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서른 한번째로 마지막 회.
- 누님, 어떻게 된 거에요?
- 쉿! 지금 리키가 차이나 타운까지 데리고 가야 돼. 거기 가면 다 떠날 수 있게 돼있으니까.
- 어디로 보내는 거에요?
- 우선 로스앤젤레스 차이나 타운으로 가게 될 거야.
- 어쩌면 좋아. 그 자식이 미쳤지. 그게 얼마나 엄벌에 처해지는 일인데 그것도 모르고.
- 흥분 할 때가 아니야.
- 어머나, 지금 떠나는 거에요? 영호야!
- 아이구 이거 떠들지 말라니까. 자, 나가 보자구. 아휴 마침 공휴일 밤이라 그래도 다행이지.
- 영호야.
- 엄마.
- 빌어먹을 녀석. 이게 무슨 일이냐. 응? 이게 무슨 일이야. 응?
- 얼른 가야 된다. 영호, 빨리 가라.
- 엄마, 너무 걱정 말아요.
- 오빠.
- 영아야, 잘 있어. 아버지, 제가 잘못 했어요.
- 거기 가서 너무 겁먹지 말고 하라는 일만 열심히 해. 그럼 괜찮을 거다.
- 영호야, 가자.
- 오빠. 잘 가.
- 잘 가라. 몸 조심 하고.
- 영호야! 영호야...
- 자, 들어 가자구. 여기 이러고 있으면 낌새 차려요. 자, 영아야? 들어가자.
- 정신이 들어?
- 뭐라구요?
- 꿈 속을 헤메다가 정신이 나냐구.
- 꿈 속 이라니요.
- 애인 품에 안겨서 달콤한 꿈에 잠겼었을텐데 안됐구만. 그림 좋던데?
- 도데체 어떻게 된 거에요. 아이를 데리고 갔으면 어떤 분위기에서 놀 것인가 쯤은 알아 보셨어야죠. 면허도 없는 아이 한테 차를 덜컥 주고 와요? 또 그러고 오셨으면 어디 계셨던 거에요?
- 밖에서 유리창 너머로 구경하고 있었어. 왜?
- 뭐예요?
- 뭐 낀 놈이 성 낸다더니. 나 참 기가 막혀.
- 당신, 당신 정말 실성 했군요.
- 뭐야?
- 정상이 아니라구요.
- 정상이 아니야? 바람이 나서 미친 여편네 하고 사는데 내가 어떻게 정상 일수가 있어.
- 그래요. 나 바람 났어요. 난 바람나고, 당신은 미치고, 아이는 일 저지르고, 아주 잘 됐군요. 잘 됐어. 아주 잘 됐어요.
- 엄마, 왜이래. 엄마.
- 아이구. 그렇게 하고 얼마를 산 거냐?
- 세월만 가면 되겠지 하고 믿었어. 그거 말고 그 인 아무것도 다른 사람하고 다른게 없는 거야. 물건 구입, 손님 접대, 물건 배달, 돈계산, 하나도 실수가 없단다. 그런데 어느 날.
- 문은 뭣하러 잠궈요?
- 당신, 나 하고 얘기 좀 해. 우리 흥분하지 말고 조용히 얘기 하자구.
- 무슨 얘긴데요?
- 나 무슨 얘기 들어도 놀라지 않을 거니까 솔직히 말해줘.
- 글쎄 무슨 얘기를요.
- 당신, 일본 놈 케이하고 어떤 관계였어?
- 뭐예요? 왜 또 이래요. 내가 거리의 창녀예요?
- 창년 차라리 깨끗해. 이걸 보고 시치미를 떼던 말던 하라구.
- 다시 미국으로 들어 갈 생각은 없으면서도 미세스 변의 사는 모습을 잊혀지지 않습니다. 미세스 변 같은 여성들이 한국에는 많이 살고 있겠지요? 아직 생각 중 입니다만 이번엔 한국 여권을 신청할까 합니다. 가까우면서도 먼 나라 한국을 공부하며 때때로 미세스 변의 기억을 떠올리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요. 이따금 안부 전하겠습니다. 답장은 마십시오. 주소도 일정치 않겠지만 그 바쁜 시간을 탈취하고 싶지 않습니다. 일본에서 케이 올림.
