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춤추는 겨울나무 - 제13화 결혼 첫날부터 사랑하지 않았어요
춤추는 겨울나무
제13화 결혼 첫날부터 사랑하지 않았어요
1979.10.13 방송
(음악)

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음악)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세 번째.

(음악)

- 아...

- 어머, 선생님.

- 잘 주무셨습니까?

- 네, 난 그인줄 알고.

- 오늘은 일요일입니다. 아무도 오지 않아요. 일요일에는.

- 아, 그래요.

- 강세경 씨.

- 네.

- 강세경 씨는 왜 박영진 씨와 결혼했나요? 사랑했기 때문인가요?

- 난 그이를 사랑한다고 믿었어요.

- 지금은 사랑하지 않습니까?

- 난 결혼 첫날부터 그이를 사랑하지 않았어요.

- 결혼 첫날부터요? 결혼할 때는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왜 결혼 첫날에 사랑하지 않게 됐을까요?

- 그건 말할 수 없어요.

- 아, 그래요.

- 그건 말할 수 없어요...

- 박영진 씨는 어떤 분인가요? 이럴 테면 성격이라든가.

- 난 그이를 몰라요.

- 부분데도요?

- 난 그이가 어떤 사람인지 몰라요.

- 남편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니 그게 무슨 뜻이죠?

- 그이는 거대한 벽이에요.

- 거대한 벽?

- 그이는 내가 싫어하는 일만 좋아해요.

- 이를 테면?

- 난 파티를 싫어하는데 그이는 파티광이에요.

- 부인은 왜 파티를 싫어하십니까? 파티는 즐거운 일인데요.

- 파티가 즐겁다구요?

- 다들 그렇잖아요? 즐겁자고 파티를 여는 거 아닌가요?

- 하지만 난 파티가 싫어요. 즐겁자고 여는 파티가 아니란 말이에요. 내가 왜 파티를 싫어하는지 아세요?

- 세경이, 준비 다 됐어?

- 네, 다 됐어요.

- 어디 이리 가까이 좀 와봐요.

- 아... 왜요? 어디가 또 잘못... 됐나요?

- 어디, 뒤로 좀 돌아서봐.

- 네...

- 드레스가 짧잖아! 구두 뒤꿈치가 보여!

- 아이, 좀 보이면 어때요.

- 어떻다니! 품위없게시리. 딴 드레스로 갈아입어요.

- 아, 싫어요. 난. 이 옷이 어때서요?

- 구두 뒤꿈치가 보인다고 했잖아!

- 아, 그럼 굽 낮은 구두를 신죠, 뭐.

- 아니, 더 높은 걸 신을 궁리를 하지 않고 굽 낮은 걸 신겠다니! 당신 정신 있어?!

그리고 왜 이어링은 달지 않았어?!

- 난 이어링이 싫어요. 난 배우가 아니잖아요? 내가 이만큼 치장을 한 것도 다 당신이 원하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이만하면 조금도 예의에 벗어나는 차림이 아니에요. 그렇잖아요?

- 하지만 난 마음에 들지 않아요. 내 와이프는! 그 어떤 여자보다도 아름다워야 해.

아니, 아름답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야. 아름답기로만 말하면 당신 못지않은 여자들이 수두룩해!

한다하는 스타들이 있잖아! 하지만 내 와이프는 아름답고도 품위 있고 교양이 높아야 해!

왕녀 같은 기품과 예술가의 우아함을 갖춘 그런 여자여야 한다고. 내 말 알아듣겠소?!

- 미안하군요. 제가 왕녀 같은 기품을 갖고 있지 않아서.

- 아니야. 빈틈없이 다듬기만 하면 왕녀 같은 여자가 될 수 있어요! 지난번 양 회장 댁 파티 때 봤지?

남자들 모두 당신에게 매료돼서 우리 주위에 모여들고 그들의 파트너들은 눈에 쌍심지를 돋구고 뒤에 처져서 당신을 훔쳐보는 그 꼬락서니를 말야. 그때처럼 그렇게 빈틈없이 차려 입어요! 어서 드레스도 딴 걸로 바꿔 입고 이어링도 하라구! 옷이 없나, 보석이 없나. 뭐가 부족해서 그러는 거야! 당신!

- 난 이렇게 치장하느라 세 시간을 허비했어요! 그런데 또 드레스를 갈아입으라구요?!

- 갈아입으라면 갈아입어요. 시간 없으니까.

- 여보, 그냥 이대로 가요. 이만하면 내가 보기엔 훌륭해요. 이거 새로 맞춘 드레스예요. 디자이너가 어련히 알아서 해줬겠어요. 그리고 난 피곤해요. 어떻게 또 드레스를 갈아입겠어요?! 이러다간 파티에 가기도 전에 지쳐버리겠어요!

- 처음부터 성의를 가지고 치장을 했으면 이러지 않아도 되잖아! 당신은 도무지 성의가 없어요!

