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거짓말 말라고. 윤선생님 니가 내쫓았지.
- 하. 마 사람을 크게 출세시켜 주누마.
- 뭐라고?
- 아 윤선생인가 뭔가 세살난 얼라가? 우찌 내가 마음대로 내쫓고 말고 할 수 있겠나.
- 또 그 여자 만났지.
- 마 그 여자라니.
- 윤선생님 사모님.
- 생사람 잡지 말그라. 마 벼룩에도 낯짝이 있다고 한번 마 돈을 긁어 냈으면 그것으로 끝장이지 마 또 손을 내밀란 말이가? 마 그거는 니 오해고 솔직하게 얘기할거 같으면 윤선생하고 내하고 담판을 안했나.
- 담판?
- 변호사한테 찾아갔었고마. 마 법률적으로 이건 우찌 되느냐 하고 문의를 안했나. 마 변호사 선생님께서 마 친절하게 알으켜주데. 마 지영이 니하고 내하고는 마 사실상의 부부라카더라.
- 뭐라고?
- 그라니께 웨딩마치도 안올리고 구청에다 혼인신고를 안했어도 마 사실상에 있어서 부부라카는기라. 마 그래 내가 마 혼인신고 안했나.
- 뭘해?
- 혼인신고.
- 기가 막혀서.
- 마 구청에 가갖고 마 서류도 만들고 니하고 내 도장 새겨가꼬 마 꽝꽝 찍어버렸제. 자 보그라. 마 호적 등본이다.
- 이까짓게 다 뭐야.
- 하하. 마 니는 걸핏하면 찢네. 수표도 찢고 호적등본도 찢고 하지만은 호적등본은 마 찢어도 소용이 없는기라. 돈만 주면 얼마든지 맹글어 주는기라.
- 고발 할거야. 너.
- 아이고. 마 남편을 고발한단 말이가? 어이?
- 사기니까.
- 지영아, 니는 내 진심 모르나. 내도 니캉 잘 살아볼라고 그러는거 아이가. 마 솔잎이 데려다가 우리도 오붓하게 살아보제.
- 솔잎인 니 딸이 아니야.
- 아니 그라믄 누구 자식이고. 윤선생 자식이가?
- 치사하게 굴지마. 영도승 판잣집에다 날 버리고 도망쳤을 때 우리 관계는 끝난거야.
- 보그래이. 마 사람이란 살다보면 마 이런일도 있고 저런일도 있고 그런거 아니겠나. 마 그래 극단적으로 말 하는게 아니데이. 마 끝이라 카는것은 마 죽는다는 소리 아니겠나.
- 그래. 니 목적이 뭐야. 나한테 뭘 바라고 있는 거냐고.
- 하하, 나 참 답답하데이. 마 아직도 그걸 모르나.
- 그러니까 저금통장 가져가라는거 아니야.
- 하하, 마 기가 콱 막히네.
- 뭐라구?
- 내는 니를 원하는기라. 마 니하고 잘 살고 싶어서 그런다 안카나. 아이고 마 참말로 말이 안통하네. 아이고. 마 잠이나 자야겠다.
- 어딜 눕는거야. 당장 내 집에서 나가.
- 어허, 마 귀찮게 굴지 말그라. 마 잠이나 잘란다. 아이고, 마 팔다리가 와이래 노곤하나.
- 좋아. 그럼 내가 나가지.
- 만길인 쇠힘줄보다 더 질기게 나왔지. 결혼신고를 일방적으로 해버렸다는것도 믿을 수 없는 일이었지만 호적등본 떼보려고 울산까지 내려갈수도 없고 말이야. 하여간 근처 여관에서 자고 집에 가보니 만길인 어디론가 가버리고 없었어. 방바닥에 윤선생 메모가 남겨있더군.
- 지영아 자세한 얘긴 나중에 만나서 하자. 사정이 있어서 집에 며칠 못들어갈 것 같다. 걱정말고 기다려다오.
- 아가씨.
- 으응?
- 아무도 안계신가. 어. 있었군. 좀 들어가도 되겠어요?
- 들어오세요.
- 혼자 계시는군.
- 어디 갔어요?
- 네. 저.
- 좀 앉겠어요. 어디 갔어요. 그 인?
- 모르겠어요.
- 몰라요? 아가씨, 여기 있는줄 알고 왔는데 그러기에요?
- 어제 아침에 나가셔서 연락이 없어요.
- 그래요?
- 며칠 후에 연락하겠다는 메모만 남겨두고요.
- 좋아요. 아가씨 그 사람은 숨겨놨어도 할 말이 없죠.
