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생극장. 달려오는 사람들. 롯데삼강 제공입니다.
(광고)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스물한 번째.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부사장님!
- 아니, 왜 그리 급히 사람을 몰아붙이는 거야?!
- 야단났습니다.
- 야단이라니?! 아, 이 사람아. 뭐가 야단이란 말인가?!
- 사장이 철강회사와 공장을 매각키로 결심을 한 모양입니다.
- 어? 뭣이?! 언제 말이야!
- 얼마 되지 않습니다.
- 아니, 서 사장 그 친구 왜 그렇게 생각이 급변했지?!
- 모르겠습니다.
- 아, 그렇다면 문제는 심각하군. 철강을 매각해 버린다면은 서진그룹이 소생할 가망이 있나?
- 적자회사 한두 군데만 더 처분해버린다면 무역과 봉제, 건설 정도를 키울 순 있겠죠.
- 무역과... 봉제, 건설이라... 그러나 그렇게 되면은 서진은 그룹이 아니라 완전히 중소기업쯤으로
떨어질 거 아닌가?
- 그렇습니다. 적어도 재벌경영인 소리는 못 듣게 됩니다.
- 아... 철강을 매각한다... 그걸 다른 사람의 손에 넘겨준다...
- 철강이 빠져버린다면 서진은 사실...
- 막아야겠군. 안 되겠어.
- 어떻게 말입니까?
- 서진그룹이 함께 도산돼야 그 중에서 철강은 내 손에 들어오는 게 아닌가.
- 자신이 계십니까?
- 자신 정도가 아니야. 난 그 일 때문에 비밀리에 여러 군데 접촉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오는 길이야. 흠, 충분히 승산이 있어.
- 그렇다면 지금 미리 매각을 해버리면 계획은 불가능해지지 않습니까?
- 그래, 수포로 돌아간단 말이야. 막아야 해, 막아야 해, 일단!
(음악)
(종이 만지는 소리)
- 자, 사모님. 이로써 완전히 수속을 끝났습니다. 예상외로 자금이 쉽게 융통이 됐군요.
- 수고하셨어요. 그동안.
- 아하, 뭐 수고랄 게 있습니까. 사모님.
- 내 일처럼 그렇게 잘 돌봐주신 덕분이에요.
- 아하하하하하하, 사실 학생 시절부터 사모님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만 이렇게 사업상으로까지
발전할 줄은 몰랐습니다. 여하튼 보기보다도 훨씬 배울 점이 많으신데 놀랐습니다.
- 아, 무슨 과분의 말씀이세요. 앞으로도 잘 좀 도와주세요. 친구의 친척이시니 저도 훨씬 마음이 놓여요.
- 아하하, 사모님 일이라면 뭐 언제든지 발 벗고 나설 각오가 돼있습니다.
- 아하하, 고마워요. 저도 최 선생님 같은 분이라면 안심하고 일을 맡기겠어요.
- 하여튼 사장님은 여러 가지 면에서 행복하십니다.
- 뭐가요?
- 이렇게 미인 사모님을 얻으신 것이 하나이고, 매사에 스케일 크신 것도 또 그렇지 않습니까?
- 그이 얘기는 꺼내지 마세요.
- 어유, 왜 그러십니까? 아, 말다툼이라도 하신 겁니까?
- 아, 그동안 수고 많으셨는데 오늘은 제가 한턱 쓰겠어요. 어디로 가실까요?
- 어이구?! 어이구! 영광입니다!
- 우선 나가시죠!
(음악)
- 아... 의외로군요. 대부분 찬성인데 부사장께선 공장매각에 반대를 하신다니.
- 물론 지금 당면하고 있는 고충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만 그러나 이깟 위기를
넘기지 못하고 사업을 포기한대서야 말이 됩니까.
- 사업을 포기하다니요?!
- 포기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닙니까? 가장 중요한 걸 팔아 넘겨버리고 별 쓸모없는 기업
몇 개만 남겨보겠다는 건 실질적으로 기업을 포기한 거나 다름없습니다.
- 나도 그 점을 모르는 바는 아니오. 그렇기 때문에 오늘까지 전체를 살려보고자 참고 이겨내 온 것
아닙니까. 그러나 이젠-.
- 더 참아낼 수 없단 말입니까?!
- 그렇소, 한계에 다 왔다고 판단했소.
- 혹시 이번에 일어난 그 공장사고 때문에 심경의 변화를 가져온 거 아닙니까?
- 물론 그 때문에 충격도 받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닙니다.
- 음, 그렇다면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까?
- 난 처음에 기업에 대한 판단을 조금 잘못한 게 사실이오. 하나를 설립해서 10년쯤 이윤을 모았다가
그걸로 다시 새로운 기업을 하나 늘리고 해온 게 우리나라 대부분의 기업 성장사였지 않습니까?
- 그렇습니다.
