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언제 오셨어요?
- 조금 전에요.
- 제가 잤군요.
- 좀 어때요?
- 열도 다신 안나고 다 괜찮은데 자꾸 졸려요. 이상하게.
- 이틀씩이나 열에 시달린데다 먹은게 없어서 그런거에요.
- 하지만 내일은 일어날겁니다.
- 일어날 수 있겠어요?
- 오늘 하루 더 쉬면 괜찮을 거에요.
- 며칠 사이에 몰라보기 빠졌어요.
- 이렇게 지독하게 앓은적이 없는데.
- 혼자 앓았기때문에 그래요.
- 그런가 봐요.
- 진작 약만 먹었어도 이렇게 며칠씩 누워있지는 않았을텐데..
- 왜요?
- 어머니가 안계세요? 역시 그랬군요.
- 세살때 돌아가셨대요.
- 세살때..아니 그럼 그후론
- 할머니가 저를 키우셨죠. 일곱살때 새엄마가 들어오셨어요.
- 일곱살때.
- 아버지가 재혼을 늦게 하셨군요.
- 어머니를 몹시 사랑하셨던가봐요. 그래서 전 더 미움을 받았는지도 모릅니다. 아니 더 날 싫어하셨죠?
- 새엄마가요?
- 네.
- 돌아가신 제 생모에게 질투를 느끼는 여자거든요.
- 허어~! 욕심이 많은가봐요.
- 허영도 많아요.
- 허영?
- 하나도 주지 않고 열을 받아내려고 해요. 내 손을 뿌리치면서도 아버지에게나 남들에게 생모보다 더 자상한 엄마로 보이고 싶어하죠. 할머니하고만 지내다가 젊고 이쁜 새엄마가 들어와서 난 신이 났었어요. 종일 새엄마 뒤만 졸졸 따라다녔죠. 그런 내게 어머니란 사람은 눈을 흘겼어요. 그러다가 아버지나 누가 곁에 있으며는 또 그렇게 귀여워 할 수가 없었어요. 난 왜 나 혼자 있을땐 날 미워하나 싶어서 온갖 궁리를 다했어요. 온갖 아양을 다 떨었구요. 옷을 더럽히면 미워할까봐 밖에 나가놀지도 않았어요. 사춘기가 되도록 전 그렇게 했어요. 누가 있을때 내가 어리광을 부리면 좋아하신다는 것을 알고는 누가 오기만하면 만사 제쳐놓고 가서 어리광을 부리곤 했죠. 그럴때 어머니 얼굴은 마리아 같았어요. 그때가 지나면 벌레라도 떨어내듯이 내 손을 뿌리칩니다..
- 어쩜.
- 그렇게 사랑을 구걸했었죠.
- 그랬었군요.
- 담배가 피고 싶군요.
- 어어 피세요. 거기 있어요.
- 사오셨군요.
- 어어어~!
- 아니. 왜 그러세요.
- 어지러워요.
- 아직 담배 피지 말아야 겠군요. 아직도 어지러워요?
- 괜찮습니다.
- 아니 울고 있잖아요.
- 왜 갑자기 눈물이 나오는지 모르겠어요.
- 내가 괜히 어머니 얘길 꺼냈나봐요.
- 아니에요.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닌데요. 그 때문이 아닙니다.
- 물 좀 먹어야죠. 먹은게 없으니까 더 그래요.
- 먹고 싶지 않아요. 입안이 써서. 담밸 오랫만에 피워서 그렇겠죠.
- 눈물 닦으세요.
- 내가 자꾸 왜 이러죠?
- 나 그만 갈께요. 혼자 있고 싶은가 봐요.
- 아 아니에요. 가지 마세요. 조금만 더 앉아계세요. 조금만
가고 싶어요. 더 앉아있으면 안될것 같아요. 그렇게 보지 말아요. 눈이 부셔요. 눈이.- 가세요?
- 아니에요. 커피를 끓이겠어요.
