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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
제16화 - “오필리아가 거기 가자마자 바람이 납시었덴다”
제16화
“오필리아가 거기 가자마자 바람이 납시었덴다”
1979.03.16 방송
인생극장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은 1979년 03월 01일부터 1979년 03월 31일까지 31회에 거쳐 방송되었다.
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열 여섯번째.

- 아우 얘, 이 다방은 시원해서 살 것 같다 얘. 저어 우리 다음달 부터는 이렇게 에어컨 있는 집에서 모이자. 더워서 안되겠어.

- 쟤는 밤낮 덥니? 다음달 오늘이면 벌써 선들 거릴거야.

- 얘들아, 니네들 오필리아 소식 들었니?

- 아, 망할 여편네. 아무리 바쁘기로 편지 한 장 없지 뭐니 글쎄. 난 글쎄 두 번이나 편질 보냈다구.

- 글쎄 그게 다 까닭이 있어서 그런거야.

- 아니, 까닭 이라니?

- 오필리아가 거기 가자마자 바람이 납시었덴다.

- 아이 뭐야?

- 그렇다니까. 어쩐지 위태위태 하더라.

- 얘, 너도 뭐 소문 들은게 있는 게로구나?

- 아니 뭐 소문을 들어서가 아니라.

- 아이 수화 걔가 본래 호박씨 까는 타입 아니니?

- 얘 너 무슨말을 그렇게 하니? 그 내외가 어디 보통 잉꼬냐?

- 아니 얘 얘 얘, 어떻게 바람이 났데? 누구 하고. 응? 코쟁이 하고야?

- 어. 글쎄 집에 아빠가 이번에 출장을 가는길에 필라델피아에서 그 애 남편 친구되는 사람을 만났데요.

- 어. 그런데.

- 그 사람이 그러는데 미스터 변이 와이프 때문에 고민 한다고 그러더랜다.

- 아휴, 저걸 어쩌니? 아니 세상에 걔네가 어떤 부분데.

- 아 저 그러니까 아직 이혼한건 아니구?

- 아이구 모르지 뭐. 아 뭔가 있길래 그 친구가 그런걸 다 알고 있겠지. 한 동네 사는 사람도 아닌데 말이다.

- 코쟁이들이 눈독 들이게도 생겼지. 그 애가 좀 고우니?

- 아유 세월 다 살고 거기까지 가서 이혼 이라니 참 잘하는 짓이다.


- 정갱이 보면 뭐 봤다고 그런다는 속담 하나 틀리지 않죠. 바람을 타고 건너온 서울의 소문은 이렇게 비약을 했습니다. 소문이란 한 다리 건널 때마다 살이 붙게 마련이죠. 더구나 셈이 나리 만큼 수화네 부부의 소문이니 아무쪼록 조금은 불행해져서 흠뻑 동정을 베풀고 싶은 마음이 숨겨져 있었다고 그런다면 너무 가혹한 말이 될까요? 어쨌든 바람을 타고 건너온 서울의 소문은 전혀 근거가 없는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니까 수화의 남편 변순석이 필라델피아의 친구를 찾았던 날의 일이에요.


- 가게 쉬는거야 오늘?

- 아니.

- 그런데 이렇게 가게를 비우면 어떡하나?

- 나 없이도 잘해가는데 뭘.

- 이 사람아, 아무리 사람을 하나 쓰고 있다고 해도 그게 보통 일인가. 더구나 아주머니께서야 언제 그런 막일 해보셨어? 자네가 그건 알아줘야 된다고.

-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많아 걱정일세.

- 뭐야?

- 여자란건 백년을 살아도 모를 족속이란 말이야.

- 왜그래. 무슨일이 있는거야?

- 아니, 뭐 무슨일이 있다는건 아닌데 글쎄 들어 보라고.


- 안돼.

- 왜 안돼요.

- 당신, 어제도 영아 봐주고 온다는 핑계로 그 방에서 자버렸지.

