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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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
제13화 - 사람도 더러 탐내고 그런 세상이라면...
제13화
사람도 더러 탐내고 그런 세상이라면...
1979.03.13 방송
인생극장 ‘에즈베리파크의 저녁놀’은 1979년 03월 01일부터 1979년 03월 31일까지 31회에 거쳐 방송되었다.
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열 세번째.

- 응?

- 엄마, 엄마.

- 어... 영아야, 벌써 깼니?

- 엄마, 언제 이 방에 왔어?

- 어젯밤에.

- 엄마 울었어?

- 아니. 왜?

- 눈이 뚱뚱 부었는데.

- 실컷 자서 그런가보지.

- 지금이 몇신데.

- 어서 더 자요. 영아 너 학교 갈 시간 아직 멀었어.

- 자나? 자느냐구.

- 엄마, 아빠하고 싸웠어?

- 싸우긴.

- 근데 왜 암말 안해. 대답할까?

- 가만있어.

- 나 나갈테니까 집에서 쉬어. 농장 다녀와서 데리러 들어올게.

- 엄마.

- 왜.

- 우리 미국온지 얼마나 됐지?

- 그건 왜 묻니? 따져보렴. 3월 15일에 왔으니까 지금 2월이잖니?

- 옛날인거 같애.

- 뭐가.

- 서울에 살던게.

- 미숙이 한테선 지금도 편지 오니?

- 그럼.

- 답장도 꼭꼭 해주고?

- 응. 얘 말이야. 우리 국어 선생님 조재일 선생님 있잖아? 그 선생님이 제일 보고싶어.

- 편지 해주신거 답장 해드렸니?

- 근데 편질 어떻게 쓸지 모르겠어.

- 왜.

- 선생님이 그러셨거든. 매일 매일 한 줄이라도 일기를 꼭 쓰라고.

- 그런데.

- 근데 일기를 안썼잖아. 안썼다고 그러면 또 선생님이 실망 하실거고, 또 썼다고 거짓말을 할 수도 없고. 그래서 맨날 선생니밍 생각 나나봐.

- 지금이라도 써요. 그동안은 일기를 못 썼지만 앞으로는 꼭 쓰겠어요 하고.

- 그래야겠다.

- 어서 한숨 더 자라. 아침엔 엄마가 베이컨 구워줄게.

- 어머, 신나라. 난 아침에 베이컨 후라이 먹는 날이 제일 좋더라.

- 아하하. 쟤도.

- 엄마, 저 바다에 해좀 봐.


- 수화는 토스터에 빵을 굽고, 베이컨에 후추가루를 발라 오븐에 넣으면서 아침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이런날은 주말이 아니고는 없었죠. 주말이라고 그래도 바닷가에 떠오르는 해를 미쳐 바라 볼 새가 없었습니다. 파도소리 역시 늘 들렸을텐데 수화는 오늘 처음 들었습니다. 좌르륵 좌르륵 좌르르륵. 창을 열고 서서 심호흡을 했습니다. 뚱뚱 부어오른 눈두덩이 무거웠습니다만 어젯밤 오랜만에 속 시원히 울어 본 탓일까 가슴은 후련 했습니다.
그러나 후련한걸 느끼는 순간과 거의 동시에 통증이 왔습니다. 아픔 입니다. 위경련 같은 통증.


- 그냥 새벽에 따라 나설걸 내가 괜히 안풀린 척 했지.


- 수화는 어젯밤 외톨이 잠을 자고 새벽에 혼자 차를 끌고 나간 변순석을 생각하고 가슴이 메었던 겁니다.


- 여보세요?

- 어. 여보세요. 어. 하하하하. 미세스 변, 무슨 일 있었어요?

- 아니요. 일찍이 죄송 합니다. 영호 일어났으면 집에 들러서 아침 먹고 학교 가라고 좀 해주세요.

- 무슨 날이야?

- 아니요. 베이컨을 구웠길래 말이죠.

- 어. 알아 했어요.


- 우습죠? 아침에 베이컨 쯤 굽는게 무슨 큰 별식이라도 차린것 같은 분위기. 그렇더군요. 아침에 계란 후라이에 베이컨까지 곁들여 먹는건 낭빕니다. 낭비라고 까진 할 수 없겠지만 아무튼 보통 가정으로서는 스페셜 메뉴죠. 커피, 우유 아니면은 주스에 토스트 한 조각이면은 바쁜 사람들의 충분한 아침 식사 입니다.


(딩동~)

- 영호니?

- 왠일이에요 엄마.

- 뭘 왠일이야?

- 주말도 아닌데 엄마가 집에 계시고 베이컨 굽는 냄새가 나고 하니까 이상하잖아?

- 매일 이렇게 할까?

- 그랬으면 좋지만 뭐 좋을것도 없어요.

- 그게 무슨 말이니?

- 엄마가 매일 집에 이러고 계시면 무능력해 보일거 아니에요?

- 서울에서는 늘상 무능력 했잖니.

-서울은 서울이죠.

- 영호야, 돈 벌면 능력 있는거니?

