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발자국 소리 및 사이렌 소리, 차 급정거 하는 소리)
(헬리콥터 돌아가는 소리)
연속수사극 추적자.
(음악)
야행열차.
(음악)
고려식품 제공.
(광고)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스물네 번째.
(음악)
아무튼 사건해결의 결정적 열쇠를 쥐고 있을지도 모르는 조미령의 죽음으로 자칫 원점으로 돌아갈 뻔했던
수사가, 차준호 화백이 조미령이에게 건네주었다는 손가방이 수사 선에 떠오름으로 해서 약간의 활기를 찾은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문제는 그 손가방 속에 내용물. 구체적으로 말해서 얼마 정도의 현금이 들어 있었느냐 하는 점에 집약됐다.
- 조미령이는 어린애가 아닙니다. 잔돈푼이나 주려고 차 선생님이 아파트까지 찾아 왔으려구요?!
- 그, 저, 제 생각에도 그래요. 가방 속에 담아야 할 액수라면 보통 액수는 아닌 것 같은데요?
- 그러니까 강현배가 조미령이를 죽이고 그 돈을 가로챌 만큼 말이지?
- 조미령이를 죽인 건 반드시 그... 돈 때문이라고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얽히고설킨, 말하자면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동기가 됐겠죠.
물론 돈도 필요했겠지만.
- 음, 박아.
- 네.
- 도무지 그 차 화백이라는 사람 재산이 얼마나 되니? 그림만 팔아가지고도 그렇게 고래등 같은 집에서
부족한 거 없이 지낼 수 있니?
- 아이, 반장님도. 그거야 외국에서 특별한 경우에만 가능한 거구요. 우리 실정이야 어디... 게다가 차 선생님은 지금까지 에... 작품을
돈 받고 팔아본 적이 없는 사람으로 통하는 분입니다.
- 그러면은 물려받은 재산이라도 있다는 얘기야?
- 네, 제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지마는 종로와 을지로에 빌딩에 몇 개 있다더군요. 사실 그 때문에 화단에서 미움 아닌 미움도 가끔 샀죠.
- 왜?
- 제가 신문에서 읽은 기억이 있어요. 화가가 그림하고 돈을 바꾸기 시작하면 그건 벌써 예술가가 아니다 라고 말이죠.
하지만 다른 화가들이야 어디 차 선생님 같습니까? 반장님도 만나보셨으니까 말씀인데요. 좀 어린애 같은 데가 있지 않아요?
이를테면, 천둥벌거숭이 부잣집 막내도령 같은 그런 기질이요. 예? 세상모르고 남의 이목에 관계없이 화 잘 내고요.
- 저저저저, 그 얘기는 그쯤 해두고 장 형사.
- 예.
- 장 형사는 말이야. 차 화백의 재산관계를 알아보도록 해요. 윤곽만이라도 좋으니까. 그리고 박아, 너는 차 화백의 거래은행을
알아가지고 최근에 차 화백이 돈을 인출해간 사실이 있는지, 그 액수가 얼마나 되는지 좀 알아보도록 해.
- 그야 어렵지 않지만요. 저, 전에 만났을 때 그 비슷한 느낌 못 받으셨습니까? 돈 줬다고 하더라면서요.
- 그저 최소한의 성의만 표시했다고 하더라. 하지만은 부자 어른들의 그 최소한의 성의라는 게 얼마나 되는지
나 같은 놈 어디 짐작이나 하겄니?!
- 네네네네...
- 아, 뭘 하고 있어?!
- 네?! 아, 반장님, 왜 이러십니까?! 아유, 은행 문 닫은 지요 벌써 옛날입니다.
(음악)
송 반장은 혼자 깊은 생각에 빠져든다.
(발자국 소리)
과연 강현배는 돈 때문에 조미령이를 살해한 것일까? 그럴 리는 없다. 조미령이를 죽이지 않고도 돈은 얼마든지
뺏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강현배는 무엇 때문에 자신이 조미령이를 죽였다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낸 것일까.
이미 민삼열이를 죽였기 때문에 제2의 범죄를 굳이 감출 필요가 없다는 뜻일까?
(발자국 소리)
- 아니야. 뭔가 있어. 분명히 뭔가가 있는 기야.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송 반장의 주름진 이마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역력히 떠오른다.
한편-.
- 자, 커피 들어.
- 음... 네. 아하하... 커피 끓이는 솜씨는 여전하시네요. 앉으세요.
