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본 정하연 연출 이규상
만길씨 뭔가 크게 착각하고 계셔. 어째서 착각이냐. 도대체 이 몸이 생선가게 좌판위에 놓인 도미나 고등어가 아닌 이상 손님의 손가락질 한 번에 내장을 드러내놓고 돈까스 잘라먹듯 할 순 없다 그거지. 다시 말해서 만길이 너 우리가 어렸을 때 논바닥에서 미꾸라지나 개구리를 잡아서 구워 먹고 삶아 먹고 하는 식으로 세상이 호락호락 하다고 생각하다간, 아니 서울 바닥이 천진난만하다고 생각하다간 큰 코 다친다 그 말이야. 나도 그래 세상사는 요령 쯤 어느 만큼 터특하셨고, 그러나 부산 남포동에서 우리가 처음 만났을때 처럼 하늘 보고 바다보고 두꺼비 파리잡아 먹는 식으로 내가 넘어갈 꺼라고 계속 생각하고 계시다면 그게 바로 만길이 너의 착각이라는 내 주장이셔!
- 변했구나 지영이 니.
- 변해?
- 변했제? 꼴도 변했고. 화장술도 변했고 마 사투리도 안 쓰고.
- 헤헤. 처음 서울 와선 사투리를 안 쓸려고 길을 잃어 먹어도 물어보지 않았어. 한 번은 시청앞에서 덕수궁이 어딘겨. 했다가 수상한 사람으로 몰릴 뻔 했거든? 그래. 잘 덴 구했어?
- 몬 구했다.
- 한심하시군.
- 잘 데가 없겠노? 뭐 아무대나 자빠져 자믄 되는 기지. 근데 니 뭐하노?
- 흐흠. 나.
- 꼬라지를 보니께 머 대층 짐작인 간다만도.
- 돈 좀 줘?
- 돈? 나도 있다.
- 그럼 또 만나. 만나지면.
- 그래 가그라. 언제고 또 만나겠제.
만길이. 그래 만길일 만난 거야. 부산에서 헤어진지 일년 반. 난 만길일 서울에서 다시 만났어. - 하하. 바보같지? 나 설쳐대는 폼.
- 정신차려 이 기집애야. 덤벙대다가 내 꼴 되지 말고.
- 언니꼴? 어떤 게 언니꼴이지?
- 늙고 병든 개처럼 구박이나 받다가 죽기 싫으면은 돈 돈 벌어 돈.
- 아하. 언니 노래가락이 또 시작되는 구나.
- 연애하지 말고 무드잡지 말고 신세한탄 하지 말고 열심히 돈 돈 벌어라 돈.
- 그런 언니는?
- 그러니까 하는 얘기지.
- 언닌 바담풍해도 난 바담풍하면 안된단 말이지?
- 담배있니? 안돼지 넌. 야 누구 담배있으면 한 가치 던져라.
- 미쓰 리!
- 어느 미쓰 리?
- 또 끼네 저 음식찌꺼기 저.
- 저 아저씨 좀 봐.
- 27번.
- 언니. 담배 한 갑 얻어다 줄께~
- 나 혼자에요?
- 한 사람이야.
- 취미도 별나시군.
- 뭐?
- 이런데 혼자 오는 손님도 있나?
- 빨리 따라 와.
(똑똑똑)
- 실례합니다. 사장님.
- 흠. 출세시켜 주는 구만.
- 우리집 마스코틉니다.
- 처음 뵙겠습니다.
- 그럼 처음 뵙지 이게 두번째냐?
- 하하하. 취하셨군요.
- 이 집에서 취한 사람한테 술 안파냐?
- 하하. 재미보십시요.
- 앉어. 보고 섰지만 말고. 거기말고 내 앞에.
- 어디요?
- 우리 마주보고 앉아서 피차에 얼굴 좀 관찰해 보자.
- 좋죠.
- 국적을 밝혀 대포쏘기 전에.
- 미쓰 리에요. 27번이구요.
- 무슨 리야?
- 이지영이에요.
- 그거 진짜 이름이야?
- 호적초본 갖고 다녀야 하나요?
- 뭐야? 하하하하.
- 사장님?
- 난 사장 아니야.
- 선생님?
- 선생은 더욱 아니고.
- 아저씨.
- 왜?
- 술 드시라구요.
- 드셔야지. 어딜 가려고?
- 딴 아가씨 불러다 드릴께요.
- 앉아. 폭력쓰기 전에.
- 아저씨
- 앉아서 술 따라.
- 아저씨. 정신차리세요. 아저씨. 뺨떼기 서너번 맞기 전에요.
- 지영아!
- 흥. 벼락이나 맞아라.
- 안 자니?
- 자.
- 왜 안 자니?
- 잔다니까.
- 그 사람이지?
- 말시키지 마.
- 지겹게도 따라다니는군. 담배 어딨더라? 어디다 뒀니? 불 좀 킨다.
- 꺼.
- 왜 그래?
- 끄란 말야 불. 불 꺼. 불 끄란 말이야. 불.
- 못난 년. 울었구나.
- 그래. 울었어.
- 그래. 울어라. 울어.
- 나 말이야. 엄마 생각나서 운거야. 윤상도 그 자식때문에 운 게 아니야. 엄마 때문에 울었어. 우리 엄마. 차거운 땅 속에 혼자서 누워있는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생각나서 운거야. 언니. 나도 담배 하나 줘.
- 담배 마저 배우면 끝나는 거야.
- 난 안 끝나. 난 말이지 언니... 민자 언니. 난 결심하게 있다구. 돈. 언니 나 돈 벌거야. 오늘 낮에 로타리에서 만길이 만났어.
- 만길이
- 세상 천지가 다 변해도 그 자식은 안 변할거야.
- 만길이가 그 녀석 이름이니?
- 담배나 줘.
- 자.
- 콜록.. 콜록...
나요. 나쁜애 아니에요. 천방지축도 아니구요. 첫째 만길이 만난거 이게 불쾌하고 미치겠는 거에요. 또 하나 새로 옮긴 신촌 일터에까지 윤상도 그 사람이 찾아오고 이게 다 오늘 날 괴상하게 만든 원인들이죠. 옛날 얘기 좀 할까요? 아주 먼 옛날 얘기는 아니고. 스물 한 살 민지영의 이력서. 어저께까지 미쓰 윤이였구요. 오늘부터는 미쓰 리로 통하고요. 세 달전에도 미쓰 리로 통하던 민지영. 내 이력서 라구요.
부산에서 시외버스를 타로 울산쪽으로 가다가 중간 쯤이 내 고향이에요.- 누부야! 누부야! 누부야 뭐하노?
- 기도한다. 어머니 살려 달라꼬.
- 어무이 죽는데이. 퍼뜩 가 보자.
- 뭐라꼬?
- 어머이가 누부 찾는다. 퍼뜩 가 보자.
- 가래가 끓나? 가래가 끓으면 죽는다카데.
- 퍼뜩 가 보자. 누부야. 퍼뜩!
- 가자이~
- 어머이에. 많이 아프나? 어머이~
- 와 그라노 어머이~
김영식, 유민석, 나병옥, 안경진, 육은옥, 이기전, 장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 지영 설렁탕집에 취직 (입력일 : 2007.05.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