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일찍 나왔군.
- 친구하고 약속이 있어서요.
- 미안해. 뒤를 밟지 않겠다고 약속한걸 어겨서.
- 아무래도 상관 없어요.
- 그 술집에 들어가 볼까 했지만 지영이가 싫어할 것 같아서 그래 집을 알아두고 아침부터 기다리는 중이야.
- 그러세요?
- 어디까지 가는지 태워다 주지. 그 동안만 얘길 좀 하자구.
- 아저씨. 전 버스타고 가는게 편해요.
- 할 얘기가 있다니까.
- 전 할 얘기가 없어요.
- 귀찮게 안 할 테니까.
- 이러시는게 귀찮게 하는 거에요.
- 지영이.
- 비켜 주세요.
- 좋아. 그럼, 여기서 얘기하지.
- 빨리 해보세요.
- 난 내 아내와 헤어지기로 했어.
- 그러세요?
- 거짓말이 아니야.
- 그게 나하고 무슨 상관이에요?
- 상관이 있고 말고.
- 아저씨. 나는요.
- 물론 날 좋아하지 않는다는건 알고있어. 또 그걸 강요할 자격도 나한텐 없지. 하지만 우리 시작을 해보자고. 난 지영이 같은 여자가 필요해.
- 아저씨가 필요하면 좋아하지 않아도 연애를 하고 그래야 하나요? 재밌는데요. 할 얘기 다 하신거에요?
- 음.
- 그럼 실례해요.
- 미친 녀석이구나. 그 녀석.
- 하긴 불쌍하긴 해.
- 뭐가 불쌍해. 자가용까지 타고 다니는 녀석이.
- 언닌 그저 세상 만사를 돈에다가 맞추려고 드는군.
- 너, 그런 녀석한테 속으면 안된다. 널 닮은 옛날 여인이 있었다느니 그 여자가 불쌍하게 죽었다느니 그게 다 삼투 수단이야. 그런 말에 속아서 나도 요꼴 요모양이 된거다.
- 언니 꼴이 어때서. 언닌 언니 자신이 그렇게 만든 거라구.
- 내말 명심해. 중년 사내들이란 다 그런거야. 자기들만이 불쌍한 것처럼 궁상을 떨고 다니지. 자기 여편네를 악처로 만들어서 너 같은 애들 동정을 살려고 든다구. 정말 불쌍한건 여자지. 에휴.
- 한숨 쉬지마 언니. 그놈의 한숨소리 몸서리 난다.
- 5번.
- 난 오늘도 공인가보다.
- 한숨이나 쉬고 앉아 있구려.
- 데려왔습니다.
- 어, 수고했데이.
- 재미 많이 보십시오.
- 오야 오야. 앉그라.
- 기가 막혀서.
- 와. 마 도둑이 재발로 들어왔단 말이지. 어제는 미안했는기라. 마 그 같이 온 친구가 사업상 머꼬 거 뭐 긴밀한 관계가 있는기라. 나 그래갖고 그래 된기라.
- 요점이 뭐야. 내 돈을 갚아 주겠다는 거야. 못 갚겠다는 거야.
- 아니 돈이 문제가? 마 돈이라 카는것은 있다가도 없는기고 없다가도 있는기고.
- 말씀 한번 잘 하시는군.
- 지영아, 내 부산에서 미안하게 됐데이. 마 내 본의가 아니제.
- 온다 간다 말 한마디 없이 저금통 깨가지고 내빼버리고. 그것도 모자라서 명보한테 날 팔아넘겨?
- 그거는 니 오핸기라. 마 명보 그자식이 내한테 바가지를 뒤집어 씌운기라. 내도 그런적 없데이. 명보 그 놈은 전달에 만나갖고 내 혼을 안내줬나. 으이?
- 좋아. 옛날 얘기는 그만해두지. 그딴 돈 안 받아도 좋아. 그렇지만 추근추근 쫓아다닐 생각이나 말어.
- 어허 지영아, 니 나하고 한 약속 잊어버렸나.
- 무슨 약속.
- 마 돈 모아갖고 결혼식 올리자 안했나.
