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생극장. 달려오는 사람들. 롯데삼강 제공입니다.
(광고)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스물다섯 번째.
(음악)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
- 이경우 기자.
- 네.
- 자네, 왜 그렇게 멍한 표정을 짓고 있어?
- 아무것도 아닙니다.
- 아하하하, 내가 끼어들 입장이 아닌 거로구만. 그런데 말이야. 이거 봤나?
(신문 펼치는 소리)
- 뭡니까?
- 서진그룹, 차관교섭 실패.
- 그렇습니까?
- 공장 건설을 차관을 주기로 했던 미국 측 회사가 수익의 불투명 때문에 그걸 거절하기로 방침을 통보했는데-
- 정확한 걸까요?
- 왜? 믿지 못할 일이라도 있나?
- 아닙니다.
- 그 서 사장 말이야. 거 외 수익성이 좋지 않은 공장 건설에 그렇게 애를 썼지?
- 간단히 단기수익만을 노리고 손댄 게 아니니까요.
- 그럼 뭐야?
- 그 친구는 포부가 좀 색달랐습니다. 소비재외 시설에 투자하면 안전하다는 걸 잘 알면서도
굳이 위험한 원자재에 손을 댔습니다.
- 어째서?
- 그 공장을 점차 확장해서-
- 그래서?
- 네, 어쨌든 우리나라 기존 기업인들과는 뭔가 생각하는 것이 조금 달랐습니다.
- 그렇다면 그 나이에 보통 머리는 아닌데. 자네 동창이라고 해서 봐주는 거 아닌가?
- 아닙니다. 서진의 기업구조를 한번 보십쇼. 모두 채산성이 약하고 투자에 돈이 많이 드는 것뿐입니다.
- 그건 사실이지. 뭐 먹고, 입고, 쓰고. 그런 분야와는 거리가 멀었으니까. 그래서 일단 긍정적으로 기업을
옹호해둔 셈이었는데.
- 제가 다시 한 번 서 사장을 만나보죠.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사장님, 부르셨습니까?
- 부사장께서도 요즘은 좀 바쁘시군요.
- 예, 뭔가 저도 자금을 좀 뚫어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만.
(종이 만지는 소리)
- 이걸 보세요. 미국에서 온 텔렉습니다.
- 차관 거절 건입니까?
- 그렇소.
- 알고 있습니다.
- 부사장은 이게 기대해볼 만하다고 큰소리 쳤는데 안 됐군요.
- 최선을 다했습니다. 제가 직접 가보지 않은 상황에서는 뭐라고...
- 음...
- 은행에서는 뭐라고 얘기합니까?
- 전보다 조건이 더 좋지 않아요. 부실업체 하나를 더 인수해가란 겁니다.
- 하나가 아니고 그럼 둘이란 말입니까?
- 그렇소.
- 그런 업체들 재무구조야 보나마나 빤할 건데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 둘 중 하나요.
- 둘 중이라뇨...?!
- 공장을 매각해서 서진은 껍데기만 남는 기업이 되던지, 아니면 부실기업을 2개 인수해서
도산되는 기간을 좀 더 연장시키던가. 그 둘 중 하나란 말입니다.
- 어차피 이제 결단을 내려야 할 시기로군요.
- 어떻소? 부사장의 의견은.
- 저로선 아직 결정을 내릴 수 없겠는데요.
- 좀 더 기다려 보잔 말인가, 부사장?
- 예.
- 이 차관 실패 뉴스가 현재로선 분명히 사내기밀사항의 하난데 벌써 신문에 보도된 걸 아십니까?
- 신문에요?
- 이 기사가 며칠만 늦게 보도됐어도 우린 약간 숨통이 있었는데 이게 보도되자 각 은행, 단자회사, 사채업자,
납품처 등에서 문의가 빗발치고 있어.
- 아니, 벌써 그렇단 말입니까?
- 우리 회사의 기밀사항이 유출되고 있다는 정보가 있었는데 이제 비로소 그것이 확실히 드러났습니다.
- 아니, 그럴 리가...
- 분명해요. 부사장께서 이 진상을 규명해주시오. 텔렉스가 도착한 시간을 사전에 알고 있었던 사람,
그 경제통신사 기자한테도 어디서 기사를 얻었는지 물어봐주시오.
- 알겠습니다.
(음악)
- 그래, 저기 저 일도 안전히 끝내 놓았니?
- 네.
- 음, 그건 좋은데 서 사장 아직 그걸 모르고 있지.
- 네, 하지만 곧 알아낼 거예요. 얼마 못 가겠죠.
