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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
제25화 - 필라델피아 고사리 피크닉
제25화
필라델피아 고사리 피크닉
1979.03.25 방송
인생극장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은 1979년 03월 01일부터 1979년 03월 31일까지 31회에 거쳐 방송되었다.
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물 다섯번째.

- 차 들어. 다 식겠다.
- 어휴. 어디 차 마실 틈이나 있니?
- 나야 얘길 하니까 못마신다지만, 넌 가만 앉아 들으면서 왜 차미실 여유가 없다는 거니?

정말이지 그냥 얘기를 듣기만 하는데 차마시지 못할 이유가 없죠? 그런데도 전 얘기에 빨려 찻잔을 입에 대 보지도 못했습니다.

- 영아야. 오빠 갈아입힐 옷 가방속에 단단히 챙겼지?
- 아. 이게 뭐야? 오빠 퇴원해도 아직 산에 갈 순 없을텐데 어떻게 필라델피아까지 실고 간다는거야?
- 암말 말어. 아빠가 정하신거니까.
- 참. 이상하다.
- 너무 갑자기지만 아빠가 일요일엔 가게 닫기로 결심하신 것만도 어딘데 그러니?
- 나도 남자로 태어났으면 좋을껄 그랬어.
- 왜?
- 최소한도 자기 부인하고 아이들한테는 네로노릇을 할 수 있잖아?
- 네로라니?
- 폭군 네로말이야. 검은 고양이 네로 말고.
- 영아야. 빨리나와 뭘 꾸물거리고 있니?
- 뭘 꾸물거리고 있니?
- 영아야!
- 네. 나가요. 영아야 나가자.

- 아니. 전날 그 난리를 치르고 일요일에 또 피크닉이야?
- 그렇지 뭐 부부 싸움이 무슨 세계대전이냐?
- 하긴 그래. 세계대전이 그렇게 자주 났다간 지구가 다 없어 졌을 거다. 그래 영호를 퇴원시켜가지고 바로 필라델피아로 고사리 피크닉을 갔단 말이야?
- 그렇다니까.

- 이휴. 살것 같다. 아빠 아이디어가 어떠니? 근사하지?
- 네.
- 어지럽거나 그렇진 않니?
- 아니.
- 오빠. 고사리 뜯을수 있을것 같애?
- 벌써 어떻게 움직이니? 산이라고는 하지만 높지 않을 테니까 차있는데 누워서 일광욕이나 해요.
- 조금씩 움직이는 것도 괜찮을거야. 운동이 될테니까.
- 오빠 병원에 있는 동안 심심했지?
- 그래. 다시는 병원에 안 갈꺼야.
- 병원에 안 가긴. 서른바늘씩이나 수술을 받아야 되는데도 병원엘 안가?
- 다시는 그런일도 없겠지만요. 있다고 해도 병원에 누워있진 않을거에요. 차라리 감옥이 낫지.
- 자식. 마 니가 감옥에나 가 보길하고 그런말을 하니?
- 감옥엔 안 가 봤어도. 그 보단 나을 거에요. 거긴 얘기할 친구라도 있을거 아니에요? 하루왼종일 식사 시간 말고는 입을 열어보는 일이 없으니 천장만 멀뚱 멀뚱 보면서 별의 별 생각을 다 했어요. 엄마나 아버지가 나를 잊어버렸나 보다. 영아도 혹시 검둥이들한테 납치를 당한건 아닐까?
- 피. 내가 뭐 오빠처럼 멍청한 줄 알아?
- 야. 멍청하지 않으면 그것들을 피할수 있을줄 아니?
- 영아야. 오빠말 잘 들어둬. 이 땅엔 아무도 니편이 되줄 사람은 없다는걸 알아야되.
- 그러니까 우리끼리 살면 되지뭐.
- 그래. 우리끼리만 살자. 아빠 엄마는 열심히 돈 벌고 너희들은 열심히 공부하고.

