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
(음악)
배명숙 극본 이기상 연출 춤추는 겨울나무 네 번 째.
(음악)
- 무슨 꿍꿍이 속이 있어서 꼭 이기겠다는 건지는 몰라도 아마 잘 안 될 텐데.
- 두고 보라구, 오늘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진 않을 테니까.
(바둑돌 놓는 소리)
- 아, 참. 그 여자들 누구야? 식당에서 같이 점심 먹던.
- 사촌동생. 한쪽은 동생 친구고.
- 오~라, 동생이 노총각 오빠한테 친굴 소개했군. 그렇지?
- 틀렸어.
(바둑돌 놓는 소리)
- 틀려?
- 견학 온 거야. 소설가거든. 친구가.
(바둑돌 놓는 소리)
- 그~래? 아, 그럼 그 소설가 결혼한 여잔가?
- 글쎄, 그건 모르겠어.
(바둑돌 놓는 소리)
- 멍청한 친구야, 아, 그것도 안 알아보고 뭐했어? 어느 쪽이 소설간지는 몰라도 둘 다 그럴 듯해 보이던데. 내 이러니 노총각 신세를 못 면하지. 헤헤, 참.
- 후후후후후.
- 웃으니 속은 편타. 아, 그런데 자네 대체 어떤 여자를 고르나?
- 고르기는, 아니, 여자가 물건인가? 고르고 말고 하게?
- 대강대강해서 결혼하라구. 혼자 사는 거 지긋지긋하지도 않은가? 나 같으면 지겨워서라도 장가 갔겠다.
- 아, 바둑 두는 사람 어디 갔나?
- 아, 여기 있어요. 어, 아, 언제 이렇게 됐지?
- 하하하하하하하하하.
- 허, 나 이거야. 예라, 모르겠다. 참.
(바둑돌 놓는 소리)
- 내 걱정 말고 바둑판이나 열심히 들여다 봤음 한 번 이겨볼 수도 있잖어.
- 내가 오늘 기어이 이겨볼려고 했던 것도 다 자네 때문이야.
- 나 때문이라니?
- 사실은 자네한테 소개하고 싶은 여자가 있어.
- 무슨 꿍꿍이 속인가 했더니만.
- 오늘은 내가 이긴 걸로 하고 내가 하자는 대로 하자구. 응?
- 관둬. 고맙긴 하지만 난 싫어.
- 도대체 죽어라 하고 소개하겠다는 여자들 마다하는 이유가 뭐야?
- 어색해서 싫어. 내가 선을 안 보는 이유는 단지 그것뿐이야.
- 만남에 낭만이 없다는 건가?
- 뭐, 그러지 않아도 만날 사람은 다 만나게 돼있는 거 아닌가?
- 흐흠, 자넨 역시 로맨티스트야. 난 때때로 자네가 부러워. 인생에 대해, 여자에 대해 아직도 꿈을 가지고 있는 자네가.
- 그럼 자넨 꿈이 없다는 건가?
- 난 이미 꿈에서 깨어나고 있는 중이거든. 꿈이란 꾸고 있을 때가 좋은 거니까.
- 사람두, 나가자구. 대신 내가 오늘 한잔 사지.
- 음, 그래. 나가서 오랜만에 자네하고 실컷 좀 마셔보지.
(음악)
(전화벨 소리)
(전화 수화기 드는 소리)
- 네. 병원입니다.
- (전화 음성) 이 선생님이세요?
- 네, 누구시죠?
- (전화 음성) 네, 저 강세인이에요. 선생님.
- 어, 세인 양. 웬일이죠?
- (전화 음성) 오늘 가 뵙고 싶은데 언제쯤 가면 될까요?
- 아무 때나 오세요.
- (전화 음성) 사실은 어제처럼 수연 언니하고 마주치게 될까봐서요.
- 그분 오늘 안 옵니다. 이젠 안 오십니다.
- (전화 음성) 아, 네 그럼 곧 가뵐게요.
- 그러세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전화 호출 누르는 소리)
- 네.
- 미스 리, 7호실 환자 어떡하고 있어요? 식사해요? 이제?
- 오늘 아침도 안 먹었어요.
- 알았어요.
(음악)
- 왜 식사를 안 하십니까? 강세경 씨. 어제 하루종일, 그리고 오늘 아침도 안 드셨다고 하던데 식욕이 없으세요? 커피 한잔 드시겠어요? 몹시 피곤해 보이세요.
- 잠... 자고 싶어요.
- 그럼 주무세요.
- 그런데 잠이 안 와요. 수면제를 주세요.
- 식사도 안 하고 수면제를 먹으면 안 되는데요.
- 자게 해주세요, 선생님.
- 그럼 식사를 하세요. 식사를 하시면 수면제 드리겠어요. 그래야 됩니다. 그렇게 하시는 거죠? 네?