- 아 글쎄 걔가 요새 의기소침해 있잖아요. 국어 시간에 놀림 받은 일로요.

- 여기 오면 그런것 쯤은 누구나 겪고 넘어가는 거야. 외국 아이가 영어 발음 교정 받는거 당연하지 뭘그래?

- 그 앤 누구나가 아니고 우리 애 잖아요. 어린게 까닭없이 열등의식 느껴야 하는거 불쌍하지도 않아요?

- 열등 의식을 왜 느껴. 이 새끼들이 너희들 한국말 할 줄 아니? 너희 한국말 모르는거나 나 영어 좀 못하는거나 뭐가 다르니. 그래도 난 발음이 좀 나쁠 뿐이지 문법은 너희 보다 잘한단 말이야 이 새끼들아. 하면 될거 아니야.

- 그게 말이 쉽지 어디 그래요? 비키세요. 잠깐만 보고 올게요. 잠들었으면 바로 올거에요.

- 그럴 필요 없다니까 그러네.

- 아이 참.

- 당신, 그 핑계 없어지면 또 무슨 핑계 댈거야?

- 핑계를 대다니요?

- 솔직하게 말해봐. 내 옆에서 자는게 싫은거지?

- 아 아니, 뭐라구요?

- 당신, 서울 있을 때 아이 핑계 대고 그런 일 있었어?

- 아니.

- 왜그래? 내가 무슨 고슴도치라도 된거 같애?

- 아니 왜 그렇게 어거지를 부려요?

- 어거지를 부려? 뭐가 어거지야.

- 당신 가게 시작하고 툭 하면 영아 방에 가서 자는게 아주 버릇이 되다시피 됐는데도 내가 어거지야?

- 당신, 정 이렇게 나오시면 말하죠. 10분 이라도 더 자려고 그래요. 당신 잔소리 들을 시간에 좀 자두려구요.

- 인제야 솔직하게 나오시는군.

- 당신은 고단하지도 않아요? 하루 스물 네시간 중에서 떨어져 있는 시간이 얼마나 된다구 그 시간 지낸 일을 꼬치꼬치 묻고 또 묻고, 주문 받은 전화 내용까지 외워야 하고, 정말 난 졸려 죽겠단 말이에요. 그 시간에 조금이라도 자두고 싶단 말이에요.


- 흐흐. 흐흐흐흐.

- 사람, 내 뭐라 그랬어. 몸에 안 벤 막일을 하려니 얼마나 고되겠어. 당신이 이핼 해야지.

- 그런거 이해 못하는 내가 아니야. 단순히 그거 한 가지 라면 내가 미쳤다고 이러느냐고.

- 그럼, 뭐가 또 있단 말이야?

- 가게에 데리고 있는 일본 녀석 말이야.

- 케인가 하는 아이?

- 아이가 뭐야? 속은 애 아범이 다 돼있는 녀석인걸.

- 그렇다 치고 왜 뭐 엉뚱한 수작이라도 한다는 거야?

- 그래. 엉뚱하다는 말이 제일 맞겠군.


- 수, 이것 좀 받아 주세요.

- 뭐냐?

- 아 스톤 벌써 왔군요? 이 그릇 좀 받아 주세요. 뜨거워요.

- 어머나, 아니 그게 뭐야?

- 며칠 전에 딸기 배달 갔던 노파네 집 있죠?

- 어. 그 혼자 산다는 부인?

- 네. 배달 갔다가 그 집 앞으로 지나 오는데 막 부르잖아요? 잠깐 들어 오래요. 팬 케잌을 먹으라는 거지요. 솜씨가 특별 하다나요? 그럼 수가 팬케잌 좋아하는 생각이 나서 그냥 주면 가져가서 먹겠다고 얻어 왔죠. 솜씨가 정말 특별한가 봐요. 자, 수 들어봐요.

- 야, 케이.

- 네?

- 너, 어느나라 사람이냐?

- 어느나라 사람?

