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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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25화 남편을 동정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춤추는 겨울나무
제25화 남편을 동정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1979.10.25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광고)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다섯 번째.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 네.

(문 여닫는 소리)

- 오, 세인 양. 어서 와요.

- 안녕하셨어요.

- 어머닌 어떠세요?

- 며칠 있으면 퇴원하실 거예요.

- 잘됐군.

- 언니 만나려구요.

- 가서 만나요.

- 어머니가 퇴원하시고 사부인 만나겠대요. 만나서 얘기해보시겠대요.

어머니도 언니가 형부랑 헤어져야 한다고 하셨어요.

- 잘됐으면 좋겠군.

- 하지만 형부가 안 헤어지겠다고 하는데 어림이나 있어요? 전 어머니한테 기대 안 해요.

어머니도 그건 알고 계시구요. 그래도 한번 얘기라도 해보시겠대요.

- 가봐요, 병실에.

- 네.

- 아침에 들렸더니 말없이 앉아만 있더군.

- 그럼 다녀서 가겠어요.

- 음.

(문 여닫는 소리)

(발자국 소리)

- 음...

(전화 다이얼 돌리는 소리 및 전화 신호 가는 소리)

- 그냥 떠나버린 건가. 음...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문 두드리는 소리)

- 네.

- 어서 와.

(문 두드리는 소리)

- 왜 이렇게 우두커니 서있나?

- 벌써 점심시간 됐나?

- 자네하고 점심 먹어 본 지 오래됐군. 자네가 소설가하고만 식사하는 바람에 말야.

- 참, 그랬었지.

- 그 여자 볼수록 괜찮던데?

- 또 싱거운 소리.

- 진담이야. 둘이 아주 다정해 보이더군. 어울리고 말야. 사랑인가?

- 사랑?

- 아닌가?

- 사실은 그걸 생각중이야.

- 뭐가 그리 어려워.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닌 거지.

- 그랬으면 얼마나 좋겠나. 나도 분명해지고 싶어.

- 제발 좀 쉽게 살아봐.

- 그래서 그런 게 아니야.

- 아, 그럼 뭔가?

- 가서 점심이나 들라구. 난 전화를 기다려야 돼.

- 그 여자 전화? 행복하겠어. 사랑 때문에 점심도 제때 못 챙겨먹고. 뭐 하긴

점심이 대순가. 사랑이 문제지. 하하, 난 가네.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하하, 사람 참.

(종이 소리 및 라이터 불붙이는 소리)

- 후우...

(전화벨 소리 및 전화 수화기 드는 소리)

- 네, 병원입니다.

- (전화 음성 소리)저예요. 선생님.

- 지금 어딥니까?

- (전화 음성 소리)고속버스터미널이에요.

- 전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디로 가십니까?

- (전화 음성 소리)아, 속초로 갈까 해요. 강릉을 지나서요. 겨울바다가 보고 싶어요.

- 겨울에 혼자 동해바다로... 너무 쓸쓸하지 않을까요?

- (전화 음성 소리)울어버릴지도 모르죠.

- 언제 돌아오시겠습니까?

- (전화 음성 소리)글쎄요. 가보고요.

- 되도록 빨리 돌아오세요.

- (전화 음성 소리)오래 있진 않을 거예요.

- 잘 다녀오세요.

- (전화 음성 소리)네, 다녀오겠어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 음...

(문 여닫는 소리)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뭘 생각하고 계세요?

- 오... 그냥...

- 책 안 보세요?

- 봐야죠. 그런데... 오늘은 수연이가 안 오는군요.

- 수연 씬 여행 갔어요.

- 여행을요?

- 네, 갑자기 겨울바다가 보고 싶은가 봐요. 견딜 수 없어.

- 음, 수연이는 그런 아이예요. 때때로 집시처럼 자꾸만 어디로 떠나고 싶어 해요.

난 그런 수연이가 좋아요.

- 세경 씨를 놔두고 여행을 가는 게 조금 걸리던 모양이더군요.

- 아, 전 괜찮아요. 걘 어느 날 갑자기 바람이 불면 만사 제쳐놓고 떠나요.

