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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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29화 당신은 끝끝내 어리석은 여자야.
춤추는 겨울나무
제29화 당신은 끝끝내 어리석은 여자야.
1979.10.29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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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아홉 번째.

(음악)

- 안녕하세요. 수연 씨. 두 분을 여기서 한꺼번에 뵙는군요.

그런데 수연 씨, 왜 이렇게 쳐다만 보십니까? 인사도 안 받으시고.

- 어... 안녕하세요.

- 이렇게 일찍 웬일이십니까.

- 아... 설마 세경이 데리러 오신 건 아니겠죠?

- 아닙니다.

- 아니에요?

- 그보다 이 선생께 묻겠는데 세경이 지금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상탭니까?

정확하게 말씀을 해주세요.

- 네, 정상적인 사고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 됐습니다. 이제.

- 되다니요? 뭐가 말이에요?

- 어제 수연 씨의 충고 고마웠습니다. 역시 수연 씨 말이 옳았습니다. 정확하셨고.

그래서 왔어요. 만나서 둘이 합의를 하겠습니다. 완전한 절차는 세경이 퇴원 후에 하기로 하고

우선 이혼합의서에 도장이나 찍어 놓겠어요.

- 정...말이세요?

- 물론입니다. 이런 일은 작정을 한 바에야 깨끗이 끝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왔어요.

또 이렇게 결정을 내리고 나니까 오히려 홀가분합니다.

- 잘 생각하셨어요.

- 수연 씨 덕분이에요. 수연 씨와 이 선생의 충고가 없었다면 이런 결심 못할 뻔했습니다.

- 결심을 참 빨리 하셨군요.

- 네, 난 결심도 단념도 빠릅니다. 아... 그럼 전 세경이를 만나겠습니다.

- 그러시죠.

- 음.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믿어지지가 않아요.

- 생각보다 훨씬 빨리 마음을 돌렸군요. 그러고 보니 박영진 씨는 우리가 충고하기 이전부터

한편으로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었는지도 모르겠군요. 그렇지 않고서야 아무리 결단력 있는 사람이라도

하루 사이에 생각이 반대로 바뀔 수가 있을까요?

- 아... 그러고 보니까 정말 그랬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 다만 우리가 그런 결단을 내리게끔 도와준 것뿐인지도 모릅니다.

- 글쎄요.

- 그걸 확실히 모르겠군요.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것도 아니지만.

- 선생님, 그런데 이상해요. 일이 다 잘됐는데도 왜 조금도 기쁘지가 않죠?

- 그러게나 말입니다. 역시 헤어진다는 건 어떤 의미로건 경사는 아닌가 봅니다.

(음악)

- 왜 왔어요? 날 데리러 왔나요?

- 당신을 데릴러 온 게 아니라 당신 소원대로 버리러 왔어.

- 네?

- 왜? 믿기지 않나?

- 네, 믿기지 않아요.

- 믿어도 좋아. 음...

(종이 만지작거리는 소리)

- 이제 믿겠어? 왜 그렇게 보는 거지?

- 왜... 갑자기 마음을 바꿨나요?

- 당신 소원을 풀어주려고.

- 이제 아신 모양이군요. 날 더 붙잡고 있어봐야 별로 이익 될 게 없다는 걸 이제 아신 모양이군요.

- 거기 그것부터 읽어봐요.

- 이게 뭔데요?

- 이혼 사유. 거기 적힌 거 읽어보고서 도장 찍고 싶으면 찍고 말고 싶으면 말아.

내가 쓰고 싶은 대로 썼으니까 읽어봐.

- 네, 읽겠어요.

- 소리 내서 읽어.

- 나, 강세경은 불임증 환자로서 더 이상 박영진의 아내 노릇을 하며 남편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어서

스스로 박영진의 아내로서의 자격을 포기할 것을...

- 왜 더 읽지 않아?

- 더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난 아무래도 상관없어요.

- 당신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야. 알았어?

- 좋아요. 못 낳든 안 낳든 난 상관없어요. 난 아이 못 낳는 여자로 만들어도 좋고 미친 여자로 만들어도 좋아요.

- 한 번 더 얘기하는데 당신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야. 그걸 명심하라구. 안 낳는 게 아니라 못 낳는다는 것을.

