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물 세번째
- 아니, 아 쟤가 영호니?
- 어. 얘 영호야, 인사드려. 한국서 여행 오신 엄마 친구시다.
- 하우 아 유? 안녕 하세요?
- 어머나, 아이 그래. 하이 자자. 아유 그렇게 잘 하던 악수 하는게 습관 안돼서 말이야. 어머 손도 크기도 하네. 아까 냉면집에 있었지?
- 아니, 너 봤니?
- 응.
- 그래? 모처럼 냉면을 사 주겠다 그런걸 내가 그만 직장에서 조금 늦게 나갔어.
- 어.
- 아이 씨. 냉면집 주인이 다른 손님하고 같이 앉으면 어떻겠냐고 할 때 그분 맞지요?
- 그래. 나 속으로 괴씸 했다구. 같은 한국 사람인데 뭘 그러나 하고.
- 아임 쏘리. 나 늙은 여자 매력 없었어요.
- 어?
- 젊은 처녀 였으면 흥미 있었겠지만.
- 어머나!
- 영호야, 그게 무슨 말버릇이야?
- 왓스 메럴? 나 뭐 잘못 말했어요? 잇스 트루.
- 잇스 트루. 네. 양손을 벌리면서 어깨짓을 하는게 제법 서양 사람 같았습니다. 한참 감수성이 예민한 나이에 미국 생활 3년이면 그렇게 되기도 하겠다고 이해는 해보지만요 아무리 긴 머리에 콧수염을 기르고 혀를 꼬부리고 라도 미국 사람이 전혀 아닌것만은 사실이죠. 흑인 아이들 한테 칼을 맞던 2년 전, 그러니까 제가 동부까지 여행을 했으면서도 수화네를 못 만나고 지나쳤던 그 때만 해도 영호는 저런 모습이 아니었을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 서울 많이 달라졌죠?
- 응. 많이 달라졌지. 그래, 뭐하니? 학교 다니나? 아휴, 징그러워서 반말도 못하겠다 얘.
- 하하하하. 학교 안다녀요. 한국 사는 사람들 참 사고방식 이상 합니다. 어째서 모두 대학 가야하죠? 모두 대학가서 모두 학자되고 모두 교수되면 세상에는 학자하고 교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 또 시작이니? 쟤 밤낮 저 소리 하는데 내가 피를 토하겠다니까.
- 돈 워리 맘. 많이 노십시오.
- 수화가 미국으로 가면서 제일 정당한 이유를 찾은게 아이들 교육 이었죠. 낙타가 바늘구멍 들어가기 보다 어려운 대학입시 그리고 감당 못 할 엄청난 과외비. 그런데 미국 가서 막상 마음대로 되주지 않는 자식 교육 입니다. 자식을 겉만 낳지 속 까지 낳는냐는 말이 뼈에 사무치는 거지요. 로스엔젤레스는 한국 사람이 예스는 몰라도 살 만큼 한국말을 하고 살지만 영호는 한국말을 되려 영어 하듯 불편해 하고 있더군요. 뭐 하긴...
- 아임 쏘리 맴. 한국말 불편해요. 다 잊어 버렸습니다. 영어 하는거 훨씬 편리해요.
- 한국에서 의과대학 까지 나왔다는 한 청년이 천연스럽게 지껄이는 말을 듣고 구토가 날 뻔 했던 일이 있기도 했습니다만 또 국민학교 2학년 때 미국 가서 30년 됐다는 한 중년 남자는...
- 일석이조 라는 말 혹시 일본말 아니에요? 그런 말은 한국말에 없는것 같은데. 죄송 합니다. 무식해서.
- 그러니까 천태만상 이지요? 어쨌든 수화의 이민을 간 첫째 목표가 뜻대로 되지 않은 것 만은 분명 했습니다.
- 그이가 차이나 타운에서 마리안인가 하는 뚱보 여편네 하고 시간을 보냈다는 걸 알고 부터...
- 아니, 그럼 순석 씨가 마리안 하고 차이나 타운에 간 거야?
- 그랬데. 마리안이 납치를 했다는 거지.
- 어허 스톤, 빨리 좀 와줘요. 나 어쩜 죽을지도 몰라요.
- 뭐에요? 주 죽어요?
- 어허 나 너무너무 아픕니다. 아는 사람 아무도 없어요. 나 병원에 좀 데려다 주시겠어요? 내 말 듣고 모른척 할 만큼 스톤 냉정한 사람 아니지요? 스톤, 데려다 준다고 약속 하세요 스톤.
- 나 이거 참.
- 스톤 올 때 까지 나 계속 해서 전화 할 거에요. 그래도 괜찮겠어요?
- 알았어요. 하여튼 전화 끊은세요. 지금 가게가 바쁘니까요.
- 하하하. 또 팬케잌 인가요?
- 팬케잌 이라니?
- 특별한 솜씨로 만든 팬케잌 먹으러 오라는거 아니에요?
- 아프다는 거야. 병원에 라이드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거지. 죽는 시늉 하는거 보니까 아직 거짓말 같지 않은데. 어떡한다?
- 흠 흐흐흐흐.
- 너 그게 무슨 콧소리야?
- 네? 콧소리요?
- 자식. 으휴.
- 가 보세요. 불쌍 하잖아요. 오죽하면...
- 뭐야?
- 오죽하면 단골가게 주인한테 구원을 청하겠느냐 그거지요.
- 하여튼 내 얼른 갔다 올테니 수화 나오면 곧 들어 온다고 해.
- 알았습니다.
