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무교동 밤 11시, 그런 시간에 그 거리를 뛰어 본 사람은 알거라구. 거기선 인생이 왠통 뒤죽박죽이 돼버리는거야. 노름의 끝장처럼 사람들은 허둥지둥 집으로 집으로.
- 지영이.
- 왜요? 집까지 데려다 주시겠다구요?
- 할 얘기가 있어.
- 얘기해 봤자 밤낮 그 얘기가 그 얘기 아니에요? 어린애 장난도 아니고 왜 그래야돼요.
- 마지막이야. 더이상은 얘기 안하겠어.
- 마지막이요?
- 그래. 마지막 부탁이야.
- 다신 선생님 뵐수 없다는 뜻인가요?
- 그럴지도 모르지.
- 아, 그럼 큰일 났네요. 전 선생님 보고 싶어하는 재미로 사는데요. 좋아요. 내일 만나요.
- 지금 당장 얘기하지 않으면 안돼.
- 참 바보군요. 선생님. 집에 가서 야단 맞을 짓 왜하세요? 내일이요. 그 다방으로 나오세요. 아시죠? 윤상도씨, 참 딱한 양반이야. 왜 몰라. 난 안좋아하나? 목이 메이는건 아저씨, 나도 목이 메인답니다.
- 어저껜 집에 잘 들어가셨어요? 그렇게 취해가지고도 운전 잘하시데요?
- 어. 기사가 없으니까.
- 그런데 어쩌자고 집에 안들어가겠다고 발버둥을 치셨어요?
- 우리 그런 얘긴 그만하지.
- 세상 사람들이 보면요. 선생님하고 저하곤 그저 그렇고 그런 관계에요. 그걸 몰라요?
- 지영이, 이런 말 하는거 면목이 없지만 내 마음은 변한게 없어. 난 여전히 지영이가 필요해.
- 필요해서요.
- 나하고 약속해줘. 무슨일이 있어도.
- 아저씨, 무슨 약속이요. 세끼 손가락 걸고 맹세 할까요?
- 난 장난을 치고 있는게 아니야.
- 그럼 정색하고 얘기할까요? 아저씨, 아저씨같은 분들 때문에 우리같은 여자들이 우는거에요. 앞으로 술집에 가셨을 땐요 술꾼답게 열심히 술이나 마시세요. 그게 차라리 우리같은 여자 편하게 해주는거에요.
- 난 더이상 견딜 수가 없어.
- 뭘요.
- 전 번 일만해도 그렇지. 내가 집으로 다시 들어간건.
- 참 답답하시네요. 그런게 문제가 아니에요. 아저씨가 날 속였다고 해서 화내는것도 아니구요. 내 말은요. 아저씨 일시적인 기분갖고 사람 괴롭히지 말라는거에요.
- 일시적인 기분이 아니라니까 그러네.
- 그건 아저씨 사정이지요. 아저씨, 아저씨 나 좋아하세요?
- 지영이.
- 좀 차근차근 생각해보세요. 현실적으로요. 이게 될 법이나 한 소리에요? 아저씨 지금 몇 살이에요. 못 먹어도 서른 몇이죠. 그게 적은 나이에요? 그 나이에 술집 여자한테 미쳐서요.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다 내팽개치겠다는 말이에요? 그런 어리석은 사람 믿고 누가 자기 인생 맡기겠어요. 그러니 아저씬 할 수 없는 거에요. 그런 위험한 장난 그만 두시구요. 살아오신데로 열심히 사시라구요. 갈게요. 차 잘 마셨어요.
- 하긴 좀 안됐어. 윤상도씨 좋은점도 많았지. 거짓말 잘 못 시키는거 그건 마음에 들었어.
- 실례합니다.
- 에게게.
- 의상 좋구마.
- 웬 일이야?
- 웬 일은?
- 마 술집에 술마시러 왔는데 뭐가 이상하노?
- 아~ 손님?
- 오늘은 그러니께 손님으로 지영일 만나러 왔다 그거다. 마 내 돈은 티가 묻어서 안되나?
- 아! 왜 안돼.
- 멀쑥해 지셨군.
- 마 인간사 세옹지마나 안카나.
- 한 건 하셨어?
- 했제.
- 누구 등을 쳤니?
- 니 등은 안 쳤으니께
- 그러시겠지
- 그만 이죽거리고 술 따르그라.
- 손이 없어?
- 손이야 있제.
- 그럼 따라마셔.
