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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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
제20화 - 당신이 밤거리에 몸 파는 여자야?
제20화
당신이 밤거리에 몸 파는 여자야?
1979.03.20 방송
인생극장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은 1979년 03월 01일부터 1979년 03월 31일까지 31회에 거쳐 방송되었다.
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스무번째

- 섬머빌 카운트 호스피털 이라고 했던가요?

- 네.

- 미스터 변은 연락 있었습니까?

- 아직.

- 가게 일이 고단 하시죠?

- 네. 조금.

- 어... 아 기분이 안좋으십니까?

- 아니에요. 죄송 합니다.

- 뭐가요?

- 이렇게 늦게 폐를 끼쳐서요.

- 아하하하하. 더 끼쳤으면 좋겠군요.

- 네?

- 미세스 변이 내게 죄송 할 일이 더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어제 낮에는 내가 환상을 봤던 모양이죠?

- 미안 합니다.

- 아하하하하. 기분이 유쾌 하군요. 미안한 일이 하나 더 생겨서. 아니!

- 어 어머!

- 이거 미안 합니다. 하마터면...

- 빚 하나 갚은걸로 하지요.

- 어허허허. 아이 그렇게 되나요?

- 월남전에도 가셨었나요?

- 아닙니다.

- 근데 월남의 아이들은 어떻게.

- 월남전이 끝나고 국적도 부모도 없어진 미아들이 이 땅에 무수히 왔습니다. 한국 전쟁이 끝났을 때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 좋은 일을 하시는 군요.

- 좋은 일을 한다는 생각은 없습니다. 내가 그 애들한테 위안 받는 일이 더 많으니까요. 어... 그보다 영호의 상처는 어느 정도 입니까?

- 생각보다 심해요. 이런 나라에서 우리보다 모르는게 있더군요.

- 모르는게 있어요?

- 아픈건 몸이지만 그 몸을 빨리 낫게 하는건 정신의 힘이죠. 환자 곁에 전문 지식이 있고 위생적인 간호원이 있는것 보단 육친이 보호를 하면 훨씬 차도가 빠를텐데 왜 그런걸 금하고 있지요?

- 아 글쎄요. 병원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 하긴 환자 옆에 붙어있을 한가한 가족이 이 나라에 몇 이나 있겠어요.

- 어, 저기 간판이 보이는 군요. 저기죠? 섬머빌 카운티 호스피털.

- 아, 네.


(딩동~)

- 어머, 당신 언제 오셨어요?

- 지금 몇 시야?

- 네? 어머나 어느새 12시가 넘었네.

- 뭐했어?

- 뭐하다니요?

- 그 새끼하고 여태 어딜 싸돌아 다녔느냐구.

- 영호한테 다녀오는 길 이잖아요.

- 핑계 한 번 좋았군.

- 핑계 라니요?

- 핑계 아니야? 9시 넘어 나가가지고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있었으면서 핑계가 아니야? 당신이 밤거리에 몸 파는 여자야?

- 뭐에요?

- 아니면!

- 말이면 다 하는 줄 알아요? 병원까지 가고 오고 들여다 보고 세 시간이면 길에서 다 보낼 시간인데 뭐가 어쨌다는 거에요. 그러는 당신은 한 시간에 다녀올 곳을 몇 시간이나 어디 계셨어요? 전화 한 통화라도 하셨어요?

- 너 그러니까 나 그런다 하는거요?

- 여보, 정말 우리 이렇게 치졸해 질거에요?

- 그래. 난 치졸하고 변변찮아서 남의 호의를 역으로 갚는 놈이야. 됐어 그럼?

- 되긴 뭐가 돼요.

- 당신 여기 와서 사람 돌려놓고 병신 만드는데 내가 그렇게 호락호락 넘어가지 않는다구.

- 뭘 넘겨요.

- 뭐야? 가고 오고 들여다 보고 세 시간 이야? 그래서 그렇게 길가 스낵 코너에 다정하게 앉아 계셨군. 시간이 없어서. 그런거야?

- 네?

- 이제 또 딴 소리 해 보시지. 또 핑계 대 보라고.

- 아니, 여보.


- 수환 할 말이 없었습니다.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에 헤밀턴 씨는 휘발유를 보충 했습니다. 바로 주유소 옆 유리창 안에서 핫도그가 기름에 뛰겨져 뱅뱅 돌아가는 걸 본 수환 갑자기 시장기를 느꼈죠. 점심에 가게 뒷뜰에서 끓여 먹은 라면 한 그릇이 아직까지 버텨 줄 리가 없었습니다. 수화는 핫도그 두 개 헤밀턴씬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잠시 시간이 갔던 겁니다. 이 짧은 순간이 허겁지겁 병원으로 달리던 변순석의 시야에 들어섰다는 건 짖궃은 귀신의 장난 이었습니다. 아이 뭐 귀신이랄것 까지도 없죠. 생쥐만도 못한 잡귀의 장난 이었죠.


- 너 술 마신거냐? 원 횡설수설 도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구나.