- 고모부 전화가 아니면 모를수도 있었는데.
- 난 또 가족들 하고 저녁을 먹으러 갔나 했지. 알아 했어. 전화 끊어요.
- 그 소리가 맘에 걸렸던 거야. 한 달에 한 번만 쉬재도 눈을 내려 깔고는 내가 뭐 가슴에 바람이 들어서도 어쩐다고 하던 사람 아니니?
- 엄마,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거야? 우리집에?
- 영아 선생의 편지가 그렇지 않아도 마음에 걸리는 데가 그 지경 이었으니. 전신에 기운이 쏙 빠지는 거였어.
- 아빠 왜 이래. 아빠 이럴려고 나한테 물어 본거야? 요트에 탄게 분명히 헤밀턴 아저씨 였냐고.
- 그래. 너희 엄마가 아빨 살살 속이는데 너 한테 물어 볼 수 밖에 더 있니?
- 여보, 아이 앞에서 그게 무슨 소리에요.
- 그래도 이게 잘 했다고 이게!
- 엄마!
- 왜 쳐요. 뭘 잘했다고 쳐요. 문어 발인지 문어 다린가 감겼으면 감겼지 뭘 잘해 놓고 와서 사람 치는 거에요!
- 엄마 아빠 왜 이래!
- 너도 알지만 그이가 손찌검을 한다는게 상상이나 되는 일이니? 우리 결혼해서 십 년 넘어 입씨를 한 번 못 해본 사이야.
- 여보, 우리도 남들 처럼 한 번 싸워 볼까? 응?
- 어머, 아이 그게 뭐가 좋은 거라고 해봐요?
- 그래도 너무 싸울게 없으니 싱겁잖아. 자 이제부터 해보는 거다?
- 아이 싫어요. 싸우는 것도 버릇 된데요. 그런 버릇 들면 어쩔라구. 아이들 교육에도 얼마나 지장 있는지 아세요?
- 참 하하. 인제 핏덩이 끼고 앉아서 벌써 교육론 피는거야?
- 어머머, 아이들 성격 형성은 태중에서 유아기 까지 이미 끝난다는거 모르세요?
- 이야, 유식한데? 시몬느 드 보브와르나 읽고 있는 줄 알았더니 언제 그런것 까지 알았지?
- 어머머, 육아책 시다 준 건 누군데요.
- 그랬던가? 어디 보자 우리아들 맹가 닮았는지 다시 봐야 겠는데?
- 맹잘 닮아요?
- 맹자모 같은 여자가 낳았으니 맹자 같은 아들이 될거 아니야?
- 아이 싫어. 햄릿이나 안 됐으면 좋겠어요.
- 어? 햄릿 한테 반해놓고 햄릿을 우습게 아는거야?
- 아무리 햄릿 한테 반했을까. 햄릿이 오필리아 한테 반했지.
- 이야, 하하하. 세익스피어가 천당에서 화내겠다. 자기 작품 다 뜯어 고친다고.
- 앉으나 서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살았던 우리야. 두 아이 낳고 기르는 동아 어떻게 해가 뜨고 날이 갔는지 모르고 살았어. 마주보기만 하면 밤낮 바보같이 웃음이 나오고 떨어져 있는 낮 시간에도 왠종일 그립고, 내외 라는게 대개 그렇다지만 우리처럼 두 마음이 늘상 붙어서 산 사람 많지 않을거야.
- 그래. 너흰 좀 특별 했지.
- 좀이 아니야. 많이지.
- 아 그래 그래. 그렇다 치고. 아 그게 무슨 소용 있냔 말이야. 이 지경이 됐으니.
(삐익~)
- 아니, 누구 왔나보다?
- 영아니?
- 네.
- 어. 안 잠겼어. 그냥 열어라.
- 어머나, 쟤가 영아야?
- 한국서 여행 나오신 아줌마다 인사드려.
- 어머, 안녕 하세요? 언제 나오셨어요?
- 석달 쯤 됐어.
- 아 좋으시겠어요. 구라파도 가셨나요?
- 응.
- 어머나, 전 이번 여름방학에 가려고 그러는데요.
- 어. 아 참 벌써 대학생인가?
- 아니야. 가을에 가야지.
- 어. 얘, 여기도 대학 가려면 돈 많이 든다면서?
- 아 참 엄마, 깜빡 잊을 뻔 했네. 고모 한테서 편지 왔던데.
- 언제?
- 들어오다 보니까 편지함에 있데?
- 어디 보자. 전화로 하지 무슨 편지냐?
- 영아야 잘 있었니? 이사가고 나서 지금쯤 안정이 됐는지 모르겠다. 엄만 어디 취직이라도 됐는지 아니면 무슨 가게를 할 건지 어련히 알아서 하려만 마음이 쓰이는 구나. 너희 아빠 가게는 그런데로 되는 모양이더라만 사람을 둘 씩 쓰니까 인건비 때문에 유지가 어려운거 같더라. 영아야, 너 대학가면 고모가 200불 씩 보내 줄테니까 매사에 너무 실망하지 말고 열심히 살도록 해라. 응. 여름방학엔 비행기 표 보낼테니 꼭 다녀가도록 하구. 이만 맺는다. 헬렌 왕으로 부터.
- 로마에 가면 로마 사람이 되라 그랬던가요? 아무튼 미국 사회와 우리 사횐 참 여러가지로 다릅니다.
- 장미자, 김수희, 이근욱, 오세홍, 설영범, 권희덕, 안경진, 신성호, 장광, 서호원, 나레이터 고은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스물 세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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