- 내 손쓰고 마실래면 비싼 돈 주고 와 이런데 오나? 집구석에 자빠져서 만고강산 부르면서 마시제.
- 그럼 일찍 집으로 돌아가시던지.
- 돈이 있어야지 집으로 들어가지.
- 여기가 자선사업 하는 덴줄 알아?
- 마 그으믄 안 되나?
- 그어? 뭘 그러?
- 싸인이라하는가 안있나? 마 내도 싸인 좀 해 보자.
- 뭘 믿고 외상을 줘?
- 아 내 마누라가 이 집의 인기 호스테슨데 마 이거 하나 못 긋겠나?
- 에게게게게게
- 입에 쥐가 올랐나? 에게가 뭐꼬?
- 막 나가시겠다 그거군.
- 내도 결심을 바꾼기라. 니 여기 못 나오게 하는 방법은 이 방법 밖에 없는기라.
- 그래. 그어 봐. 난 상관없으니까.
- 앉어! 오늘은 심사가 사나운데 폭력적으로 나갈지도 모른데이.
- 무슨 자격으로.
-또 잊어묵었나. 우린 호적상으로 염연한 부부다 안 카나. 와 사람을 빤히 쳐다보노. 마 내 말이 말 같지 않다 그 말이가?
- 하하하.
- 어이가 없다 그 말이가?
- 아니.
- 그라믄?
- 만길이 귀여워서.
- 귀엽다? 허허허허.
- 말이지. 사람이 그 정도로 굳세게 던적스러울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귀엽기도 하고 그런 말이야.
- 마 끈기 한 번 알아 줄만 안 하나. 마 이 끈기 갖고 살아가며는 우리 잘 살수 있는 기라.
- 만길이. 정말 내가 좋아서 이러는 거야?
- 그라믄 뭘 바라고 이러겠나. 마 쎄고 쎈게 가시나 아니가. 아직도 내가 귀엾나?
- 에휴.
- 술 한잔 따라주까?
- 좋아. 마셔보자.
- 흠. 맘 잘 먹었다. 마 술 값 걱정은 말그래이. 마 내도 돈 있는기라. 자 쭉 들그라. 내가 말 안 했제? 나 말다. 마 그 동안 외판원 한기라. 발바닥이 부르트도록 뛰어 다녔제. 마 그래갔고 지사장 신임을 단단히 얻었는기라. 마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쓴다고 해도 믿게 됐제. 그래 마 한 건 안 했나.
- 한 건?
- 마 한 몫 잡어 갔고 마 내빼브렀제.
- 뭐?
- 놀랠것 읎다
- 마 지가 내를 잡고 싶어도 자을 재간이 없는기라.
- 도둑질을 했단 말이야?
- 그게 우찌 도둑질이고. 횡령이제.
- 뭐라고?
- 편질 한 장 써 놨제.
- 마 삼년안에 돈을 갚어 줄텐게 마 찾지 말라고.
- 하하하
- 참말이다. 보그라. 아버지랑 모시고 살라카믄 마 한 밑천 있어야 안 되겠나.
- 만길아.
- 와?
- 당장 그 돈 돌려주고 와.
- 돌려주고 오믄?
- 나 너 교도소 들어가 앉아 있는건 못 봐.
- 니 손해날 거 뭐 있노? 이 돈 갖고 살다가 마 들통나면은 니는 니대로 마 신나게 살면 그만 아니가.
- 만길아.
- 히히 히히히...
- 체. 정신 나갔군.
- 아니 내가 걱정되노 니?
- 뭐야?
- 니도 내 걱정을 하긴 하네? 으이? 아이고. 내는 앞뒤로 꽉꽉 맥혔는 줄 알았제. 걱정말그라. 마 요즘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마 내한테 돈을 떼멕힐 놈이 있겠노 응?
- 거짓말이었단 말이야 그럼? 하하 하하하.
- 만길이하고?
- 응
- 정말 결혼할 생각이란 말이야?
- 아무튼 솔잎이 아빠 아니야? 솔잎이 미국 보내는 것보다는 낫잖아?
- 말했어? 솔잎이가 딸이라는거?
- 알고 있어. 아니라 했지만 자기 딴엔 다 알아 봤나봐. 어때 내 생각이?
- 글쎄. 그 녀석이 정신을 차렸다는데 왠지 믿어지지가 않는다.
- 믿고 안 살면 그만이지 뭐. 사는데까지 살다가 뭐 그런거 아니야 언니?
제22화 다정하게 부르지 마세요 ◀ ▶ 제24화 아저씬 날 속였어요. (입력일 :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