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는 발자국 소리 및 사이렌 소리, 차 급정거 하는 소리)
(헬리콥터 돌아가는 소리)
연속수사극 추적자.
(음악)
야행열차.
(음악)
고려식품 제공.
(광고)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열여덟 번째.
(음악)
똑바로 선 자세 그대로 윤세현을 쏘아보는 차인경.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차디찬 눈길.
- 할 얘기가 있다면서 왜 그러고 서 있어?
- 무서워요.
-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지?
그러나 여전히 싸늘한 눈길로 윤세현을 쏘아보는 차인경.
- 도대체 무슨 일이야? 뭣 때문에 그러는 거야?
- 네, 말씀 드리죠. 솔직히 말씀 드려서 전 지금까지 이 집에서 방관자 노릇만 해왔어요.
그것이 두 분을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말이죠.
- 그런데?
- 근데 이젠 저도 방관자 노릇만 할 수 없게 됐어요. 저도 이젠 뭔가를 알아야겠어요.
- 인경이, 좀 더 솔직하게 얘길 해줘요. 뭘 알고 싶다는 거지?
- 아빠가 왜 저렇게 되셨죠?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작품을 부시고, 적어도 제가 이 집에 있을 땐-. 아니에요.
제가 아는 아빠께선 지금까지 한 번도 흔들려보신 적이 없어요!
- 인경이, 그건 내가 알고 싶은 일이야. 인경인 내 마음 모를 거야. 내가 그동안 얼마나 그 일 때문에 괴로워 해왔는지.
하소연도 해봤고 울고 매달려서 사정도 해봤어. 왜 그러시느냐고. 하지만 번번이 당신은 알 필요가 없다는 거야.
당신하곤 상관없는 얘기라는 거야. 나도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근데 인경이까지 그런 질문을 하면 난 어떡하지?
- 한 가지만 묻겠어요.
- 뭐든지 물어 내가 대답할 수 있는 얘긴 다 들려줄 테니까.
- 지난 2일, 밤차를 타고 올라오셨다는 말, 아니 좀더 분명히 말씀 드리면 민 선생님이 피살되던 그날 밤.
오페라 구경은 안 가셨죠?
- 그건 언젠가도 얘기했잖아? 그 일이라면 오히려 인경이가 나한테 일러줬잖아? 누가 와서 묻거든 오페라구경을 했다고 대답하라고.
- 네에, 공연한 일로 집안이 시끄러워지는 게 싫어서 말이죠.
- 그런데?
- 지금은 사정이 달라요. 이젠 알아야겠어요.
- 도대체 뭘?
- 그날, 밤늦게까지 어디서 뭘 하셨죠?
- 그것도 이미 옛날에 얘길 했잖아?
- 일곱 시에서 열 시까지 시내구경을 다니셨다구요? 그것도 민삼열 씨가 피살된 그 시간에 말이죠.
- 인경이 지금 무슨 얘길 하려고 그러는 거야? 설마 내가 민삼열 씨 그 사람을? 아하, 아니야. 절대로 난 아니야.
내가 왜 그 사람을? 인경이, 제발 이러지 말아요.
그런데-.
- 아니, 이거 도대체 어떻게 된 노릇이야?!
어느 틈에 나타났는지 차준호 화백이 현관문 앞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 어? 아빠. 어디로 들어오셨어요?
- 어디로 들어오긴, 차고에 차 넣어두고 뒷길로 들어오는 길이지. 그래, 차 소리도 못 들었나?
- 네에, 저 지금 한창 재미있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어요. 아하하.
- 재미있는 얘기? 니 어머니 얼굴 보니까 하나도 재미없는 얘기였나 본데.
- 아이, 아빠도. 재미있는 얘기라고 모두 우스꽝스러운 얘긴가요? 때론 심각한 얘기가 재미있을 수도 있죠. 아하, 그렇지 않아요?
- 그야 물론.
- 야아, 두 사람이 무슨 음모라도 꾸미고 있었던 것 같구만.
- 아, 음모는요. 그래, 나가셨던 일은 잘되셨어요?
- 그래, 잘됐어요. 아주 참 잘됐어. 그보다도 오랜만에 바깥바람 흠씬 쏘였더니, 아, 이 배가 고픈걸. 나 먹을 것 좀 주겠소?
- 제발 얼굴 좀 펴세요. 괜히 아빠가 엉뚱한 생각하시기 전에.
- 알았어, 하지만 인경이.
- 왜 그러세요?
- 나도 언젠가 인경이한테 들려줄 말이 있어.
- 지금은 왜 안 되나요?
- 인경이 말대로 지금은 아빠를 걱정해야 하니까.
- 네?!
(음악)
- 아이, 뭐야?! 강현배가 나타났다구?!
- (전화 음성)아, 아니에요. 직접 나타난 건 아니구요. 전화로 조미령이와 통화를 했어요.
- 뭐야. 아니, 그렇다면 통화한 장소는?