- 서 사장이 뭐라고 하건 단호히 나가야 된다. 알겠어?
- 그럼요. 여태까지 전 언제나 불안했어요. 이를 확보해 놓았다고 해서 마음 놓이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좀 나아요.
- 아무래도 서진은 위험하다... 서 사장은 그걸 잘 알고 있지.
- 그러면서도 그렇게 냉정할 수가 있어요?
- 최후엔 자신이 굴복할 셈이란 말이야. 그러니까 어느 날, 서 사장이 끝났다고 한마디만 하면은
그날로 완전히 끝이야.
- 아, 어이가 없어요. 아버지도 다음 선거엔 진출해야 할 건데 이젠 틀렸잖아요.
- 아직 체념할 건 아니야. 최저한도의 비용은 보장돼있는 셈 아니냐?
- 그런 거 저런 거 생각하면 10억쯤은 아무데도 소용이 없어요.
- 그래, 너나 나나 너무 생각이 느렸지. 그런데 이걸 아는 사람이 아직까진 정 상무 혼자뿐이냐?
- 네, 사내에선 그 사람뿐이에요.
- 조금 위험하지 않을까? 그 친구 공연히 입이라도 뻥끗했다간...
- 염려 없어요. 나한테 그 사람의 재산서류를 다 빼놓은 게 있으니까 자기가 매장될 각오 없이는
누구에게도 발설 못할 거예요.
- 회장이랍시고 여태까지 앉아서 일개 상무만도 실속을 못 차렸으니. 자, 나가자. 난 어디 들릴 데가 좀 있다.
- 어딘데요?
- 여자 화가를 한 사람 알아보려구.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바쁘군.
- 어. 왔나? 회의가 좀 길어졌어. 자, 들어갈까?
- 그러지.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앉게.
- 음, 담배 피우겠어?
- 음, 그래.
(담뱃불 붙이는 소리)
- 휴... 상황을 알고 싶어서 왔나?
- 기사에 보도된 게 사실인가?
- 불행히도...
- 왜 그런 게 신문에 빼돌려지나?!
- 모르겠네.
- 이제 내 말을 믿어주는 거 같군.
- 그래, 이제서야...
- 처음엔 난 자네가 날 의심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
- 자넬? 흠, 그렇게까지 난 약삭빠르질 못해.
- 그래, 그걸 알았기 때문에 난 여길 뻔질나게 온 거고.
- 그러나 걱정 말게. 아직도 방법은 있으니까.
- 그럴 테지. 내가 할 말은 아니지만 이런 식에 더 이상 한눈팔지 말고 생각을 집중시키는 게 좋겠어.
- 무슨... 얘긴가?
- 자넨 지금 위험하고 어려운 시기야.
- 그래서?
- 잡념을 갖지 말라고. 쓸데없는 낭설이 퍼진다면 그건 자네 스스로 마지막을 재촉하는 결과밖에
안 되니까.
- 자네는 뭔가 나한테 경고를 하고 있는 것 같군.
- 경고? 경고가 아니라 충고일세. 그 여자는 서울을 떠나고 없어. 왜 떠났는지 이유는 자네가 잘 알 거고.
- 미스 오, 미스 오 말인가?
- 그런 식의 탈출구를 찾으라고 한 건 아닌데 자네는 오인했어.
- 오인? 내가 그 여자를 탈출구로 삼았단 말인가?! 음, 그것이야말로 오인일세.
나는 그 여자 때문에 적어도 두 번씩이나 자신을 되찾았네.
(음악)
(파도 소리)
- 고모!
- 응? 아하하하. 얘, 천천히 와! 넘어진다! 아하하...
- 아이, 숨차. 고모, 밥 먹으래.
- 그래? 벌써?
- 저녁이잖아. 봐, 저기 해가 넘어간다.
- 아이, 그래. 또 한 밤이 지났어.
- 어디, 오늘은 그림 많이 그렸어?
- 아니, 조금밖에 못 그렸어.
- 에게, 아침하고 똑같네. 그렇지?
- 그래. 똑같애. 아하하.
- 그럼 뭘 했어? 종일 바닷가에서?
- 음... 저 바다 끄트머리를 그냥 보고만 있었어.
- 보긴 뭘 봐? 아무것도 안 보이는데.
-그래, 아무것도 안 보여. 그렇지만 보고 있었단다.
(음악)
박웅, 유민석, 김정미, 김규식, 안경진, 오세홍, 설영범, 양미학, 홍경화.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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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스물다섯 번째로 롯데삼강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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