- 아니. 당신?
- 어딜 갔다오는거야?
- 테니스 안쳤어요? 당신.
- 어. 한 30분 치다 와버렸어. 안치다 치니까 힘이 들어서말야. 아니 당신. 어디 갔었어?
- 친구 한테요.
- 친구?
- 네. 친구가 아파서요.
- 친구 누구? 누가 아퍼?
- 당신 모르는 친구에요.
- 나 모르는 친구도 있어?
- 당신이 내 친구를 어떻게 다 알아요.
- 병문안 갈만한 친구면 내가 알지 내가 왜 몰라.
- 그런 친구가 있어요.
- 그런데 당신 얼굴이 왜 그래?
- 내 얼굴이 왜요?
- 그 친구 많이 아픈거야? 안색이 좋질 않아
- 네.
- 어디가 아픈데? 암이야?
- 어어~ 네~!
- 저런 안됐군. 젊은 나이에.
- 나 옷갈아입고 나올께요.
여보. 미안해요. 거짓말을 해서 하지만 미스터 한 얘기는 할수가 없어요. 못하겠어요. 이젠 못하겠어요.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 가슴이 떨리는게. - 여보.
- 왜 .
- 여보. 우리 어디 교외로 드라이브나 가요.
- 드라이브?
- 한바퀴 돌고와요? 네?
- 아우 나 지금 졸려. 그것도 운동이라고 노곤한게 말야.
- 여보.
- 에이 사람 .참 어제 온천 데려가준다고 할때는 싫다고 하더니 느닷없이 드라이브는. 나 지금 운전할 기분이 아니야. 낮잠 좀 자게 내버려둬. 응
- 여보.
- 아이~ 참. 왜 애들처럼 그러지마. 친구 병문안 갔다와서 센치해진 모양인데 진정하라구. 응? 아이구~~
여보, 날 어디로든 데려가 주세요. 가서 훌훌 털어버리고 싶어요. 그래야 할 것 같애요. 그래야.- 학수 들어가 ..가서 누워 있어. 그래 가지고 일이 되겠어?
- 그래 형. 일은 내일부터 해도 되잖아요.
- 일이 밀렸잖아.
- 글쎄 걱정말고 들어가. 우리가 밤일이라도 할테니까.
- 며칠 쉬는 바람에에 새로 오기로 한 애들한테 연락도 못했지.
- 오기로 한 사람 어디로 가겠어? 내일 연락해도 되잖아.
- 아픈데도 없는데 누워있으면 뭘해.
- 꼴이 말이 아니야. 어디 박혀서 살았길래 원.
- 그래 오늘은 그냥 들어가겠어. 손에 힘이 없어서 일이 안될 것 같애.
- 학수형~!
- 왜?
- 아니에요. 들어가세요.
- 간다.
- 저녁에 갈께.
- 오지마.
- 그래? 그럼 내일 보자고.
- 아이 속상해. 좀 대강대강 넘어가지 못하고서.
- 형섭이 담배 있어?
(따르릉~따르릉~)
- 네에~~
- 접니다.
- 어디세요? 출근했어요?
- 나갔다 들어가는 길입니다.
- 괜찮은거에요?
- 네. 덕분에요.
- 다행이에요. 궁금했어요. 거기 아직 있는건지 어쩐지.
- 고맙습니다. 걱정해주셔서.
- 이제 병 나지 않게 하세요.
- 네.
- 그럼 끊겠어요. 끊을게요. 네?
- 네.
- 그럼.
이제, 다시는 만나지 않을거에요. 다시는 (전화를 걸다)
- 경숙이니? 어~! 마침 있었구나. 나 지금 그리로 갈께. 웬일이냐구. 네가 보고 싶어서 간다는 거야. 니가.
(띵~동)
- 누구?
- 경화에요.
- 경화?
제9화 내일만 갈 거에요. 내일만... ◀ ▶ 제11화 놔주세요. 부탁이에요 (입력일 : 2007.04.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