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발자국 소리 및 사이렌 소리, 차 급정거 하는 소리)
(헬리콥터 돌아가는 소리)
연속수사극 추적자.
(음악)
야행열차.
(음악)
고려식품 제공.
(광고)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서른 번째.
(음악)
- 아이, 여행이라뇨? 갑자기 어디로 여행을?
- 아마 구라파 쪽이 될 거예요. 하하, 그렇게라도 하셔야지. 그동안 좀 시달리셨어요?
그야 뭐 모두 여러분 덕분이지만요.
- 예?! 아하하, 이거 또 한 방 얻어맞았는데요.
- 아하하하하.
- 아이, 저 그보다 인경 씨.
- 네.
- 기왕 여기까지 왔는데 차 선생님 작업실... 구경 좀 할 수 없을까요?
- 아...빠... 작업실이오?!
- 아니, 왜, 어렵습니까?
- 아... 글쎄요. 근데 왜 갑자기 아빠 작업실이 보고 싶어지셨어요?
- 아, 제가 언젠가 말씀드렸지 않습니까? 이래봬도 미술대학 졸업의 경력이 있다고.
- 어머, 아하하하. 참 그러셨죠. 아하하하.
- 입에 발린 소리가 아닙니다. 전 전부터 차 선생님의 작품세계, 무척 동경해왔습니다.
- 아하하, 그러세요? 아빠가 계시면 싫어하시겠지만 마침 아빠가 안 계시니까 구경시켜 드릴게요.
- 아하하하하.
- 대신 작업실에 있는 물건은 손끝 하나 대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 물론이죠. 저한테도 그만한 상식은 있습니다.
- 아하하하, 자요. 따라오세요.
- 네.
잠시 후.
- 야, 이거 굉장한데요?
넉넉잡아 20여 평은 됨직한 차준호 화백의, 이른바 작업실. 박 형사는 입으로는 계속 감탄사를 터트리면서도
눈길만은 날카롭게 화실 구석구석을 살핀다.
- 아, 근데 저기, 저것도 차 선생님 작품입니까?
박 형사의 손이 무심한 듯, 한쪽 구석에 놓인 목각의 여인흉상을 가리킨다.
- 어머, 글쎄요? 아빠는 석재만 다루시는 줄 알았더니 언제 목재까지 다루셨을까?
- 이거 굉장히 정교한데요? 아, 이런 작품을 다룰 때는 어떤 연장을 씁니까?
- 미술대학 다니셨다면서요?
- 죄송합니다. 전 동양화 전공이었습니다.
- 아하하하, 아빠는 좀 특별한 용구를 써요.
- 예, 특이하다뇨?
- 아, 뭐, 따지고 보면 특별할 것도 없죠. 2년 전엔가 독일 가셨을 때 용구 일체를 구입해 오신 적이 있어요.
- 아, 네네...
- 아시겠지마는 목재라는 건 재료 자체가 워낙 민감해서 용구에 따라 작품의 생명을 좌우할 때도 있죠.
- 네, 근데 조각용구로는 어느 나라 제품을 가장 높이 평가하나요?
- 어...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요. 독일 슈피켈 회사 제품을 꼽는다고 들었어요.
- 네, 그러니까 아버님이 쓰신 용구도 바로...
- 네, 2년 전 여행에서 돌아오셨을 때 자랑 삼아 구경시켜주신 적이 있어요.
- 아, 네, 그거 구경 좀 할 수 없을까요?
- 아이, 그야 뭐 어려울 건 없죠. 잠깐만 기다리세요.
(서랍에서 물건 꺼내는 소리)
- 바로 이거예요.
- 아이, 열어봐도 괜찮겠습니까?
- 열어보세요. 대신 만지진 마시구요?
- 아하하하, 네네네.
(상자 여는 소리)
- 야... 이거 정말 놀라겠네요. 아, 제가 보기에는 이 용구 자체가 벌써 완벽한 예술품 같습니다.
- 그래요?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 형사의 시선은 날카롭게 상자 속에 진열된 조각도를 살핀다.
그리고 어느 순간, 박 형사의 시선은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어느 한 지점에 머무른다.
가지런히 놓은 조각도 중에 어느 하나가 나머지 조각도들과 다른 모양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박 형사의 심장이 무서운 속도로 뛰기 시작한다. 그런데-.
(문 여닫는 소리)
- 인경아.
- 음?
- 아...빠...
- 도대체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게야?!
언제 돌아왔는가. 차준호 화백의 시선이 무섭게 인경과 박 형사를 노려본다.
(음악)
- 변명은 집어치워!! 내 허락 없이 작업실을 외부사람에게 구경을 시킨다! 그것도 내가 그런 일을 싫어하는 걸
뻔히 알면서 말이야!!
- 죄송해요. 아빠.
- 죄송하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야!! 이 애비의 작업이 어떤 것이라는 걸 알만한 애가 그런 짓을 해?!
- 아... 여보 그쯤 해두세요. 인경이가 잘못했다고 사괄 하잖아요?!
- 당신!! 잠자코 있어요, 좀!! 도대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 네?!
