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미스 민, 많이 변했구만
- 변해야지에. 세월이 갔는데.
- 어엿한 숙녀가 됐어?
- 숙녀예? 놀리지 마이소.
- 놀리다니. 하하하. 영도다리 밑에 우둑허니 서있는 미스 민 뒷모습을 보면서 난 또 왠 영화배우가 촬영을 하고 있나보다 했었는데.
- 아하..아저씨 싱겁네예.
- 그렇게 되나? 하하하. 지영이.
- 네?
- 뭐 걱정되는게 있나?
- 아닙니다.
- 걱정이 있어 뵈는데.
- 아이라니깐예.
- 그럼 다행이구만.
- 그란데 무슨일로 부산에 내려오셨는겨?
- 출장.
- 회사다니십니꺼?
- 조그마한 회사하나 가지고 있지.
- 옴마야. 그라믄 아저씨 사장님이시네에?
- 사장?
- 회사를 갖고 있으면 사장님 아닙니까?
- 거 내 회사도 아닌걸.
- 그게 무슨 소린데에?
- 장인이 물려준 건데. 아 뭐 그런 얘기는 그만 하고. 미스 민 오늘도 거기 나가야 하나?
- 그래야지예. 직장인데예.
- 하루 좀 빠지면 안되나?
- 곤란합니다. 하루라도 빠지믄 명보씨가..
- 어허. 거기다가 목 맨 것도 아닌데 뭘. 그렇지?
- 지는 사정이 특수합니더.
- 왜?
- 자세한 말씀 드리기 거북합니더.
- 머 빚진거라도 있나.
- 옴마야. 아이 아저씨가 그걸 어찌 압니까?
- 내가 바로 맞췄구만. 허허.
- 이라믄 안되는데예.
- 걱정말아. 내가 낼 저녁에 미스 민 있는데 가서 명보한테 얘기를 해줄테니까.
- 거긴오지 마이소.
- 아니 왜 펄쩍뛰는거야.
- 아이 말입니더. 아저씨하고 내하곤 이래 만나면 안 됩니더. 이래 자꾸 만나면 정들어예.
- 아니. 정들면 안 되나?
- 말씀 안 드렸습니꺼? 지는예 아저씨가 남같지 않습니더. 지 아버지 같은 생각이 드는기라예.
- 아이고. 이거 야 완전히 망했구만. 하하. 난 이제 겨우 서른 여섯인데.
- 맞습니더. 우리 아버지가 서른 여섯에 집을 도망가셨습니다. 그랑께 지 머리속엔 서른 여섯살 먹은 아버지 모습만 들어 있는 기라예.
- 오... 그거 재미있는 얘기구만. 그럼 날 아버지라고 생각을 해요. 대신 내가 아버지처럼 지영일 돌봐줄테니까. 거절하면 안돼요. 알겠지?
- 에이. 곤란합니다.
- 밤바다가 보기 좋구만. 어둠속에서 출렁이는 파도가 신비롭기까지 하잖아?
- 옴마야. 아저씨 소설갑니까?
- 소설가? 하하하. 지영이.
- 아저씨 이 손...
- 내가 왜 또 부산에 내려왔는지 아나?
- 예?
- 난 지영일 만나러 온게야.
- 에이. 어데예.
- 지영이. 날 좀 도와줘. 난 죄의식 때문에 견딜수가 없어.
- 지하고 닮은 그 지영씨 때문이라예?
- 그래. 지영인 나 때문에 죽은게야. 난 출세에 눈이 어두워서...
- 아저씨. 와 자꾸 그런 말을 하는교. 자기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고 살면 안됩니더. 자신을 갖고 살아야지예.
- 그래서 지영일 찾아 온거야. 원하는 건 뭐든디 해줄께. 그저 날 가끔만 만나주면 돼. 나하고 서울 같이 가자구.
- 갈수 없습니더.
- 살 집도 내 마련해 주고 뭐든지 내 다해 줄께. 일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만이라도 좋아 날 만나주기만 하면 그 밖에는 아무것도 원하는 게 없어. 그저 지영이 얼굴만 가끔 보면.
- 지는 안 되는 이유가 있는 기라예. 죄송해요 아저씨 아저씨 진심은 나도 알아예. 하지만도 죄송합니더.
- 그 이유를 말을 해봐요.
- 안 돼예.
- 말을 해 보라니까.
- 말 할 수 없어예.
- 내 진심을 잘 모르는 군. 지영이가 그 이유를 말해서 납득이 안 되면 난 절대로 물러나지 않을게야.
