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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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28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게 기뻐
춤추는 겨울나무
제28화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게 기뻐
1979.10.28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제공입니다.

(광고)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여덟 번째.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및 문 여는 소리)

- 아, 세경이 남편 안 왔어요?

- 데려가겠대요?

- 네. 그럴 것 같애요.

- 도저히 설득이 안 되든가요?

- 알 수가 없어요. 제 얘기를 어떻게 들었는지 꼭 데리러 갈 것 같은 기색으로 싸롱을 나가버리잖아요.

선생님, 지금 세경일 제 아파트로 데리고 가면 어떨까요?

- 그건 안 됩니다.

- 그래도 끌려가는 걸 보고 있을 순 없잖아요.

- 그래도 그렇게 해선 안 됩니다. 어머니가 퇴원시킨다면 몰라도.

- 어머닌 아직 병원에 계시는데 어떻게요.

- 그 사람 안 올지 모릅니다. 아니, 진짜 영리한 사람 같으면 오지 않습니다.

- 아... 정말 그럴까요?

- 그야말로 영리한 사람이니깐요. 수연 씨가 그렇게 얘기했으면은 지금쯤

어떻게 할 건지 파악했을지도 모릅니다. 당장 달려오지 않으면 안 올 겁니다.

- 그럴까요? 정말... 그럴까요?

- 해야 할 말 하나도 빼지 않고 다 하셨죠?

- 네, 다했어요. 하지만... 제 얘기 듣고 금방 마음 돌릴 수 있을까요?

- 의사의 소견과 친구의 소견은 아무리 같은 말이라도 같게 받아들이지 않아요.

또, 내가 할 수 없는 얘기. 수연 씨가 다하지 않았습니까?

- 아, 그렇긴 하지만.

- 제 말은 어디까지 소견일 뿐, 수연 씨는 친구니까 아무래도 설득력이 있지 않겠어요?

그리고 박영진 씨는 내 말을 오히려 불쾌하게 생각하더군요. 의사면 완쾌나 시키면 그만 아니냐 그거죠.

사실 의사의 소견치곤 좀 길었으니깐요.

- 선생님도 이런 일은 처음이시죠? 이렇게 신경 많이 쓰고, 생각 많이 하고 시간 많이 없애면서

환자 퇴원 후 문제까지 걱정해보신 일, 또 있으세요?

- 음... 아마도.

- 그런 의미에서 세경인 선생님을 만난 게 행운이에요.

- 세경 씨 소원대로 돼야 행운이죠.

- 아, 하긴.

- 그보다 병실에 가보세요. 돌아왔다니까 많이 기다리던데요.

- 아, 네. 가봐야죠. 하하, 아무튼 그 사람 여러 사람 속 태워주는군요.

- 수연 씨가 아주 혼나시는군요.

- 오지만 않는다면 이까짓 혼나는 게 문제겠어요?

-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 병실에 가 있겠어요.

- 네.

(문 여닫는 소리)

- 아... 과연 안 올 것인가.

(음악)

- 섬도 하나 안 보이는 망망대해를 바라보고 있으니까 세상이 내게서 돌아앉아버린 것 같은

생각이 들더라.

- 그럴 줄 알면서 거긴 왜 갔었어.

- 아, 하지만 물빛이 얼마나 투명한지 머릿속이 아주 깨끗해지는 것 같애.

- 그래, 거기서 또 뭘 생각했니?

- 남자.

- 남자...?

- 응, 남자.

- 그게 누군데?

- 그런 사람 있어.

- 아... 사랑하니?

- 응, 사랑하는가봐.

- 어머, 아, 축하한다. 니가 남자를 사랑하게 되다니. 아, 보고 싶어. 니가 사랑하는 남자가 어떤 남잔지.

근사할 거야.

- 응, 근사해. 그런데 말야.

- 그런데?

- 그런데 그 사람은 날 사랑하지 않을지도 몰라.

- 왜?

- 몰라. 왠지 그런 생각이 들어. 아직 잘 모르지만.

- 그렇지 않을 거야. 니가 사랑하면 그 사람도 널 사랑할 거야.

- 글쎄...

- 그렇지 않을 거야.

- 그래도 난 지금 기쁘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할 줄 안다는 게 기뻐. 그래서 좋은 마음으로 돌아왔어.

넌 알지? 이런 내 마음.

- 알아. 알고말고.

