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광고)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무 번째.
(음악)
- 아... 아...
- 부인.
- 흑... 선생님. 난 이제 부끄럼도 모르는 여자가 돼버렸나 봐요. 어쩌면 그에게, 선생님한테-.
-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런 모욕을 받고도 그림을 그리는 이유를 이제 알겠군요.
- 흑... 그 치욕을 견디느니 그림을 그리는 척 하는 게 나았거든요. 차라리. 흐윽... 전 그렇게 살았어요.
- 무서운 분이군요. 남편은.
- 무서운 사람이죠. 서울로 돌아오기로 했을 때 난 그림들을 찢어버렸어요. 그랬더니
그이가 날 죽이려 했어요.
- 죽이려구요?!
- 말해!! 왜 이것들을 다 찢어놨어! 왜!!
(집어던지는 소리)
- 그건 그림도 뭐도 아니에요.
- 뭐야?
- 당신을 속이려고 그리는 척 했을 뿐이에요.
- 뭐라구!!
(뺨 때리는 소리)
- 다시 한 번 지껄여봐. 다시!!
- 당신은 속았어요.
- 죽고 싶어?!! 어!!!
- 그래요. 죽고 싶어요!!
- 그래, 죽여주겠어!!!
- 어서 죽여요!! 차라리 죽고 싶어요!!
- 뭘... 망설이는 거예요? 뭘...?
- 난 죽고 싶다는 사람은 죽이고 싶지 않아.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면 죽이고 쓰러져도.
- 하하.
- 그 후로 다시는 그림에 대해서 얘기를 하지 않았어요. 그 이상 들볶으면 내가 정말
죽어버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가 봐요. 난 정말 죽어버리고 싶었거든요.
- 음...
- 하지만 서울로 돌아오니까 난 다시 살고 싶어졌어요.
- 그랬을 테죠.
- 하지만 아무도 날 도와줄 사람이 없었어요.
- 아무도 그이에게서 날 해방시켜줄 사람이 없었어요. 돌아오자마자 아버지는
병환을 얻어 누워계시다 돌아가시고 난 가족들한테 내 불행을 얘기할 수가 없었어요.
또 얘기한다 해도 아무도 그이를 이길 사람이 없었구요. 누가 그이를, 그 철벽같은
사람을 무너뜨릴 수 있겠어요?
- 알 만합니다.
- 어떤 사람도 그이를 꺾지 못해요. 그래서 난-.
- 그래서 그 고통을 혼자 끌어안고 계셨군요.
- 난 늘 행복.. 그것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어요. 어릿광대처럼 사람들만 보면 웃었어요.
- 어릿광대처럼...
- 흐흐흑... 난 훈련 잘 된 어릿광대고 그이는 훌륭한 연출자였죠. 내가 조금이라도 찌푸린
얼굴을 하면 그이는 날 가만두지 않았어요.
- 가만두지 않는다면?
- 내가 제일 싫어하는 짓을 하죠.
- 네...
- 그래서 스스로 난 명배우처럼 연기력을 터득한 거예요. 참 내 연기는 완벽했어요.
내 어머니도, 친구도, 뭐도 다들 내가 완벽하게 행복한 여잔 줄 알았으니까요. 아아아아...
- 그 고통을 혼자 끌어안고 있었기 때문에 세경 씬 병이 난 겁니다. 차라리 하소연하고 그랬으면...
-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하소연한다고 내 고통이 덜어지나요? 괜히 옆의 사람들만 괴롭히죠.
- 하긴 그렇습니다만.
- 난... 어리석기 그지없는 여자예요. 죽지도 못한... 어리석은 여자예요.
- 어리석은 게 아닙니다. 사람이란 태어날 때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나고 죽음도
자신의 의지로 다스릴 수 있는 게 아니지 않습니까?
- 아....
(흐느껴 우는 소리)
- (혼잣말)당신은 차라리 병이 들었을 때가 행복했었군요. 난 무서워요. 지금.
당신의 병이 나아간다는 사실이 무서워요.
- 선생님.
- 네?
- 선생님은 제 남편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저란 여자는 또 어떻게 생각하시구요?
- 세경 씨.
- 말씀해보세요. 네?
- 좀 쉬세요.
- 아아...