- 정말 옛날 얘기 하시는군.
- 마 내는 한시도 그 약속 잊어 본적 없데이.
- 만길씨. 그 얼굴에 침 뱉기전에 어서 일어나서 나가시지.
- 좋다. 마 니가 내말 안 믿어줘도 좋데이. 마 내만 진심이면 되니까네. 그건 그렇고 요즘 어째 사노.
- 그걸 몰라서 물어?
- 아이고 뭐꼬. 고마 아는 어찌됐노.
- 애? 허허허.
- 웃지 말그라. 그건 내 아도 되는기라.
- 정말 나쁜 사람이군. 만길씨.
- 하하하. 마 그동안 고생좀 해갖고 요즘은 살만한기라. 미군부대에 납품을 하는데 마 이게 마 돈 방석 인기라. 아는 우쨌나. 어이? 아니 니 뗐나? 뗐고마.
- 그럼 그 꼴로 그 앨 낳아서 어떡할거야.
- 에헤. 거 몹쓸짓했네. 인간으로서 우째 그런 일을 할 수가 있나. 지영아, 니 나쁘데이.
- 기가막혀서.
- 아이 기가 막힌건 나지 우째 니가 기가 막히노. 하하 나 이거.
- 만길씨. 그거 물어보러 날 찾아 오셨어?
- 다시 시작하자 않카나.
- 꼬락서닐 보니까 내 돈 받긴 다 틀렸어. 단념 했으니까 다신 찾아오지 마.
- 니 나한테 원한이 많고만. 마 알겠다. 내가 잘못한건 한기고 하여간 난 니하고 약속한거 꼭 지킬거니까 그리 알그래이. 자 뭐 계산서 갖고 오라. 마 팁도 달라면 줄끼고.
- 물론 받아야지. 그럼 안 받을 줄 알았어?
- 하하하하하. 이쁘네. 니는 그래 화낼때가 더 이쁜기라. 하하하하하하하.
- 그 자식 또 나타났었단 말이지?
- 약속을 지키러 오셨다는군.
- 무슨 약속?
- 나하고 결혼하기로 한 약속.
- 편리한 양반이시군.
- 오히려 홀가분해. 막상 보니까 미움도 사라져 버리고.
- 너 또 그 녀석한테 끌리는거 아니냐?
- 끌려? 하하하하하.
- 정신차려.
- 그 사람 벌써 오래전에 내 마음속에서 죽어버렸어. 어머나.
- 왜 그러니?
- 아 아니야. 언니 먼저가.
- 아 왜그래?
- 글쎄 언니 먼저 가라니까.
- 만길이냐?
- 아니야. 먼저 가라니까. 곧 따라갈게 언니.
- 빨리 와.
- 아저씨. 정말 자꾸 이럴거에요?
- 난 지영이가 필요해.
- 난 아저씨가 필요하지 않다니까요.
- 날 이해해 달라고. 날.
- 정말 딱한 분이시네요.
- 내 집까지 바래다 주지.
- 싫어요.
- 오늘만은 내 말을 들어요. 자, 가자구. 타요.
- 참...
- 타라구.
- 에이 좋아요. 타죠.
- 어디로 가는거죠? 그쪽은 반대방향 이잖아요. 차 세우세요. 내려야겠어요. 안세워요? 그럼 문 열고 뛰어내릴거에요.
- 나쁜짓은 않겠어.
- 나쁜짓이요? 봐주시는군요.
- 내 얘길 들어 달라고. 난 할 얘기가 많아요.
- 아저씨. 몇 번 말씀드려야 알아 들으세요. 난 아저씨하고 할 얘기도 없구요. 아저씨 얘기 듣고 싶지도 않다구요.
- 음.
- 여기가 어디예요.
- 내려.
- 어딘데요.
- 내 친구 아파트야. 하루만 빌리기로 했어.
- 용의주도 하시네요.
- 내려. 자 내리라구.
안경진, 김영식, 유민석, 나병옥, 장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석.
제10화 원한 갖고 살고 싶지 않아
◀ ▶ 제13화 잃어 버린 내 순진함을... (입력일 : 2007.05.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