도대체 차준호 화백은 무엇 때문에 이처럼 불같이 화를 내는 것일까?
(음악)
- 뭐야?! 그러니까 조각도 중에 하나가 딴 게 섞여 있었단 말이야?!
- 네, 그렇습니다. 생김새가 비슷해서 얼핏 봐서는 식별이 어려웠지만은요. 반장님 따라 시내 화구점을
모조리 훑은 덕분으로 식별이 가능했던 셈이죠.
- 그래서?
- 그래서 일단 민삼열이 살해범과 조미령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슬쩍 비췄습니다. 특히 눈이 녹는 대로 범인이
사용한 흉기를 찾기 위해 현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수색이 있을 거라구요.
- 정말 수고했다. 하지만은 차 화백이 민삼열이 살해 진범이라 하더라도 흉기를 다른 곳에 버렸다면은 문제가
달라지지 않니?!
- 네, 그래서 얘긴데요.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압수수색영장을 신청해놓는 게 어떨까요?
- 압수수색영장? 아니야... 그것도 소용없는 짓이다. 차 화백이 조각도를 다른 것으로 바꾼 걸로 미루어 봐서
차 화백의 집에는 조각도가 없다고 봐야 하지 않겠니?
- 저도 답답해서 해본 소립니다. 차 화백 부부는 내일 모레면 구라파로 뜨거든요.
- 정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할, 아주 난처한 상황에 처해있다.
(전화벨 소리 및 전화 수화기 드는 소리)
- 수사괍니다.
- (전화 음성)반장님이십니까? 저, 여기 산창호텔입니다.
- 아,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전활 주셨습니까?
- (전화 음성)네, 저, 좀 이상한 일이 있어서요.
- 이상한 일이라니요?
- (전화 음성)전화가 왔는데 굳이 503호실을 쓰게 해달라는 거예요.
- 아니, 민삼열이가 피살된 방 아닙니까?!
- (전화 음성)그래서 저희도 꺼림칙한 생각이 들어서 수리중이라고 했더니 그 옆방이라도 좋다는 겁니다.
- 혹시 예약신청한 사람의 이름을 알 수 있습니까?
- (전화 음성)에... 그건 알 수 없구요. 직접 이리로 오겠다고 하더군요.
- 네, 좋습니다. 정말 전화 주셔서 감사합니다.
- (전화 음성)저희들은 어떻게 할까요?
- 네, 평소대로 업무를 보십쇼. 저희들 일은 저희들이 알아서 하겠습니다. 자, 그럼 끊습니다.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 아이, 어떻게 된 겁니까?아, 그럼 차 선생이 503호실 예약한 겁니까?
- 얘기는 가면서 하도록 하고 어서 따라오기나 해!
- 네.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음악)
문제의 산장호텔 503호실. 그 바로 뒤쪽에 작은 도랑이 있고 꽁꽁 얼어붙은 그 도랑 위엔 눈까지 수북이 쌓여 있다.
그런데 거기 그 눈에 길게 그림자를 늘어뜨린 채 묵묵히 서 있는 사내, 차준호 화백 그 사람이 아닌가.
한동안 얼어붙은 도랑을 내려다보던 차준호 화백은 갑자기 발작이라도 하듯 돌멩이를 집어들어 얼음을 깨기 시작한다.
(얼음 깨는 소리)
- 잇!! 이잇!! 익!! 익!! 익!!
그러나 단단하게 얼어붙은 얼음은 좀체 깨지질 않는다.
- 에잇!!
- 저만큼 돌멩이를 던져버리는 차준호 화백. 그러나 코트 주머니에 깊숙이 두 손을 찌른 채 좀체 움직일 줄 모른다.
그런데-.
- 아이, 언제까지 저러고 있을 작정이죠?
- 어차피 혼자서는 불가항력이다. 곧 포기를 하겠지.
- 어?! 움직이는데요.
- 으흐흠, 그러면 그렇지. 박아, 가서 사람들을 좀 모아오너라. 밤을 새워서 라도 저기를 파헤쳐야 할 모양이니까.
- 알겠습니다!
(뛰는 발자국 소리)
송 반장의 얼굴에 또다시 착잡한 표정이 떠오른다. 하마터면 미궁으로 빠질 뻔했던 민삼열 피살사건의 실마리를 쥐게 됐다는
안도감 때문일까. 아니면 그 진범이 육십 고개를 바라보는 저명한 예술가이기 때문에 오는 서글픔인가. 아무튼.
(음악)
(광고)
(음악)
홍계일, 배한성, 박웅, 이경자, 권희덕, 김환진. 해설 김규식. 음악 오순종.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찬모.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추적자 야행열차 서른 번째로 고려식품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연속수사극 추적자는 2월 1일부터 이인영 극본의 ‘겨울안개’를 보내드립니다.
통금 직전에 벌어진 택시강도사건을 계기로 묘하게 사건에 얽혀든 송 반장과 박 형사.
그들은 어떻게 사건을 풀어나갈 것인지 많은 성원을 부탁합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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