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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
제27화 - 그 이는 병자가 아니에요!
제27화
그 이는 병자가 아니에요!
1979.03.27 방송
인생극장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은 1979년 03월 01일부터 1979년 03월 31일까지 31회에 거쳐 방송되었다.
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물 일곱번째.


- 동부의 여름은 짧어. 그 이가 어느날 갑자기 일요일을 쉬기로 결정하고 부터 몇 주일은 열심히 바다로 산으로 골프장으로 가족놀이를 다녔지만 그것도 금방 시들해져 버렸어. 일요일이면 으레 집에 엎드려 게으름을 피우게 되더구나. 안되겠다 싶어서 결정을 내린게 교회를 가는 거였어.

- 응. 저 여기와서 사는 사람들 중 대부분이 교횔 나가더라. 좀 우스웠어, 얘. 4월 초파일이면 새벽부터 불공을 드리러 간다 방생을 한다 법석을 피우던 사람들이 어쩌면 하나같이 교회들 그렇게 나가지?

- 물론 신앙심 때문에 가는 사람도 있지만 일요일에 교회 가는게 여기선 일종의 사교를 위한 경우가 많어. 특히 한국 교회에 모여서 예배 드리는 사람들, 일주일에 한 번 그렇게 서로 얼굴을 보는 것 만으로도 얼마나 위로를 받는데. 신에게 예배를 드린다는 구실로 사람이 사람한테 위안을 얻는거지.

- 요새도 다니니?

- 물론이지. 전에 하곤 참 다른 의미로 나가는 거야. 지금 생각하면 사교 삼아 교회 가던 때가 부끄러워져.


- 아, 여보. 내 넥타이가 어딨더라. 안 매면 안되겠지?

- 아이 그럼이요. 여름이면 몰라도 자켓을 입으시고 어떻게 안 매요.

- 아버지, 제것 매시겠어요? 난 오늘 터틀 입고 갈래요. 예배 끝나고 추수 감사절 연극 연습 할건데 작업복 입어야죠?

- 어. 어떤 희곡이냐?

- 다윗과 골리앗 인데 성극이죠 뭐.

- 너 무슨 역활 하니?

- 엄만, 물으나 마나지 뭐. 다윗이야. 나만큼 한국말이 똑똑한 아이가 없거든?

- 하하하. 녀석 미국 와서 한국말 잘 하는거 뽑낼 덴 거기밖에 없구나.

- 연기도 잘 하니까 뽑혔겠지요 뭐. 누구 피를 받았는데.

- 모계 혈통 이라는 얘긴가?

- 어머머, 아니 왜 저만 연극을 했나요?

- 나야 연기 했다고 할 수 있나? 그냥 성격이 우연히 맞은거지.

- 하여튼 햄릿과 오필리아 사이에서 나온 다윗이니까 볼 만 할거에요.


- 그래서? 아직도 그 작문 선생님한테서 편지가 온단 말이냐?

- 그럼요.

- 어이구 정성이 아주 대단하신 분 이구나.

- 어떤 땐 내가 두 달씩 답장을 못 해드려도 선생님은 꼭꼭 해주세요.

- 무슨 얘길 써 보내시는데?

- 음... 뭐 책 많이 보라구요. 이젠 왠만한 소설은 읽을 수 있다고 했더니 그러시는 거야. 그 나라를 제일 쉽게 이해 하려면 그 나라의 소설을 많이 읽어야 한데나?

- 고모가 우리 영아 소설책 많이 사 줘야 겠는데? 아 참, 프린스턴 대학 구매부에서 소설 세일 한다고 신문에 났더라. 우리 이따 가보자. 응?

- 고모, 여기서 대학 가려면 프린스턴이 제일 가깝지?

- 벌써 대학 걱정을 하니?

- 아니, 오빠 말이야. 오빠가 프린스턴에 갈 수 있으면 참 좋을텐데. 오빤 공부에 취미가 없는 것 같애. 맨날 운동하고 연극, 음악 그딴 것만 좋아하고.

- 그걸 누가 맘대로 할 수 있겠니? 아 참, 요즘은 너희 아빠, 엄마 조용하냐?

- 그런거 같은데 저번 날 밤엔 화장실 다녀 오다가 깜짝 놀랐어.

- 왜. 또 싸우든?

- 말이야...


- 아이 글쎄 제가 어딜 갔었다고 그러세요?

- 내 분명히 당신 손을 이렇게 잡고 잤단 말이야. 그런데 언제 뺐어?

- 빼긴 누가 빼요? 잠이 들어서 저절로 빼졌겠지요.

- 아니야. 그냥 빠졌을 리가 없어. 이렇게 깍지 끼었는데 잠들었다고 그게 빠져? 어디 갔었어. 바른대로 말해.

- 그래요. 제가 화장실 가느라고 뺐으니까 용서 하세요. 우리 다시 이렇게 깍지 끼고 자요. 그럼 되지요? 네?

- 여보, 사실은 말이야. 꿈에 우리 손이 한데 붙어 있는데 불편해서 안되겠다고 당신이 수술을 하자는 거야. 난 안하겠다 그러고 당신은 해야겠다 그러고 의사가 칼을 들이대는데 내가 막 발버둥을 치다가 깼어.

