대체 뭡니까? 혜진이가 내 앞에서 딴 남자를 사랑한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게 나 다운 겁니까? 그래요. 그만 두죠. 경숙씨 말마따나 쓸데없는 짓입니다. 우스운 노릇이구요. 그렇지 않아도 내 꼴이 우스운데 여기서 더 우스워 질 수는 없죠.
(따르릉)
- 여보세요.
- 접니다.
- 미스터 한.
- 목소리에 왜 기운이 없으세요? 어디 아프세요?
- 쪼금.
- 어디가 아프세요?
- 병 아니에요.
- 만나요. 만나서 얘기해요. 도대체 볼 수가 없으니 답답해 미치겠어요. 당신 또 왜 이러는지 나 압니다. 이유는 언제나 한 가지. 날 버리려고 해요.
- 미스터 한.
- 나 버리는 일 아니면 당신이 괴로워할 까닭이 없어요. 어째서 한사코 난 버릴 생각만 하세요. 어째서 날 잊는게 최선입니까? 어째서? 왜 대답이 없어요? 만나요. 만나서 얘기해요.
- 하지만, 지금은 안 돼요. 당분간은 안 돼요.
- 왜요? 왜? 왜 대답이 없어요? 왜?
- 미스터 한. 흑흑...
- 당신, 울어요? 울고 있는 거에요?
- 네.
- 혜진씨!
- 전화 끊어요.
- 혜진씨.
- 액 연락할 때까지 기다려요. 나도 힘들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안돼요. 전화도 하지 말아요. 전화 받는것도 힘들어요 지금은. 끊어요.
(딩동)
- 누구세요?
- 나야.
- 어머...
- 문 안 열고 뭐해?
- 네. 네 열어요.
- 왠일이세요. 낮에. 왜 그래요?
- 왜 울었어?
- 운 거 아니에요.
- 울었어. 왜 울었어? 왜 울었느냐고 묻잖아.
- 울고 싶어서 울었어요. 그런데 당신은 왜 이런 시간에 들어왔어요? 내가 의심스러워서 들어왔나요?
- 그래. 의심스러워서 일하다 말고 쫒아와 봤어. 사무실에서 그냥 견딜걸 잘못했어.
- 학수형. 점심먹으러 갔다와... 아니 왜 그러고 있어요? 왜 수화기를 든 채 전화통에다 얼굴을 묻고 있는 거에요? 어디 아파요? 학수형~
- 경화.
- 왜 그래요?
- 경화 말마따나 난 역시 운이 나쁜가봐.
- 왜요?
- 언제나 끝이야. 언제나 마지막이고. 언제나 절벽이야.
- 혜진언니 때문이군요.
- 또 막막해. 또 꽉 막혔어. 숨 막혀.
- 학수형~.
- 이럴땐 난 어째야 되지?
- 제발. 제발 그만 둬요. 이젠.
- 그만두라고? 어떻게 그만 둬. 어떻게.
- 그럼 어쩔거에요? 이러다 숨 막혀 죽을 거에요? 언제나 끝이고 절벽일 수 밖에요. 처음부터 끝이고 절벽인 걸 몰랐어요? 이쯤해서 끝내세요. 여기서 끝내지 않으면 둘 다 망가져요.
- 그럴수는 없어. 이렇게 끝낼 수는 없어.
- 결국 진짜 끝을 보겠다는 거군요.
- 차 마셔.
- 마시고 있어요.
- 오랜만에 왔구나. 경화.
- 언니 안색이 나빠요.
- 응. 좀.
- 언니. 학수형을 어쩔거에요?
- 뭐?
- 나 알아요. 난 괜찮아요. 언니. 왜 그렇게 봐요?
- 경화. 나 욕하지 않겠니?
- 내가 왜요?
- 부끄럽구나. 경화한테.
- 학수형을 어쩔거에요? 아슬아슬해서 못 보겠어요. 언니.
- 무슨 방법이 있겠지.
- 무슨 방법이요?
- 미스터 한 괜찮을거야.
- 괜찮지 않을 거에요. 내가 알아요. 미안해요. 주제넘은 소릴해서.
- 경화 참 강한 아이로구나.
- 그래서 사랑받지 못하는 지도 몰라요.
- 그렇지 않어.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
- 여보세요.
- 저에요.
- 내게 시간을 좀 더 줘요.
- 무슨 시간이요?
- 그렇게 따지지 말아요. 내가 뭐라고 했어요. 내가 연락하겠다고 했잖아요.
- 나 할 얘기 있어요.
- 좀 더 있다 듣겠어요. 지금은 들을 수가 없어요.
- 지금 들어야 해요. 시간이 지나기 전에 들어야 해요. 나. 결심했습니다.
- 결심?
- 네. 결심했어요.
- 무...무슨?
- 만나서 얘기하죠.
- 나. 더 있다 듣겠어요. 지금은 들을 수 없어요. 전화 끊어요.
제21화 키스마크… 그게 모든걸 말해주고 있어. ◀ ▶ 제23화 5월4일 서비스 예정 (입력일 : 2007.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