- 아, 그게 공중전화를 사용했더라구요. 아, 게다가 이 친구 어찌나 능구렁인지 자기가 있는 곳을
대야 말이죠.
- 그야 그 녀석이 그 정도 눈치도 없을라구.
- 저, 그리구요. 저..조미령이가 우리가 지키고 있다는 걸 녀석에게 알려줘 버렸지 뭐야.
- 그거야 조미령이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정도는 알고 있을 거라 하지 않았어!
- (전화 음성)아, 이거 그나저나 이제부턴 어떻게 하죠.
- 좀 더 기다려 봐요. 급한 놈이 우물을 판다고 혹시라도 그 녀석. 삽을 쥔 채로 불속에 뛰어들 런지도 모르니까.
- 네네, 알겠어요.
- 고생스럽더라도 계속 수고해요.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 (전화 음성)어떻게 됐답니까?
- 강현배라는 놈한테 전화가 걸려왔는데 조미령이가 그걸 강현배한테 일러줬다지 뭐야.
- 조미령이, 그 아가씨 어떡하죠? 당장 연행을 해버리죠!!
- 차 선생님 협박한 죄로 말이야?
- 그 문제도 그 문제지만요.
- 또 서두른다, 또 서둘러.
- 네?
- 조금만 더 참고 기다려 보는 기야. 속담에 여우 제 꾀에 속아 넘어간다는 말 있지 않니?
아니, 근데 야! 너... 차인경이 허락할 시간 안 됐니?
- 아아, 아이 아이 참. 아, 예. 다녀오겠습니다.
- 어, 단단히 캐봐라.
- 네.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아이구, 무슨 놈에 수사가 이 모양이지? 앉아서 손가락 세다가 좋은 세월 다 놓치는구나. 원 경을 칠!
(음악)
- 이번엔 또 무슨 일로 보시자구 했죠?
- 아이, 아닙니다. 무슨 특별한 일은 없구요. 저, 이것저것 얘기도 좀 하구 싶구.
- 아, 참. 화랑에 새로운 아가씨 말이에요.
- 네.
- 상당한 미인이던데요? 네?
- 박 형사님.
- 네, 왜요? 제가 무슨 실수라도요?
- 언젠가 거기 반장님 별명이 너구리라고 하신 적 있죠?
- 아하하, 네. 그걸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죠?
- 제가 보기엔 박 형사님이 한술 더 뜨시는 것 같아요.
- 아하아하, 칭찬입니까. 아니면 욕입니까?
- 양쪽 다죠. 자, 쓸데없는 얘긴 그만하시고 어서 묻고 싶은 게 있으면 물어보세요.
오늘따라 전에 없이 냉담한 차인경의 태도. 그러나 그러면 그럴수록-.
- 참, 듣자니까 아버님께서 좋은 차를 가지고 계신다구요?
- 그건 농담인가요? 진담인가요?
- 아, 차인경 씨 제발 이러지 마십쇼. 전 호기심으로라도 물어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 정말 끝내 그런 식으로 나오신다면 저 그만 가서 일 보겠어요!
- 아, 인경 씨! 아니, 그런 게 아닙니다! 아이, 인경 씨. 잠깐...!
(발자국 소리)
(음악)
- 음, 덕분에 저녁 잘 먹었어요.
- 이제 보니까 차인경 씨, 아주 고약한 취미 가지고 계셨군요.
- 고약한 취미라뇨?
- 가난한 월급쟁이 주머니 터는 버릇 말입니다. 아하하하.
- 저녁 사신 게 억울하다면은 오늘 저녁 값은 제가 낼 용의도 있어요.
- 아이, 아, 제발 너무 그러지 마십쇼. 사실 전 속으로 영광으로 알고 있습니다.
- 진심으로 하시는 말씀이세요?
- 아, 맹세코 이건 진심입니다.
- 좋아요. 진심이라면. 앞으로 이런 영광 자주 베풀어드리죠.
얼핏 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연인으로 착각하기에 알맞는 두 사람. 그러나 지금 두 사람의 머릿속에는
한치도 양보할 수 없는 팽팽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 차인경 씨.
- 네.
- 제가 꼭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 궁금하신 게 어디 한두 가지 일려구요?
- 저, 딴 게 아니구요. 어... 초대권 있지 않습니까.
- 초대권이요?
- 왜 있지 않습니까. 오페라 초대권.
- 아... 네. 그 초대권이 어때서요?
- 예, 사실 그 오페라를 공연한 단체에 가서 알아보니까 차 선생님 댁으로 초대권을 보낸 적이 없다고 하지 않겠어요?
- ...예?!
순간 인경의 표정이 가볍게 흔들린다. 놓치지 않고 그 표정을 따라잡는 박 형사. 정작 싸움은 이제부터 시작되려는 것인가.
(음악)
(광고)
(음악)
홍계일, 배한성, 박웅, 이경자, 이근욱, 권희덕. 해설 김규식. 음악 오순종.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정찬모.
(음악)
극본 신명순, 연출 이형모. 추적자 야행열차 열여덟 번째로 고려식품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1.05.1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