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열 두번째.

- 땡큐. 바이 바이.

- 안녕히 가세요.

- 웰컴.

- 사과 한 개, 오렌지 한 개 주세요.

- 미안 합니다. 낱개는 지금 없는데요. 다섯개들이 포장 된건 있습니다만.

- 난 한 개씩 필요해요.

- 미안 합니다. 없습니다.

- 저기 있는데 왜 없다고 그래요?

- 글쎄 이건 포장 된거라서.

- 이 가게 아주 불친절 하군. 차이니즈는 모두 이렇단 말이야.

- 뭐라구요? 난 차이니즈가 아닙니다. 물건 안 사면 그만이지 왜 시비에요?

- 뭐라구?

- 왜그래, 케이?

- 이 노인네가 사과, 오렌지를 한 개씩만 달래서 없다고 그랬더니.

- 할머니, 다섯개에 한 봉지로 가져 가시죠. 아주 싱싱하고 쌉니다.

- 난 한 개만 필요해요. 과일을 냉장고에 뒀다 먹는건 질색이니까.

- 어떡하나. 케이, 저 포장한거 하나 뜯어서 드릴까?

- 저녁에 오면 낱개가 있으니까 있다 오라고 그러세요.

- 뭐라구?

- 아닙니다. 할머니, 지금 드릴게요. 케이, 잔말 말고 뜯어요. 할머니, 50전 입니다.

- 고마워요. 저 사람 당신 남편 입니까?

- 아니에요.

- 다행이군. 아주 나쁜 사람이야.

- 안녕히 가세요. 케이, 눈치것 해야잖아.

- 하여튼 흑인들은 골칫거리에요.

- 케이, 이 동네에서 흑인들한테 욕 먹으면 장사 못해요.

- 검둥이 주제에 차이니즈를 우습게 아니 참 드러워서.

- 어서 오세요.

- 어서 오세요.

- 네. 드릴게요.

- 네. 얼마죠?


- 흡사 인종 박물관 같은 미국 입니다. 케이는 수화네가 고용한 일본 사람 점원이죠. 동양 사람이면 통틀어서 차이니즈라고 말하는 그 쪽 사람들 흔히 좋은 뜻으로 말하는게 아니라는걸 알 수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케이는 케이대로 흑인 노파쯤 우습게 보고 싶은거죠.


- 저런 사람들은 뭣땜에 나라에서 돈을 주죠?

- 안 주면 어떻게 살아? 생활 할 능력이 없는걸.

- 기운이 있는 젊은 놈 까지 돈을 거저 주니 말입니다.

- 하긴, 주급 180불 받고 힘들게 노동 하느니 놀고 앉아서 실직수당 150불 받는게 낫다는 생각 할만하지 않겠어? 우리같은 사람들은 30불 아니라 3불을 더 준데도 노는 쪽 보다 일하는 쪽을 택하겠지만 말이야.

- 미세스 변은 여기 왜 오셨어요?

- 응? 케이는 왜 왔지?

- 전 여행이죠.

- 여행 기간을 넘기면서까지 왜 안돌아 가는 거야? 잘못하면 밀입국자로 낙인이 찍힐텐데.

- 공부하는 중 입니다.

- 공부?

- 세계를 떠돌아 다니면서 인간 사는 공부를 할거에요.

- 젊어서 좋군.

- 미세스 변은 안 젊으세요?

- 나? 젊어 보여?

- 네. 무척. 젊고 아름다우세요.

- 땡큐.

- 야채를 파는 오필리아.

- 뭐?

- 영호한테 들었어요. 햄릿의 오필리아를 하셨다구요?

- 어머나, 어느새 그런 얘기까지 했지?

- 영호 넌 행복한 놈이라고 말 해 줬죠.

- 참, 케이 부모님은 살아 계신가?

- 부모님이 계시면 이렇게 떠돌아 다니겠어요?

- 어허.

- 아니, 왜 웃으시죠?

- 그런 얘길 들으니까 우습군. 이 땅에 그런 생각을 하는 젊은이가 있다니 말이야.

- 안계시니까 가끔 미련 같은게 있는거죠. 나도 막상 부모님이 계시다면 영호처럼 엉뚱한 생각을 할지도 모르죠.

- 뭐라구? 영호가 뭐랬는데?

- 나처럼 부모가 안계셨으면 차라리 자기 부모는 위대한 분들이었다고 상상을 하면서 살았을거라는 거죠.

- 아니...

- 영호한테 그랬어요. 바보같은 놈 이라구요.

- 안녕, 케이 아저씨.

- 어. 영아 어서와.

- 엄마.

- 어. 왔니?

- 어머, 어디 아퍼 엄마?

- 아니.

- 피곤해?

- 아니.

- 모든게 아니야?
아빠, 어디 가셨어?

- 오실 시간 됐다. 농장에 물건 받으러 가셨어.

- 새벽에도 가셨잖아.