-피곤해 보이세요. 지금은 아무 생각도 마시고 그냥 쉬세요.
(흐느껴 우는 소리)
- (혼잣말)강세경 씨.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선생님.
- 오, 세인 양. 언제 왔어요?
- 조금 전에요.
- 아니, 그런데 얼굴이 왜 그래요? 어디 아팠어요?
- 아니요.
- 무슨 일 있었어요? 통 안 오길래 웬일인가 했는데.
- 어머니가... 쓰러지셨어요.
- 어머니가요?
- 사부인이 와서 아무것도 모르고 계신 어머니께 마구 험한 말을 하셔서...
- 그래, 쇼크를 받으셨구만.
- 흐흑... 아아...
- 그래, 어머니는 어떠신가.
- 겨우 위험한 고비 넘기셨어요.
- 천만다행이군.
- 그래서 못 왔어요. 언니는 어때요?
- 언니는 아주 좋아졌어요.
- 그래요?
- 만나 보시겠어요?
- 아니에요. 오늘은 못 만나겠어요. 언닐 보면 그냥 통곡을 할 것 같애요.
- 세인 양이 혼자 고생이 많구만. 어머니 돌보랴 언니 걱정하랴. 아, 어머니는 어느 병원에?
- 대학병원이에요. 또 가봐야 해요.
- 이 먼 데까지 왜 왔어요? 전화만 하고 어머니나 돌봐 드리시지.
- 언닐 붙잡고 실컷 울고 싶어서 왔는데 그럴 수도 없고.
- (혼잣말)수연 씨한테 알려야 할 때가 온 것 같군.
(음악)
- 수연 씨.
- 아...
- 수연 씨.
- 아... 어쩜 그럴 수가...
- 미안해요. 폭탄 터트리듯이 터트려서.
- 흐흑...
- 좀 더 있다가 차분히 얘기해 드리려고 했는데 세인 양이 혼자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애서.
- 선생님!
- 진정하세요.
- 소름끼쳐요. 아내를 정신병원에 입원시켜놓고 파리로 갔다는 세경이 남편이나 친구가 그 지경이
된 것도 모르고 친구 얘길 가지고 작품 쓸 생각이나 하고 있던 나나... 아아...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에요.
- 그건 수연 씨 잘못이 아닙니다.
- 흑...
- 순전히 제 탓이죠. 제가 그런 식으로 얘길 했기 때문이죠.
- 그래도 난 친구도 뭐도 아니에요.
- 그렇게 생각지 마세요. 그래도 강세경 씨한테 수연 씨 같은 친구가 있는 게 얼마나 다행입니까.
- 이러고도요??
- 내가 수연 씨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세경 씨한테는 도움이 됐어요.
- 아... 정말, 어쩜 세경이 선생님 환자가 돼서.
- 묘한 인연이죠?
- 그래요. 정말.
- 만날 사람은 어떻게든 다 만나게 돼있는가 봅니다. 세경 씨가 내 환자가 아니었더라면
수연 씨는 지금도 모르고 있을 거 아닙니까.
- 그렇군요. 정말. 세경이가 죽어도 난 까맣게 모르고 있었겠군요. 하아... 세경이는 그러고도
어쩌면 여태까지 살았을까요?
- 그러니까 병이 난 거죠.
- 사람이 어쩌면 그럴 수가... 그렇게 젊은 사람이 어쩌면 그토록 철저하게 위장할 수 있었을까요?
난 아직도 믿어지지 않아요. 난 세경이 이상으로 그 사람을 잘 봤단 말이에요!
- 그렇게 보이도록 위장했으니까 그렇게 볼 수밖에요.
- 무서워요. 정말 무서워요.
-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사람이라지 않습니까.
- 선생님, 세경이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죠?
- 글쎄요... 지금으로선 막막하죠.
- 세경이 병이 나아간다는 사실이 무섭다는 선생님 말... 흑... 정말 세경인 병들을 때가 행복했는지 모르겠어요.
선생님, 나 지금 당장 세경이 보러가고 싶어요. 지금 당장!
- 지금은 안 됩니다. 때가 되면은 만나도 될 거예요. 지금은 세경 씨 어머닐 보러 가세요.
- 어머니도 어머니지만, 난 세경일 먼저 보고 싶어요! 세경이를요!
- 흠...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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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스무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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