- 난 하느라고 했어요!

- 하느라고 한 게 그래?!

- 하아... 당신은 남자예요. 아무려면 내가 당신만 못할 것 같애요?! 내가 괜찮다면 괜찮은 거예요! 갈아입지 않으려고 그래서 하는 소리가 아니에요.

- 하지만 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잖아요!

- 왜 그러고 있는 거지? 시간 없다는데.

- 여보, 내가 아무리 당신의 아내기로 어떻게 100% 당신 마음에 들 수가 있어요?! 나도 때때로 나 자신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어떻게 내가 항상 당신 마음에 들을 수가 있겠어요?! 그리고 난 배우가 아니잖아요.

- 당신의 신분을 잊지 말아줘. 당신은 참 이상한 여자야. 딴 여자들은 당신같이 살고 싶어서 요동을 치는데 당신은 왜 그래?!
제발 그 소시민 근성 좀 버리라구. 이제 대재벌의 맏며느리답게, 내 아내답게

사람들 위에 군림을 해보란 말야! 제발 좀 왕녀처럼 굴어보란 말야.

난 뭐든 최고가 아니면 싫어. 학교 다닐 때도 난 늘 수석이었어!

그렇다고 절로 1등이 된 게 아니에요! 1등을 지키기 위해서 난 남들이 놀 때 공부를 했어! 앞으로 두고 보라구. 난 몇 년 안에 우리 그룹을 한국 제일의 재벌로 만들어놓고 말 테니까. 그래도 내 말을 못 알아듣겠소?! 옥도 갈아야 빛이 나는 거야. 어서 가서 갈아입고 나와요.

- 하아.

- 왜 한숨을 쉬는 거지?

- 난 도무지 모르겠어요. 내가... 왜 이렇게 쓸데없는 일을 해야 하는지를.

- 쓸데없는 일이라니. 당신 거 지금 말이라고 하는 거요?!

- 그럼 이게 쓸 데 있는 짓이에요? 이렇게 몇 시간씩 허비하며 성장을 해서 내가 가는 곳이 어디죠?!

- 몰라서 묻는 건가?

- 난 그 파티라는 게 지긋지긋해요!

- 뭐?! 지긋지긋해?!

- 네, 지긋지긋해요.

- 왜!!

- 그게 어디 파티예요?!

- 당신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 파티란 말이에요. 즐겁자고 모여 먹고 마시고 춤추고 떠드는 게 파티 아니에요!

- 그래서?

- 헌데 우리가 가는 파티는 그런 파티가 아니잖아요?!

- 그런 파티가 아니라니?!

- 상류사회의 파티는 다 그런가요? 즐겁자고 여는 파티가 아니라 자기과시의 전시장이고 경쟁의 불꽃이 화사한 웃음 뒤에서 탁탁 소리를 내며 타오르는 가식의 무대예요!

- 가식의 무대?!

- 네! 그래요! 당신은 언제나 그 가식의 무대에서 내가 주인공이 될 걸 강요하구요!

- 당신 지금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는 거야?!

- 싫단 말이에요!! 몇 시간씩 허비해가며 이렇게 차려입고 즐겁지도 않은데 끝없이 즐거운 척 웃어야 하는 게 싫단 말이에요!

- 하지만―.

- 하지만?!

- 하지만 난 당신의 아내이기 때문에 싫단 소리 안 하고 여태까지 잘해냈어요.

하지만 날이 갈수록 피곤해요. 파티라는 것도 지긋지긋한데 거기서 주인공 노릇까지 해야 한다는 게 말할 수 없이 피곤해요! 그러니 제발 내게 너무 많은 걸 강요하지 말아주세요. 네?

- 이봐요. 당신 여태까지 내가 한 얘기를 못 알아듣고 있군. 어?

- 다 알아 들었어요. 수십 번 들은 얘기 아니에요?

- 근데 왜 엉뚱한 소릴 하고 있는 거야?!

- 내가 당신의 아내이기 때문에 가기 싫은 파티에 아무 말 않고 가듯이 당신도 날 위해서 그 병적인 허영을 좀 죽여 달라는 말이에요. 파티가 있을 때마다 내 몸 치장을 샅샅이 검사하는 일을 좀 그만두어 달란 말이에요!

- 듣기 싫어!! 뭐? 병적인 허영?!

- 아니라고는 못할 거예요.

- 당신이라는 여자는 정말 이상한 여자야. 어째서 그게 병적인 허영인가!

남자들의 당연한 심리지!

- 천만에요. 당신 같은 남자는 흔하지 않아요. 그건 남자들의 당연한 심리가 아니에요!

- 어쨌든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야. 지금 시간이 없어요. 어서 옷이나 갈아입어요.

- 난 싫어요!

- 듣기 싫어!! 싫고 좋고는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고 내가 결정하는 거야! 내가 말야! 내가!!

(음악)

박웅, 배한성, 송도영.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곡 노래 최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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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열세 번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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