- 물론이죠.

- 능력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서라도 가게에 나가 일을 해야겠구나.


(딩동 딩동)

- 누구죠?

- 아빠가 들어오신댔어요.

- 네. 나가요.

- 너 왠일이니 학교 안가고.

- 지금 갈 거에요.

- 이리 올라 오세요. 식사 하시게.

- 학교 가겠어요.

- 영호야, 오늘은 챠우챠우 안 가지?

- 네.

- 학교 끝나고 가게로 오겠니?

- 아이들 하고 약속 했는데요. 미식축구 하기로.

- 알았다. 그럼 주말에 얘기하자.

- 얼굴이 부었군.

- 미안해요.

- 미안한건 나지 뭐.

- 물건, 많이 들여 왔어요?

- 응. 먹고 치울테니 어서 준비해.

- 안나가면 안되겠죠?

- 왜. 몸 아파?

- 아니요. 그냥 집에 있었으면 해서.

- 빨리 나가자구. 제일 비싼게 사람 값이잖아.

- 케이가 이젠 곧잘 하던데.

- 그래도 한참 바쁠 땐 어림없어.


(따르릉~)

- 여보세요? 누구세요? 네? 헤밀턴... 아 안녕하세요? 왠일이세요? 네. 잘 됩니다. 네. 감사 합니다. 일부러 이렇게 전화까지 주시고. 한 번 가게 구경 오세요. 네. 다들 건강해요. 물론 그이도 잘 있구요. 네. 네.

- 헤밀턴인가 그 작자 뭐하는 놈이야?

- 당신이 모르는데 제가 어떻게 알아요.

- 건달 아니야?

- 당신 보기에 건달 같애요?

- 알게뭐야. 여기 놈들 겉으로 봐선 다 그놈이 그놈 같으니 알 수 있어?

- 괜히 신경쓰지 마세요. 아무려면 건달이 알지도 못하는 아이한테 자전거를 사줄려구요?

-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 그랬는지 알게 뭐람.

- 아이 저 빨리 나갑시다.


- 그래서. 그래서 어떻게 했니?

- 할 수 없이 그냥 혼자 잤지요 뭐.

- 그건 도저히 이해가 안된다. 아니 부부싸움은 칼로 물 베기 라는데 그만 정도의 충돌로 아이방에 가서 잠을 자?

- 충돌 이란게 있었나요 뭐? 제가 별안간에 히스테릴 일으켜서.

- 그러니까 내가 영호 일로 전화를 걸던 날이면 바로 엇그제 구나?

- 그렇죠. 그 날도 농장에 갔다 가게에 들어가 보니까 칸막이 쪽에서 웃음 소리가 요란한 거에요.

- 아니 누구하고?

- 가게 케이하고 말이죠.

- 저런.

- 하지만 뭐 그럴수도 있다 하고 집엘 왔는데 전화가 오니까 얼른 자기가 받겠다잖아요? 누이 같으면 이상한 생각 안하겠어요?

- 그게 내 전화였단 말이지?

- 그렇지요. 그런데 또 보세요. 그까짓게 뭐 비밀이라고 나한테 말을 안해요?

- 아이 그야 뭐 엄마 된 마음에 우선 혼자서 어떻게 해 보려고 그럴 수도 있지.

- 글쎄 그게 아니에요.

- 아니 그럼 넌 수화가 분명히 변했다고 심증을 굳힌거야?

- 뭐, 꼭 그렇다는건 아니지만 누이가 신경을 좀 써주셔야 할 것 같아요.

- 그 애가 가랑가랑 하니 믿음성이 좀 없어 보이긴 해. 뭐 아무려나 모든 사건은 미연에 방지 하는게 좋으니까 신경써서 나쁠 일이야 없겠지.

- 헬렌. 스톤이 와 있어 해나?

- 네. 왜그러세요?

- 스톤이 전화 왔다고 해.

- 전화? 아니 누군데요?

- 아 스톤이 색시지 누군 누구야.

- 너, 여기 온다고 그러고 왔니?

- 아니요.

- 그런데 어떻게 알고 전화를 이리로 왔어?

- 글쎄 말이에요. 그냥 필라델피아만 갔다 온다고 그랬는데.

- 아무래도 병집이 나긴 났구나. 너 괜히 지레 짚어서 그러는거 아니야?

- 글쎄 누이 말마따나 지레 짚어서 나쁠거 없잖아요. 하도 날강도 같은 것들만 있는 세상이니까.

- 아이구 참. 아 날강도야 벌어먹고 사는데 날강도지 누구 사람 탐내는게 날강도 같은거냐? 왜려 난 그렇게 사람도 더러 탐내고 그런 세상이라면 좋겠다. 그럼 세상이 조금은 푼푼할거 아니니.


- 변순석의 누이 헬렌 왕의 말대로 병집은 이때부터 나타나고 있었던 겁니다. 두 사람 중에 어느 누구로 부터 발단이 된거라고 지금와서 굳이 규명할 필요는 없죠. 또 규명이 될 일도 아니구요.


-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열 세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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