- 응. 음... 아니? 왜 또 그렇게 날 빤히 쳐다보는 거지?
- 미안해요.
- 아... 아니, 난데없이 또 미안한 건 뭐고?
- 요 전날 버릇없이 군 거 말이에요.
- 아이, 난 또. 그 얘기라면은 난 벌써 잊어버렸는걸.
- 하지만 전 잊을 수 없어요. 솔직히 말씀드리면 그동안 전 줄곧 의심하고 있었더랬어요.
- 날?
- 네... 민 선생님의 죽음과 연관을 시켜서 말이죠.
- 아...
세현의 엷은 입술에 가느다란 경련이 빠르게 지나간다. 그랬었구나. 역시 그랬었구나.
- 아... 그동안 정말 곤욕스러웠어요. 남을 의심한다는 일. 그것도 자기하고 가장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사람을 의심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일인지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도 못할 거예요.
- 음... 그러니까 이젠 날 의심하지 않는다는 얘긴가? 의심할 필요가 없잖아요? 이미 범인의 정체가 드러난 이상,
- 그 강현배라는 사람?
- 네, 언젠가 저도 먼발치로 한번 본 적이 있지만 그 사람이라면 능히 그러고도 남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게다가 이번엔 자기 애인까지-.
- 그만. 그만해둬.
- 아니... 왜 그러세요?
- 아직 범인이 체포된 것도 아니고. 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드러난 것도 아니잖아?
- 그럼 강현배란 사람이... 범인이 아닐 수도 있다는 말씀이신가요?
- 반드시 그런 뜻은 아니야. 그저 어려서부터 어려운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와서 그런가 봐.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난 왠지 쫓기는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애.
아, 그저 그래서 얘기한 것뿐이야. 아, 우리 그 얘기 말고 딴 얘기 할까?
- 딴 얘기요?
- 응. 아, 참. 화랑 일은 잘돼가나?
- 네, 그럭...저럭.
건성으로 대답하면서 인경은 새삼 윤세현의 표정을 살핀다. 인경으로서는 뜻밖의 일이 아닐 수 없다.
쫓기는 사람의 기분을 이해할 것 같다니. 범인의 윤곽이 드러나고 그래서 그동안 집안을 덮었던 먹구름이 말끔히
개이는가 했더니 윤세현의 저 알 수 없는 표정은 뭐란 말인가.
- 무슨 얘기든지 얘길 좀 하라니까. 왜 또 내 얼굴만 빤히 쳐다보는 거지?
- 아니에요. 저... 그보다도...
- 얘기해요.
- 일전에 저한테 들려줄 얘기가 있다고 한 일, 기억하세요?
- 오... 내가 그랬든가?
- 네, 분명히 그렇게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얘기해달라니까 아직은 때가 아니라구요.
그 얘기, 지금 해주실 수 있어요?
차인경의 시선이 또다시 도전이라도 하듯 윤세현을 쏘아본다. 그런데-.
(전화벨 소리 및 전화 수화기 드는 소리)
- 네, 후암동입니다.
- (전화 음성)늦게 죄송합니다. 수사과 송 반장이라는 사람인데 차 선생님 들어오셨습니까?
- 아직 안 들어오셨는데요.
- (전화 음성)아, 그래요. 그럼 실례했습니다.
- 음...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 어디서 온 전화예요?
- 경찰이에요. 아까부터 아버님을 찾고 계세요.
- 아빠를...요?!
(음악)
같은 시간, 벌써 인적이 끊어진 지 오래인 남산 어린이 놀이터 옆. 한 대의 자가용이 불을 밝히고 있다.
바로 차준호 화백의 차다.
- 휴우...
이렇게 늦은 시간, 이렇게 황량한 곳에서 차준호 화백은 누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초조하게 시계를 들여다본다. 정각 10시. 바로 그때, 저만큼 불빛 속에 한 사내의 모습이 불쑥 드러난다.
(자동차 경적 소리)
경적 소리가 신호였는 듯 불빛을 피하지 않고 곧장 차준호 화백의 자가용으로 다가온다.
(발자국 소리)
차준호 화백의 자가용 앞에서 발걸음을 멈춘, 얼핏 보아 플레이보이풍의 사내.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걸인이나 다름없는 남루한 행색이었던 강현배. 그자다.
(음악)
(광고)
홍계일, 배한성, 박웅, 이경자, 이근욱, 권희덕. 해설 김규식. 음악 오순종.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찬모.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추적자 야행열차 스물네 번째로 고려식품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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