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스타앨범 / 나의 데뷰
유쾌한 응접실 / 정계야화
노변야화 / 주간 종합뉴스
초대석 : 김수환 추기경
>인생극장
춤추는 겨울나무 - 제23화 날 나대로 살게 내버려두세요!
춤추는 겨울나무
제23화 날 나대로 살게 내버려두세요!
1979.10.23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광고)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세 번째.

(음악)

- 들죠.

- 네.

- 세경 씨 남편 눈에 띄지 않도록 병원 떠날 때까지 여기 계셔야겠어요.

- 세경일 위해선 아무래도 그래야겠죠.

- 그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일을 한 걸 알아보세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 음, 그럴 거예요. 아직도 내가 모르고 있는 줄 알고 있을 테니까.

- 차 드세요.

- 네.

- 역시 그 사람을 설득한다는 건 가망 없는 일 같아요.

- 전혀.

- 그렇게 얘길 했는데도 전혀 인정하려 들질 않아요.

- 못 알아들은 건가요? 아니면은 알고도 모른 척하는 건가요?

- 글쎄요. 그걸 모르겠어요. 아는 거 같기도 하고 모르는 거 같기도 하고.

- 허, 그렇게 머리 좋은 사람이 그걸 모를 까닭이 있겠어요?

- 세경 씨가 병난 건 자기 때문이 아니라 세경 씨 자신 때문이라는 겁니다.

- 뭐라구요? 세상에! 그런 어거지가 어딨어요?!

- 그 사람으로선 당연한 얘긴지도 모르죠. 아낼 학대하고도, 학대했다고 생각지 않고

모욕하고도 모욕했다고 생각지 않으니깐요.

- 아니에요. 알 거예요. 학대한 것도, 모욕한 것도 다 알고 있을 거예요. 그걸 왜 모르겠어요?!

- 알고도 모른 척 한다면은 악랄한 사람이고 정말 모른다면은 가엾은 사람이에요.

- 그 사람을 누가 가엾다고 하겠어요? 가엾은 건 세경이죠. 남편 얘기만 해도 벌벌 떠는 모양이.

세경이가 왜 그 모양이 돼야 하죠? 어떻게 했으면 그렇게 떠느냔 말이에요. 자기 남편을 두구요.

- 그러게나 말입니다.

- 세경이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요?

(음악)

- 여보, 오랜만이오.

- 오랜만이군요.

- 보고 싶었어. 나 좀 앉아도 될까?

- 앉으세요.

- 음, 병실에 하루 종일 혼자 있으면 몹시 지루하고 답답하겠군. 이게 웬 고생이야!

- 난 괜찮아요.

- 괜찮아?!

- 괜찮아요.

- 난 당신이 없어서 외롭고 불편해. 당신이 어서 나아서 퇴원해줘야겠어. 지장이 많아요. 아주.

- 난 자신 없어요.

- 뭐가 자신이 없다는 거야? 퇴원할 자신이 없다는 건가?

- 나 이제 더는 당신 아내 노릇할 자신이 없어요.

- 걱정 마. 내가 하자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 난 당신 하자는 대로 하다가 병까지 났어요. 날 좀... 내버려두세요.

- 내버려달라니? 내 언제 당신을 죽인다고 했나?

- 아니요, 그게 아니에요.

- 난 당신을 사랑해.

- 아니요. 거짓말이에요.

-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을 사랑한다고 믿을 수 있겠나?

- 그럴 필요 없어요.

- 필요가 없다니?

- 당신이 어떻게 해도 난 다 아니까요. 내가 당신을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당신이 날 사랑하지 않는 건

명백한 일이니까요.

- 뭐라고?

- 그러니까 그런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요.

- 흠... 그래. 내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칩시다. 하지만 우린 부부야.

부부란 서로에게 충실하기만 하면 되는 거야. 어떻게 허구한 날, 만날 사랑타령만

하고 지낼 수 있겠나? 그렇지 않아? 난 남편의 도리를 다하면 되고, 당신은 아내의

도리를 다하면 되는 거야.

- 아내의 도리를 다하게 하는 게 뭔지 아세요? 사랑이에요. 사랑이 도리를 다하게 하는 힘이란 말이에요.

그런데 내겐 그게 없어요. 이제 더는 못하겠어요. 힘이 없어요. 내겐.

- 그래. 당신하고 얘길 한다는 건 쓸데없는 낭비지. 당신은 어쩌면 그렇게 한결같이 헛소리만 하고 있는 거지?

눈을 좀 크게 뜨고 세상을 똑똑히 쳐다봐! 세상은 무서운 곳이야. 무섭고 냉혹한 곳이야!

이런 세상에 당신같이 그렇게 헛소리만 하고 있어 봐요. 사람들 발길에나 이리저리 채이는 가련한

신세밖에 되지 않아!

