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아부지. 그래,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이지만 난 눈물이 왈칵 치솟았어. 아부지 만나면 다 집어 치우고 시골 집으로 내려가자 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 지영아.
- 응?
- 니 아부지다.
- 어디. 어머?
- 맞제.
- 아부지였어. 허름한 옷차림에.
- 아저씨예.
- 으이?
- 지영씨 아부지 아니십니꼬.
- 아이 니는.
- 저 만길입니더. 저 문골살던.
- 아, 만길이.
- 맞습니더.
- 서울 와있노?
- 아 예. 마 지영이도 안왔습니꼬.
- 지영이?
- 저, 지영아. 이리 오그라.
- 아부지예.
- 니 지영이고?
- 예. 아부지.
- 와 그만 잡수시는교.
- 배부르다.
- 더 드이소.
- 많이 묵었데이.
- 마 지영이 돈 잘 법니다. 고마 맘놓고 잡수시소.
- 뭘 해서 돈을 버노.
- 뭐 장사 합니더.
- 아, 그래?
- 아주머니요. 여기 저 수육 좀 더 갖다 주소.
- 아아. 됐다. 됐다. 배부르다.
- 마 한잔 하셔야지예. 마 지도 좀 묵고요. 아주머니요. 퍼뜩 가져오소. 마 소주 한병하구요.
- 어무인 잘 있나.
- 어무이요.
- 고생들 만제?
- 어무이는 돌아가셨습니더.
- 음...
- 제작년에예.
- 죽었나. 고생만하드니.
- 아부진 뭐 하는교.
- 나. 그저 그렇지.
- 직업이 뭔교.
- 이거저거 한다.
- 고생 많겠네예.
- 마 일이 뜻대로 안되는고마. 돈 좀 모이면은 집에 갈라 했더니. 느그 어머닌 죽었고마. 느그 동생은.
- 이모집에 있습니다. 학비는 붙여주고예.
- 니가 고생이고마.
- 아부지, 집으로 돌아가입시더. 예?
- 차차 모여 살제이.
- 와예.
- 고생한김에 벌어야제.
- 아버지 행색 본께 돈벌긴 다 글렀습니다. 집으로 가입시더.
- 무슨 면목으로 이래 돌아가나.
- 자, 아저씨예. 마 지영씨 말대로 하입시더. 마 지도 그만 시골집에 내려갈 참 입니더. 마 농사 짓는게 백번 낫습니다. 마 지하고 지영씨하고 힘을 합치면 굶기야 하겠습니꼬.
- 아이, 니캉 지영이캉 그래 됐노.
- 예. 마 그래 됐습니더.
- 잘 됐고마.
- 저, 아저씨요. 아니 저 아버님요. 앞으로 마 걱정 탁 노이소. 마 지하고 지영이하고.
- 니는 좀 가만있그라. 아부지 우짤랍니꺼.
- 지영아이, 내 걱정 말고 니 계획대로 살아가그라. 아부진 일이 잘 되면은 고향으로 돌아갈낀께.
- 아, 참 그 아저씨도.
- 알았습니더. 아부지 마음대로 하이소.
- 아니, 니 뭔 말을 그래하노. 아부지 모시고 고향으로 돌아가야 안되겠나.
- 아부지 갈랍니다. 아부지 보고싶으면 또 찾아올께예.
- 아니, 지영아. 지영아.
- 니, 무정하데이. 마 아부지한테 그 무슨 태도고.
- 나 상관마.
- 니 아부지 고생 되게 하는 모양이데. 마 니가 잘 이야기를 해갖고 모시고 살아야 할거 아니겠나.
- 난 상관 말라고. 아부지가 집버리고 나간건데 고생해도 할 수 없지. 아부지 마음대로 살아가시게 모르척 해드리는게 약이야.
- 마 니는 인정도 없구마.
- 인정? 너는 인정있니?
- 과거지사 또 따질끼가.
- 그래. 과거지사니까 추근추근 따라다니지나 말란 말이야. 알겠어?
- 아이 니는 아직도 날 못 믿나. 마 그렇겠제. 과거에 내가 한 짓 생각하면 마 내가 생각 하기에도 나쁜 놈인기라. 하지만 내는 옛날의 만길이가 아니데이. 마 진실되게 이 세상 살아갈라카는게 아니겠나.
