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나 찾아 온 사람이 누구죠?
- 저기 구석 자리에 앉은 여자분 있죠?
- 알았어요.
- 절 찾으셨나요?
- 한학수씨세요?
- 네.
- 앉으세요.
- 혹시 경화 언니 아니십니까?
- 맞아요. 닮았죠? 많이.
- 네.
- 경화 지금 사무실에 있어요?
- 네. 있습니다.
- 경화한텐 나 만났단 말 하지 마세요.
- 네.
- 나 오늘 여기 온 건 헤진이 친구로 온 거에요. 경화 언니로 온 건 아니구요.
- 혜진씨... 아니 혜진씨한테 무슨 일 있습니까? 왜 말씀이 없으세요.
- 아무 일 없어요. 다행이.
- 네. 그런데 왜 절 보자고 하셨는지요.
- 글쎄요.
- 네?
- 사실은 미스터 한한테 혜진일 좀 도와주란 부탁을 하고 싶어서 왔는데.
- 그런데요?
- 그랬는데 미스터 한을 보니까 말을 할 수가 없네요. 혜진일 이해할 것 같애요. 이제야. 정말 내가 왜 왔는지 모르겠군요.
친구가 걱정이 돼서 왔는데 당신을 보니까 걱정이 더 커지네요. 왜냐구요. 운명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에요. 운명의 냄새.- 당신 안 잘거야?
- 네. 자요.
- 어제 한숨도 못 잤을텐데 왜 그러고 있어.
- 난 괜찮아요. 당신이 나 때문에 잠도 못 자고...
- 허허허. 나야말로 괜찮아. 아니, 당신 왜 그렇게 안색이 창백해? 아침에도 그렇더니 여태도 왜 그 모양이야.
- 괜찮아지겠죠.
- 교통사고가 어떻게 낫길래 그래?
- 어떻게 나긴요. 길이 미끄러워서 그래서...
- 그래서?
- 나. 그 얘기 하고 싶지 않아요.
- 끔찍히도 놀랜 모양이군.
- 네 네 정말 놀랬어요.
- 그러니까 빗 길에 함부로 차 모는거 아니라구. 그러다 정말 큰일나지. 그래도 당신 무사한게 얼마나 다행이야.
- 그래요.
- 나 정말 어제 무슨 일 난 줄 알았어.
- 미안해요.
- 이 담에 혹시 그런 일이있더라도 전화라도 해. 그러 일이 다시 없겠지만 서도. 전화 한 통 없으니 얼마나 가슴이 타.
- 그럴게요.
- 불 꺼. 불 끄고 푹~ 좀 자자고 오늘은. 근데 영숙씨 아이 많이 다쳤다니 안 됐어.
- 글쎄말이에요.
- 어딜 다쳤어?
- 아이. 당신 왜 자꾸 그 얘길 해요.
- 알았어. 알았어. 안 할께.
- 어서 자요.
- 정말 끔찍히 놀랜 모양이군. 가엽게스리. 이리 와.
- 그만 자라니까요.
- 이리 오라니까 그러네.
- 나. 피곤해요.
- 글쎄 이리 와.
- 놔요!
- 아니?
- 아.. 미안해요. 피곤해서 그래요. 나. 당신 화났어요?
- 불 켜.
- 왜요?
- 글쎄 불 켜!
- 왜 그러냐니까요.
- 불 키라면 켜!
- 왜... 왜 그래요. 당신. 왜 그렇게 노려봐요 당신.
- 이상해.
- 네?
- 마치 내가 당신을 강간이라도 하려는 것처럼. 꼭 강간당하려는 여자처럼.
- 내... 내가요?
- 아니 당신 목에 이게 뭐야? 이게 무슨 멍이야?
- 멍...왜... 왜 그래요?
- 어제 교통사고가 어떻게 났어? 자세하게 얘길 해 봐.
- 뭐요...
- 자세하게 얘길 해!
- 왜 왜 그래요 갑자기...
- 교통사고가 어떻게 났길래 당신 목에 키스마크같은 멍이 들었지?
- 뭐에요?
- 딴 덴 말짱한 데 왜 목줄기에 멍이 들었냔 말야. 머리카락 하나 안 상했다면서 왜?
- 당신... 갑자기 왜 그래요?
- 자세하게 얘기를 해 봐. 왜 그렇게 멍청하게 바라 봐. 얘길 하라는 데.
- 얘기 못 해요.
- 왜?
- 못 해요.
- 왜 못해? 끔찍해서 못 해?
- 그게 아니지? 아까부터 그 얘긴 한사코 안 하려고 해서 끔찍히 놀래선 줄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야.
- 당신... 나 의심하는 거에요?
- 의심하지 않게 얘길 하면 되잖아?
- 얘기 못 해?
- 못해요.
- 왜?
- 당신 갑자기 왜 이래요? 네?
- 얘길 해. 이건 분명한 키스마크야. 그렇지? 아니면 아니라고 해 봐!
-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니에요.
- 아니야? 그럼 교통사고가 어디서 어떻게 났는지 얘길 해. 얘기 못 하는 군.
- 못 하는게 아니라...
- 못 하는 게 아니라?
- 안 하는 거에요.
- 왜?
- 당신이 날 의심하는게 기분 나빠서요.
- 그게 기분 나쁘면은 날 의심하지 않게 하면 되잖아!
- 대체 갑자기 왜 이래요 당신.
- 왜냐구?
- 네
- 당신, 날 뿌리치는 손길이 이상해서. 아주 이상해서. 피곤해서 뿌리치는 손길이 아니야.
- 그건. 당신이 잘 못 느낀 거에요.
- 그렇지가 않아. 육감이라는게 있는거야. 게다가. 이 멍! 이건 멍이 아니야. 분명한 키스마크 야! 억울하면 얘길 해. 이제 생각하니까 모두가 다 이상해. 그 빗속에 아무리 급한 일이 있기로 당신을 불러 낸 것도 이상하고. 급한 의논이 있다는 사랍이 그 빗속에 무슨 시골 구경을 시켜주겠다고 차를 몰았겠으며 아무리 사고가 났다고 해도. 머리칼 한 톨 안 상한 사람이 집에다 전화 한 통 안 하고.
- 또요?
- 또 있어.
- 뭔데요?
- 당신. 대저에 가지 않았어.
- 뭐요?
- 어제 저녁 퇴근해 들어왔을 때 파출부 아줌마가 그랬었어. 이제야 생각이 나.
- 파출부 아줌마?
- 아줌마가 그랬어. 어디 갔냐고 하니까. 잠깐 나갔다 온다고. 오래 걸리지 않을 거라고 하고 나갔다고 했어. 대전에 가는 사람이 잠깐이라고 오래 걸리지 않는다고 하고 나갔을 리가 없어. 그렇지? 대전에도 가지 않았고 교통사고도 나지 않았고 이 목에 멍은 멍이 아니고. 이제 생각하니 이상한 거 투성이야. 대답해. 어디갔었어? 대전에 간 거 아니지? 그렇지? 대답 안 할거야?
- 그래요. 대전에 가지 않았어요.
- 뭐라고?
제17화 여기서 잘못하면 넌 영영 끝이야 ◀ ▶ 제19화 왜 그 남자하고 같이 밤을 보냈지? (입력일 : 200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