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누가 왔나? 이 새벽에 누구지?
- 경숙아! 경숙아!
- 아니, 혜진이가? 아니! 너 왠일이니? 이 새벽에 왜 왔어? 응? 무슨 일 있었니? 늦게 들어 왔다고 영아 아빠랑 싸웠니? 어젯 밤에 영아 아빠가 전화했었어. 너 어디 갔는지 모르냐고. 너 어디 갔었니? 그 사람 만났지?
- 경숙아! 나... 나...
- 아니. 우선 앉아. 앉아서 얘기해. 자. 앉어. 어제 밤 몇시에 들어 갔었니?
- 나. 나. 안 들어갔어.
- 뭐? 안 들어가?
- 도대체 너! 아~ 가슴이 막혀서 말이 안 나오네.
- 경숙아. 난 어쩌면 좋니?
- 나 한테 묻는 거야? 나 한테 물어?
- 그렇게 몰아 부치치 마.
- 그럼 내가 잘 했다고 할 줄 알았니? 잘 했다고 할 줄 알았어?
- 흐흐흑
- 너. 왜 그렇게 정신 나간 짓을 했니. 응? 절벽인 줄 알면서 뛰어내려서 어쩌자는 거야. 도대체.
- 어쩔수가 없었어. 나도 어쩔수가 없었어. 나도 그렇게 될 줄은 몰랐어.
- 아니야. 넌 그렇게 될 줄 알았어. 얼마든지 돌아 올 수 있었는데도 넌 돌아오지 않았어. 왜? 니가 그걸 원했기 때문이야. 그 사람하고 같이 있길 원했기 때문이야. 아니니?
- 그래. 돌아올 수 있었는데도 주저앉아 버린거야. 시간이 자꾸가는 줄 알면서도 모른채 했어. 입으로는 돌아가야 한다고 하면서도 그를 뿌리치치 않았어.
- 그렇게 한 치 앞이 안 보이니?
- 경숙아!
- 그래. 당장 어쩔꺼야. 영아 아빠한테 가서 뭐라고 할거야?
- 집엔 못 들어가.
- 못 들어가?
- 어떻게 들어가.. 집에.
- 바보같은 소리 말고 당장 들어가. 여기서 잘못 하면 넌 영영 끝이야. 어디 너만 끝이니? 영아 아빠도 끝이고 애들도 끝이야. 설마 그걸 모르진 않겠지?
- 하지만...
- 양심같은거 접어두고 들어가는 거야. 지금 니가 할 수 있는 건 그것 뿐이야.
- 전화는 왜?
- 대전에 전화를 해야겠어.
(전화를 건다~!)
- 여보세요? 대전 부탁합니다.
- 대전은 왜?
- 용숙이 한테 전화해야 해.
- 넌 어제 대전 용숙이네 집에서 잤어. 용숙이 더러 니 남편한테 전화하라고 해야 겠어. 시간이 없어.
(따르릉.따르릉.따르릉.)
- 엄만가 보다. 내가 받을거야.
- 아빠가 받아야지.
- 여보세요? 대전이요?
- 안녕하세요? 저 혜진이 친구 용숙이에요.
- 아! 안녕하십니까?
- 놀라셨죠?
- 네. 저 그런데...
- 혜진이 아직 도착 안 했죠?
- 네?
- 혜진이 지금 거진 서울 가 왔을 거에요. 어제 저희 집에 놀러 왔었어요. 모르셨었죠?
- 네.
- 제가 의논할 일이 좀 있어서 급하게 불러 내렸었어요. 아이 그런데 온 김에 시골 구경을 시켜준다고 차를 몰고 나갔다가 빗길에 교통사고가 나서 그만...
- 아니. 교.. 교통사고요?
- 놀라지 마세요. 혜진이는 아무일 없어요.
- 제 아이가 좀 다쳤어요.
- 아이가요?
- 네. 그래서 경황이 없어서 혜진이 돌아가지도 못하고 전화도 못했어요.
- 네. 그랬었군요.
- 걱정 많이 하셨죠?
- 네. 좀. 그 보다 아인 많이 다쳤나요?
- 네. 좀.