- 하하하하. 모르실 거에요. 짐작도 못 할 일이니까. 전화 끊어요.


- 변순석, 뉴욕에서 헬렌 누이 한테 알송달송한 전화를 걸었을 때만 해도 사정은 달랐습니다. 팬 케잌을 특별한 솜씨로 굽는다는 뚱보 마나님 마리안, 두 번의 이혼 경력을 가지고 두 남자의 위자료를 받으면서 살아가는 푸른 눈의 마리안은 먹는거 밖엔 낙이 없었습니다. 먹고 또 먹다 보니 어느새 뚱보가 됐고, 덕분에 아직 노파 소리 듣기 억울한 나인데도 노파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마리안이 파크 사이드의 채소 가게를 드나들면서 주인인 변순석의 단정한 모습을 눈여겨 본 건 벌써 오래 전 일이었죠. 동양 남자에 대한 마리안의 호기심은 차츰 구체적인 접근을 계획 했습니다. 배달오는 케이 한테 팬 케잌을 들려 보내기도 했죠. 그러다가 마침내 찬스가 온 겁니다.


- 아유, 이렇게 직접 배달을 와 줘서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어요.

-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 들어 오세요. 들어 와요. 저 내가 특수하게 끓이는 커피가 있거든요? 블루 마운틴 하고 맥스웰의 3대 1 비율로 섞으면 아주 희안한 향을 풍기죠. 커피 한 잔 들고 가세요.

- 감사 합니다만 가게가 바빠서요.

- 네. 네. 알아요. 동양 사람들 참 부지런 합니다. 특히 남자들 어쩌면 그렇게 성실 하지요? 와이프들은 얼마나 행복 하겠어요.


- 이렇게 시작 된 수작이 커피에서 칵테일로 발전을 하고 드디어 본론으로 들어 선 겁니다.


- 미스터 변, 아이 저 스톤 내 부탁 하나 들어 주겠어요? 내일 모레 우리집에서 빅 파티가 있어요. 첫 번째 남편 조 하고 결혼 애비버셜이 10주년 되는 날이에요. 우리 이혼 하면서 결혼 기념일만은 함께 파티를 열기로 약속 했거든요. 바로 그 10주년이 되는 뜻 깊은 날인데 글쎄 드레스가 모두 작아져서 다이어트를 하는 중 이긴 하지만 말이에요. 하하하하. 저 스톤, 뉴욕 나가서 내 드레스 한 벌만 골라 주겠어요? 당신 손으로. 여자는 남자를 위해서 성장을 하는 거니까 역시 남자가 봐 줘야 돼요.

- 나 원 별 그지 깡깽이 같은게 다 수작이네.


- 그러면서도 잔뜩 추켜 세우는 이 노랑머리의 말이 과히 싫지는 않았던 겁니다.


- 당신은 모릅니다. 보호 받을 사람이 없다는 건 드레스 하나 골라 줄 남자가 없다는 건 정말 슬픈 거에요.


- 순석은 마리안을 따라 나섰습니다. 따라 나선 게 아니라 150파운드의 여자를 60킬로 단단한 체구로 보호 한다는 만용을 부린거죠.


- 어느 백화점으로 가실거죠? 굿나잇? 색스?

- 어우, 스톤은 그렇게 고급 백화점에서 와이프 옷 삽니까? 제크린 오나시스가 가는 곳 인데.

- 야 나도 말로만 들어 본 거다. 말이야 못 해 보겠니? 밑천 드는거 아닌데? 아니 뜻 깊은 날에 입을 옷 인데 그 쯤 안하셔서 되겠어요?

- 어우 스톤은 정말 멋있군요. 나 스톤 너무 좋아질까봐 큰 일 이에요. 오 스톤, 내 심장 뛰는 소리 들리지요? 여기 보세요. 여기 가슴에 손 좀 대 봐요. 자아.

- 아 조심 하셔야지요. 복잡한 뉴욕 거리에서 교통사고 나면 큰 일 납니다. 결혼 50주년까지 살려면 멀지 않았어요?

- 아하하하. 스톤은 유머 센스도 보통이 아니군요.

- 유머 많이 좋아 해라.


- 순석은 마리안과 쇼핑을 하고 라보스타의 저녁을 먹고 칵테일을 마셨습니다. 마리안 역시 케이의 말 처럼 단세포 식물 같은 곳이 있는 미국 여자 였죠. 알딸딸 하게 취기가 돌자 문어다리 처럼 감겨드는 마리안을 그녀의 집 앞에 팽개치고 순석은 돌아서서 하늘을 봤습니다. 보석같이 뿌려진 밤 하늘의 별 속에 수화의 서늘한 눈동자가 빛나고 있었죠.


- 어? 스톤이 왠일이야?

- 어머, 아빠?

- 어. 너 여깄었구나. 엄마 어딨니?

- 병원에 갔다는데 난 못 봤어. 영호 하고 지금 막 들어 왔거든.

- 알았어요. 영아 집 까지 좀 바래다 주세요. 나 병원에 갈 거니까요.


-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스무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 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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