- 난 그래도 아무에게도 채이지 않고 살아왔어요. 이런 병실에서, 이런 환자복도 입지 않고 살아왔어요.

지금 생각하니까 당신을 만나기 전에는 늘 행복했었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니 그게 행복이었던 것 같아요.

난 이런 여자예요! 그러니 제발 날 나대로 살게 내버려두세요!

- 이제 보니 정신이 말짱하군. 말하는 걸 보니까 환자도 뭐도 아니군! 어?

- 왜요? 내가 미쳐서 거리를 헤매는 꼴을 보고 싶어요?! 그런 거예요?

- 닥쳐!! 난 지금 당신이 여기서 그따위 푸르딩딩한 환자복 입고 있는 것도 기가

막혀서 죽겠는 사람이야! 근데 뭐?!!

- 그게 어디 날 걱정해서예요? 당신의 그 위대한 명예심을 위해서죠!!

- 뭐라구?!

- 왜? 틀렸나요?

- 닥쳐!! 닥쳐!! 뭘 잘했다고 그렇게 말이 많은 거야... 도대체 내게 뭘 해줬다고 말이 많은가!

- 그래요? 난 당신한테 아무것도 못 해줬어요. 앞으로도 당신한테 해줄 거라곤 아무것도 없어요!

난 당신한텐 아무 쓸모도 없는 여자예요! 난 당신 아내 될 자격이 없는 여자예요!

- 자격이 있고 없고는 내가 결정하는 거지.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야! 당신, 아직

내 아내 될 자격이 있어. 알아들어? 그러니까 날 떠날 생각 같은 건 꿈에도 하지 마라.

난 내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안 버려. 더구나 당신이 날 떠나고 싶어 하는 걸 아는데

내가 그럴 것 같은가? 당신이 아무리 날 떠나고 싶어 해도 내가 버리고 싶어질 때가 아니면은

안 버려. 난 아직 당신을 버리고 싶지 않으니까.

- 나가세요! 돌아가세요!

- 그래, 나도 가고 싶어. 당신까지 데리고 가고 싶어. 지금 당장.

- 뭐라구요...?

- 그런데 당신 담당의사한테 약점을 잡혀서 그러지 못해. 재수 없게 하필 이 병원에 와가지고 이게 무슨 창피야!! 이게!

- 당신같이 치밀한 사람이 어쨌길래 약점을 잡혔죠?

- 닥쳐!! 어리석은 것들! 주는 것도 못 챙겨먹는 의사에 주는 복도 걷어 차버리는 어리석은 여자에,

뭐? 나 때문에 병이 나? 말해봐, 왜 나 때문에 병이 났나. 내가 뭘 어째서 병이 났지?!

- 나가요!! 나가!!

- 말해!! 의사한테 뭐라고 했길래 그 작자까지 날 그렇게 훈계하려 해. 말해봐! 그 작자한테 무슨 소릴 했어?!

- 왜 이러는 거예요?! 왜...!

- 환자라고 해서, 심한 말 하지 말라고 해서 좋게좋게 넘어갈려고 참고 있으니까 속에서 불이 나서

견딜 수가 없어! 이봐. 이봐, 내가 왜 그 의사라는 작자한테 그런 모욕을 받아야 되는 건가? 왜?!!

- 그분이 왜 당신을 모욕해요? 당신이 그분을 모욕했으면 했지.

- 뭐야?

- 아마도 그분이 당신 마음에 안 드는 얘길 하신 모양이군요. 당신은 당신 마음에 안 드는 건

무조건 짓밟아버리는 사람 아니에요. 당신 자신만 다 옳고, 당신이 왕이고, 당신이 제일이고

딴 사람들은 다 멍텅구리로 몰아치는 그 오만. 흐윽흐윽흐윽...

- 계속하지 않고 왜 그치지?

- 그만두겠어요. 소용없는 일이니까요.

- 어, 이제 보니까 다 한통속이로군.

- 당신이나, 의사나 다 한통속이로군. 한다는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 둘이서 똑같은가.

- 뭐라구요?

-그 환자에 그 의사. 그래, 이제 보니까 둘이서 날 모욕주기로 아주 작정을 한 모양이로군.

- 지금... 누가 누구를 모욕한다고 그러는 거예요?

- 똑똑히 들어둬. 난 말야, 누구한테 모욕이나 받고 사는 사람이 아니야!!

내가 받는 이 모욕, 반드시 갚아주겠어. 내가 누군데 당신이나 당신 의사한테 모욕을 받나?!!

난 박영진이야. 박영진!!

(음악)

박웅, 배한성, 송도영, 권희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곡 노래 최백호.

(광고)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세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6.02)
프로그램 리스트보기

(주)동아닷컴의 모든 콘텐츠를 커뮤니티, 카페, 블로그 등에서 무단사용하는 것은 저작권법에 저촉되며,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by donga.com. email : newsroo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