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에잇!
- 에헤. 마 세차례 쳤으면 됐제. 또 칠라코하나?
- 넌 평생 뺨따귀나 맞고 있어도 모자라. 이 손 놔.
- 니 세살 난 얼라가? 마 세상 그런줄 몰랐나 말이다. 보그레이. 마 내가 그 아주머니한테 공갈을 쳐 갖고 돈을 긁어낸건 모두 사실 아니가? 그라니 어짜겠노. 마 내 혼자 콩밥 먹고 마 인생 망쳐야 되겠나? 마 그저 마 내가 최소한 도로 살아가기 위해서 거짓말 좀 시켰는데 그게 뭐가 잘못이가
- 뭐라구? 기가막혀서.
- 흥. 우습제?
- 그래. 웃음밖엔 안 나온다.
- 마 그래도 내는 양심이 있는기라. 마 아주머니 한테 긁어 낸 돈. 그거 마 반으로 뚝 짜르자. 반은 니 줄께
- 그만 둬. 그런 더러운 돈 난 안 만져.
- 와 그라노? 마 우리가 사는 목적이 뭐꼬? 마 사랑이가? 마 남자하고 여자하고 만나서 사랑할라고 사는기가? 헷. 아니다. 마 그런건 자연적으로 하게 되 있는기라. 마 문제는 돈 아니겠나. 마 돈이 있어야 인간답게 사는기라. 물론 마 내 정신 상태가 썩었다고는 내도 인정한다. 마 하지만도 어느 수준까지 살때까지는 마 물불가리지 말고 돈을 모야아 하는기라. 알겠나?
- 너 같은 인간을 믿고.
- 지영아 이 가시나야. 니는 내 진심 모른데이.
- 진심? 너 같은 인간에게도 그런게 있기나 있어?
- 보그라. 내는 니를 마 쬐~끔은 마 사랑은 하는기라. 마 내 아를 낳았는디 마 와 안 좋아하겠노. 마 하지만 현실적으로 우째 그 아를 키울수 있겠노? 그라니께 마 목적을 달성할때까진 마 인정에 기울어선 안되는기라.
- 알았어. 목적 달성할 때까지 잘 살아 봐.
- 보래이. 마 기다려 보그라. 내도 양심 바로 먹고 마 올바르게 살 날이 있을기라. 마 그때까지 기다리구마. 마 알겠제?
만길이 미워할 것 없어. 만길이가 돈에 환장을 해서 두 눈이 뒤집혔다고 해도 그런 만길이 잘못만은 아니야.
- 기막힌 녀석이군. 그래도 그 녀석은 애교나 좀 있는 편이구나. 그래 앞으로 어떡할꺼니? 고향으로 내려갈꺼니?
- 흥. 뭐 먹고 살라구.
- 그럼 다시 일 나갈거야?
- 나도 만길이 처럼 목적을 만들기로 했어. 나하고 솔잎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어야 겠다고.
- 하하. 이제야 내 말 알아먹는구나. 더 늦기 전에 돈 벌라고 그랬지? 돈.
- 미안하우. 이제야 철 나서.
난 변했어. 돈만 아는 여자로. 하지만 부끄러울 것 없다구. 사람이란 그런거 아냐? 벗어던지기 시작하면 세상에 옳고 그른거 자체가 애매모호해 지는 거라고.
- 27번
- 왜 그래?
- 3번 테이블 들어가봐.
- 오늘은 좀 쉬고 싶은데.
- 쉴 데가 없어서 여기 나왔어?
- 오늘은 웃을 기분이 안난다 말이야.
- 언젠 기분내서 웃었어? 그냥 웃는거지.
- 허허. 말 잘하네.
- 웃기는 수작 그만하고 어서 들어가 봐.
- 알았어.
뭐 그런식으로 세월만 갔는데. 세상 넓고도 좁다고 하필이면 들어간 테이블이 맙소사!
- 어머!
- 아 지영이 아니야?