- 제가 왜 그런짓 하겠어요? 난 선생님 오시라고 한 적도 없구요. 또.
- 또요. 가라고 한 적도 없단 말이죠?
- 저하곤 상관없는 일이니까요.
- 아가씨, 내가 사정 좀 합시다. 그 사람 집으로 돌아가게 해주세요.
- 아주머니, 전.
- 알아요. 아가씨 한테는 책임이 없다는거. 하지만은 아가씨가 받아주지 않으면은 집으로 돌아갈거 아닙니까. 그 사람은 성격이 유약해서 혼자서는 못견디는 사람이에요. 아가씨, 내 부탁 들어주는거죠?
- 정말 딱하시군요. 전 그럴 권리가 없어요.
- 아니 도대체 아가씨가 바라는게 뭐예요. 그 사람을 잡는다고 당장 돈방석 위에라도 올라 앉을 것 같아요?
- 네?
- 그 사람 나하고 헤어지면은 빈털털이에요. 그걸 모릅니까?
- 잘 알고 있어요.
- 그런데.
- 그래서 포기 할 수가 없는거에요.
- 뭐라고?
- 선생님이 측은했어요. 아주머닌 선생님을 사랑하는게 아니잖아요?
- 건방진 소리 말어. 사랑? 사랑 가지고 세상 살아가나?
- 그런 사람도 있어요. 아주머니처럼 돈만 가지고 세상 살아가는 사람도 있구요.
- 좋은 말로 하니까 정말 형편없이 나오는군.
- 전, 아주머니한테 죄스러운 마음 뿐이었어요. 하지만 아주머니가 이 일을 해결 하시는 그 태도를 보고 전 결심했어요.
- 그 사람을 나한테서 뺏어가겠단 말이지?
- 뺏고 빼앗기는게 아니에요. 선택은 윤선생님이 하시는거죠. 전 다만 윤선생님이 절 필료로하고 원하시면 그대로 해드리겠다는것 뿐이에요. 선생님을 오라고 애원하지도 않아요. 하지만 가라고 하지도 않겠어요.
- 허, 이제야 본색을 드러내는군. 좋아. 해보자고 어디.
- 자신있단 말이니?
- 난 자신있어.
- 결국엔 어떻게 된다는거 몰라? 그 사람 결국은 집으로 돌아가고 말거라고.
- 나중일은 나중일이야. 나중에 어떻게 될까 그게 무서워서 포기할 순 없어.
- 이 맹꽁아. 그런 일 한두 애가 한두번 겪었는 줄 아니? 술에 취해서 불빛에 취해서 지멋대로 내뱉는 사랑이란 값싼 단어 때문에 한두 애가 신세 망쳤는줄 아냐고.
- 그래도 난 무섭지 않아.
- 정말 미쳤구나 너.
- 그래. 나 미쳤어.
- 장하다.
- 언니, 어차피 세상 속고 속이면서 사는거야.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에 값어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는거야. 세상이 날 속인다고 해도 그게 내가 원하고 내가 믿고 내가 사랑하는거라면 난 후회없이 그걸 잡을 수 있다고. 윤선생님 나만큼 불쌍한 사람이야. 한번도 자기 인생을 살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야. 우린 서로를 위해서 살아갈 수가 있다구. 그럼 된거 아니야. 그 이상 뭘 더 바래.
-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자신이 원하는데로 살아보는것도 나쁘진 않겠지. 치, 기집애. 니 앞날이 훤하게 내 눈앞에 보인다만은.
- 2~3일이면 돌아온다던 윤선생님한테선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 연락이 없었지. 윤선생님 집에서도 아무도 날 찾아오지 않았고, 보름쯤 지났을 때 였어.
- 5번.
- 네.
- 16번 테이블로 들어가봐.
- 처음오는 손님이라고 그래서 무심코 입구에 들어갔는데.
- 지영이.
- 어머, 선생님.
- 아, 집으로 갔더니 아침일찍 나갔다고 하더구만.
- 선생님, 어디갔었드랬어요? 연락도 없이.
- 내 그럴 일이 좀 있었어.
- 얼마나 기다렸다구요. 나빠요 선생님. 아주 나빠요.
- 미안해. 연락도 할 수가 없었어. 미안하게 됐어.
- 다시 오신거죠? 이젠 말없이 그냥 나가시는거 아니죠? 그렇죠?
- 하하하.
- 대답해보세요. 선생님.
- 하하하.
- 괴로운 웃음. 대답이 없었어.
제19화 본서방이 왔는데... ◀ ▶ 제21화 니 아부질 찾았는기라 (입력일 : 2007.06.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