- 아저씨. 아저씨가 자꾸 그러시면 지가 괴로운 깁니다.
- 그래도 할 수 없어.
- 싫어에. 앞으론 제발 지를 찾지 마세예.
- 저 지영이!
- 어?
- 있었구나?
- 민자언니?
- 난 또 어디로 냅뺏던지 아니면 약이라도 먹고 죽었나 했지.
- 아이. 그게 뭔 이야깁니까.
- 들어오라는 말도 안 하니?
- 들어오이소.
- 그것도 직장이라고 하루도 빠지지 않던 얘가 왠일이니? 어디 아팠니?
- 예 좀. 명보씨가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꺼?
- 그 녀석 반쯤 미쳐가지고 숨 넘어가는 소리를 꽥꽥 지르더라.
- 치. 빚을 다 갚고 그만 둬도 그만 둘겁니더.
- 몸은 어때?
- 괘안슴니더.
- 앤?
- 큰일 났으예. 배가 자꾸 불러와서 일도 못 나갔으예.
- 그만 둬.
- 빚은 어쩌구요?
- 빚? 무슨 빚?
- 만길씨가 떼먹고 도망친 빚 말입니더. 드럽어서 지가 다 갚아 예.
- 미치겠군 정말. 애 지영아. 너 그거 진짜로 알아 들었니? 그 명보 자식이 어떤 놈인데? 만길이가 수금한 돈 떼먹고 도망가게 내버려 둘 것 같으니?
- 그러믄요?
- 그 녀석들 수법 뻔하지. 만길이가 널 팔아먹은 거야 이 미친것아.
- 팔아묵어요?
- 돈 십만원이나 받았으면은 잘 받았겠지.
- 지는 무슨 얘긴지 잘 모르겠으예.
- 이것아. 만길이가 돈 몇 푼 받고 널 명보 자식한테 팔아 넘긴 거라구.
- 만길씨가 수금한 돈 갖고 내뺏다고 펄펄 뛰든데예?
- 저런 쑥맥들이 있으니까 그런 녀석들이 아직 세상에 남아있지.
- 아닙니더. 설마하니.
- 맘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난 그만 가봐야 겠어.
- 언니예. 민자 언니예. 그게 참말인교? 만길씨와 명보씨가 짜구서.
- 정신차려.
- 시상에.
- 나 오늘 낼 중에 여길 뜰꺼다. 아무래도 안 되겠어. 서울로 올라가 봐야 겠다. 너도 생각 있으면은 나하고 같이 올라가자.
- 흑...
- 짜지 말고. 명보 자식 만나서 내가 니 대신 따져 줄테니까. 짐이라도 꾸려놔. 그만두는 마당에 그 녀석. 내가 버릇을 고쳐 줄꺼야.
- 만길이. 참말로 니 니 그랬노? 날 팔아 묵읐나? 만길아. 참말로 니가 그랬나?
- 내만 믿그래이. 일 년만 고생하믄 구멍가게 만들면 안 되겠나? 그래 갖고 우리 둘이서 독립하는 기라. 독립해 갖고 폼나게 사는 기라. 결혼식도 올리고 알았제? 일 년만 참그라.거짓말이제. 만길씨. 내를 팔아먹은게 아니지예?
- 미쳤구마. 아를 나서 우짤끼고. 돈도 뭣도 없는 놈이 아를 무슨 수로 키우노. 병원 가그라. 안 그믄 죽이삘끼라. 알았제.- 아이다. 아이다. 아인기다. 만길이 니는 그런 사람 아닌제? 니 나쁜 사람 아니제? 나는 믿을수가 없데이. 만길이 니가 그래 나쁜 인간이라믄 이 얼라는 어찌되나. 이 얼라 아버지가 나쁜 인간이라믄 얼마나 불쌍하노. 그라믄 안 되는 기라. 만길이 니는...
- 어... 어머나. 언니요. 민자언니. 와 그라는교? 민자언니예? 옴마야. 이 피봐라. 민자언니 이 왠 핀굔?
- 나쁜자식. 단물 다 빨아먹고 날 때려? 내가 내가 이대로 죽을줄 아니? 내가 아하하하 아하하하
- 어찌된기라예. 언니예. 민자언니. 말 좀 해 보소. 말 좀. 흑흑
제7화 와 사노. 사는 목적이 뭐꼬? ◀ ▶ 제9화 인생에 달관한 여자. (입력일 : 2007.05.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