됐어요. 식사하시고 푹 주무세요. 조금만 기다리세요. 수면제랑 갖다드리라고 할 테니깐요.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흠.
- 선생님.
- 왜?
- 탁구 안 치실래요?
- 그랬으면 좋겠는데 나 지금 바빠요. 내일 점심시간에 칠까?
- 그러세요, 그럼.
- 오늘도 구경서 씨랑 싸웠나?
- 아니요, 독방으로 보냈더니 약화가 팍 죽었던데요.
- 어, 미스 리. 7호실 환자 식사하게 해주고 수면제 2알만 갖다줘요.
- 어머, 식사하겠대요?
- 어, 수면제 먹는 거 확인해요. 지켜보고 서서.
- 네.
(음악)
- 서수연 씨한테 언니 일을 알리지 말라는 건 형부의 당부 때문인가요?
- 언니가 입원한 후에 수연 언니가 여러번 전화를 했더래요. 그런데 형부가 언니는 파리로 갔다고 말해버렸다지 뭐예요. 그랬는데 지금 어떻게 사실 대로 얘길 하겠어요.
그리고 형부는 언니 일을 절대로 남들이 알아선 안 된다고 했어요. 친구도 남은 남이니까요.
- 태양그룹 총수의 맏며느리라는 신분 때문에 말입니까?
- 어, 어떻게 아셨어요? 네?
- 서수연 씨가 지나는 얘기로 하는 걸 들었어요.
- 아, 그랬군요. 하지만 선생님. 형부한텐 아는 척 하시지 말아 주세요. 형부는 자존심이 유난한 사람이에요. 만약에 선생님이 자기가 누구라는 걸 알고 계신다면, 그걸 안다면 형부는--.
- 그게 그렇게 중요한 문젠가요?
- 형부는 자신을 완벽한 남자라고 믿고 있는 것 같애요. 남편 노릇도 완벽하게 했다고 자부하고 있구요. 그런데 언니가 저렇게 되니까 언니한테 배신감 같은 거까지 느끼고 있는 것 같애요.
형부는 언닐 용서할 수 없다는 얘기까지 했어요.
- 저한테도 그런 소릴 하더군요.
- 제가 보기에도 형부는 남자로서나 남편으로서나 거의 완벽해 보였어요. 완벽한 남자, 완벽한 남편.
-형부는 그렇고 그런 재벌2세가 아니에요. 신사고 겸손하고 치밀한 엘리트예요. 태양그룹이라는 배경이 없어도 충분히 훌륭한 그런 남자같애요. 제가 보기엔.
- 세인 양은 아직 학생이신가요?
- 아니요. 작년에 졸업했어요.
- 모습은 아직 학생 같은데. 근데 형부는 왜 처가 식구들에게까지 아내의 병을 숨겼을까요?
- 왜 숨겼냐고 했더니 그러더군요.
정신병원이라는 데는 환자에 대해서 묻는 게 많아. 물론 치료를 위해서지. 그러자면 자연히 우리가 누군지 알려질 거 아닌가. 그건 언닐 위해서나 날 위해서나 내 아버님을 위해서나 바람직하지 못한 일이야.
나라면 끝까지 신분을 숨길 수 있지만 처제나 장모님은 그렇지 못할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야. 헌데 이 일이 나 혼자만으로 수습될 일이 아닌 것 같애서 알리는 거야.
그러니까 처제도 이 점을 명심하라구. 처제도 언니가 정신병 환자라는 딱지가 붙는 것은 원치 않겠지?
- 이해는 가는군요. 하지만---.
(전화벨 소리)
- 실례해요.
(수화기 드는 소리)
- 네.
-(전화 음성). 이 선생님. 저, 어제 뵀던 서수연이에요.
- 아, 그러세요?
- (전화 음성) 어젠 폐가 많았어요.
- 천만해요. 폐라뇨. 충분히 알고 가시지 못해서 오히려 미안합니다. 미진한 게 있으시면 한 번 더 오십쇼.
- (전화 음성) 아니에요. 어제로 충분해요. 아, 그보다 제가 선생님께 저녁 대접 해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죠?
- 저녁을요?
- (전화 음성) 이를 테면 원수를 갚고 싶다는 얘기예요.
- 아니, 그게 뭐 원수가 됩니까.
-(전화 음성) 아하, 전 원수로 생각되는데 어쩌죠?
- 아하하하. 그럼 갚으십쇼. 받겠습니다.
-(전화음성) 고마워요, 그럼 7시 광화문에 있는 토스카 어떠세요?
- 좋습니다. 그럼 이따 뵙죠.
(수화기 내려 놓는 소리)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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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방송 개국 16주년 기념 오백만 원 고료 라디오 드라마 입선작 배명숙 극본 춤추는 겨울나무 이기상 연출 네 번 째로 고려야구, 동산유지 공동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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