- 그런데 나는 이미 그러한 방식은 옛날 일이라고 생각해온 거요. 그런 방식으로 기업을 했다간
백년쯤 지나야 제 궤도에 오르게 된다-.
- 하지만 늦어도 가장 안정적인 방식이었죠.
- 거기에 도전해보고 싶었소. 한꺼번에, 힘이 부치지만 열 개의 기업을 한꺼번에 설립해서
한꺼번에 똑같이 일으켜 세워보려는 모험을 강행한 거요.
- 아직 실패한 건 아닙니다. 사장님.
- 아니, 실패했소. 그래서 완전히 모든 것이 무너져버리기 전에 몇 개의 기업이나마 건져보려는 거요.
- 그러한 이유 때문에 철강과 공장을 매각하시겠다면 좀 더 기다려 보십쇼.
- 어떠한 근거에서 그런 얘길 하시는 겁니까?
- 지금 모 처엘 다녀오는 길인데 설비자금이나 시설자금으로서 거액이 터질 전망입니다.
- 자신 있습니까?
- 물론, 확실한 근거가 있습니다. 매각 건은 취소하시고 조금만 더 기다려보십쇼.
(음악)
(전화벨 소리)
- 네, 화실입니다. 언닌 아직 안 나오셨는데요. 감기예요. 네, 어제부터요. 글쎄요. 잘 모르겠어요.
어디라고 전해드릴까요? 네.
(전화 수화기 내려놓는 소리)
(쇠문 여닫는 소리)
- 어머, 언니.
- 응. 별일 없었니?
- 네, 그런데 몸은 어떠세요? 괜찮아요?
- 아, 그래. 어젠 열이 갑자기 솟구쳤는데 이젠 괜찮은 것 같다.
- 아이, 하루쯤 더 쉬지 않고. 아참, 방금 어디서 전화가 왔었어요.
- 누군데?
- 모르겠어요. 남자분인데 누구시냐니까 그냥 알았다면서 전화를 끊었어요.
- 이경우 기자 아니야?
- 아니에요, 그분 음성은 잘 아는데요. 뭐.
- 그럼 누굴까?
- 음... 그 음성이 말이에요.
(쇠문 여닫는 소리)
- 어... 어! 환자가 나오셨군.
- 아하하, 어서 오세요.
- 이 기자님.
- 심심하셨던 모양이로군요. 감기에 다 걸리시고.
- 네. 그랬어요.
- 이렇게 쉽게 나으실 줄은 몰랐는데?
- 전 쉽게 걸리고 쉽게 낫는 성격이에요.
- 감정적인 성품이니까 행여 사랑 같은 건 그렇게 하지 마세요.
- 네?
- 하하하하, 아무것도 아닙니다.
- 이 기자님, 어제도 들리셨어요.
- 개점생이 하나 늘어 반갑군요.
- 아니, 출석부에 벌써 올라갔습니까? 아하하하하. 아니, 근데 이건 못 보던 건데.
뭡니까? 스케친데.
- 네, 크게 아프지도 않으면서 누워 있자니 심심해서요.
- 그리다 만 누구의 얼굴 스케친데... 설마, 납니까?
- 나중에 다 그려 넣은 뒤에 보세요.
- 이 정도로선 아직 누군지 분간할 수가 없는데.
- 아무도 아니에요.
(음악)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늦었는데 어디 갔다 오는 거냐.
- 네, 볼일 때문에요.
- 서 사장, 오늘 만났니?
- 못 만났어요.
- 그래?
- 아무 얘기도 없든?
- 묻지도 않았어요. 관심도 없구요.
- 아... 너희 부부는 문제가 있어. 문제가. 내가 잘못 짝을 지어줬는지 모르겠다.
- 아버진 정략적으로 나를 결혼시키신 거 아니에요?
- 뭐?! 정략적?
- 그이 회사가 그땐 시시했지만 몇 년 내로 곧 그룹이 되리라는 걸 알고 계셨잖아요.
- 어허, 못하는 소리가 없군. 관두자. 그걸 가지고 여기서 아비와 딸이 다툴 때가 아니다.
- 아, 저도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된 일이에요?
- 뭘 말이냐?
- 공장을 매각키로 했다던데 왜 또 금방 뒤집었어요?
- 모르겠다. 글쎄, 내 말을 듣나 싶더니 금방 다시 마음이 변해버린 것 같으니까.
- 알 수 없는 분이로군요. 그럼 대체 어쩌자는 거예요?
- 알 수 없지. 대체 누구의 말을 듣고서 그러는 건지...
(음악)
박웅, 유민석, 김정미, 오세홍, 설영범, 김환진, 안경진, 양미학, 장광.
음악 이훈. 효과 심재훈, 장준구. 기술 이원섭. 주제가 작사 작곡 서유석.
노래 서유석, 김형균과 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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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스물한 번째로 롯데삼강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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