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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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19화 날 창녀처럼 다뤘어요!
춤추는 겨울나무
제19화 날 창녀처럼 다뤘어요!
1979.10.19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광고)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아홉 번째.

(음악)

(문 여닫는 소리)

- 접니다. 수연 씨.

- 무슨 일 있었어요?

- 저녁 때 오겠다고 해놓고 이제사, 그것도 취해서 왔으니 갈 데 없는 치한 같죠?

- 네, 영락없는 치한 같아요.

- 아하하하하.

- 하하하.

- 그럴 겁니다. 밤 10시에 잔뜩 취해가지고 여자의 아파트에 찾아오는 남자.

치한 같은 게 아니라 이런 놈을 바로 치한이라고 하는 겁니다. 으흐흐흠.

- 거기 그렇게 서 계실 거예요? 왜 그렇게 쳐다보기만 하세요?

- 고마워서요.

- 뭐가요?

- 약속도 안 지키고 취해서 왔는데 수연 씨-.

- 하하하, 거기 잠깐 계세요. 열쇠 가지고 나올 테니까요. 보아하니

진짜 치한이 되고 싶지는 않으신 것 같애요?

- 하하하하하하.

(음악)

(마시는 소리)

- 그래서 혼자 술 한잔 했어요. 어쩐지 그런 기분으로는 수연 씨 만나고

싶지 않았습니다.

- 잘하셨어요. 이제 기분 풀리셨어요?

- 네, 그럭저럭.

- 그 여자는 모르고 있겠죠? 선생님이 이런 곤욕을 치루는 걸.

- 곤욕이랄 게 있습니까?

- 그래요. 곤욕이랄 것도 없어요. 깨끗이 잊어버리세요.

- 네, 다 잊었습니다. 아, 그보다 수연 씨. 저녁 어떻게 하셨어요?

맛있는 거 사드리겠다고 해서 아침부터 굶으셨을 텐데.

- 8시까지 기다리다가 못 오시는 걸로 알고 적당히 해결했어요.

전 정말 무슨 일이 있는 줄 알았어요.

- 전화라도 해 드리는 건데.

- 어쨌든 이렇게 오셨잖아요?

- 늦어서 아파트 앞까지 와서도 많이 망설였어요. 결국은 올라가고 말았지만.

- 잘 오셨어요.

- 아, 네. 정말입니까?

- 으흥.

- 저도 오길 잘한 것 같애요. 왜요?

- 음, 아, 아니에요. 나가요. 그만.

- 이만 돌아가서 잠이나 자라 그겁니까?

- 아, 여기 더 있음 선생님 술 더 하려 하실 것 같애요. 더 취하면 운전 어떻게 하죠?

- 술 안 마시고 앉아만 있죠.

- 나가서 조금만 걸어요.

- 그럴까요? 그럼.

- 나가요.

- 술값 여깄습니다.

(음악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아, 찬바람을 쐬니까 술이 확 깨는 것 같애요.

- 거보세요. 하하.

- 꽤 취했던가 봐요. 제가.

- 이제 아시나 봐? 아하하하하하.

- 하하하하.

- 이상해요.

- 뭐가요?

- 약속까지 안 지키면서 혼자 술을 마시던 제가요. 난 좀 이상해요.

그게 뭐 그렇게 술 마실 일도 아닌데. 일소에 부쳐버릴 수도 있었는데.

아마 난 그 핑곌 대고 취해보고 싶었던 모양입니다.

- 왜 취하고 싶었을까요?

- 뭐가 뭔진 잘 모르겠지만 난 요새 좀 이상해요.

(음악)

- 감기는 좀 어떻습니까?

- 괜찮아요. 이젠.

- 다행이군요. 그런데 왜 그렇게 안색이 창백하십니까?

- 꿈을 꿨어요.

- 무슨 꿈을 꾸셨는데요?

- 그이가... 아... 그이가 꿈에...

- 남편 꿈을 꾸셨군요.

- 한 번도 그이 꿈을 꾸진 않았는데 요즘-.

- 무슨 꿈이었는데요?

- 꿈에서까지 그이가... 아!

- 꿈에 남편이 어쨌는데요?

- 흑... 날 창녀처럼 꿈에서까지...!

- 창...녀처럼?!

- 그이는 언제나... 날 창녀처럼 다뤘어요!!

- 이거 벗어.

- 여보...

- 벗으라면 벗어!

- 그럼, 불... 불 꺼줘요. 불을요. 네? 제발 불이라도 좀-.

- 우린 부부야. 뭘 부끄러워하지?

- 하지만... 난 싫어요.

- 난 불을 켜야겠어.

- 당신은 어쩌면, 어쩌면 당신은 내 생각은 손톱만치도 안 해주죠?

