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발자국 소리 및 사이렌 소리, 차 급정거 하는 소리)
(헬리콥터 돌아가는 소리)
연속수사극 추적자.
(음악)
야행열차.
(음악)
고려식품 제공.
(광고)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서른한 번째.
(음악)
- 윽!
- 으윽!
- 윽!
십여 명의 인부가 얼마 전 차준호 화백이 서있던 곳을 중심으로 눈을 쓸고 얼음을 깨기 시작한 것은
이미 어둠이 내리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 으잇!
- 윽!
- 윽!
- 아!
잠시 후, 작업현장 주변에는 곳곳에 모닥불이 피어올랐다.
- 으잇짜!
- 읏차!
송 반장의 열화와 같은 재촉으로 작업을 쉴 새 없이 계속됐으나 문제의 조각도는 좀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음악)
다음 날 아침, 그러니까 차준호 화백과 윤세현이 구라파로 여행을 떠나기로 된 그날 아침이다.
하늘은 쾌청했고 날씨마저 봄 날씨처럼 따사로웠다.
- 아아, 정말 좋은 날씨예요. 아침에 일어나보니까 연못의 얼음이 모두 녹았지 뭐예요?
- 아하하, 아무래도 이번 여행 중엔 좀 좋은 일이라도 있을래나 보지?
- 아무쪼록 그러셔야죠. 그동안 이런 일 저런 일로 좀 시달리셨어요? 아버님 많이 위해드리세요.
- 응, 알았어요. 정말 고마워, 인경이.
- 아하하, 2시 비행기라고 하셨죠?
- 응.
윤세현의 얼굴도 전에 없이 맑기만 하다. 성급한 보도진이 강현배를 조미령뿐만 아니라 민삼열 살해의
진범으로 보도했고 그 사실을 그대로 믿어버린 윤세현으로서는 마치 오랜 악몽에서 깨어난 기분이었으리라.
그런데-.
(문 여닫는 소리)
- 으흠, 으흐흠.
- 아?
- 아니, 아빠? 어디 외출하시게요? 아직 비행기 시간 멀었는데?
- 오, 나 잠깐 다녀올 데가 있어요.
- 어딜요?
- 오래 걸리지 않을 거요. 한 시간이면 돼요. 어, 누가 날 찾거든 그렇게만 얘기해요.
그럼 다녀오리다.
(문 여닫는 소리)
- 아... 새벽같이 웬일이실까?
-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한 시간 안에는 돌아오시겠다고 하셨잖아요? 자, 우린 가서요.
뭐 빠진 거나 없나 짐이나 마저 챙기도록 해요.
- 음, 그래, 그럴까.
(음악)
그로부터 얼마 후, 차준호 화백이 탄 차가 문제의 산장호텔 입구에 멎는다.
(차 멈추는 소리 및 차문 여닫는 소리)
(발자국 소리)
- 아, 아니?!
순간, 차준호 화백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려간다. 여기저기 모닥불을 놨던 자리며, 어지럽게 파헤쳐진 도랑.
불쑥, 가까운 관목 숲 사이로 박 형사의 얼굴이 나타났다.
- 박...?! 박 형사!
- 이런 곳에서 뵙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차 선생님.
- 아... 뭘 하고 있는 거요?!
- 혹시나 해서 차 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죠.
- 나를...?
- 네.
박 형사가 조심스럽게 손수건에 싼 조각도를 내민다.
- 차 선생님이 찾고 계신 게 바로 이 조각도 아닙니까? 독일 슈피겔 회사 제품, 한국에서는 몇 안 되는 물건이죠.
- 역시 경찰은 다르시구만.
- 직업이니까요.
- 수갑을 채우겠소?
- 그건 차 선생님이 하시기에 달렸습니다. 물론 이게 차 선생님 물건이라는 건 인정을 하시겠죠?