- 이 편지가 어쨌다는 거에요.
- 그 녀석한테 잊혀지지 않을 일이 뭐야. 무슨 기억을 떠올리느냐구. 기억 할 일이 있어야 떠올릴거 아닌가?
- 하...
- 배우 처럼 폼 잡지 말고 대답을 해 봐. 대답을.
- 어떡하나...
- 뭘 어떡해. 이제 잡아 뗄 수가 없어 어떡하나야?
- 흑흑...
- 쇼 하지 말고 대답을 하라고 대답을!
- 아빠, 왜 그래. 아빠 왜 맨날 소리치는 거야. 문 좀 열어봐.
- 자!
- 엄마, 우리 오빠한테 가서 오빠랑 셋이 살자. 아빠 무서워. 아빠 싫어. 싫단 말이야.
- 사실 영호를 여기 서부로 보내놓곤 견딜 능력이 완전히 없어졌어.
- 에휴, 그마만 해도 오래 견뎠다 뭐. 나 같으면 얘, 벌써 끝났겠다.
- 하지만 말이다. 내가 좋아서 그렇다는데 그걸 어떻게 안 참니? 우리가 서울에서 살았으면 아무일도 없었을거라는 걸 생각하면 더욱이나 안 견딜 수가 없었어. 한데 영아가 자다말고 나와서 그 어린게 애원을 하던 날 난 후딱 결심을 해 버린거야.
- 섭섭 하지만 할 수 없다. 내 헬렌 한테 잘 얘기해 줘 하지.
- 아무리 내 동생 이지만 어떡 하겠어. 그런데 여자 혼자 몸으로 위자료도 안 받고 어떻게 살겠다는 거야. 더구나 아이들까지 데리고.
- 겨울 바다는 어디나 그렇겠지만 에즈베리 파크의 비취 사이드 그 날은 유난히 화창했던 저녁 이었어. 황혼이 빨갛게 물든 바닷가에 서서 그 이와 난 마지막 결별을 한 거야.
- 할 말이 없군.
- 미안해요.
- 미안하다는 말이 날 더 비참하게 만드는거라고 생각 안 해?
- 열심히 사세요.
- 가게 처분 할 때 까지 기다릴 수 없겠어? 어떻게 맨 손으로 간다는 거야.
- 고마워요. 하지만 미적미적 그러다 보면 우리 피차 또 파멸 이에요. 제발 제 결심 흐리지 않게 해 주세요.
- 수화, 용서해. 돌이킬 순 없겠지만 한 번만 더 해보자.
- 안돼요. 제발 약한 생각 버리세요.
- 수화, 내 노력할게.
- 아이들 걱정은 마세요.
- 수화, 사랑한다. 사랑 할 거야.
- 그리고 벌써 몇 달이 갔어. 여긴 내외가 아니곤 행세를 못 해. 쭈글쭈글 호박 오가리 처럼 늙은 부인을 소개 하면서 결혼 애니버서리 30주년 40주년을 최대의 훈장처럼 자랑하는 곳 이야. 어느 누가 흰둥이 만났다 검둥이 만났다 속 내의 갈아입듯 이혼을 한다든. 어림없는 소리야.
- 그래 어쩔거야. 서울로 돌아가는게 어때? 그럴 수는 없지. 얻은 것 보다 잃은게 많은 이런 몰골로 어떻게 돌아가니? 가거든 말이나 전해주렴. 오필리아는 멀리 멀리 보이지 않는 곳으로 흘러 가버린 여자라고. 제발 이러쿵 저러쿵 입에 올릴 만큼 목숨이 남아있지 않다구 말이야.
- 기다려 보렴. 좋은 일이 있겠지.
- 그럼. 어차피 기다리다 가는게 사람 목숨인걸. 두 발로 서서 기다리나 외 발로 서서 기다리나 기다릴 수 밖에 없겠지.
- 멀리 바다 끝의 황혼을 바라보듯 시선을 보내도 있는 수화의 두 눈은 황혼의 빛으로 물들은 듯 빨갛게 젖어 있었습니다. 이런 친구의 모습을 만나기 위해서 여행을 했던건 아니었죠. 다음 여행지로 또 출발을 해야 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 놀 마지막회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 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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