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난 만길이를 믿고 싶었어.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있지? 내가 그랬어.
- 헤헤. 마 닌 속고만 살았나?
- 똑바로 말해봐.
- 마 몇번이나 말해야 되나? 피땀 흘려서 번 돈인기라. 마 니하고 솔잎이하고 셋이서...
- 정말 맘 잡은거야?
- 아유 웬 놈의 의심이 그리 많나?
- 의심 안 하게 됐어?
- 믿어서 남 주나. 마 믿그라 믿어.
- 그래. 믿어 볼께. 하지만 또 한 번 나 속이면 그 땐 끝장이야.
- 마 알았다. 알았어. 보그래이 그라믄 마 오늘부터 직장나가는거 그만 두그래이. 그라고 마 니 아부지 만나갖고 고향으로 내려가라케라.
- 아부지?
- 마 우리가 모셔야 안 되겠노?
- 호호호호
- 마 와 웃노?
- 기특해서.
- 니 말 조심 하그래이.
- 죄송합니더.
- 이쁘네. 마 고분고분해지니께내. 으잉?
아버질 찾아 나섰지.
- 아버지. 아버지에. 이야기 좀 하입시더.
- 니 왔노?
- 이 근처에 다방 없는기요?
- 쓴 커핀 와 묵노. 자 할 얘기 잇으면 여기서 하그라.
- 아부지요 지하고 고향에 내려가입시더.
- 고향?
- 네. 만길씨하고 결혼하기로 했는기라에. 만길씨가 아부지 모시겠다캅니더. 와 대답이 없는기요.
- 느그끼리 내려가그라.
- 와에?
- 내는 내 힘으로 사는게 마음 편한기라.
- 고집피지 마이소.
- 내려가지 못 할 사정이 있다.
- 먼기요? 재혼했습니꺼?
- 미안타.
- 참 말인교?
- 고향가그라. 가서...
- 알...알았습니더. 그만 하이소.
- 식 올리면은 연락해라.
- 오실 필요 없습니다. 어무이 버리고 딴 여자하고 사는 아버지 필요 없습니더. 오지 마이소.
- 그래.
- 갈랍니다.
- 지영아이~
- 와에.
- 잘 살그라~
- 그런 걱정 안 해도 됩니더.
- 시골 집으로 내려 갈거니?
- 내려 가야지.
- 만길이 하고?
- 응
- 하여간 잘 됐다. 윤선생 찾아와서 기다리다 갔다.
- 윤선생님?
- 메모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만나자. 그 때 그 다방에서 지영이 나올때까지 지다리고 있겠다.
- 뭐래?
- 만나제.
- 끈덕지구나 그 사람. 어디갈려구?
- 만나야지.
- 만나서?
- 따귀라도 한 대 올려 부치겠다고.
- 아직도 내 얘기 못 알아 들으셨나요?
- 흠...
- 아저씨. 저는요 아저씨 좋아한 적이 없어요. 아저씨한테 잘해 드린건요 한 밑천 잡아 볼까 하고 그런 거구요.
- 지영이...
- 도대체 저한테 해주신게 뭐가 있어요? 돈을 주셨어요? 집을 사줬어요? 뭘 해줬어요?
- 그런 걸 원했었나?
- 그럼 뭘 원했겠어요. 사랑이요? 아저씨 사랑이요? 허허. 아저씨 참 순진하시네요. 그렇게 순진한 분이 어떻게 결혼은 앞뒤 계산해서 하셨나요?
- 마음에 없는 소리는 하지도 말라고. 그게 지영이 본심이 아니라는거 난 잘 알고있어.
- 별난 착각 다 하시네요. 내 본심이 그게 아니면요. 그럼 아저씨 저하고 결혼이라도 하실 생각이에요?
- 이혼했다고. 이혼을 한 거나 마찬가지야. 그 여자가..
- 그 여자 그 여자 하지 마세요. 듣기 거북해요. 자기 와이프 험담하는 분치고 좋은 분 없데요. 어차피 헤어지지도 못할 거면서 괴로운척 하구요.
