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명숙 극본 이규상 연출
- 오셨군요?
- 지금 돌아가는 길이군요?
- 네
- 사무실로 가시는 거에요?
- 일하다 말고 왔으니까요.
- 그럼 가보세요. 나 잠깐 들여다 보고 갈께요.
- 여기 그 날 이후 처음 오시는 겁니까? 왜 한 번도 안 오셨어요? 별로 오고 싶지 않으셨나 보죠?
- 별로 기분이 좋지 않았어요. 그래서 안 왔었어요.
- 그럼 오늘은 기분이 좋으신가 보군요.
- 뭐 그렇지도 않아요. 하지만 갑자기 오고싶어 지더군요. 5분만 앉아있다 가겠어요. 그 날 본 갈매기가 그대로 있나 궁금해요.
- 갈매기가 날아 갔을까봐서요?
- 꼭 날아갔을 것만 같아요. 다시 찬찬히 한번 보고 싶어요. 먼저 가세요.
- 네 그러죠.
(발자국 소리)
- 어머.
- 정확히 5분이군요.
- 돌아간 줄 알았는데요.
- 가는 길에 아파트까지 모셔다 드릴려구요. 타세요.
- 가는 길이니까 타죠. 그럼.
- 갈매기는 그대로 있죠? 하하하
- 역시 근사해요. 꿈도 아니구요.
- 꿈도 아니라뇨?
- 환상의 바다니까 환상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여기로 오면서.
- 이제 환상이 아니라는 걸 분명하게 아셨겠군요.
- 그래요. 덕분에 기분이 가벼워졌어요. 그 짙은 물빛 카페트 아무리 봐도 싫증나지 않을 것 같아요.
- 왜 기분이 무거웠는지 얘기 해주실 수 없으세요?
- 별일 아니에요. 성장을 하고 외출을 하고 싶었는데 외출이 취소됐어요. 그럴때 기분 아시죠?
- 알만합니다.
- 그 무참한 기분을 달랠길이 없어서 아파트 안을 뱅뱅 돌다가 그 방 생각이 나서 온거에요. 그럴 때 가라고 만들어 놓은 방 같아요. 정말 짦은 시간에 기분이 가벼워졌으니까요.
- 저도 기분 나쁘지 않은데요. 그 방 덕분에 기분 전환이 되셨다니.
- 이러다 열쇠 언제 돌려 드릴지 모르겠어요. 오늘도 돌려드리고 싶지가 않아요.
- 돌려주시지 않아도 좋습니다. 전 열쇠 하나면 충분하니까요.
- 혼자 보긴 아까운 방이에요.
- 또 누구 보여드리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까?
- 없어요. 지금은. 참, 경화한테 한 번 보여주시지 그래요? 경화가 보면 굉장히 좋아할텐데요.
- 경환 안됩니다.
- 왜죠?
- 다음에 얘기해 드리죠.
- 경화 잘 있죠?
- 네
- 미스터 한은 거기 매일 가세요?
- 매일 갔었어요. 그리고 매일 기다렸습니다.
- 누구를요?
- 부인을 기다렸죠.
- 나를요? 왜요?
- 왜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다렸습니다. 오늘도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 뭐라구요?
- 어! 오는군! 왜? 무슨일 있어? 맨날 오후만 되면 어디를 가? 오늘은 좀 알자고.
- 왜 오후에 내가 자리를 비워서 안되는거 있어?
- 그게 아니잖어.
- 그럼 알려고 들지 말어.
- 길 건너 다방에 어머니 기다리고 계세요. 30분도 더 됐을꺼에요.
- 어서가 봐.
- 알았어.
(나간다)
- 기분이 좋아서 들어왔다가.
- 글쎄말이에요.
- 근데 학수 요새 왜 저래? 내내 멍청해갔고 있더니 오늘은 싹 개었으니 말이야.
- 내가 알아요?
- 어떻게 오셨어요?
- 그 날은 결국 안 왔더구나.
- 아버지 뵙고 싶으면 회사로 가면 돼요.
