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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
제21화 - 미스터 변, 조울증이 있나 보죠?
제21화
미스터 변, 조울증이 있나 보죠?
1979.03.21 방송
인생극장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은 1979년 03월 01일부터 1979년 03월 31일까지 31회에 거쳐 방송되었다.
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물 한번째.


- 그 이가 그래도 그 때 까진 마음에 걸리는데로 터트리고 할퀴고 있는 그대로 쏟아 부었단다. 말하자면 곰거나 째지거나 어쨌든 눈에 보이는 외상인 셈 이었지.

- 그렇지만도 않았지 뭘. 쓰레기 주머니에 버린 후리지아 꽃 묶음 같은 건 끝내 터트리지 않았잖아.

- 그건 무언중에 내가 이미 알고 있으리라는 걸 자기도 알고 있으니까 말을 안 한 거지. 숨긴건 아니야.


- 왜, 좀 버리면 어때. 그깟놈의 꽃. 우리집에 어울릴 형편도 아니지만 미친놈 처럼 생판 아무 관계도 없는 자식이 꽃다발은 왜 불쑥 내밀어.


- 만일에 우리 사이에 꽃 얘기가 나왔데도 그 인 이렇게 말했을 거야.

- 나도 그런 말을 했으리라고 짐작은 한다만은 아무리 그렇더라도 사건은 밖으로 터트려 이를 짚었어야 아물 가망이 있지. 속으로 곪게 해선 안됐던거 아니냐? 하찮은거 하나라도 말이야. 또 누가 알아? 뒤 늦게 꽃 얘기가 나왔을 때.


- 하하 하하하하. 미안해. 헤밀턴이 당신 한테 전활 받고 왔다는 말에 순간적으로 기분이 상해서 말이야. 나 모르는 전활 언제 했나 하고. 그래서 어차피 누이도 안 가져간 꽃 내다 버리자 했는데 나중에 생각하니 우습더군. 미안해. 여기 와서 자꾸 옹졸해지는 마음을 당신이 이해해 줘야지. 어떡 하겠어.


-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수화 내외 엉킨 매듭이 풀릴려면 말이에요. 아 참, 아시죠? 제가 여행을 하면서 우연치않게 중국집 챠우챠우에서 순석의 누이 헬렌을 만났던 일 말이에요.


- 그래. 언제쯤 한국에는 돌아 가세요?

- 아 네. 여기저기 다닐려면 앞으로 한 달쯤 있어야 될거 같아요.

- 네. 이럴 때 고국에 안부 전할 사람이라도 있으면 얼마나 좋겠어요.

- 한국엔 친철 되시는 분이 아무도 안 계시군요?

- 그렇답니다. 동생이 하나 있는데 가족이랑 모두 이리로 왔어요. 일년 쯤 됐죠.

- 어, 그러세요? 이런 외국 땅에서 남매 분이 가까이 계시니 얼마나 좋으세요? 한결 든든 하시겠네요.


- 미쳐 끝을 흐려버리는 헬렌의 말에서 뭔가 느꼈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바로 오필리아 나수화의 시누이라는 사실도 그 때 알았어야죠. 그랬더라면은, 아이 하긴 뭐... 좀 일찍 알고 늦게 알았다고 해서 친구의 힘으로 수화 내외 인생이 좌우 될 순 없었겠죠?


(따르릉~)

- 여보세요?

- 헬로우?

- 네. 어디세요?

- 거기 미스터 케이 있지요?

- 네. 잠깐만 기다리세요.

- 케이 전화 받어. 묘령의 아가씨야.

- 주문 전화 겠죠?

- 아닌거 같은데?

- 여보세요?

- 어. 케이. 나 말이야 팬 케잌.

- 아, 네네. 아 정말 그 땐 맛있게 먹었습니다. 전화도 못 드리고.

- 지금 전화받은 여자 스톤의 와이프야?

- 아니, 스톤 이라니 미스트 변의 이름을 다 알고 계시는 군요.

- 아하하하. 아이 그럼. 내 단골 가겐데 주인 이름을 모르면 되나.

- 네. 말씀 하세요. 뭐 드릴까요?

- 스톤을 주문하면 어떨까?

- 아 여기 스톤이란 물건 없습니다.

- 왜이러지? 스톤은 알아요. 내가 필요한게 뭔지. 스톤 한테 전해줘요. 내가 필요한거 주문 했더라고. 알았어요?

- 아니, 이 노파가. 별안간 돌았나 어떻게 된거야?

-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감사 합니다. 아니 무슨 전화가 그렇게 길어? 데이트 신청이야?

- 아니요. 네. 신청은 신청인데.

- 케이, 저 선반에 비닐 봉지를 좀 내려줘. 점심 전에 이 배추하고 오이 모두 포장 하려면 바쁘겠어. 케이, 왜 그렇게 멍해 있는거야? 그렇게 감동적인 전화야?