- 그걸 알아보고 싶었던가 봐. 그래서 그렇게 떠나보고 싶었던가 봐.

- 니가 사랑하는 남자를 봤으면 좋겠는데... 어, 꼭 보고 싶어. 그런데 볼 수 있을 것 같지가... 않아.

아무래도.

- 왜 또 그런 소리를 하니?

- 수연아, 난 살고 싶은가 봐. 왜 이렇게 미련이 많지? 아... 모든 게 다 새삼스럽게 소중해져.

소중해서 견딜 수가 없어.

- 세경아.

- 응.

- 내가 오늘 어디 다녀왔는지 아니? 니 남편 만나고 왔어.

- 그이를...

- 널 버리라고 했어.

- 왜 그런 수고를 했니? 그이는 누구 말도 안 듣는 사람이야. 그이는 자기가 만든 자로밖에 세상을 재지 않는 사람이야.

니가 나 때문에 공연한 곤혹을 치르는구나.

- 어쩜 그 사람 생각을 바꿀런지도 몰라. 그러니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어떻게 죽을 수가 있니?

니가 사랑하는 것들, 니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 어쩌고 죽니?

- 흐흑...

- 우린 이제 겨우 스물아홉이야.

- 흑...

- 살아온 날보다 살아야 할 날들이 더 많은-.

(흐느껴 우는 소리)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어, 선생님. 여태 퇴근 안 하셨어요?

- 오늘 당직입니다.

- 아... 네...

- 저녁식사 하셨어요?

- 네...

- 안 하셨군요.

- 배고프지 않아요. 어쩜 선생님, 수연이가 아, 어떤 남자를 사랑하기 시작했나 봐요.

수연이가 남자를 사랑하기는 처음이에요. 선생님.

- 그래요?

- 틀림없이 근사한 남잘 거예요. 수연이는 남자를 보는 눈이 보통이 아니거든요.

- 그럴 거예요. 수연 씬.

- 근데 걱정이 있어요.

- 걱정이라뇨?

- 그 남자는 수연이를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예요.

- 네?

- 그래서 걱정이에요. 어렵게 누군가를 사랑하기 시작했는데 수연이가 상처를 받으면 어쩌죠?

부디 그 남자도 수연이를 사랑했으면 좋겠어요.

- 글쎄요. 저, 한 바퀴 둘러보고 오겠습니다. 당직이라서.

- 그러세요. 그럼.

- 쉬고 계세요.

(문 여닫는 소리)

- 역시, 역시 그래서, 그래서 수연 씨는 갑자기 여행을 떠났었군요.

그러고 보니까 우린 똑같이 그 생각을 하고 있었군요. 수연 씨는 바닷가에서, 나는 병원에서.

이번엔 내가 여행을 떠나야 하는 걸까요? 아니, 그보다도 내가 어째서 당신을 사랑하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죠? 내가 그걸 모르는데 당신이 어떻게... 아니, 그보다도 내가 왜 이러죠?

왜 이렇게 헤매는 거죠? 알 수가 없어요. 알 수가 없어요. 내가 나를 말입니다.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 네.

(문 여닫는 소리)

- 오, 수연 씨. 일찍 오셨군요.

- 오호, 궁금해서요. 결국 어젠 무사히 넘겼군요. 정말 안 오는가 보죠?

- 이제 안심해도 될 것 같애요.

- 아, 제발 그래주기만 하면 더 바랄 게 없는데.

- 차 한 잔 하시겠어요?

- 아니에요. 들고 왔어요. 집에서. 근데 선생님 얼굴빛이 안 좋으시네요? 우울하신 것 같고.

- 네, 잠을 못 잤어요. 그래서-.

- 왜 못 주무셨어요? 걱정이 되세요?

- 네.

- 하하, 선생님도 참. 나더러는 걱정 말라고 하시고선.

- (생각)난 지금 눈이 부셔서 당신을 바라볼 수가 없습니다. 왠지 아세요?

내 앞에 조금 제 감정도 드러내지 않고 서있는 당신의 그 사려 깊음이 눈부시고

아직도 해답을 못 얻은 내가 부끄러워 눈부시고.

- 뭘 그렇게 생각하세요?

- 아, 아니에요.

(문 두드리는 소리)

- 네.

(문 여닫는 소리)

- 어머.

- 아니.

- 안녕들 하십니까?

(음악)

(광고)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여덟 번째로 고려야구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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