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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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인생극장 창밖의 여자
창밖의 여자 - 제8화 “증발해 버렸어요. 이틀째.”
창밖의 여자
제8화 “증발해 버렸어요. 이틀째.”
1979.01.08 방송
라디오 드라마 인생극장 ‘창밖의 여자’는 후에 영화로 제작 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얻었다. 특히 이 드라마의 주제곡인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는 침체기에 빠져있던 조용필이 재기하는데 주요한 계기가 되었다.
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네, 수고하십니다. 저 다름이 아니고 308호 한학수씨 지금 있는지? 그저께 아침에 나가서 아직 안 들어왔다구요? 네, 알겠습니다. 수고하십시요.
- 이거 어떻게 된거죠?
- 아유 이 자식 이거 어디가서 되진거 아냐? 어머니 만나러 나간 자식이 아파트에도 사무실에도 안 나타나고 이틀씩 어디가서 뭘 하길래 소식이 없단 말이야?
- 무슨 사고가 난 거 아닐까요?
- 사고가 나도 연락이야 올 꺼 아니야 안그래?
- 그렇긴 해요.
- 저, 서교동집으로 연락해 보는게 어때요? 어머니 만나러 나가서 연락이 없으니까 집에 갔는지도 모르잖아요?
- 집에 간 사람이 손가락이 없어서 전화도 못 하겠니?
- 아~! 정말
- 집은 안 갔어.
- 그래도 집으로 한 번 전화라도 해보면 어때요?
- 전화할 필요없어. 집엔 걱정해 줄 사람도 없으니까 뭐 회사로 하면 했지.
- 하지만 회사엔 좀 더 기다려보고 연락해도 늦지 않아.
- 이런 일은 한번도 없었는데. 형 말마따나 무슨 사고가 났으면 신문도 있고 신분증이 있으니까 어디로든 연락이 올 텐데 말이에요.
- 이 자식 지금 전화도 못할 지경인 거 틀림없어.
- 도무지 짐작이 안 가요?
- 짐작가는게 있으면 내가 왜 미쳐. 이 자식 정말 뒤져버린거 아닐까?
- 아유. 왜 그런 불길한 소리를 해요? 형은 참 엉뚱하니까 웃으면서 나타날지도 모르죠.
- 아무리 지 멋대로라도 이런일은 없었어.
- 걱정말아요. 진철형. 죽진 않아요. 학수형.
- 너흰 몰라. 그 자식은 언제든 죽을 수 있는 놈이란 말이야.
- 몇일 전에 그랬어요. 아직 죽고싶은 생각은 없다구요. 빨간 신호등인 줄도 모르고 차도로 내려서려는 걸 붙잡았더니 그러더라구요.
- 그 말 믿니 경화?
- 그 말을 믿는게 아니에요. 학수형 누군갈 기다려요.
- 기다려? 누굴?
-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요? 하지만 기다리는건 확실해요. 아니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한건지도 몰라요.
- 사랑? 학수가?
- 믿기지 않아요?
- 어떻게 믿니 그걸?

난 알수 있어요. 알수 있다구요. 그랬어요 학수형이 세상이 왜 이렇게 넓게 보이냐고요. 내가 학수형을 처음 봤을때 내가 바로 그랬었거든요. 그 때 세상이 왜 그렇게 넓게 보이던지. 그 때 그 느낌을 난 잊을수가 없거든요.