- 난 돈 벌거야. 귀찮게 굴지마.
- 웃음 팔아갖고.
- 남이야.
- 그래 돈 벌어선 마 소용이 없는기라. 마 낼 보그라. 마 그래 돈 버니까 남는게 뭐꼬. 마 이래 나가다간 내도 사기꾼밖에 될게 없는기라. 그래 마 마음을 안잡았나. 그래 내말 이해가 안되나.
- 우리 아부지 찾아줘서 고맙다. 또 봐.
- 지영아. 니 내 말 잘 생각해 보그라. 만길이, 옛날의 만길이가 아닌기라. 알겠제.
- 5번. 왜 16번 테이블에 안들어 가는거야?
- 다른 아가씨 보내줘요.
- 지명 손님이란 말이야.
- 지명이든 뭐든 난 거기 들어가기 싫어.
- 아니 얘가 갑자기 왜이래?
- 얘라니?
- 너 말 안들을거야. 정말?
- 이게 어따 삿대질이야?
- 어어?
- 아이 그만 둬. 지영아. 그깐 놈 들어가서 만나봐.
- 야, 너 왜그래?
- 말 조심해. 술집이 여기 뿐이야?
- 뭐야?
- 미스터 리.
- 넌 좀 빠져.
- 이 자식 봐라?
- 이 자식? 아니 이것들이 누굴 식어빠진 팥죽으로 아나 정말. 니들 맛 좀 보고싶어?
- 니가 날 칠래?
- 늙은게 그냥.
- 아 들어갈께.
- 관둬. 니들 당장 그만 둬.
- 들어가면 되잖아.
- 조심해 너. 나이살이나 쳐먹었다고 봐줬더니.
- 고맙다. 봐줘서.
- 취미가 묘하시네요. 이런 술집에 혼자 오는게 취미세요? 친구분도 없으신가봐. 어머 그러고보니 선생님 무척 고독해 뵈시는데요? 무슨 사연이 있으세요. 어디 좀 들려 주세요. 재밌겠는데요? 무슨 사연이죠?
- 지영이.
- 남의 이름 다정하게 부르지 마세요. 아니 난 지영이가 아니에요. 경자에요. 윤경자. 그 이름 맘에 안드세요? 아, 영숙이라고 할까요? 황영숙. 어때요? 괜찮아요?
- 내 말을 믿어줘. 늦어도 한 달 내로 해결을 할게.
- 뭘 해결을 해요?
- 아내는 날 사랑하는게 아니야. 그 여잔 자존심 때문에 날 안놔주는게야. 자존심만 충족되면 그 땐 날 버릴거라구.
- 어무나 선생님, 제가 청소차 운전기산줄 아세요? 쓰레기같은 인간이나 치우고 다니게요. 저두요. 먹고 사느라고 아주 고달퍼요.
- 좋아. 어떤 모욕이라도 달게 받겠어.
- 모욕이요? 이것도 모욕인가요? 아 선생님 참 편리하시네요. 선생님은 나같은 여자한텐 아무렇게나 하셔도 괜찮고 제가 투정을 좀 부렸다고 그건 모욕이 되나요?
- 음.
- 하하. 또 심각해 지시네요. 이번엔 한숨. 정말 그럴 듯 하시군요. 선생님, 차라리 배우가 되실걸 그랬어요. 제가 따라드리죠.
- 지영이.
- 5번이에요. 5번 미스 윤. 아니 5번 미스 홍.
- 음.
- 어머, 아이 벌써 가시려구요? 계산 하셔야지요. 계산도 하시고, 제 팁도 주시구요 보조에 차비도 주시구요. 다 외상인가요? 달아놀까요? 천장에다 굴비 달아놓듯이 달아놀까요? 아니, 차라리 날 천장에다 목을 매달아 버리시는게 날거에요. 그 꼴이 뵈기 싫으면 다신 여기 오지 마시구요. 또 한번 여기 오시면 그 땐 정말 선생님 경멸 할거에요. 평생 선생님 경멸하면서 살거라구요.
- 음.
제21화 니 아부질 찾았는기라 ◀ ▶ 제23화 정말 결혼할 생각이란 말이야? (입력일 :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