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당신, 분명히 그랬지? 대전에 가지 않았다고.
- 그래요. 대전에 가지 않았어요.
- 그럼 어딜 갔었어. 어딜 갔었냐니까?
- 소리 지르지 말아요. 애들 깨요.
- 얘기 계속해. 어디 갔었어? 대답 안 할거야?
- 온양에 갔었어요.
- 온양? 거긴 뭣하러 갔었어?
- 드라이브 갔었어요.
- 드라이브?
- 네. 드라이브요.
- 그 빗 속에 말이지?
- 네.
- 왜 그 빗 속에 드라이브를 했지?
- 가고 싶어서요.
- 혼자서?
- 아니요.
- 그럼 누구하고 갔어?
- 어떤 사람하구요.
- 그게 누군데? 그게 누군데?
- 더 말 못해요.
- 왜? 왜 못해?
- 말할수가 없어요.
- 거기 앉아! 앉아. 말해 그게 누구야.
- 당신 모르는 사람이에요.
- 남잔가? 왜 남자하고 드라이브를 했지?
- 가고 싶어서 갔다고 했잖아요.
- 그래. 그랬었지.
- 그럼 그 남자가 당신 목에 키스마크를 만들었겠군. 어젯밤에 왜 안 돌아왔지?
- 늦어서 못 왔어요.
- 밤을 어젯밤을 온양서 지냈어?
- 네.
- 혼자서? 혼자서냐고 묻질 않아?
- 아니요.
- 그 남자하고 같이 보냈나 그럼?
- 네.
- 왜 그 남자하고 같이 밤을 보냈지? 왜냐고 묻고 있어 지금.
- 그 남자를 사랑했어요.
- 사랑?
- 네.
- 사랑한다고?
- 네. 사랑해요.
- 여보.
- 네?
- 우리 지금 뭘 하고 있는거지? 우리 지금 퀴즈 놀이를 하고 있는 거야? 아님 스무고개 놀음을 하고 있는 거야? 모를 일이야. 자려다 말고 일어나 앉아서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어. 아무래도. 당신도 모르겠어? 지금 우리가 뭘 하고 있는 건지? 당신도 모른다는 거야? 응? 다시 얘기해 봐. 처음부터 다시 얘길 해보라고. 처음부터 다시. 아니 어딜가는 거야? 어딜!

(따르릉. 따르릉. 따르릉.)
- 이 밤중에 누가 전활하는 거지?
- 여보세요?
- 저. 영아 아빱니다.
- 어머. 아니 왠일이세요?
- 집사람 거기 안 갔습니까?
- 안 왔는데요.
- 안 갔어요?
- 네. 안 왔어요. 혜진이 지금 집에 없어요?
- 없으니까 지금 묻고 있는 거 아닙니까?
- 무슨일인가요? 이 시간에 혜진이가 집에 없다니요?
- 나갔어요. 두 시간전에. 그런데 돌아오지 않습니다.
- 뭐라구요? 무슨 일이 있었나요? 네? 제 얘기 지금 듣고 계세요?
- 듣고 있습니다.
- 무슨 일이에요? 혜진이가 왜 집을 나갔어요?
- 경숙씬 알고 계시죠?
- 뭘요?
- 혜진이가 어디 갔는지 알고 계시죠?
- 제가요?
- 알고 계시죠?
- 몰라요. 제가 어떻게 알겠어요. 왜 집을 나갔는지도 모르는데 어떻게 알겠어요?
- 알았습니다. 늦게 실례했습니다. 그럼.
- 아니, 이게 어떻게 된거야? 나갔다구?

- 경화니? 엉. 안 잤구나 마침.
- 언니야?
- 너. 내 묻는 말에 대답만 해라.
- 뭘? 왜 밤 12시에 전화를 해가지고 대답만 하라니 뭘 가지구 그래?
- 미스터 한이라는 사람 집 전화번호 좀 말해죠.
- 학수형 말이우?
- 응. 그래.
- 아니, 언니가 학수형을...
- 묻지 말고 전화번호나 대. 빨리.
- 아니, 무슨 영문인지 알아야 할 것 아니야?
- 글쎄 묻지말고 말하라니까 그러네.
- 학수형 아파트에 전화 없어.
- 없어?
- 그래. 없어.
- 아니 그럼 연락은 어떻게 하니? 수위실로 전화하지 뭐.
- 저 그럼 아파트 이름하고 동 호수 말 해.
- 아니. 뭐야?
- 그럴일이 좀 있어서 그래.
- 이 밤 중에 아파트로 갈거야?
- 글쎄, 그런 것 상관말고 어서 말해!
- 정말 궁금해서 미치겠네.
- 너 자꾸 그럴거니? 그러지 말고 어서 대~ 어. 으응. 알았어. 끊는다.

- 아휴.

(똑똑똑똑똑)
- 누구세요?
- 문 좀 열어 주세요! 나 경화 언니에요.
- 경화 언니? 무슨 일입니까? 이 새벽에.
- 혜진이 여기 안 왔어요?
- 혜진씨요?
- 안 왔어요?
- 안 왔습니다.
- 아니 그럼 얘가 어딜 갔죠?
- 무슨 일입니까?
- 혜진이 집을 나갔데요. 어제 밤에.
- 집을?
- 근데 어디 갔는지 알 수가 없어요. 갈 만한 데는 연락해 봤는데 가지 않고... 아휴... 난 여기 있는 줄 알았는데.
- 아니. 그럼...
- 어디 갈 만한데 없어요? 혜진이 어딜 갔을거 같에요? 네?
- 거기 있을겁니다.
- 거기라뇨?
- 제가 가겠습니다.
- 내가 먼저 만나야 돼요. 만나서 할 얘기가 있어요.
- 혜진씨 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겁니까?
- 몰라서 물으세요? 아휴. 무사히 넘어가는 줄 알았는데.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 가죠.
- 가요.
- 먼저 나가세요. 키 찾아가지고 가겠습니다.

- 여기가 어디에요? 이 아파트에 혜진이가 있을거란 얘기에요?
- 어쩌면 없을지도 모르죠.
- 네? 없을지도?
- 네.
- 여기 있을거라고 했잖아요.
- 처음엔 그랬는데 오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없을거라는...
- 역시. 없군요. 없어요.

제18화 운명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에요 ◀ ▶ 제20화 이 사람 대체 어딜 갔을까요?

(입력일 : 2007.04.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