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광고)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한 번째.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잘 쉬셨어요?

- 아... 지금 출근하세요?

- 네. 여기부터 들렸습니다. 그런데 기분이 별로 안 좋으신 것 같군요.

- 꿈을...

- 또 남편 꿈을 꾸셨나요?

- 아니요. 꿈에 어머닐 봤어요.

- 어머니를...?

- 꽃이 만발한 우리집 마당에서 어머닌 꽃을 꺾고 계셨어요. 노란 금잔화를요.

- 어머니가 보고 싶으신가요?

- 아... 하지만 어떻게 이런 꼴로... 선생님,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에요.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죠? 내가 왜 여기 있죠?

- 세경 씬 여기가 편안하다고 하지 않았어요.

- 네, 편안해요. 하지만 여긴 내가 있을 곳이 아니에요.

- 세경 씨.

- 네.

- 지금은 아무 생각도 말고 그냥 편안히 지내는 겁니다. 오랜만에 긴 휴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냥 지내는 겁니다. 그리고 시간이 좀 더 흐른 뒤에 세경 씨가 있을 곳이

어딘지 천천히 생각해보기로 해요. 지금은 그냥 편안히 지내는 겁니다.

자, 이걸 보세요. 월간지를 가지고 왔어요. 이런 거 뒤적거리면서 지내요. 당분간.

(책 넘기는 소리)

- 어? 수연이 작품이! 어, 저.. 서수연이라고 아세요? 신인작가지만.

- 압니다.

- 그러세요? 제 친구예요.

- 저두 서수연 씨랑 친하게 지내요.

- 네?!

- 놀라셨죠?

- 어쩌면...

- 왜요? 거짓말 같으세요?

- 네, 거짓말 같애요. 신기하구요.

- 저, 수연 씨 아파트 가서 차도 얻어 마시고 저녁도 얻어먹었어요.

어제도 만났구요.

- 이상한 일이기도 해라...

- 하하하하하.

- 그래서... 그래서 선생님이 때때로 친구처럼 느껴진 걸까요?

저 가끔 그런 생각을 했었어요. 선생님을 보면 안심이 되기도 했구요.

- 저도 세경 씨가 그냥 환자로만 생각되지 않았죠.

- 선생님은 정말 제게 고맙게 해주셨어요.

- 수연 씨가 만나고 싶어 해요. 세경 씨는 정말 좋은 친구를 두셨더군요.

수연 씨가 얼마나 가슴 아파하는지 모릅니다.

- 수연이가... 얼마나 놀랬을까요. 서울로 돌아와서 수연이랑 가끔씩 만나긴 했는데

그럴 때마다 수연인 늘 얘기하고 난 그저 애매하게 웃기만 했죠. 난 그동안 친구하고도

친구처럼 지내질 못했어요. 난 정말 4년 동안 뭘 했을까요?

- 그래도 친구는 늘 그대로 친구죠. 수연 씨 만나세요.

- 네, 보고 싶어요.

- 그럼 지금 전화 하겠어요.

- 아, 네.

(음악)

(문 두드리는 소리)

- 네.

(문 여닫는 소리)

- 어이구, 빨리도 오셨군요.

- 아, 마음이 변해버릴까 봐 막 서둘렀어요.

- 자, 거기 좀 앉으세요.

- 아, 그렇게 긴장한 얼굴로는 곤란해요.

- 아, 가슴이 뛰어요. 자꾸.

- 늘 대하는 대로 대하세요. 그리고 붙잡거든 밤중까지라도 같이 있어주세요.

저도 그때까지 수연 씨 기다려 드릴 테니까요.

- 하하하, 가볼까요?

- 가시죠. 병실 문 앞까지 모셔다 드릴 테니까.

(문 여닫는 소리)

- 아니? 또 긴장하시는군요.

- 아아하하하...

- 하하, 이럴 땐 수연 씨, 겁 많은 소녀 같으십니다.

- 아이, 선생님두. 올드미스더러 소녀 같다뇨?

- 그렇게 봬는 걸 어쩝니까?

- 하하하하. (둘 다)

- 여깁니다.

- 아...

- 내 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자.

- 네.

- 음... 아...

(문 두드리는 소리)

- 네.