- 그럴테지.
- 오늘은 무슨일이세요?
- 아버지가 걱정하시더라. 물론 나도 마찬가지고.
- 뭐가요?
- 니 결혼 말이야. 서른 둘이 되도록 이러고 있을수는 없잖니? 그래서 아버지하고 의논했다. 네게 약속한 사람이 없으면 내가 알아보기로 말이야.
- 그만두세요.
- 그럼 약속한 사람이 있니? 응?
- 언제든 내가 결혼하고 싶을 때 합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 그 때가 언제야. 결혼하고 싶을 때가 언제냐고?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런 소릴하고 있니?
- 그 때가 언젠진 저도 모릅니다.
- 그러지 말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 내가 봐 둔 신부감이 있다.
- 그만두시라잖아요.
- 그만둘 수가 없어 이거는.
- 왜요?
- 여태 결혼할 생각도 안하고 있는 널 그럼 그냥 두고 보라는 말이냐?
-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고 그랬죠. 그러니 그냥 놔 주세요 제발.
- 하지만 남들이 뭐라는 줄 알아?
- 전실 아들 장가 안 보낸다고 누가 어머니를 비난하던가요?
- 내가 관심이 없어서. 친어머니 같으면 여태 그냥 두겠냐고들 그래. 모두들. 안 들어도 뻔하잖니.
- 그래서. 그런 소리 듣기가 억울하세요?
- 뭐. 억울하다기 보다. 그렇다고 그래서 너더러 결혼하란건 아니고. 널 위해서.
- 날 위해서라면. 가만 놔 두세요.
- 하지만.
- 그만 들어가 보겠어요.
- 학수야!
- 이유가 뭐냐? 결혼 안 하려는 이유가 뭐야?
- 안 한다곤 하지 않았아요. 지금 결혼 할 생각이 없다고 했죠.
- 그러지말고. 날 봐서라도...
- 결국 나오셨군요.
- 나오다니.
- 어머니의 본심 말입니다.
- 뭐라고?
- 아닙니까?
- 너. 너 무슨말을 그렇게 하니? 어디 결혼을 내가 하는거냐? 결혼은 네가 하는거고. 결혼하면 너는 물론 나도 좋다는 거지.
- 계속하세요.
- 넌 어쩜 날 그렇게 차갑게만 보니?
- 내가 어머닐 더운 눈으로 봐주길 원하세요? 거 보세요. 대답 못 하시죠? 어머닌 어쩜 그렇게 끈질기세요? 내가 어머니에게 협조 안하기 시작한지 10년입니다. 그런데 여태도 날 포기 못하세요? 여태도 날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을 하세요?
- 뭐라고? 이용한다고?
- 왜요? 아픕니까?
- 너! 너!
- 이제 망상은 버리세요. 소용없어요. 그리고 지긋지긋해요. 지긋지긋하다구요. 그래서 집을.. 집을 나왔는데 왜 찾아다니면서까지 이럽니까. 왜 찾아와서 내 입에서 이런 소리를 나오게 하느냐구요!
‘매일 기다렸습니다. 왜 기다렸는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기다렸습니다.’
날 기다렸다고? 매일 기다렸다구?
‘오늘도 기다리다가 돌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오늘도 기다렸다고?
‘왜 한 번도 안 오셨어요? 오고싶지 않으셨나보죠?’
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또 한편으로 가고싶지 않기도 했구요. 왜냐구요? 글쎄요.
(띵동)
- 어머나 12시가 다 됐네.
- 여보, 나 한 잔 했어. 회의가 끝나고 한 잔씩 했...
- 어서 올라오기나 하세요.
- 아 근데, 당신 왜 화를 안내지? 약속도 안 지키고, 술 먹고 12시에 들어왔는데 말이야 응?
왜냐구요. 글쎄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군요. 정말.제6화 “난 지금 누굴 기다려” ◀ ▶ 제8화 "증발해 버렸어요. 이틀째. " (입력일 : 200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