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 어무이에. 많이 아프나. 어디가 아프나.
- 지...지영아.
- 따뜻하제. 어머이에. 숨을 못 쉬겠나?
- 지영아. 어무이 죽는다.
- 죽긴 와 죽노?
- 나는 죽는다. 나 죽거든...
- 하이.. 듣기 싫구마...
- 나 죽거든... 니 아부지 찾아 보그라.
- 아부지 꼴보 비기 싫다.
- 찾아 봐. 동생들 멕여야지.
- 어머이가 살면 안되나. 죽으면 안된다. 어머이 눈 뜨고 나 좀 보소. 어머이~
- 음...
- 어머이! 어머이여! 누부야. 우리 어머이 숨 안 쉰데이. 누부야. 어머이 죽었는갑다. 어머이요~
- 자라.
- 와?
- ..랑 데리고 큰 이모집에 가 살그라.
- 싫다.
- 내 말 들어야지.
- 싫다 안 카나.
- 어머이 말 못 들었나. 아부지 찾아 와야지.
- 어디가서 아버지 찾노. 우리 비기 싫어서 도망쳤는데 찾으면 뭐 할끼고.
- 그래도 찾아야지. 아버지니께.
- 참말로. 누부야. 떠날끼고?
- 그래.
- 어데?
- 부산갈란다.
- 이거 안 올라갑니까?
- 네?
- 다리 말입니다. 올라 갔다 내려 갔다 하는 거 아닙니까?
- 모르겠어에.
- 어렸을 땐데 6·25 났을때 바로 피난을 왔어요. 국민학교도 들어가기 전인데, 그 땐 영덕다리가 배가 지나갈 땐 하늘로 버쩍 올라갔어요. 며칠 배가 지나가고 말입니다. 아이. 아가씨 부산사람 아닙니까?
- 아니에 에.
- 어. 그래요?
- 지도 부산은 처음이라에.
- 난 그것도 모르고. 집에 어디요?
- 썬이네에?
- 썬?
- 아이. 담배요. 거북선이 아니고 썬이라고..
- 아~ 가만있자. 부산까지 온 김에 회라도 먹고 가야 할 게 아닌가. 어데 알아요?
- 횟집이에?
- 아하하... 이거 봐라. 부산이 처음이라고 했지. 자 어디가서 점심이나 먹읍시다.
- 자. 뭐 시켜요.
- 지는 국물있는 걸로 먹겠어에.
- 매운탕?
- 아무거나.
- 아 저. 매운탕 뭐 있소? 도미? 도미매운탕으로 해 주지. 하하.
- 와 웃는기요.
- 이상한 인연이군. 우리.
- 호호호.
- 자. 우리말야 밥 먹구 아무데나 같이 돌아다니는게 어때.
- 좋습니더.
- 오랜만에...
- 네?
- 해방이라. 완전한 해방이지. 해방. 하하하하.
- 들어 와. 어. 괜찮아.
- 여기가 어딥니꺼?
- 방이지. 아저씨 집인겨?
- 이런데 처음 들어와보나?
- 바닥이 푹신푹신 하네에.
- 카페트니까.
- 카.. 예?
- 카페트.
- 만져봐도 되겠습니꺼? 아유. 보들보들하네에. 이게 뭐라에? 카...
- 카페트.
*****
- 그래서?
- 신기했어. 포근하고. 난 방바닥에 엎드려서 볼을 비벼대고 별의별 꿈 다 꾸고 그러다가 그냥 잠이 들어 버렸어.
- 며칠동안 굶었었어..?
- 배고프다 잘 얻어먹고 스팀 잘 나오는 방에 누워서 행복한 공상하고 있자니 잠 잘 오드라. 근데 한참자다 꺠보니 그 사람이 없어.
- 널 내버려두고?
- 메모지 한 장 남겨두고. 돈 몇 천원하구.
밤새도록 정신없이 자고 있는 아가씨 모습을 바라봤어. 술이다 깼소. 허기졌던 내 소년시절이 생각나서. 남의 친절을 믿지 마시오. 특히, 나 같은 남자의 친절. 그래야 시집 잘 가요. 윤.- 유치하게 나왔군.
- 나 말이지. 어쩌면 그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받은 남의 친절인지도 몰라.
*****
- 자야~ 자야~
- 네~
- 가시나 니 정신 어디다 팔아 먹었나?
- 이 설렁탕하고 곰탕도 구분 몬하나?
- 압니더.
- 그란데 와 설렁탕 시킨거 곰탕 갔다 주고 곸탕 시킨거 설렁탕 갔다 주고 그라나.
- 그랬어에?
- 니 그만두그라.
- 아저씨에. 앞으로는 실수 안 할낍니다.
- 그릇이나 깨먹고. 가시나가 와 그리 맹하노. 자 일 보그라.
- 아. 예.
- 깍뚜기 하나 더 주소.
- 네.
- 보소! 보소!
- 에?
- 아이 니. 지영이제?
- 어머야.
- 아이 내 모르겠나? 만길이다.
- 만길씨.
- 아이 언제 부산왔노?
- 깍뚜기 갔고 올께에.
- 여기다.
- 퍼뜩 들어가야 되에.
- 일할 데가 거기밖에 없나? 괘안타. 우리가서 커피 한 잔 하자.
- 안돼에.
- 아하. 되게 겁 많네. 자 가자.
- 안돼에. 주인 아저씨가...
- 아하. 따라오그라.
- 마셔.
- 주인 아저씨가 무서운데...
- 니 얼마 받고 일하노?
- 와에?
- 월급 말이다. 얼마나 받노?
- 아직 안 정했어에.
- 아이. 그것도 안 정하고 일하나.
- 먹여주고 재워주는 것 만도 어딘데에?
- 미쳤구마. 사지가 멀쩡한데 무슨 잘 데 없겠나?
- 그만 들어가 볼랍니다.
- 아이 니 짐 많나?
- 그 식당에 잡혀있는 짐이 있나 말이다.
- 없습니다.
- 아이 뭐 그라믄 잘 됐다. 내랑 같이 가자
- 어딜에?
- 꼬라지를 보니께 마 월급도 안 주게 생겼는 기라. 내 좋은 일자리 구해 주께.
- 싫습니더.
- 니 와 부산 나왔나? 돈벌이 나온거 아이가? 그제? 맞제?
- 아입니다.
- 아이 그라믄?
- 아부지 찾으러 나왔는 기라에.
- 참. 니 아부니 도망쳤제?
- 아무이가 죽었슴니더. 그래...
- 마 하여간 내 따라오그라. 돈벌이도 시켜주고 니 아부지도 찾아 줄께네. 자 나가자.
- 안됩니더.
- 퍼뜩 일어나거라. 퍼뜩
- 안 되는데. 아저씨를 배반하믄 안 되는데.
- 아이 뭐 하노. 퍼뜩 따라 나오그라. 퍼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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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스물 한 살 민지영의 이력서 ◀ ▶ 제3화 자가용 타고 폼나게 살끼라. (입력일 : 200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