- 난 지영일 속일적이 없어.
- 속일려고 시작한건 아니겠죠. 하지만 결과는 그래요. 아저씬 날 속였어요. 그래요 빈털터리 됐다고 했던 날 말이에요. 난 아주 좋았어요. 빈털터리 된 아저씨가 보기 좋았어요. 세상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그렇게 생각했었어요. 사랑이라는 거요. 그런거 믿어도 되나 보다 하고 생각했었어요.
- 피치 못할 사정이 있었다고 했잫아. 그 땐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 하지만 지금은 나올 수 있다 이 말이죠? 하지만요 아저씨 하지만 내일이면 아저씬 또 집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아저씨 그런 실현 불가능한 약속은 하지 마세요. 술집에 오셨으면요 그냥 술이나 마시세요. 그게 더 인간적이죠. 우리같은 여자와 동정하는 척 하시면서 인생이니 뭐니 쳐 들어서 현혹시키지 마세요. 그러지 않아두요 속구 또 속구요 속상해서 눈물나오구요 살기싫을 때도 종종 있다구요. 그럴 땐 모른 척이나 하시라구요. 따라주는 술 맛있게 마시면 된는 거라구요.
- 헤어지자는 말인가?
- 헤어져요? 우리가 언제 만났었나요? 헤어지고 말고가 있는 거에요? 그거 그런거죠.
- 난 지영이를 결코 단념하지 않을거야.
- 고맙군요. 그 말씀. 아저씨 나 감격시킬려고 꽤나 애쓰시네요.그래요. 아직도 그런말 들으면 난 감격하구요 무조건 아저씨 좋아한다구요. 하지만 그런 장난은 이제 그만 두는게 좋겠어요.
- 장난이 아니라니까 지영이.
- 장난이 아니면 그런 농담 그만두기로 해요. 가 보겠어요.
- 오늘부터 당장 일 그만 둘거니?
- 가서 솔잎이 데려 와야지.
- 만길인 어떻게 알고 있니? 솔잎이가 자기 딸이라고 알고 있어?
- 그렇게 말해줬어. 키운데 자기가.
- 신통하구나. 아무튼 잘 됐다. 여자란 그저 결혼해서 평범하게 사는게 제일 행복한거야.
- 언니도 결혼 하구려 그럼.
- 나? 난 틀렸어.
- 왜? 언니 아직 예뻐. 늙지도 않았고. 언니가 생각하는 것 처럼.
- 늙어서가 아니야.
- 그럼.
- 마음속에 불이란 불은 다 꺼졌다. 누굴 사랑할수도 없고. 누군가의 사랑을 받아들일 수도 없어. 이대로 사는거지.
- 누군가 언니 가슴에 꺼진 불을 다시 지를 사람이 나타날거야.
- 다 타버렸어. 이 생활 십년에 다 타버렸지. 너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는 구나.
- 눈에 불이 나도록 내 뺨을 때렸었지.
- 아팠었니?
- 아팠어. 하지만 그 때가 좋았었지. 아픔을 느꼈으니까.
- 지금은?
- 다 잊어 버렸어. 다신 아파하지 않을거야.
- 솔잎이 한테나 가 봐. 그 애나 잘 키워.
- 잘 키워야지. 그 앤 내 유일한 희망이야. 내가 저지른 죄를 그 애가 대신....
- 지영아. 죄의식 느낄 필요 없어. 그런 경우 누구나 다 너처럼 할 수 밖에 없는 거야. 무조건 낳기만 하면 어떻게 하니?
- 난 너무 어렸어. 지금이라면 병원같은데 절대로 안 갔을 거야. 난 난...
- 너무 괴로워 하지마. 솔잎이가 있잖아.
- 그래. 그 앤 꼭 내가 난 애 같애. 그 앤. 언니, 난 진짜 솔잎이 엄마가 될거야. 그 앤 죽었으니까. 그것보다 더 가혹한 형벌이 어딨어.
제23화 결혼할 생각이란 말이야? ◀ ▶ 제25화 세사람 모두 덫에 걸린 꼴이지 (입력일 :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