- 겨울바다는 꽤나 황량하겠죠.

- 수연이는 여름엔 바다가 안 가요. 여름바다는 찐득한 욕망 같은 것이 뒹굴어서 싫다나요?

여름엔 산에 갔어요. 산에 가서 개울물에 발을 담그고 커다란 소리로 노래를 하거나 책을 읽었어요.

하, 그런데 수연이는 왜 남자를 사랑하지 못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다정다감한 아이가-.

- 왜 남자를 사랑하지 못할까요?

- 남자에게... 너무 많은 걸 기대하고 있는 게 아닌지 모르겠어요. 아니면

남자에게 전혀 기대 같은 게 없는지도 모르구요. 수연이는 다감하고 천진한 구석이 있긴 하지만 강한 여자거든요.

- 그래요. 수연 씨는 강한 여자예요.

- 그리고 수연인 뭐든 철저해요. 철저하게 사랑하지 않으면 결혼 같은 것도 안 할 거예요.

수연이는 나하고는 달라요. 나처럼 사랑할 거라는 예감만 가지고 결혼하는 바보가 아니에요.

난 정말 바보예요.

- 왜 그런...

- 선생님. 선생님은 제가 어떻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세요?

- 글쎄요...

- 선생님 의견 한번 얘기해보세요.

- 남편께서는 절대로 이혼 못하신다고 하니까 남편을 동정하면서 살면 어떨까요?

지금 갑자기 그런 생각이 드는군요.

- 동정...하면서요?

- 생각해보면 박영진 씨도 불행한 사람입니다. 세경 씬 그렇게 생각지 않으세요?

- 불행은 느끼는 사람만이 불행한 거 아닐까요? 느끼지 않으면 절대로 상처받지 않아요.

- 아, 그야 그렇지만.

- 그이는 남들이 자기더러 행복하다고 하면은 행복해져 버리는 사람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절대로 누가 불행하다고 말하지 않게 인생을 꾸려갈 거예요. 중요한 건 자신이 아니라 타인이에요.

그인 그걸 자존심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하아, 사실 그이도 나 같은 여자가 아닌, 자기와

비슷한 여자를 만났음 그야말로 완벽하게 행복할 거예요. 그이도 날 잘못 선택한 거예요.

그런데도 그인 그걸 모르는 모양이에요.

- 박영진 씨도 그걸 알고 있더군요.

- 알면서 왜 날 붙잡아두려 할까요?

- 결혼에 실패한 남자가 되고 싶지 않다고 하더군요.

- 하아... 그 얘긴 내게도 했어요. 하지만 그것 말고도 또 까닭이 있어요.

- 또요?

- 그이가 날 버리려하지 않는 건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그이는 그랬어요. 나는 아직 사랑할 가치가 있다구요. 하지만 그인 언젠가는

버릴 거예요. 내가 그야말로 유명한 화가가 된다면 몰라도 그렇지 않으면 그인 반드시 날 버려요.

난 항상 젊어 있는 게 아니잖아요? 내가 젊음을 잃고, 아름다움을 잃고 그러면 그인 날 버려요.

난 그걸 알고 있어요. 이래도 절더러 그일 동정하면서 살아보라고 하시겠어요?

- 난 거기까진 몰랐습니다.

- 그이가 날 버릴 때까지 기다릴 순 없어요. 그러면 난 너무 비참하잖아요.

그렇게까지 해서 목숨을 부지할 필요가 있을까요? 그건 내가 날 모독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사느니 난... 차라리-.

- 차라리?

- 그런데도 세인이를 보니까 왜 또 눈물이 나죠? 아마 난 살고 싶은가 봐요.

- 물론이죠. 살아야죠. 그건 당연합니다.

- 하지만 그것도 구차스런 생각이에요. 구차스러워요.

- 세경 씨.

- 선생님, 난 지금 편안해요. 아주 편안해졌어요.

-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 선생님, 나 바깥바람이 쏘이고 싶어요. 나가서 조금 걷다가 돌아오겠어요.

선생님도 이제 제 걱정은 마세요.

- 세경 씨!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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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다섯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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