- 이거 뭐라고 말씀을 드려야 될 지 모르겠군요. 집사람 때문에 공연히 아이만 다치게 해서요.
- 아이. 아니에요. 혜진이 때문이 아니에요. 혜진일 부른거는 전데요 뭐. 운이 좀 나빴을 뿐이에요. 아이는 큰 걱정 안해도 된다 그래요.
- 네, 불행 중 다행입니다.
- 죄송해요. 걱정끼쳐 드려서. 그럼 그만 들어 가세요.
- 네.네. 저 그럼.
- 엄마. 아니야?
- 엄마 곧 온데요. 엄마 친구가 전화했어.
- 엄마 어디갔는데?
- 응 엄마 친구집에 갔었대. 자 그보다 너희들 가서 세수를 해야지. 이제.
(띵동~)
- 야! 엄마다! 엄마야?
- 응
- 엄마!엄마!
- 엄마! 친구집에 갔었어?
- 응. 아침 먹었어?
- 아침이 뭐야? 지금 파출소에 실종신고 하러 가려던 참이었어.
- 미안해요.
- 왜 그렇게 사람을 놀라게 해? 나 한잠도 못 잤어. 한 잠도.
- 용숙이가 전화했었어요?
- 방금 받았어. 그런 줄도 모르고 밤새 얼마나 걱정을 했는지 참. 꼭 무슨 일이 난 줄 알았어. 세상에 전화 한 통 없으니 거.
- 미안해요.
- 일이 그렇게 된 걸 어쩌겠어. 아무튼 별일 없이 왔으니 됐어. 아이가 다쳐서 안됐지만 말이야. 아니. 당신 놀랜 모양이군. 안색이 창백해.
- 그래요?
- 어휴. 나도 갑자기 온 몸이 나른해지네. 맥이 풀렸나 봐. 당신이 오니까.
- 출근 못하겠어요?
- 한 숨 잤으면 좋겠는데 가야 돼. 브리핑 할게 있어. 내 걱정은 마. 이것도 다 당신 무사히 돌아왔기 때문이야. 아 무슨일이라도 있었어봐? 나른해 질 겨를이 있었겠는가. 자. 여보. 빨리 아침 준비나 해죠. 그 동안 목욕이나 할 테니까. 씻고 나면은 가뿐해 지겠지.
- 옷 갈아입고 나올게요.
못 하겠어. 정말 못하겠어. - 뭐? 못 하겠다고?
- 차라리. 다 털어놓고 죽여달라고 하는게 낫겠어.
- 넌. 너 괴로운 것만 알지 영아 아빠 생각은 안하는구나?
- 뭐? 너만 입 다물고 있으면 영아 아빠는 편해.
- 하지만.
- 그게 영아 아빠에게선 차라리 나아. 그걸 모르니? 아무튼 위험한 고비는 넘겼잖아. 마침 용숙이가 대전에 살아서 용케 넘어갔어. 이제 너만 잘 하면 돼.
- 저녁에 그 이 얼굴 볼 생각을 하니까 지금부터 숨이 막혀.
- 정말. 딱하구나. 너 어쩌려구 그런 실수를 했니 그래?
- 실수?
- 왜? 실수가 아니니?
- 실수라고 얘기하지 마. 나 지금 후회하고 있는거 아니야.
- 후회하고 있는 게 아니라고?
- 실수도 아니고 후회도 안 해. 넌 몰라. 난 그럴 수 밖에 없었어. 그가 내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잠이 들어 버렸어. 잠들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거짓말처럼 잠 들어 버렸어. 생전 잠 자보지 못 한 사람처럼 그렇게 곤하게 잤어. 그런 그를 깨울수가 없었어. 아니 깨우고 싶지 않았던 거야. 돌아 갈 시간이 지나는 줄 알면서도 깨우지 않았어. 그 모습이 너무 가여워서. 그래 그렇게 재울 수 있는 내가 대견해서.
- 넌 그럼 이러고도 그 사람 단념 못 하겠다는 거니?
- 못 해. 아...아니. 이젠 안 돼.
- 뭐라구?
제16화 당신 목줄기에 얼굴을 묻고 잠들고 싶어요. ◀ ▶ 제18화 운명의 냄새가 나기 때문이에요. (입력일 : 2007.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