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소리 DBS | 동아방송 18년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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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17화 여태 그림 한 장 못 그리고…
춤추는 겨울나무
제17화 여태 그림 한 장 못 그리고…
1979.10.17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일곱 번째.

(음악)

- 뭘 하고 서있는 거야?! 거기 앉아!!

- 아, 네.

- 당신 도대체 왜 이래!

- 내가 뭘 어쨌다고 그래요! 화만 내지 말고 말을 해요.

- 정말 몰라서 그러는 건가?

- 글쎄, 모른다잖아요!

- 이러니까 내가 미치지! 도대체 파리에 온 지 몇 달이야?

몇 달인데 여태 그림 한 장 못 그리고 낑낑대고 있나. 밥 먹고 하는 일은 그림

그리는 일뿐인데 왜 여태 이 모양이야!!

- 그래서 화가 났어요?

- 파리에 유람이라도 온 줄 알고 있나? 회사일 팽개치고 내가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는 지사일 봐가면서 여기 온 목적이 뭐야? 여기서 10년이나 있을 줄 알고 있는 거야?

왜 대답이 없어!!

- 난 정말 당신을 이해 못해요. 그림은 내가 그리는 건데 도대체 왜 당신이 초조해하고 이 난리예요?

나도 여기 놀러오지 않았어요! 나도 꿈이 있고 의욕도 있어요! 그런데도 작업이 잘 안 돼요.

그래서 괴롭단 말이에요! 그런데 당신까지 왜 이러는 거죠?!

- 내가 왜 이러는지 정말 몰라서 그러나? 그렇게 못이 박히도록 얘길 했는데두! 모른다고 할 거야?

- 네, 몰라요! 정말 몰라요!

- 그렇다면 내 한 번만 반복하지. 잘 들어. 다시 말 시키지 마.

- 아, 네. 해보세요. 듣겠어요.

- 앞으로 1년 반이면 우린 돌아가야 돼. 다시 오는 한이 있더라두 돌아가야 돼. 가서 귀국전을 열어야 돼.

그리고 한국에서 다시 도불전 열고 이리로 오는 거야. 그렇게 해서 5년 안에 기반을 닦아야 돼.

하루빨리 여류화가 강세경의 이름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려야 돼. 이건 내 사업 못지않게 중요한 일이야! 알겠어요?

- 아, 그러고 보니 그게 진담이었군요. 그게...

- 그럼 그걸 농담으로 들었나? 내가 할 일 없이 파리에까지 와서 그런 농담을 하나?

당신 도대체 정신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 어쩌면 당신은 마치 내가 그림 그리는 여자가 아니었음 나랑 결혼도 하지 않았을 것처럼...! 어쩌면...

- 아니, 그럼 여태 그것도 몰랐어?

- 네?!

- 이제 보니 정말 한심한 여자로군. 여태 그걸 모르다니. 하긴 그걸 몰랐으니까 이 모양일 테지만.

이봐! 당신이 그림도 안 그리는데, 유명해질 건덕지도 없는데 내가 왜! 내가 뭣 때문에 당신하고 결혼하나!!

- 뭐라구요?

- 그렇지 않아? 내가 뭐가 아쉬워서 돈도 권력도 가문도 없는 일개 고등학교 교감 딸하고 결혼을 하나!!

- 네?

- 난 말야, 돈과 학벌과 인물과 가문을 완벽하게 갖춘 남자야. 아마 나처럼 완벽하기도 쉽지 않을 걸.

내가 유학에서 돌아오기도 전에 신부후보가 줄을 섰었어. 당신은 상상도 못할 훌륭한 조건을 갖춘

여자들이 수두룩했어! 난 얼마든지 골라잡을 수가 있었지. 그런데도 난 다 마다하고 당신을 택했어!

왜? 왠지 말해볼까? 왜냐하면 당신의 그 미모와 재능을 잘 활용하면 권력세도가의 규슈 못지않은 아내감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야! 아름답고 기품 있는 여류화가 깅세경. 적어도 이 박영진의 아내는

그쯤은 돼야 된다구! 그러고 당신 충분히 그렇게 될 수 있어요! 난 머리가 좋은 놈이야.

승산 없는 일은 절대로 하지 않아!

- 아...

- 그런데 당신, 이렇게 게으름을 피고 있으니 내가 화가 안 나게 됐나? 지금 그럴 때야?

- 어... 나는.

- 이제 보니까 당신은 정말 머리가 나쁜 여자야. 어떻게 내가 일일이 말을 해야 알아듣나! 응?

- 당신, 지금 한 말 모두 진심이에요? 네? 진심이에요?!

- 아니. 아니, 그래도, 그래도 못 알아듣겠어?

- 오, 하나님. 이럴 수가.

