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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16화 왜 그림을 못 그리셨나요?
춤추는 겨울나무
제16화 왜 그림을 못 그리셨나요?
1979.10.16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여섯 번째.

(음악)

- 기쁘세요? 여기 더 있게 돼서.

- 네, 기뻐요. 선생님.

- 이젠 아무것도 걱정하시지 마시고 푹 쉬세요.

- 그런데 웬일일까요. 그인 누구도 설득할 수 없는데. 어떻게 선생님이 그이를...

- 여기 좀 걸터앉을까요?

- 네.

- 음, 춥지 않으세요?

- 아, 괜찮아요.

- 어떠세요? 바깥공기를 쐬니까 좋죠?

- 네, 머리가 맑아지는 것 같애요. 나오길 잘했나 봐요.

- 입원하시고 오늘이 처음입니다. 밖에 나오신 게.

- 강세경 씨.

- 네.

- 왜 그렇게 남편 곁으로 가기를 싫어하세요?

- 난 여기가 좋으니까요. 어머, 눈이 와요.

- 그렇군요. 올핸 눈이 많이 오려나 봐요. 왜요? 눈이 싫으세요?

- 난 병실로 가겠어요.

- 아, 조금 더 계세요. 모처럼 나오셨는데. 그리고 여기 앉아서 눈 오는 것도 보고. 그러면 좋잖습니까.

- 난 눈이 싫어요.

- 눈이 싫다구요?

- 네. 싫어요.

- 그래요?

- 어, 점점 더 많이 와요. 나 가겠어요!

(발자국 소리)

- 아니, 강세경 씨! 강세경 씨!

(음악)

- 아니, 왜 그러세요?

- 난 눈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는 게 무서워요.

- 왜요?

- 눈 오는 하늘을 올려다보면 난 미칠 것 같애요. 예전엔 그렇지 않았는데 언제부턴가 난 눈 오는 날이 무서워요.

- 그건 강세경 씨가 불행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하면은 모든 게 다 그래요. 언젠가 나도 그런 걸 느낀 적 있어요. 눈이 오는데 눈 오는 하늘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난 이렇게 중얼거렸어요. ‘아, 이건 절망이다. 캄캄한 절망이다. 축복이 아니라 절망이다.’.

- 어쩌면...

- 왠지 아세요? 그때 난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고 있었더랬어요. 혼수상태에 빠져 회생할 가망이 없으신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다 말고 눈 오는 하늘을 올려다봤죠. 근데 그때 그 하늘은 끝없는 혼돈이요 절망이었어요. 난 그때처럼 눈이 싫어본 적이 없습니다.

- 네...

- 난 세경 씨를 이해할 수 있어요.

- 하지만 난 늘 그래요. 작년에도 그랬고, 재작년에도 그랬고, 파리에서도. 네, 그래요. 파리에서부터였어요. 그때부터 난 눈이 싫었어요. 그때부터.

- 파리에서부터.

- 난 겨울에 파리로 갔었어요. 가을에 결혼하고 파리로 가자마자 겨울이었어요.

- 세경 씬 왜 그림을 못 그리셨나요? 그림 때문에 파리까지 갔으면서요.

- 그이 때문이에요. 그이 때문에...

(문 두드리는 소리)

- 세경이. 나 좀 들어가도 돼?

- 무슨 일이에요?

(문 여닫는 소리)

- 아, 무슨 일은. 나 세경이 작업하는 거 보고 싶어서 그러지. 아, 이건 뭘 그리고 있는 거지?

- 글쎄요.

- 아하하, 난 도무지 뭐가 뭔지 모르겠더군. 이 비구상이란 것은.

- 으흐흥

- 어쨌든 열심히 하라구. 아, 돌아가서 귀국전을 열어야지. 귀국전 겸 데뷔전이 되겠지. 당신 아직 개인전 한 번 열지 않은 학도에 지나지 않으니까. 아, 당신 귀국전 어디서 열까?

- 그런 건 지금 걱정하지 않아도 돼요.

- 아아, 그렇지. 아, 그건 지금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돈만 있으면 어디서건 얼마든지 화려하게 열 수 있으니까. 당신은 화려하게 데뷔할 수 있어요. 매스컴을 총동원해서 PR하고 이름 있는 평론가를 움직여서 평을 쓰게 하고 돈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어. 게다가 당신은 유수한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나왔겠다, 유학까지 왔겠다, PR 할 건 얼마든지 있고 유명해지는 건 간단하지.