- 또 가셨어.

- 오늘 잘 팔렸구나?

- 챠우챠우는 어땠니?

- 내가 일하는 시간엔 늘 바쁘니까 뭐. 엄마, 아직 저녁 안했지?

- 아빠 오시면 집에 가서 밥 해먹지 뭐.

- 아이, 그 때까지 배고파서 어떡해. 케이 아저씨도 배고플거야. 내가 엄마랑 케이 아저씨 라면 끓여 줄게.


- 영아가 쪼르르 사라진 칸막이 뒤에는 케이가 임시로 쓰는 간이 침대와 가스렌지 그 밖에 간단한 취사 도구가 마련 돼 있었습니다. 눈 부비고 새벽 4시에 나와서 밤 12시 넘어까지 지키고 있어야 하는 가게 안에 그만한 준비는 있어야 됐죠.


- 어우 이거 영아 솜씨가 보통이 아닌데?

- 피.

- 정말 맛있게 끓였다. 물도 알맞게 붓고.

- 영아 지금 시집 가도 되겠어.

- 아이 라면만 잘 끓이면 시집 가나?

- 그럼.

- 바보. 남자가 있어야 가지.

- 아니, 뭐?

- 아하하하하.

- 어머, 아빠다.

- 늦으셨네요.

- 물건 다 들어가도 모르겠군.

- 이제 오세요?

- 가게 비우고 그 안에 있으면 어떡한다는 거야? 그 안에서 히히덕 거릴라면 뭣하러 가게 나와있어?

- 아빠, 내가 엄마랑 케이 아저씨 라면 끓여줬어. 아빠도 해 드릴게요.

- 넌 언제 왔니?

- 조금 아까.

- 영아, 너 챠우챠우에서 파트타임 하는거 그만 두고 가게와서 해라.

- 여보.

- 왜. 집에서 용돈주면 될거 아니야.

- 그래도 어떻게. 다른데 가서 하는거야 지 맘이지만.
어서 오세요.

- 어서 오세요.

- 네. 뭘 드릴까요?

- 뭘 드릴까요?


- 여보, 식사 하세요.

(따르릉~)

- 제가 받을게요. 어서 올라 오세요.
여보세요?

- 어. 수화?

- 누님 이세요?

- 어때, 많이 팔렸나?

- 네. 조금 바빴어요.

- 순석이 자?

- 왠걸이요. 샤워 해요. 아직 저녁도 안했는걸요.

- 어? 아 이때 식사를 안했으면 시장해서 어떡해. 장사도 좋지만은 제때 밥은 먹어야지. 근데 저 말야.

- 네.

- 영호 좀 이상하지 않아?

- 왜요? 지금 거기 없어요?

- 있긴 있는데 찾아오는 친구 애들이 좀...

- 어떤 아이들인데요?

- 겉으로 봐선 뭐 모르겠는데 학교 친구들 같진 않아요.

- 흑인 애들 이에요?

- 아 리키가 아까 그러잖아.

- 영호, 무슨 친구들이 그렇게 많아 해지? 창 밖에 보니까 골목에서 새카맣게 나와 해는데 그 속에 영호 있어 해.

- 글쎄요. 저도 잘 모르겠는데요.

- 아무튼 주의해서 좀 봐요. 그 나이 또래 애들 하도 말썽을 피우니까 걱정이 되는군.

- 네. 죄송 합니다. 걱정을 끼쳐서.

- 고단할텐데 그럼 쉬어요.

- 무슨 전화야?

- 누님 이세요.

- 왠일이야.

- 왠일은요. 그냥 궁금해서 하신 거지요.

- 근데 뭐가 죄송해.

- 네?

- 뭐가 죄송 하냐구.

- 아니, 네. 저 영호 좀 잘 키우라고.

- 당신, 좀 이상해졌다고 생각 안해?

- 뭐가요?

- 당신이 말이야.

- 제가요?

- 아무것도 아닌 일 가지고 왜그렇게 숨기지?

- 아니, 뭘 숨겨요.

- 나도 아래층에서 전화 들었어.

- 네?

- 아이들 걱정 당신 혼자해서 될 일이 아니잖아.

- 당신, 가뜩이나 피곤한데 신경 쓰실까봐 그랬지요. 당신이야말로 이상 하군요. 무슨 전환지 아셨으면 됐지. 아니 뭘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물어봐요?

- 뭐야?

- 왜그래요? 뭘 시험하는 거에요. 내가 뭘 어쨌게요. 뭘 어떻게 했어요. 왜그래요!

- 아이 미쳤나? 왜이래?


- 이러지 않고도 살 수 있었을 텐데. 하긴, 남의 입장에선 쉽게 말할 수 있겠지만 본인들인들 그러고 싶어 그러겠어요?


- 장미자, 김수희, 오세홍, 설영범, 유근옥, 안경진, 장광, 나래이터 고은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열 두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