- 당신은 내 생각을 알뜰하게 했나? 뭐? 죽어도 그림은 안 그려? 뭐, 날 떠나?!

내 아내로 남아있느니 거지가 되는 게 훨씬 마음에 든다구?

- 그래서 지금 내게 앙갚음 하는 거예요? 당신이 그 소릴 입 밖에 내지만 않았어도

난 그런 대로 살았을 거예요. 당신이 싫어도 난 아무 소리 않고 당신을 사랑하게 되길

바라며 살았을 거예요! 그 소릴 입 밖에 내지만 않았어도 난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며 살았을 거예요!

머리 좋은 당신이 왜 그걸 몰랐든가요?! 네?

- 몇 번 얘길 해야 알아듣나? 오죽 했으면 내가 그랬겠어! 오죽 했으면! 파리에 온 지 6개월이 지나도록

그림 한 점 가지고 씨름이나 하고 앉아 있는 걸 그냥 두고 구경이나 하고 있으란 말인가!

- 내가 왜 작업을 못했는지 당신 알긴 알아요?

- 그래! 오늘은 그 이유를 좀 알아보자구. 도대체 이유가 뭐였어?

-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

- 나 때문에?

- 그래요! 당신 때문이에요! 난 결혼 첫날부터 당신한테 환멸을 느꼈어요. 아니, 환멸만 느낀 게 아니라

치욕까지 덤으로 받았어요!

- 뭐야? 환멸이 아니라 치욕까지?!

- 당신은 여자를 창녀처럼밖에 여길 줄 모르는 사람이에요!

- 창녀?!

- 첫날 밤, 당신 어쨌어요?

- 내가 뭘 어쨌기에?

- 내가 당신에게 필사적으로 애원했는데도 당신은 불을 있는 대로 밝혀놓고 날 벗겼어요! 흑...

- 그게 어쨌다는 거지? 첫날 밤을 맞은 신랑이 신부를 사랑하는 것도 죈가?

- 뭐라구요? 사랑이라구요? 당신이 사랑 운운하니까 구역질나요!

부끄럽고 두려워서 떠난 나를 아랑곳 않고 마치 창녀처럼, 내가 창녀라도 되는 것처럼

일어나라, 앉아라. 그 순간에 내 마음의 문은 닫혀 버렸다구요! 그런데도 난 날 나무랬어요.

내가 지나친 결벽증이 아닌가, 내가 뭘 너무 몰라서 그런 게 아닌가. 그런데도 난 당신이

다시는 좋아지지 않았어요! 당신 날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구요! 당신이 날 사랑한다면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거예요. 내가 치욕을 느끼지는 않았을 거라구요! 그런데 이제

확실히 알았어요. 당신은 역시 날 사랑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내가 치욕을 느낀 거예요.

결혼 6개월에 그런 치욕감에 빠져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뭐겠어요? 당신이 그걸

알기나 해요? 그런데 난 나 자신만 가지고 들볶았다구요. 모든 게, 모든 게 다 내 탓일 거라구 말이에요.

그런데 뭐요...

- 흐흠, 말 다했나?

- 다했어요.

- 다했으면 옷이나 벗어.

- 아!

- 말 같지도 않은 소리 다했으면 옷이나 벗어! 무슨 소릴 하자는 건가 싶어서 끝까지 들어줬더니

한다는 소리가 뭐? 사랑이 어쩌구, 치욕이 어쩌구. 웬 이유가 그리 많고 웬 사랑이 그렇게 복잡해!

여자와 남자가 만나서 하는 일이란 쳐다보고, 손잡고, 키스하고 같이 자는 거! 그게 전부야.

거기가 쓸데없는 의미 갖다 붙이고 지지고 볶는 그런 유치한 신판 정말 질색이라구.

- 아...

- 당신 이제 보니까 날 골탕먹이려구 작정을 했군.

- 뭐라...구요?

- 그래, 그게 6개월씩이나 날 애태운 이윤가? 그게!! 그게 이유냐구?

- 난... 당신하고 더 말 안 하겠어요.

- 잘 생각했어. 나도 더는 듣지 않을 테니까. 그 말 같지도 않은 소리 하지 마.

그러고 서 있지 말고 이리 와!

- 윽!! 악!! 놔요!! 아!

- 당신 내 마음대로 할 거야!

- 아!

- 하도 울고불고 해서 당신 하자는 대로 불도 끄고 했지만 이젠 그러지 않겠어.

오냐오냐 했더니 뭐? 죽어도 그림은 안 그리겠다구? 날 떠나겠다구? 이리 와!!

- 아!! 아!!! 아!! 아!!

-윽!!

- 저쪽으로, 저쪽으로 걸어가 봐.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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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아홉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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