(문 여닫는 소리)

- 어? 수연아.

- 아... 세경아.

- 아... 왔구나.

- 어, 그래. 왔...어!

(흐느껴 우는 소리)

- 미안하다.

- 뭐가?

- 니가 아파할 때 같이 아파해주지도 못하고 니가 병들어도 병든 줄도 모르고

다 내 탓이야. 그래도 신통해. 지금이나마 널 만난 게.

(흐느껴 우는 소리)

- 나도 신기해. 어... 내 꼴이 말이 아니지?

- 어... 넌 여전히 아름다워. 그 헐렁한 환자복이 널 더 돋보이게 만들어.

- ‘그게 더 슬퍼, 세경아. 니가 왜 이런 병실에 이런 환자복을 입고 있어야 하는 거니? 어?’

- 뭘 생각하고 있는 거니?

- 응, 아니야. 참, 우리 여기 이러고 서있지 말고 앉자. 오랜만에 다리 쭉 뻗고 앉아

옛날얘기나 좀 하잔 말야. 시간도 많으니까. 그러고 보니까 너 결혼한 후로

한 번도 마음 놓고 만나 본 적 없어. 그지?

- 나도 그 생각을 했었어. 너 오기 전에.

- 그래. 너도 앉어.

- 으응... 세경아,

- 왜 자꾸 눈물이 쏟아질려고 하지?

- 울고 싶으면 우는 거야. 하지만 절대로 자학은 하지 마. 너 자신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돼. 소중하게 말야.

- 난... 난 만신창이야. 난 백 년도 더 살은 것 같애. 흑... 미안해. 이런 소리

안 하려고 했는데.

(흐느껴 우는 소리)

- 바보같이, 무슨 소리를 한들 어떠니... 바보같이 혼자서 낑낑거리고 있었어? 왜?

(흐느껴 우는 소리)

- 수...연아!

- 세경아!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아, 수연 씨.

- 아... 퇴근 시간 지났죠?

- 우셨군요. 세경 씬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 실컷 울고 나니까 머리가 아픈가 봐요. 그래서 쉬라고 했어요. 내일 또 오기로 하구요.

- 수연 씨도 피곤해 보여요.

- 하아... 허망해요. 산다는 게. 세경인 결혼 4년에 너무나 많은 걸 잃었어요.

앞으로 또 얼마나 더 잃어야 하는지도 모르구요.

- 이제 세경 씨가 더 잃을 게 남아 있을까요?

- 그렇군요. 세경인 더 잃을 것도 없군요. 정말 세경인 이제 어떻게 되는 거죠? 네?

- 방법은 두 가지뿐입니다.

- 두 가지?

- 헤어지는 일하고 남편하고 같은 방법으로, 같은 사고방식으로 인생을 사는 거.

- 하아... 두 가지 다 불가능하군요.

- 그러니까 문제죠.

- 왜 이렇게 어렵죠? 뭣 때문에 이렇게 어려워야 하는 거죠?

이렇게 답답한 일은 처음이에요. 이렇게 답답할 수가. 정말 그 사람, 사람도 아니에요.

- 내일 그 사람 여기 올 겁니다.

- 내일요?

- 네. 내가 오라고 했어요. 만나서 설득을 해봐야죠. 이제 원인을 다 알았으니까

할 수 있는 데까진 해봐야죠.

- 그 사람, 누구의 설득을 당할 사람인가요? 세경이가 자기 자신 때문에 병이 났다고 하면

펄펄 뛸 거예요!

- 하지만 부딪쳐봐야죠. 세경 씨도 만나게 하구요.

- 세경이가 만나려고 할까요?

- 만나야 합니다.

- 그랬...다가 다시 악화되면...

- 세경 씨는 지금 해답을 얻고 싶어 해요.

- 미래에 대한 해답 말인가요?

- 아직 미래를 생각할 만한 여유는 없어요. 세경 씨에게. 다만 지금, 지금의

자신에 대한 해답이겠죠.

- 네...

- 사실은 지금부터가 어려워요. 세경 씨에겐.

- 지금부터가요?

- 네, 지금부터가.

(음악)

박웅, 송도영, 권희덕.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곡 노래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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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물한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