- 네? 하하하하. 아니요.

- 왜.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 네. 시커멓게 먹칠을 하셨군요.

- 뭐야? 아니 새벽에 분명 세수를 했는데 무슨 소리야? 가만 거울이 어딨나.

- 흐흐흐흐.

- 괜히 사람 놀리고 있어.


- 수화는 오랜만에 거울을 보는거 같았습니다. 윤기 라고는 씻은 듯 없어진 피부에 한가닥 거미줄 처럼 번져있는 눈가의 잔주름 그리고 목에는 꼭 맞는 목걸이를 두른것 처럼 가느다란 줄이 선명하게 패여 있었습니다. 상아빛의 우아한 수화의 목은 블루진의 작업복과 아무렇게나 흐트러진 머리카락에 덮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제 막 늘어지려는 턱 밑을 외줄기의 금선이 뚜렷할 뿐이었죠.


- 뭐, 시장에서 핫도그를 하나 먹었을 뿐이야?


- 헤밀턴 씨, 산다는게 뭘까요? 영호가 아무 죄도 없이 저렇게 서른 바늘을 꼬매도록 상처 입었는데도 저희 아버지라는 남잔 아무런 대책도 세우질 못해요.

- 수의 심정 알만 합니다.

- 밤낮 오렌지 한 상자, 감자 한 파운드 남의 집에 배달이나 나가고. 지금도 배달 간지 몇 시간 째 전화 한 통화가 없는 거에요.

- 미스터 변, 성격적으로 조울증이 있나 보죠?

- 모르겠어요. 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요즘와서.

- 이상이 있으면 한 번 카운셀링을 받아 보시죠. 이 곳 사람들은 대부분 주치의가 있어서 상의를 합니다. 노이로제 쯤은 질환 이라고 할 수 없으니까요.

- 그래 임마. 노이로제는 병이 아니야. 노이로제는 병이 아니야. 노이로제는 병이 아니야!


- 엄마, 엄마.

- 왜 이렇게 수선이냐?

- 서울에서 편지 왔어. 조 선생님이 하신거야.

- 뭐라고 하셨니?

- 편지함에서 곧장 가지고 오는 거야. 가슴이 두근 거려서 뜯을 수가 없어.

- 뭐?

- 조 선생님은 작문을 가르치셔서 편지를 그렇게 잘 쓰시나봐. 난 다른 애들 편지 볼 땐 안그러는데 조 선생님 편지는 볼 때 마다 눈물이 나거든.

- 아하하. 어디 오늘은 엄마도 좀 같이 보고 울자.

- 가만있어. 찢어지지 않게 잘 뜯어야 돼.

- 아무래도 봉한 자린 뜯어야 될거 아니니?

- 아니야. 김에 쏘이면 고대로 펴지는걸? 아, 안되겠어. 나 혼자 내 방에 가서 보고 난 다음에 엄마 보여줄게.


- 영아야, 어른들의 세계는 네가 아직 모르는 복잡한 일이 많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니까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불미한 일로 혹 잘못 되신다 해도 너는 너대로 네 앞길을 잘 걸어 나가도록 해라. 부모 핑계를 댈 만큼 영아는 어리석은 아이가 아이라는 것을 선생님은 굳게 믿으니까.

- 아니, 이게 무슨 얘기야? 어? 엄마, 이게 뭐지?

- 이거라니. 그건 편지 아니냐?

- 아이...

- 왜그래?

- 불미스러운 일이 있는 거야? 우리집에?

- 뭐? 어디 보자. 이게 왠일이냐? 너 선생님 한테 뭐라고 편지를 썼길래 이런 답장이 왔니?

- 난 저번에 바다에 놀러 갔던 얘기밖에 안했는걸?

- 바다에?

- 바다에 엄마하고 나는 물에서 둥둥 떠 있었는데 요트가 하나 있었고 거기 월남 아이들이 타고 있어서 나도 타 보고 싶었다고 그 요트는 우리하고 잘 아는 헤밀턴 씨 거였지만 우린 그냥 안 타고 집에 왔다고 썼단 말이야. 내가 잘못 쓴거야?

- 아니, 넌 잘못 한거 없어.


(따르릉~)

- 여보세요?

- 어. 미세스 변 이지? 나 리키야.

- 네. 왠일 이세요?

- 왜 일찍이 집에 가 했어? 어디 아픈가?

- 아니에요. 학교로 영아 데리러 가는 편에 그냥 묻어 왔어요. 좀 있다 나가 보지요 뭐. 해 있는 동안은 걸어 다녀도 괜찮아요.

- 스톤이 차가 차이나 타운에 있길래 나는 그리로들 저녁 먹으러 갔나 했지. 네. 알았어요. 또 하지. 응.

- 아니 저 여보세요? 여보... 차이나 타운?


-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스물 한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 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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