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인생극장. 달려오는 사람들. 롯데삼강 제공입니다.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열여덟 번째.
(음악)
-『심한 자금난으로 위기에 봉착한 서진실업에 안전사고가 발생,
두 사람의 기능공이 숨지고 한 사람은 중태에 빠져 있습니다.
서진실업이 김포에 건설 중인 철강압연공장에서 어제-.』
- 몇 번씩 방송이 되는군.
- 부사장님은 자기 손을 써놨으니까 신문 방송엔 한 군데도 나지 않을 거라고
큰소리 치셨잖아요?
- 부사장님이 어떻게 그걸 다 막을 수 있어? 우리나라 신문 방송이 얼마나 많은데.
- 어, 부사장님 오세요.
- 어.
(문 여닫는 소리 및 발자국 소리)
- 사장 계시나?
- 네, 혼자 계십니다.
- 음.
(문 두드리는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사장님, 신문 보시겠습니까.
(신문 만지작거리는 소리)
- 뭐라고 났소?
- 부탁한 대로 잘 내줬습니다. 단순한 안전사고. 1단으로 아주 작게 취급해줬군요.
- 수고하셨소.
- 하하하하, 사장님. 이런 일로 너무 의기소침해지지 마십쇼. 희생이 따르지 않는 공장은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 내 책임이오.
- 무슨 말씀을. 아, 사장님이야 아무런 상관도 없었고. 현장에도 없었던 것으로 경찰조사가
나갔지 않습니까. 공연히 현장에서 작업강행을 지시한 직후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한다면
시끄러워집니다.
- 아... 음... 비가 좀 왔다고 해서 그렇게 위험할 줄은 몰랐어.
(문 여닫는 소리)
- 아니, 이거 웬일이지?!
- 아, 아니, 회장님! 왜 그렇게 급히 들어오십니까?
- 이 신문 좀 보라구, 부사장!! 기사가 딴판이잖아!!
(음악)
- 어머나!
- 왜 그래요? 언니. 왜 그렇게 신문을 열심히 보세요?
- 아, 아니, 이거. 얘, 여기 좀 봐.
(신문 펼치는 소리)
- 응? 아니, 서진실업이라면 언니 그림 사가주신 그 젊은 사장님-.
- 아, 그래. 그런데 얘, 저쪽 신문 좀 줘봐.
- 네.
(신문 펼치는 소리)
- 아, 초문신문엔 그냥 사고가 났다고 작게 났던데 이건 아주 크게 났잖아.
- 사장을 아주 안 좋게 써놨잖아요? 음... 비가 오는데 사장이 공사를 강행하기 위해
무리하게 현장에서 독촉지시를 내린 직후, 위험하게 철골공사를 시작하다가
사장의 호통소리에 놀란 공원 한 사람이 그만-.
- 이 신문, 이경우 기자가 있는 곳이지.
- 네, 아, 이 신문 너무 심하게 써놨네요. 꼭 사장이 잘못해서 그런 것으로 써놨잖아요?
- 그래... 설마, 그 이경우 기자가...
(음악)
- 어떻게 된 거야?!! 이건, 이건 모략 아니야?! 모략!!
- 죄송합니다. 각 신문사에 부탁을 단단히 했었는데...
- 단순히 사고보도를 막자는 건 아니지만 이건 뭐야!! 경찰조사에서도 사장이 현장에 있었다는 걸
말하지 않았다면서 왜 이 신문에만 이게 낫지?!!
- 음... 모르겠습니다. 아마 어떤 기자가 와서 정밀취재를 해간 모양입니다.
- 정밀취재라니?!! 누가 이런 터무니없는 소리를 지껄였단 말인가?!!
- 기자들이란 그렇게 호락호락 곧이듣는 습성이 아니지 않습니까?
- 망할 자식들! 이건 완전히 악의적으로 보도한 거야. 악의적으로!!
- 관두십쇼. 가셔서 일들 보십쇼.
- 네. 그렇지 않아도 골치가 아프실 건데 죄송합니다. 하지만 설사 사장님이 이미 현장에 있었다고
해도 전혀 지장은 없습니다. 그건 도의적인 개념의 차이니까요.
- 그래! 그거란 말야. 이 작자들은 서 사장을 도덕적으로 매장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잖아!!
- 저, 나가십시다. 회장님. 가셔서 의논하시죠.
- 음...