- 아휴. 아 이게 누구세요. 윤사장님 아니세요?
- 아이. 구면인가?
- 으응. 좀...
- 아이. 너무 하세요 사장님. 어쩜 그렇게 발을 딱 끊으세요.
- 허허. 열녀 춘향이 만났군 그래.
- 사장님도 이젠 늙으셨네요? 어머 새치 좀 봐.
- 아이구 그 녀석 눈도 밝다.
- 어떻게 지냈어?
- 뭐라고 대답해 드릴까요? 신나게 살았다고 하면 사장님 마음이 좀 아플꺼구. 그저 그랬다면 그저 그렇구. 죽지 못해 살았다면 사장님 너무 좋아하실 꺼구요.
- 야. 너 닳아 빠진 타이아 바꾸 같다. 빵구 직전에.
- 헤어져 버린 바지가랑이 같구요? 자 술이나 드세요.
윤상도씨. 그 이름이나마 기억하고 있는게 희한하지 뭐야.
- 미스 민.
- 어이 사장님. 미스 민 아니에요. 여지껏 성도 착각하고 계시나봐?
- 미스 민이면 어떻고 미스 김이면 어때 젠장.
- 아 맞아요. 미스 김이에요.
- 지영이.
- 또 엄숙한 얼굴. 그럴 필요 없어요. 갑자기 옛날 생각 났나 봐. 우리 사장님.
- 취했구만.
- 그럼 정신차리고 사장님 똑바로 쳐다보란 말이에요? 제정신 갖구요. 그래서 어떡하죠? 아휴. 벌써 가시려구요?
- 어. 계산서 가져 와.
- 아. 가만히 있어요~ 2번씨 여기 계산서.
- ♪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보니♪ 어머 사장님 아직 안가고 여기 계셨어요? 고마워요 사장님.
- 아니 웬 술을 그렇게.
- 취해야지요. 안 취하면 진짜 현기증나서 어지러운 걸요. 어지러워서 못 살겠는데 어떻게 해요. 취해야지요. 그래야 죽지 않고 살지요.
- 고생이 많은가 보구만.
- 헤헤헤 어쩌면 인정도 많으셔라.
- 자. 내가 집까지 데려다 주지.
- 사장님. 아주 나쁜 사람이군요.
- 자. 가자구.
- 놔요. 예의도 없으신가 봐. 이럴 땐요 그저 모른척 하시는 거라구요. 그게 예의죠. 안 그래요. 윤선생님? 아니 사장님.
- 마음이 아프구만. 지영이 이런 모습을 보니까.
- 뭐라구요? 안 되겠는데요? 사장님 길거리에서 여자한테 따귀 맞아 본 적 있으세요? 없지요? 그런 꼴 당하기 싫으면 이 팔 놓으세요.
- 음.
- 고마워요. 그럼 가보겠어요.
- 지영이! 정말 혼자 갈 수 있겠어?
- 혼자 갈 수 있느냐구요? 사장님 전 지금껏 혼자로 살아왔어요. 몇 번이나 숨넘어가는 고통 당하면서요. 혼자요. 죽지않고 잘 살아 왔어요. 그런데 이까짓 술 좀 마셨다고 집까지 못 가겠어요? 혼자도 살아왔는데 혼자 걷지도 못할 가봐서요? 보세요. 나는 비틀거리지 않고 갈 테니까요. 보고 계세요. 내가 비틀 거리나 잘 걸어가나. ♪ 눈물을 감추려고 하늘을 보니♪
난 말짱 했다구. 취하지 않았고. 그래. 난 말짱했어. 난 비틀거리지 않았고. 똑바로 걸어갔어. 비틀거리는건 내 걸음걸이가 아니야. 비틀거리는 내 영혼. 하지만. 난 잘 살거야. 나 한텐 솔잎이가 남아있거든. 솔잎이. 내 딸.
제27화 걱정 안해. 너 잡초잖아. ◀
(입력일 :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