- 뭐, 하나님?

- 이럴... 수는 없어... 이럴 수는!

(음악)

(흐느끼는 소리)

- 흑, 흑, 가야 돼. 흑, 가야 돼!

(문 여닫는 소리)

- 왜 아침을 안 먹겠다는 거야? 아니, 당신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

짐을 왜 꾸리지?

- 떠나겠어요.

- 떠나? 의논도 없이 여행을 하겠다고?

- 뭐라구요? 여행이라구요?

- 아니, 울었잖아. 왜 울었어?

- 지금 당장 떠나겠어요! 난 당신의 아내로 남아 있느니 차라리 거지가 되겠어요!

그게 훨씬 마음에 들어요.

-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또. 어?

- 머리 좋은 당신이 왜 그런 실수를 했어요? 난 당신이 바라는 그런 유명한 화가가 될 수 없어요.

날 잘못 봤어요!

- 뭐야?

- 당신도 날 잘못 봤고 나도 당신을 잘못 봤어요. 난 지금 내 눈을 빼버리고 싶을 만치 부끄러워요.

정말 난 어리석은 여자예요... 흑, 저기 서랍에 당신이 준 것들 다 챙겨놨어요.

지금 나가서 비행기 표를 사겠어요. 비켜주세요.

- 도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지금!

- 이번엔 당신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군요. 난 지금 당신을 떠나요. 서울로 간단 말이에요.

당신의 아내 노릇 그만두겠단 말이에요.

- 하, 하하.

- 왜 웃는 거예요?

- 뭐? 날 떠나? 왜?

- 몰라서 물어요?

- 새파랗게 질려서 하나님을 찾고 그러더니 모욕을 느꼈다는 건가?

- 비키세요! 더 말하고 싶지 않아요.

- 똑똑히 들어. 난 어디까지나 사실을 말했을 뿐이야. 모욕을 느끼건 말건 그건 당신 자유야.

하지만 괜히 고상한 척하지 말라구. 세상 모든 게 다 그런 이치대로 돌아가고 있는 거야!

다 알면서 순진한 척하지 말아.

- 뭐라구요?

- 뭐? 날 떠나? 누구 마음대로 떠나! 결혼이 뭐 애들 장난인 줄 아나?

- 그렇죠. 애들 장난이 아니죠. 당신 말대로 하면 엄연히 거래고 계약이죠.

헌데 난 당신하고 그런 거래를 할 자신이 없어요. 그래서 떠나는 거예요.

- 하하,하하, 하하하.

- 당신은 대체 몇 개의 얼굴을 갖고 있는 거죠? 내게 처음 접근할 때 그땐 분명히 지금의 이 얼굴은 아니었어요.

신사인 척, 인간다운 척, 겸손한 척 그 누구보다도 야비하고, 오만하고 추악하면서!

난 지금에야 당신의 진짜 얼굴을 다 봤어요! 지금에야!!

- 닥쳐!!

(따귀 때리는 소리)

- 함부로 날뛰지 마라. 난 말야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은 안 하는 성미야. 날 떠나겠다구?!!

어리석은 생각 꿈도 꾸지 마라. 작업이나 하고 있어. 그게 현명할 거야. 알아듣겠어?

- 뭐요? 작업을 하라구요?

- 그래! 작업이나 해.

- 내가,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릴 줄 알아요? 내가 이러고도 당신의 아내로 남아 있을 줄 알아요?

- 두고 봐, 두고 보면 알지. 당신은 그림도 그릴 거구 영원히 내 아내로 남아 있을 테니까.

당신은 정말 어리석은 여자야. 어서 그 가방 내려놓고 식당으로 나와!

- 선생님.

- 네.

- 그이 말마따나 난 정말 어리석은 여잔가 봐요. 난 지금도 그의 아내니까 말이에요.

난 정말 바보 중에 바보예요.

-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군요.

- 그러실 거예요.

- 그래, 정말 남편 명령대로 그림을 그렸던 가요?

- 그렸죠. 서울로 오기 전에 제가 다 찢어버리긴 했지만. 그건 그림이 아니었거든요.

그걸 제가 아니까요.

-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그렸으니까 그럴 만했겠군요.

- 죽었음 죽었지 다시 화필을 잡을까보냐고 이를 악물었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어요.

- 그렇게 무섭게 했나요? 남편이.

- 무섭게 하는 게 아니에요. 그이는 그렇게 서툴게 굴지 않아요.

- 그럼 어떻게 했습니까? 부인께.

- 그, 그건... 그건 말할 수 없어요. 어떻게 그 얘기를 선생님께... 아학...

지금 생각해도 미쳐버릴 것 같은데... 어떻게 그 얘기...! 아... 악.

- 부인?

- 아...악.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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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일곱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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