- 꿈은 반대라고 하잖아요. 난 당신하고 손이 정말 붙어 있다면 절대로 수술 하자고 안해요.

- 정말 이지?

- 정말 이에요.

- 그래.


- 아이고, 아무래도 큰일 나겠다.

- 무슨 큰 일 이요?

- 어, 영아야. 고모부 차에 그냥 계시라고 해. 우리 프린스턴에 가보자. 내 옷 갈아 입고 나올게. 아휴 참 이거 내 정신 좀 봐라. 영아 너 오늘 페이 날 이지?

- 모았다가 주세요. 인제 저도 저축을 시작해야 대학 가서 쓰지요.

- 대학은 대학이구 오늘은 받아 둬. 거기 대학 매점에 가면 그림이니 셔츠니 너 사고 싶은게 있을게다.


- 아이 저 여보, 영호 연극 연습 하는거 안 보고 가시겠어요?

- 어. 가게에 가 봐야 겠는데.

- 가겐 왜요?

- 어. 케이가 제 차가 고장이 나서 오늘 몇 시간만 빌려 주던지 라이드 해달라고 그랬거든.

- 그럼, 전 여기 있을 테니까 이따가 데리러 오세요.

- 응. 그러지, 그럼.


- 안녕 하십니까, 부인.

- 어머, 헤밀턴 씨. 여긴 왠일이세요?

- 네. 이 곳 한인 교회에서 추수 감사절 행사에 자금 요청이 우리 선교부로 와서요.

- 어머나, 그러세요?

- 이 교회에 나오십니까?

- 네.

- 네. 그러세요? 전엔 저도 이 곳을 자주 왔었습니다.

- 네. 저희집 영호가 이번 행사에서 연극에 주인공을 한다는 군요.

- 오, 그러세요? 아 하하하하. 그렇다면 무조건 원조를 하는걸로 해야 겠군요. 하하하하. 여러 달 만입니다.

- 왜 그동안 저희 가게에 안 오셨어요?

- 네. 여기저기 바쁘기도 했고, 아 참 일본청년 케이라고 했던가요? 잘 있습니까?

- 그럼요. 두 번 씩이나 꽃을 보내 주셨는데 변변히 인사도 못 드려서 죄송 했습니다.

-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 전 헤밀턴 씨 께서 혹시 무슨 오해라도 하시고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

- 오해 라니요. 그런거 없습니다. 다만...

- 네?

- 본의 아니게 두 분께 누를 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괴로웠습니다.

- 아니, 누가 그러던가요?

- 사실이 아니시라면 나로서는 그 이상 다행한 일이 없겠습니다.

- 헤밀턴 씨.

- 말씀 하십시오.

- 혹시 그 간에 저희 그 이가 무슨 실례라도 범했다는 말씀 인가요?

- 오, 천만에 말씀 입니다.

- 아 저 아직 햇볕이 따갑군요. 저 쪽 벤치로 가실까요?

- 음.

- 아까 그 말씀 잘 이해가 안 되는데요.

- 다 지난 일 아닙니까. 그래 미스터 변은 건강 하십니까?

- 건강하고 말구요.

- 다행 입니다. 몰라서들 그러지요. 사실 이 복잡한 사회에서 살려면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질환을 안고 살지요.

- 네? 그럼 그 이가 병이라는 확증 이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 아니...

- 헤밀턴 씨 께서는 어떻게 아신 거에요. 네?

- 이거 참 이상하게 됐군요.


- 케이, 당신도 외국 사람이니 알겠지만 신경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 가는데 얼마나 지장이 있는지 알지?

- 그 때는 다행이 차이나 타운 중국 의사한테 남몰래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지 않아?

- 미스터 변은 환자예요. 당신 때문 입니까? 헤밀턴 씨, 수를 사랑 하시죠? 수를 구원해 주십시오. 당신이란 사람 생각보다 구질구질 하군요. 당신은 위선자예요.


- 아니, 아니 그럴수가. 나만 빼 놓고 주위에선 모두가 알고 있었다는 말이군요.

- 유감 입니다. 수가 전혀 모르고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습니다.

- 헤밀턴 씨, 전 확신 합니다. 그 인 병이 아니에요. 다만 신경이 많이 피로했을 뿐이에요. 그 인 하루 4시간 수면으로 3년을 이 땅에서 살았습니다. 그 이가 얼마나 총망 받던 수재 였는가를 이 땅에선 아무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이는 하루 18시간 채소 바구니와 자동차의 악셀을 밟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 인 하루의 결산에서 1전도 틀리는 법이 없습니다. 그 이는 병자가 아니에요!

- 부인, 흥분하지 마십시오. 난 오히려 부인을 돕고 싶은 사람 입니다.

- 필요 없어요. 아무도 필요 없어요. 필요 없단 말이에요. 아무도 필요 없어요.


- 난 오랫동안 그렇게 울고 있었어. 눈물의 씨를 다 말리기라도 할 것 처럼 실컷 울었어. 분하고, 서럽고, 외롭고 그 심정을 어떻게 말로 하겠니. 그 때 처럼 헤밀턴이 미워 본적은 없어. 그 때 처럼 헤밀턴이 벽 같이 기대고 싶은 때는 없었어. 그 때 처럼 야속하고 무정해 보인 적은 없었어.

- 그래. 참 복잡 하구나.


-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스물 일곱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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