- 어때? 야외나오길 잘 했지?
- 어. 좋군. 아주머니는 어떠세요? 몸이 편찮다고 하시더니.
- 네. 괜찮아요.
- 이런데 나와보면 좋긴 하면서도. 한편으론 울화통이 터져서 말이야. 더럽게 재수좋은 놈들 아냐. 시커멓게 우거진 숲이 몇시간을 달려도 그대로 사람 흔적 하나 없으니 이게 어디냐고. 땅이나 메마른가 그냥 퍼다가 괴면 불이 활호라 붙을것 같이 기름지고.
- 어쩌겠나. 아무리 넓고 아무리 좋아도 우리땅은 한 평도 없는 걸.
- 아니. 근데 이 사람은 고사리 밭에 아주 주저앉았나? 왜 이렇게 안 내려오지?
- 저기 차 앞에 한 부대 뜯어 봏으시고 또 올라가시던 걸요?
- 뭐하러 거기까지 들어가누. 여기도 맨인데.
- 승냥이라도 만나면 어쩌려고 극성인지 원.
- 이번엔 취나물 뜯으러 가셨을 거에요.
- 자네가 어떻게 그리 잘 알지?
- 호호. 아까 그러셨잖아요. 저기 산모퉁이만 돌면 그늘에서 자라 연하디 연한 취넝쿨이 그렇게 많다구요.
-자. 우리먼저 반주라도 하지.
- 그러세요. 이 불갈비 식으면 맛 없을텐데.
- ... 정종이 대표아닌가?
- 난 술맛을 몰라 그런지 서울서 먹던 정종이나 여기서 파는 일본꺼나 그게 그거 같더군.
- 해보는 소리지. 실상 별다를게 있겠나. 우린 대대적으로 수출을 못하고 있고 애네들은 동서남북으로 수출에 선전에 기를 쓰니까 그렇지. 장사를 해보니까 얘긴데 우리 교포들 간장한나 사도 일본기꼬망을 찾아요. 사고도 맛이 엄청남게 다르다나?
- 하하하하. 나 서울 있을때 들은 얘긴데. 어느 배우가 일본나갔다가 기꼬망 간장을 보고 허겁지겁 그것부터 사 놓고 나중에 정작 무거워서 살 것도 못샀다고 하더군.
- 그런데 외국제 좋아하는건 우리뿐이 아니에요. 여기 사람은 안 그런가. 다 마찬가진데. 그러니까 우리도 포장부터 근사하게 연구를 하고 선전을 하고 그래야 된다고.
- 자 들면서 연설하시지. 목마를텐데.
- 어. 들자고. 아주머니도 한 잔 하시죠. 여기선 뭐 흉입니까.
- 아이. 한국에서라고 흉인가요. 원래 밀밭 옆에도 못 가요. 호호.
- 엄마 이것좀 봐요. 고사리 한푸대나 뜯었다. 아. 어쩜 그렇게 많지. 오빤 누워있는 자리에서만 뜯었는데도 한 바구나 뜯었어.
- 그래? 올 핸 영아 덕분에 고사기 실컷 먹게 생겼구나.
- 이선생님. 사모님 모셔 오세요. 점심먹고 우리 같이 모두 내기 하죠. 누가 많이 뜯나.
- 좋습니다. 아주머니께서 아마 우리집사람 못 따라 가실걸요. 워낙 극성이래서요.

- 어제는 아팠는데. 오늘은 피크닉입니까?
- 네. 그런셈이죠.
- 허허. 나는 그런것도 모르고 걱정했습니다. 허허허. 이거 문병이 우습게 됐군요.
- 꽃은 두고 가시죠. 제가 전할테니까요. 가게는 닫았어도 저녁에 들를겁니다.
- 그래 주시겠어요?
- 사실은 수 많이 아픕니다. 환자죠.
- 그래요? 아니 어디가 그렇게 아픕니까?
- 미스터변도 환자구요.
- 미스터변두? 어. 무슨말인지 이해가 잘 안되는 군요.
- 당신때문에 말입니다.
- 나 때문에요?
- 그렇죠. 깜짝놀랄 정보를 하나 알려드릴까요?
- 무슨 정봅니까?
- 헬렌왕 아시죠? 차우차우의.
- 네. 알죠. 비교적 애용하는 식당입니다.
- 헬렌이 언젠가 그러더 군요.

- 케이는 그만한 양식이 있는 사람이니 부탁인데 수화하고 해밀턴이란 사람 접근에 신경을 좀 써 줘요. 그렇지 않으면 순석이 다칠일이 있어서 그래.
- 아주 말하주지. 스톤이 우리집에 혼자 와 있을 때 신경성 질환으로 고생했거든.
- 여보. 별소릴 다하시네.
- 에이. 당신도 외국사람이니까 알겠지만 신경질환을 앓은 경험이 있으면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데 얼마나 지장있는지 알지?
- 그 때는 다행이 타이나 타운 중국의사한테 남몰래 치료를 받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좀 다르잖아? 케이.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알겠어?

- 오? 헬렌이 그런 말을 했습니까?
- 제가 해밀턴씨한테 이런 말을 하는 건 다른 뜻이 있습니다.
- 무슨 뜻인가요?
- 수를 구해주십시요.
- 어떻게 말인가요?
- 해밀턴씨는 수를 사랑하시죠?
- 오우. 그건 말하기가 좀 복잡합니다만. 사랑이라는거 종류가 많지 않습니까?
- 틀렸군요.
- 뭐가 틀렸습니까?
- 당신이란 사람 생각보다 구질구질 하다구요. 역시 처음 인상대로 위선잡니다.
- 미스터 케이. 말 조심 하십시오. 사람에 한해서 그렇게 경솔하게 단정하는거 아닙니다.
- 여러말 필요 없겠습니다. 오늘 얘기 없었던 걸로 하죠. 꽃은 전하겠습니다. 안녕히 가세요.

- 엄마. 엄만 내가 일등할줄 몰랐지?
- 그래 이선생 부인이 분해서 얼굴이 다 빨개 지시더라.
- 어마 사실은 아빠가 살짝 살짝 영아 주머니에 보태 주셨단 말이야.
- 그랬구나. 어쩐지 니 솜씨로 왠걸 1등을 했겠니.
- 엄만 고사리 뜯다말고 그쪽 구석에서 뭐한거야?
- 음. 너희 엄마는 산나물 뜯었단다.
- 어머나. 산나물이 있었어?
- 그럼. 쑥도 있었단다. 비듬나물. 씀바귀. 솔쟁이. 질갱이. 무릇 이파리에 할미꽃까지. 아후. 어쩌면 풀잎들은 낯을 가리지 않고 나나 모르겠더라.


장미자. 김수희. 김규식. 오세홍. 설영범. 안경진. 신선호. 장광. 유해무. 나래이터 고은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중구. 기술 이원석.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배리파크의 저녁놀 스물다섯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제공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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