박 형사가 성큼 차준호 화백의 코앞으로 다가서는 순간, 육십 고개를 바라보는 차준호 화백의 몸속에
어떻게 그런 기운이 나왔던가.
- 어!! 엇!!
- 윽!!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힘으로 박 형사를 밀어붙인 차준호 화백. 곧장 차를 세워둔 곳을 향해 달려 내려간다.
- 차 선생님! 차 선생!!
- 윽!! 으윽!!
(차 문 두드리는 소리 및 차 달리는 소리)
- 앗! 아니, 저런 저...!!
(달리는 발자국 소리 및 오토바이크 시동 켜는 소리)
(오토바이크 달리는 소리)
벌써 저만큼 시야에서 사라지려는 차준호 화백의 뒤를 박 형사가 필사적으로 쫓는다.
(음악)
한편 여긴 본 서 수사과.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아이, 영장 얻어내셨어요?
- 어, 근처에 조각도가 발견된 이상, 차 화백도 혐의사실을 부인할 순 없겠지. 근데 박 형사는 여태 안 왔나?
- 네.
- 전화 연락도 없고?
- 음... 없는데요?
- 거 참...
(전화벨 소리)
- 음.
(전화 수화기 드는 소리)
- 수사괍니다. 어, 난데. 응?! 뭐야?! 차 화백이 어떻게 됐다고? 어, 어, 내 곧 그리로 가도록 하지! 알았어!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 차 화백이 현장에 나타났대. 그러다가 박 형사를 보고는 도주를 했는데 박이 추격을 하자 자폭을
해버렸다는구만.
- 예... 에?! 자폭이오?!
(음악)
차 화백의 장례식은 그로부터 닷새 후에 비교적 성대하게 치러졌다. 차준호 화백이 평소에 쌓아올린
공적을 감안한 수사당국의 특별한 배려가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식이 진행되는 동안, 특히 두 여인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었다. 똑같이 검은 옷을 입은 윤세현과 차인경.
그러나 윤세현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먼 길을 떠날 듯한 간편한 차림의 까만 정장. 그리고 장례의식 끝나고
차준호 화백의 시신이 땅속에 묻힐 무렵에는 이미 윤세현의 모습은 거기 없었다.
마지막 조객까지 사라져버린 쓸쓸한 묘원.
(바람 소리)
그러나 차인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돌로 된 사람처럼 차준호 화백의 주검을 지키고 있다.
- 차인경 씨... 차인경 씨.
- 여태 계셨군요...
- 바람이 찹니다. 이제 그만 내려가시죠.
- 네.
- 밤새 여기 계실 작정은 아니실 테죠...? 정말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 저한테 그런 말씀하실 필요 없어요. 아빤 사람을 죽였으니 응당 그 보상을 받아야죠.
전... 아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애요. 아빠는 수갑 찬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었던 거예요.
결국 민삼열 씨와 그 여자와의 관계로 아빠에겐 당신 스스로 수갑을 찬 모습보다 더 치욕적으로
느끼셨는지도 모르죠.
- 음...
- 제가 쓸데없는 얘길 지껄였나 봐요. 앞으로... 다시 뵐 기회가 없겠죠...? 안녕히 계세요.
- 아... 인경 씨. 인경 씨...
몇 걸음 인경의 뒤를 쫓던 박 형사는 체념한 듯 그 자리에 서버린다. 이내 숲 사이로 총총히 사라져버리는 차인경.
- 휴우...
멀리서 지축을 울리며 달려오는 열차의 궤도음. 박 형사는 문득 윤세현을 생각한다. 그 여자는 오늘도 또
밤차를 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칡넝쿨같이 질긴 고독을 씹으면서.
(열차의 궤도음 소리)
어둠을 짚고 달리는 열차의 궤도음만이 늦겨울 황량한 공원묘지의 봉분들을 쓸며 지나간다.
(바람 소리 및 열차의 궤도음 소리)
(광고)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추적자 야행열차 서른한 번째, 마지막 회로 고려식품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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