- 어, 어쩌면 당신은 그런...

- 왜? 안 될 것 같애?

- 아, 당신은 어쩌면 그런 생각을. 돈 내서 PR하고 그런다고 좋은 화가가 되나요?

- 아하하하하하, 모르는 소리. 좋은 화가가 뭐야? 유명한 화가가 좋은 화가지. 좋은 화가가 따로 있나?

- 네?

- 당신은 부지런히 그림이나 그려요. 유명하게 만드는 건 내가 맡을 테니까. 당신, 나하고 결혼하길 참 잘했어. 어, 왜 그래? 왜 그렇게 멍청하게 바라보는 거야?

- 아니에요.

- 난 이미 당신에 대한 계획이 다 서 있어요.

- 계획이라뇨?

- 파리에는 2년만 있다 돌아갑시다. 2년이면 당신 공부도 어지간히 할 수 있을 거고 남들한테 유학했다는 명목도 설 수 있을 거고 말야.

- 명목?

- 1년 있다 가서 유학했다고는 할 수는 없는 일 아니야? 하긴 뭐 1년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그래도 1년 가지고는 명분이 안 서. 안 그래?

- 당신은, 당신은 마치 남한테 보고라도 하려고 여기 온 것 같군요.

- 하지만 남을 무시하고 살 수 있나? 세상 이치가 다 그런 건데. 그보다 내 말 마저 들어봐요.

아, 2년 있다 일단 돌아가서 귀국전 열고, 거기서 조금 활동을 하다가 도불전을 열고 다시 파리로 오는 거야. 그리고 한 1년 있다가 돌아가서 귀국전을 또 열어.

그런 식으로 기반을 닦을 때까지 주의를 환기시키는 거야. 요새 세상 죽은 듯이 엎드려 있으면 아무도 안 알아줘. 내가 여기 있노라고 끝없이 외쳐대야 쳐다본다구.

그래야 된단 말야. 어때? 내 계획. 하하하하. 당신은 아무 걱정 말고 그림이나 그려요.

내가 하는 일은 틀림없으니까. 그렇게만 하면 당신은 몇 년 안에 금방 유명해질 거야.

- 난 유명해지는 덴 별로 관심 없어요. 그리고 유명해지려고 한다고 다 유명해지는 거예요? 그림이 좋고, 끝없이 활동하고 그러다보면 유명해지기도 하고 그러는 거죠.

- 글쎄, 그게 모르는 소리라니까. 그래가지고 어느 세월에 유명해지나?!

- 아, 그만두세요. 지금 그런 거 생각할 때 아니에요. 난 지금 공부중이라구요. 나가주세요. 당신이 있으면 작업이 안 돼요.

- 그래서요?

- 왠지 손에 힘이 빠져버리는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난 관심이 지나쳐 그럴 거라고 좋게 생각했죠.

- 네...

- 정말이지 그이는 관심이 지나쳐서 내게 부담이 되기까지 했어요.

그이는 끊임없이 내 아틀리에를 들락거렸고 끝없이 자기의 계획이란 걸 펼쳐보였어요.

그래서 난 애원했어요. ‘제발 모른 척 내버려두세요. 그런 식으로 유명해지고 싶지 않아요.

그랬더니 한동안 꾹 참는 눈치였어요. 하지만 어느 날 밤, 난 그가 참고 있는 게 아니란 걸 알았어요.

깜빡 잠들었다 목이 말라서 일어나니 그가 없었어요. 화장실에라도 간 줄 알았는데

금방 돌아오지 않길래 거실로 나갔더니 아틀리에에 불이 켜져 있지 뭐에요.

(문 여닫는 소리)

- 어? 여보!

- 마침 잘 왔어. 이리 와봐.

- 무슨 일이에요? 자다 말고. 아틀리에에 눈이 들어와서. 또 화는 왜 내는 거죠?

- 지금 내가 화를 안 내게 됐나?

- 내가 뭘 어쨌길래...

- 몰라서 물어? 거기 좀 앉아요!

(음악)

박웅, 배한성, 송도영.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곡 노래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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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여섯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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