- 하하하하. 아니 별안간에 무슨 말씀이에요?

- 너도 같은 동양 사람이면 그만한건 알겠구나?

- 뭘요?

- 수가 뭐냐? 수가. 부모같은 어른한테 수 라니. 니가 어른한테 이름 부르게 됐어? 미세스 변도 있고, 마담도 있고, 얼마든지 정중한 호칭이 있잖아?

- 아이, 여기 사람들 다 그렇게 부르는걸 뭐 어때요.

- 난 마담이나 미세스 변 보다 수가 친근감이 있어서.

- 친근감? 두 번만 친근감이 있으면 아주 깔고 뭉게겠구나.

- 여보.

- 으휴 쌍것들.

- 하하하하. 자네 아무래도 괜히 미국 왔군. 그렇게 작을일에 까지 일일이 신경이 쓰인데서야 어디 살겠나.

- 모르는 소리 마. 신경을 건드리니까 쓰게 되는거지 괜히 쓰나? 전화 받는걸 봐도 말이야.


(따르릉~)

- 여보세요?

- 수화?

- 네. 누님 이세요?

- 아 왜그렇게 기운이 없어. 어디 아픈거야?

- 아니에요. 바꿔 드릴까요?

- 아니, 특별한 일이 있어서 걸은건 아니구. 우리 리키가 요즘 몸이 안좋아서 괜히 우울 하잖아.

- 어머, 그러세요? 많이 편찮으세요?

- 몸살 이겠지 뭐. 날씨도 하두 더우니까.

- 네.

- 순석이는 건강하지?

- 그 그렇지요 뭐.

- 조심 하라구. 인제 기운 뻗칠 나이는 아니니까.

- 네. 그렇지요.

- 뭐 기분이 안좋은가 본데 그만 끊겠어.

- 네. 안녕히 계세요.


(따르릉~)

- 여보세요?

- 여보세요?

- 어머나 헤밀턴 씨, 안녕 하세요?

- 네. 좋습니다. 별 일 없으시죠?

- 아이 그럼이요. 저희야 늘 그렇죠. 네? 네. 아이 천만에요. 저희가 당연히 해드려야죠. 네? 아 그러세요. 말씀 하세요. 아, 잠깐만요. 메몰 해야죠. 아하하. 아이 별 말씀을 다 하세요. 네.


- 누이 전화를 받을 땐 금방 쓰러질듯이 시들하던 목소리가 별안간 살판 난것 처럼 생생해 지는거야. 나 참 어이가 없어서.

- 응. 그게 누구 전환데?

- 시시한 녀석이 하나 있어.

- 아니 그럼 구체적으로 누가 있단 말이야?

- 구체적 이랄건 없지만 우리가 오자마자 우습게 얽힌 사람이 하나 있어.

- 참, 내 언젠가 당신한테 왔을 때 말했지. 영호 사이클 사건 말이야.

- 그 장본인을 찾았단 말이지?

- 우연찮게 그렇게 됐어. 가게 개업 전날 초대를 하게 됐는데 왜 있잖아 말끔하게 틀이 생긴 여기 애들.

- 애들 이라니? 젊어?

- 아니, 영감인데. 아니야. 뭐 영감까진 안갈까? 하여튼 기분 나빠. 왜 괜히 기분 나쁜거 있잖아. 친절한 척, 너그러운 척, 교양 있는 척 하는 녀석들.


- 우리의 변순석, 이러지 않아도 됐습니다. 적어도 남자들이 할 일이 많은 한국에서라면 말이에요. 아니, 그 쪽에서도 할 일이야 많았죠. 바빴죠. 하지만 사나운 짐승 앞에서 작은 새가 깃털을 새우 듯 지나치게 경계하는 마음은 자신의 약한 심경을 더욱 피로하게 만들었습니다.

- 장미자, 김수희, 김규식, 오세홍, 김민, 권희덕, 이명숙, 유해무, 장광, 전기병, 나레이터 고은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열 여섯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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