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정 극본, 이규상 연출 열 번째
- 헬로우. 여보세요? 필라델피아요? 어. 난 누구라고. 어떻게 이 번홀 알았어. 누님 집으로 했었어? 어. 미안해. 그 동안 정신없이 바빠서 말이야. 응. 가게라고 얻은게 어찌나 헐었는지 칠 좀 하고 못 질 하고 해서 겨우 차려 놨어. 어. 해보는 거지 뭐. 그렇잖아도 연락을 할려고 했는데. 왠만하면 문 닫고 내일 집에 오지 않겠나? 아니야. 파티랄건 없구 누이 내외랑 저녁이나 먹으려고. 우리보고 오라고? 두 번 사는 목숨 아닌데 작작 벌라구. 좀 쉬기도 하면서 말이야. 두고 보자구? 천만에. 난 절대로 그렇게 안해. 음. 글쎄 두고 보라구. 어? 어 그래. 그럼 전화요금 올라갈텐데 이만 끊자구. 응. 한 번 갈게.
- 이 선생 이에요?
- 어.
- 진작에 오시라고 할 걸 그랬지요?
- 올 사람 같으면 내 미리 연락을 했게? 지금 한창 토끼 눈이라 안돼요.
- 토끼 눈이요?
- 토끼 눈이 빨갛잖아? 돈 버는 재미에 그 집 식구는 모두 토끼 눈 이라구.
- 토끼는 눈만 빨갛지 욕심이야 그렇게 있나요?
- 어 모르는 소리 하지마. 토끼란 놈 암수를 왜 따로 넣어 두는지 알아?
- 왜 그러는데요.
- 어찌나 정열적인지 같이 넣어 놓으면 지레 죽게 생겨서 새끼를 받을 때만 혼숙을 시키고는 떼 놓는 거라구.
- 아무리.
- 아무리 라니. 그것도 욕심이 많아서 그런거란 말이야.
- 어. 누구냐.
- 엄마.
- 왜그러니?
- 엄마, 들어가도 돼요?
- 어. 그래. 저.
- 영아야, 들어가서 자고 얘기할거 있으면 내일 아침에 해라. 응?
- 아 저...
- 가 봐주고 올게요.
- 그 버릇 된다니까 그러네.
- 영아야, 니 방에 가서 자도록 해. 응?
- 쟤가 서울에서 나 없는 동안 버릇이 나빠졌군.
- 사실은 영아의 버릇 이랄 수 없죠. 남편하고 헤어져 있는 일년 가까이 수화는 내내 영아를 품에 안고 잤습니다. 어려서 이후 혼자 잠드는것에 익숙했던 영아가 새삼스럽게 엄마 품에 안길 때, 처음에는 갑갑하고 그랬던 게요 나중엔 엄마품에 안겨야 잠드는버릇이 생긴거죠? 그 버릇을 이제 다시 고쳐야 하는 영안 아직 시간이 걸려야 합니다. 그래서 사람의 버릇은 제2의 천성이라고 부르는지도 모르죠.
- 어머, 고모. 어서 오세요.
- 어, 그래.
- 하이, 리키.
- 오. 하하하하.
- 아, 어서들 오세요.
- 어. 아유 얘, 요리 냄새가 아주 근사 하구나.
- 같이 안 오셨어요?
- 누구? 응. 헤밀턴 씨? 어머, 아직 안 왔니?
- 아니요. 함께 오시기로 하지 않았어요?
- 어. 아니야. 주소 가르쳐 줬어요. 이제 오겠지.
- 아, 리키. 뭐 좀 마시겠어요?
- 오! 에프타이도 준비했군 해.
- 뭐 준비랄거 없어요. 백 포도주 한 병 사왔어요.
- 백 포도주? 오! 띵호. 띵호. 하하하.
- 불란서제 샀니?
- 네. 리옹 산 이에요.
- 니가 아주 맘껏 모양을 냈구나? 아이구 참, 수화 혼자 애쓰겠구나.
- 아니에요. 뭐 준비 한게 있어야지요. 고모부, 어서 오세요.
- 오! 하하하하. 오늘의 여왕님. 이리 오십시오. 내 축복의 키스를 해 드려야지.
- 아 아니에요. 아니에요. 감사 합니다. 어 어머나 저 손에 기름 묻었어요.
- 기름 묻었으면 무슨 상관이야.
- 여보, 나가 봅시다. 헤밀턴 씨 왔나봐.
- 네. 이거 손을 어쩌지?
- 영호야, 니가 앞장 서야지.
- 네.
- 아 참, 오늘 헤밀턴 씨 파트너는 영아가 해야 된다.
- 아니 부인 동반이 아니에요?
- 어. 부인 없어. 독신이래.
- 헤밀턴 씨, 차 더 드시겠어요?
- 아, 아니요. 됐습니다.
- 미스터 헤밀턴, 원래 그렇게 조용 하십니까?
- 아니, 나 쾌활 합니다.
- 그럼, 뭐 기분이 안 좋으십니까?
- 노우. 절대로 아닙니다.