(띵동)
- 누구지? 누구세요?
- 경화에요 혜진언니.
- 경화?
- 놀랐죠 언니?
- 근무시간에 여길 오다니 놀라겠다 정말.
- 왜 마스크를 걸고 있어요?
- 어 대청소나 해 볼까 하고. 들어가자.
- 그럼 내가 잘못왔네요. 청소 방해 되잖아요.
- 취소야 대청소. 괜히 잡념이 생겨서 일이나 할려고 그랬던거야. 봐 깨끗하지?
- 어 정말? 유리알 같은데요 뭘 온 집안이.
- 그러니 걱정말고 앉어.
- 근데 언니같은 사람도 잡념 생길때가 다 있어요?
- 난 사람 아니니?
- 아이. 그래도 그렇죠. 이렇게 아늑한 집안에 예쁜 아이들에 유능한 남편에 무슨 걱정이 있으며 무슨 잡념이 있겠어요?
- 그래. 공연한 소리야. 그 보다 왠일이니? 오늘 노는 날이니?
- 노는 날은요?
- 그럼 일하다 말고 나왔어?
- 심난한 일이 있어서 일들도 안 해요. 모두들.
- 심난한 일?
- 참 언니 학수형 알죠?
- 응. 알지. 근데 그 사람은 왜?
- 증발해 버렸어요. 이틀째.
- 증발?
- 알수가 없어요. 왜 어디로 가서 안 나타나는지. 아니 못 나타나는지도 모르죠. 첨엔 별일없을 꺼라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기분이 이상해요.
- 그래?
- 그래서 모두들 두 손 놓고 전화통만 바라보고 앉았어요.
- 그. 그래?
- 기다리고 앉았자니 숨이 막힐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나왔는데 막상 나오니 갈데가 없지 뭐에요?
- 무슨 사고가 난 것 아니야?
- 사고는 아닐꺼에요. 연락이 없으니.
- 하긴.
- 언니, 나 미칠 것 같애요.
- 그 사람 때문에?
- 나 자신 때문에요. 나 아무하고나 결혼해 버릴까 봐요. 아니 죽어버릴까봐.
- 뭐야?
- 정말이에요. 죽어버리고 싶어.
- 무슨 일 있었니? 경화?
- 아무일도 없어요. 나 같은 게 무슨 일이 있겠어요?
- 그런데?
- 내가 싫어서 미치겠어요. 내가 싫어서 말이에요.
- 경화 그 사람을 사랑하는 구나. 그랬었구나. 그랬었어.
- 아니에요. 아니에요. 내가 누굴 사랑 할 수 있겠어요. 이런게 사랑하는 거에요? 그 사람 어디가 왜 아픈지도 모르면서 사랑한다고 할 수가 있어요? 이게 사랑이에요?
- 경화.. 미안하구나. 위로해 줄 말이 없어서.
- 위로받고 싶어서 언니 찾아 온 거 아니에요. 절망하고 싶어서 왔어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사무실에 앉아 있을려니까 참을 수가 없었어요.
- 근데 그 사람 정말 어떻게 된걸까?

- 엄마! 나 스케이트 타러 가고 싶어요. 나 데리고 덕수궁에 가줘요. 응? 응? 엄마.
- 응
- 응 정말이야 엄마?
- 응 그래.
- 지금가요 지금 응?
- 어딜?
- 덕수궁
- 덕수궁?
- 스케이트 타러 간다고 했잖아 덕수궁에.
- 엄마가 그랬어?
- 몰라 몰라 잉. 금방 간다구 하구선.
- 엄마 지금 어디 좀 갔다와야겠어.
- 어딜?
- 금방 갔다 올테니까 집에서 놀고 있어. 엄마 갔다와서 스케이트 타러 가. 알았지?
- 금방 와야 해요.
- 그래요. 금방 올꺼에요.

(문을 연다. 발자국 소리.)
어쩜 여기 있을지도 몰라.
- 어머! 어머나! 미스터 한! 미스터 한! 아니 저... 이봐요! 이봐요! 미스터 한!
- 누구세요?
- 눈을 좀 떠봐요.네? 눈 좀 떠봐요. 눈 좀.
- 누구세요?
- 눈을 좀 떠보라니까요. 왜 그래요 네?
- 누구세요?
- 내가 누군지 모르겠어요? 날 알아 보시겠어요?
- 네
- 여기 왜 이러고 계세요. 네?
- 무~울 물 좀...
- 네. 여기...
(물을 마신다)
- 어디가 아픈 거에요 네? 의사를 부르겠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 의사 부르지 마세요...
- 눈에 열이 많아요. 눈이 빨개요. 입술은 말라붙었고. 의사선생님 모셔야 겠어요.
- 가지 마세요.
- 가야 해요!
-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제7화 “매일 기다렸습니다.” 제9화 내일만 갈 거에요. 내일만...


(입력일 : 2007.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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