- 알았다고 했잖아요? 난 당신의 아내만 아닐 수 있다면 뭐든 다해줄 수 있어요. 내가 아이 못 낳는 여자라서

한사코 붙잡는 남편을 뿌리치고 남편을 위해 스스로 물러났다고 신문광고라도 내줄 수 있어요.

- 뭐, 그럴 필요까진 없어. 당신만 그 점을 명심해주면 되니까.

- 그리고 뭐 다른 조건은 없어요?

- 더도 필요 없어. 그거면 충분하니까.

- 고맙군요.

- 어, 거기다 도장을 찍어. 여기 있어. 당신 도장.

- 빈틈없군.

- 물론.

(종이 만지는 소리)

- 됐어.

(종이 만지는 소리)

- 아... 이제 시원한가.

- 아니요.

- 왜? 좋아서 펄펄 뛸 줄 알았는데 왜 조용한 거지?

- 글쎄요. 조금도 시원하지가 않네요.

- 그럼 후회하는 건가?

- 아니요.

- 당신은 끝끝내 어리석은 여자야. 이다음에 늙어서, 그때야 철이 나서 가슴을 쥐어뜯으며

후회해봐야 소용없어. 이것으로 우린 끝이니까! 끝!

- 아마 그런 일도 없을 거예요.

- 흥, 그럴 테지. 늙어서 죽도록까지 당신이란 여잔 철이 안 들지도 모르니까.

- 미안해요. 이제 다시는 나 같은 여자 만나지 마세요.

- 걱정 말아. 두 번씩 실수할 내가 아니니까!

- 그러실 거예요. 당신은.

- 나한테 떨어져나가면 낙원이 기다리고 있을 것 같은가? 어?!

- 아니요. 내가 이제 무슨 수로 낙원을 보나요.

- 알긴 아는군. 이제 당신한테 붙는 딱지는 이혼녀에 석녀라는, 그런 낙인밖에 없어.

- 그럴 테죠.

- 흠... 근데 당신 친구 하나 잘 뒀더군. 그 똑똑한 친구 덕을 내가 톡톡히 봤지.

하지만 똑똑한 여자 별수 없다고 하더니 그 여자도 당신만큼 어리석어.

난 도무지 모르겠어. 당신이나, 당신 친구나, 닥터 리나 모두 무슨 생각을 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건지 도대체 알 수가 없어. 인생은 꿈이 아니지. 이 냉혹한 현실 속에서

그렇게 몽롱한 눈으로 한결같이 헛소리만 하니까 요런 모양으로밖에 살질 못하지! 응?! 요런 모양으로밖에!!

요런 병실에 죽치고 앉아서 말야!

- 더 할 말은 없나요?

-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요렇게 밖에 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잡고 무슨 얘길 더 할까?!

- 됐어요. 그럼. 그럼 됐어요.

- 음... 나 가겠어. 나한테 할 말이 있으면 해. 마지막이니까 할 말이 있다면 들어주지.

- 없어요. 할 말 없어요. 굳이 할 말이 있다면 고맙다는 말밖에는. 고마워요. 정말.

- 이것으로 우린 끝이야. 이 순간부터 난 당신이란 여잘 깨끗이 잊어버리겠어. 그리고 새출발 하겠어!

되도록 빨리 새출발 하겠어! 인생은 어물어물하고 있을 만큼 길지가 않으니까. 잘 있어.

- 잘 가세요.

- 음.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그래요. 날 깨끗이... 잊어버리세요. 아마 당신은 날 완벽하게 잊어버릴 수 있을 거예요.

하지만 난 당신을 잊지 못할 거예요. 내가 당신을 어떻게 잊겠어요. 아... 당신은 내 젊음과

내 꿈과 내 영혼까지도 송두리째 가져가버린 사람이니까요. 하지만 난 당신을 미워하진 않아요.

오히려 당신이 가엾다는 생각이 드니 웬일이죠? 왜... 당신이 자꾸만 가엾다는 생각이 드는지... 흐....흑.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세경아.

- 흐...흑.

- 우는 거니?

(흐느껴 우는 소리)

- 응... 아...

- 세경아.

(흐느껴 우는 소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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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아홉 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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