- 헤밀턴 씨, 다시 한번 깊이 사의를 표합니다. 우리 아이가 크게 실망 했을 때 당신은 희망을 갖게 해 줬습니다.
- 아니요. 천만에요. 이렇게 행복한 집의 아인 줄 알았으면 나 솔직히 말해서 그런 선물 안 했을 겁니다.
- 하하하하. 여기 미국 사람 참으로 솔직 합니다.
- 대단히 실례입니다만 한국 전쟁 때 미세스 변 께선 어디에 계셨습니까.
- 오호호호. 헤밀턴 씨, 아득한 옛날 얘기에요. 나도 철이 없었던 땐데 수화는 아마 엄마 젖을 먹는 애기였을 겁니다.
- 그렇지는 않죠. 중학교에 입학을 했을 때니까요.
- 하하하하. 그렇습니까.
- 왜 그러세요?
- 너무 같습니다. 미세스 변, 혹시 언니 되시는 분 안 계십니까?
- 아니요. 없어요.
- 아무튼 오늘 매우 즐거웠 습니다. 그리고 아주 보람 있었습니다.
- 아 왜요? 벌써 가시게요?
- 영호, 그렇게 계속해서 많이 많이 크십시오. 아까 나 영호 보고 도저히 믿을 수 없었습니다. 두 달 사이 너무 컸습니다. 너무 어른 됐어요.
- 아하하하. 감사 합니다.
- 챠우챠우 우리 집에 자주 오십시오. 영호 볼 수 있으니까요.
- 한 번 초대 하겠어요.
- 감사 합니다. 미스터 변. 가끔 이런 초대 해 주십시오. 아름다운 부인 뵈온거 영광 입니다. 특히 오늘 음식 너무 맛있었습니다.
- 헤밀턴 씨, 저도 예쁘죠?
- 네. 제일 예쁩니다.
- 여보, 거기 식탁에 종이 접시들 좀 치워 주시겠어요?
- 미친놈들.
- 여보.
- 꼭 동네 숫개들 모냥.
- 뭐라고 그러시는 거에요?
- 쓸개 없는 것들 이라고.
- 누가요?
- 누군 누구야. 여자만 보면 그저 덮어놓고 여왕이니 뭐니 입에 침이 마르니 그게 쓸개있는 놈들이야?
- 여보, 모처럼 손님 대접 잘 해놓고 왜 또 그래요.
- 뭘 왜 또 그래? 내가 어떻게 했는데.
- 아니에요. 여보, 오늘 당신 아주 근사 했어요. 오랜만에 넥타이를 메니까 그렇게 좋아 뵈는걸 밤낮 터틀에 잠바로 살아야 하니 분하지요?
- 어색하지 않았어?
- 뭐가요?
- 오랜만에 양복을 입어서 그런지 갑갑하고 그랬는데.
- 아니에요. 아주 파티 주인 다웠어요. 멋있고 의젓하고. 당신 영어 발음도 어쩜 그렇게 여기 사람하고 똑같아요?
- 그래?
- 여기 사람들은 왜 그렇게 물색 없이 크기만 한지 모르겠더라. 고모부는 여기 사람 아닌데도 꼭 미국 사람 같지요? 여기서 오래 살아서 그런가?
- 여보, 이리 와봐.
- 네?
- 이리 와보라니까.
- 어머. 왜이래요.
- 여기 놈들 남의 여편네를 번쩍 번쩍 안고 그러는데 나도 좀 그래보자.
- 놔요. 어지러워요.
- 여보. 여보, 내려 갑시다.
- 먼저 내려 가세요. 마저 치워야지요.
- 내일 치우지 뭐. 내일 일요일 인데.
- 내일은 또 세탁 하고, 청소 하고, 모레 부터 가게 열려면 준비 할게 많잖아요. 고단 하실텐데 먼저 내려가 주무세요.
- 내일 내가 다 해줄테니 그냥 자자구. 응? 당신도 고단 하잖아.
- 곧 끝나요. 먼저 내려 가세요.
- 음. 알았어.
- 수환 피곤 했습니다. 모처럼 손님 초대 하느라고 긴장 한데다가 남편 순석의 기분을 끊임없이 살펴야 하는것이 더 부담이 됐죠. 왜 그럴까. 특히 남들 앞에선 더더욱 남편의 눈치를 살펴야 되는 자신이 정말 싫었다는 겁니다.
- 나중에 깨달은 일이지만 그 이가 모든 신경을 너무 나 한테만 집중하고 있어서 나 역시 그랬던가봐.
- 네. 부부관계 라는거 어느 의미에서는 피차 구속되는 거죠. 그렇지만 그 구속감이 부담으로 느껴져선 안되는거 아니겠어요? 수화 내외는 말이 다르고 풍속이 다른 미국에서 이렇게 이중으로 피곤해야 했습니다.
- 장미자, 김수희, 김규식, 오세홍, 설영범, 안경진, 신성호, 나레이터 고은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극본 고은정, 연출 이규상 인생극장 에즈베리 파크의 저녁놀 열 번째로 고려식품, 삼성제약 공동제공 이었습니다.
(입력일 : 2007.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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