(발자국 소리 및 문 여닫는 소리)
- 음...
(전화벨 소리)
- (전화 음성 소리)사장님, 이경우 기자가 오셨는데요.
- 들어오시라고 해.
(음악)
- 이봐, 미스터 오. 지금 들어간 저 친구, 이름이 뭐라고 그랬지?
- 명함, 여기 있습니다. 부사장님.
- 음, 경제부 기자 이경우. 오, 그렇지. 저번에 나한테 한번 찾아왔던 그 친구였지.
- 여기 몇 번 왔었습니다. 사장님과 학교동창이라고 들었습니다만.
- 동창?! 아하하하하하하하...
- 아니, 왜 그러십니까?
- 하하하하하하... 아니야.
(음악)
- 앉게. 음.
- 미안하네, 서 사장.
- 미안하긴. 자네가 그런 얘길 할 필요는 없어.
- 그렇게 생각한다면 할 수 없지만 사실은 나도 신문을 보고 놀랐어.
- 그랬겠지.
- 다른 신문이라면 괜찮았겠지만 하필이면 내가 근무하는 신문에 말야.
- 좀 과장스럽게 썼긴 했지만 대체로 맞는 기사였네.
- 그랬나?
- 신문에도 각각 부서가 따로 있고 담당하는 부서가 다른데 편집국장도 아니면서
그렇게 미안해 할 건 없지 않나.
- 이 기사 때문에 영향은 어떤가?
- 현장에 있었으면서도 없었던 체 했던 내 비겁이 폭로됐잖아? 작업을 할 수 없는 날에도
작업을 강행시킨 무식하고 자기목적밖에 모르는 비열한 경영자.
- 경찰에 나가는 신출내기 기자가 이 기사를 썼는데 경찰조서를 본 건 아니고, 회사 자체에서도
자네를 연관시켜 발표했을 리도 없고 이상한 점이 있어.
- 뭔데?
- 누군가 자네를 노리고 있는 사람이 있나? 회사의 고위간부 중에서.
- 설마... 왜 그런 짐작을 하나.
- 누군가 좋지 않는 정보를 자꾸 밖으로 퍼트리려는 사람이 있는 것 같아.
- 증거가 있나?
- 그 경찰담당기자의 태도도 그렇고, 그저 ‘회사의 누구한테서 들었습니다.
자세한 건 밝힐 수 없습니다.’ 그런 식이었어.
- 난 회사에 적이 없어.
- 그럼 친군 있나?
- 음...
- 마음을 털어놓고 의논할 상대가 있어?
- 그래, 없지... 그래서 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도움을 받지 않고
혼자 일해왔네. 물론 전혀 혼자는 아니었어. 그렇지만 혼자라는 생각이 떠나본 적은 없었어.
- 점점 자네가 부러워 보이지 않는군.
- 그래, 평범한 행복도, 진실한 우정도, 애정도, 존경도 모두 떠나버리고 없어.
사람들은 굽실거리지만 나라는 인간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걸 내가 잘 안단 말이야.
- 얼마 전까지 자넬 직접 만나지 않고 외부에서만 봤을 땐 말이야. 이러리라곤 생각지 않았어.
언제 시간 나거든 둘이 대포나 한잔 하세. 뒷골목에 가서 싸구려 안주를 놓고 학생시절처럼 한번.
- 고맙네.
- 자신 있나?
- 없어.
- 왜?
- 난 언제나 보호받고 감시당하고 있으니까.
- 누구한테서?
- 내 마누라, 장인, 회사 간부들, 직원, 동 업계, 구경꾼들. 난 그들의 마스코트야.
- 탈출하게, 한 번씩 자유롭게 탈출해! 자넨 어항에 갇혀 있어.
(음악)
(비오는 소리)
- 비가 그칠 것 같더니 다시 굵어지네요.
- 그래? 어서 들어가. 난 저걸 좀 더 손질해놓고 갈 테니까.
- 그래요, 그럼 내일 만나요. 언니.
- 그래, 오늘 수고했어.
(쇠문 여닫는 소리)
- 아, 피곤해. 아, 한 시간만 딱 매달리면 끝나겠지?
(쇠문 여닫는 소리)
- 어, 왜 도로 왔니? 어... 사장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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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인생극장. 김남 극본. 달려오는 사람들. 이규상 연출. 열여덟 번째로 롯데삼강 제공이었습니다.
(음악)
(입력일 : 2010.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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